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1. 말씀읽기: 마태3,1-12 세례자 요한의 설교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 유다 광야에서 이렇게 선포하였다. 2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3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4 요한은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다.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6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7 그러나 요한은 많은 바리사이와 사두가이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12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외쳤습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며, 삶으로 자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도 자주 들어서인지 “회개하여라!”라는 말씀은 “그런가보다”하는 마음으로 와 닿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늦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는 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나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합당한 준비를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2.1. 세례자 요한의 선포
세례자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외쳤습니다. 광야는 아무도 없는 곳, 버려진 곳이지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파견 받은 세례자 요한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면서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삶으로 메시지를 권력자들까지도 요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①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2)
요한은 유다광야에서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3,2)고 외쳤습니다. 요한이 선포한 이 회개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칠 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의 바꾸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미룰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나라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는 하느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을 간직해야 합니다.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힘만으로는 온전하게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와 부족함을 인정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한다는 것은 결국 주님께 온전히 나를 맡긴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나를 온전히 맡겨 드릴 때 내가 붙잡고 있는 악행이나 죄들을 놓을 수 있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에 들어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② 어떻게 회개할 것인가?
회개한다는 것은 내가 가고 싶은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맺고 싶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서 나를 볼 때 나의 행동을 합리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 나의 죄에 대해서 가슴아파하면서 통회하게 됩니다. 참된 통회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고, 나의 죄로 인하여 주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린 것에 대해서 깊이 있게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다시는 그런 죄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마음을 고쳐먹게 됩니다. 이렇게 성찰과 통회가 있어야 만이 참된 회개가 가능하게 됩니다.
2.2. 세례자 요한은 누구인가?
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세례자 요한은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마태3,3)라고 말했습니다.
소아시아의 관습에 따르면 위대한 인물이 올 때에는 특별히 그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한 전령이 일행에 앞서서, 사막의 길을 닦고 작은 길을 평평하게 고르라고 외칩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리는 전령이었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선구자였고, 예수님의 행차를 알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였습니다.
또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는 노예로 끌려갔던 히브리인들의 해방을 알리는 기쁨의 소리였습니다. 유배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때 먼저 전령이 그 기쁜 소식을 외쳤고,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이끌고 앞장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의 오심을 알리는 전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고, 회개시켜 메시아를 맞이하게 하는 사명을 수행하였습니다.
② 주님의 길을 마련하는 이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를 선포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려놓는 일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고, 그 길을 곧게 내는 일을 하였습니다. 주님의 길은 주님께서 오시는 길이고,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오심을 볼 수 있는 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님께로 향하는 길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치우고, 오시는 주님을 볼 수 있도록 회개를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회개의 삶은 주님의 길로 나아갈 수 있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데 장애되는 모든 것들을 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주님께서 걸으신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주님의 길은 심판의 길이 아니라 구원의 길이 되고,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됩니다.
③ 삶으로 메시지를 전한 이
요한는 낙타 털로 된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둘렀습니다. 그리고 그의 음식은 “메뚜기와 들꿀”(마태3,4)이었습니다. 요한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온 몸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는 예언자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그의 삶이었습니다. 그가 입은 옷은 가난뱅이와 예언자의 옷이기도 했습니다(열왕기 하1,8; 즈카르야13,4; 히브리서 11,37). 그리고 그가 먹은 음식은 힘겨운 고행의 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요한은 이렇게 힘든 고행의 삶을 살아갔을까요?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요한은 자신이 전하고 있는 메시지를 삶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면서 오로지 주님만을 바라보며, 다른 것들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모습을 삶으로 보여 준 것입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가 먹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이고,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가 입어야 하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은총임을 보여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먹는 것, 내가 입는 것들에 대해서 깊이 있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한 성찰을 통해 내가 정말로 의지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2.3. 세례를 베푸는 요한
세례자 요한은 회개를 선포하면서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요르단 부근 지방의 모든 사람이 그에게 나아가, 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마태3,5-6).
그들은 요한에게 와서 자기 죄를 고백하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금으로써 이루어졌습니다. 이 세례는 죄 고백과 함께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회개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내는 표시였습니다. 동시에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보증하는 표시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요한의 세례는 다가올 심판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례를 받은 사람은 종말에 하느님의 새 백성의 일원이 될 자격이 있고 또 그 길을 잘 준비하는 셈이 됩니다. 그러나 진실한 회개와 함께 생활 태도의 변화는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합니다.
2.4.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에게 경고하는 요한
① 백성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세례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사이와 사두가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다가오는 진노를 피하라고 누가 너희에게 일러 주더냐? 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3,7-8)고 경고합니다.
바리사이들은 백성의 지도자이지만 자신들만을 생각하고 백성들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을 위해 있으면서도 백성을 돌보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가르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나라를 막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들을 “독사의 자식들아!”(마태3,7)라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독사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독사의 자식들은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지만 백성을 사랑하지 않고, 돌보지 않고, 그들 위에 군림하고 단죄하는 것이 이들의 모습이었으니 결국 독사의 자식이라는 표현은 정확한 표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니 세례자 요한은 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마태3,8)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꾸짖는 것입니다.
②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은 형식적인 회개를 하느님께서는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저는 냉담한지 10년이 됩니다. 또는 몇 년이 됩니다.~”라고 고백한다면 “이제 제가 회개했으니 다시 예비자 교리반에 들어가서 다시 교리를 배우고, 저의 신앙을 굳게 하며, 성경 공부반이나 레지오에 들어가서 기쁘게 주님을 모실 준비를 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있어야 합니다. 오랜 기간 냉담했어도 “고백성사”보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받아 모시게 되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어~ 신앙이 저런 것은 아닐텐데…,”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변했다면 행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변했다는 증거는 행동의 변화로 알게 됩니다. 행동이 변화되지 않으면, 마음은 변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려면 그들은 먼저 자신들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자신들에게 맡겨진 직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백성을 돌보고, 백성을 이끄는 역할이 부여되었다면 당연히 그 일을 성실하게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백성들을 무시하고, 비하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구원에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생각을 바꾸어야 하고, 행동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독사의 자식들이 아니라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들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알아 뵙지 못했습니다. 회개는 말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회개는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생활이 바뀌고 영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③ 착각하지 말고 겸손해져라.
세례자 요한은 마음이 굳은 이들에게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고 말할 생각일랑 하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마태3,9)고 경고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면 결국 하느님 나라에는 못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마치 대통령의 아들이라 할지라도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유다인이라 할지라도 옳게 살지 못한다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행위는 엉망이었지만 착각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구원받는다고 생각했고, 자신들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은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렇게 살아서는 절대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니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들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말하는 돌들은 이방인들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자녀는 하느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당연히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안 살고 있다는 것이고,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것이기에, 믿음을 가진 이들이 이방인이든, 유다인이든 간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면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의 삶(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구원에로 향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할 수 있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겸손하게 믿음을 고백하며 주님께로 나아가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경고나 충고에 발끈하지 말고, 그의 말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는 보지 못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누구보다도 잘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④ 열매 맺지 못한 나무의 운명
세례자 요한은 이제 때가 가까이 오고 있음을 알립니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마태3,10)는 것은 이미 심판이 아주 가까이 와 닿았다는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한 나무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심판의 기준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인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인가?”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의 운명은 분명하게 정해져 있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3,10)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베어서 불 속에 던져져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주인의 마음을 외면했다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망각했다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서 다른 이들을 현혹하여 열매 맺지 못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은 열매를 맺는 신앙인이 어떤 모습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이, 형제자매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존중해 주는 이,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믿고 있는 바를 보여 주는 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 기꺼이 손을 내 미는 이가 좋은 열매는 맺는 신앙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와 반대되는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신앙인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사람들, 그들이 바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떤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를 늘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내가 주인이라면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를 어떻게 할까를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2.5.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
①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주는 세례자 요한
세례자 요한은 군중들이 자신을 메시아로 오해하지 않도록 자기 자신을 겸손하게 고백합니다.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마태3,11ㄱ) 그리고 이어서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마태3,11ㄴ)라고 말하면서 예수님과 자신을 비교해 알려 줍니다. 그리고 더욱 겸손하게 자신을 고백합니다. 요한은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마태3,11ㄷ)고 고백합니다.
요한은 메시아가 아닙니다.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고, 자신이 알리고 있는 분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베푸는 세례의 의미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내가 부모님의 자녀라는 것. 한 사람의 배우자라는 것. 선생님의 제자라는 것. 한 직장에서 어떤 사람을 모시고 누구와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매 순간 내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해 집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끊임없이 성찰하게 되면 요한의 모습처럼 그렇게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처럼 그렇게 성실하고 겸손하게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② 불과 성령의 세례를 베푸시는 메시아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겸손하게 고백하면서 자신이 선포하고 있는 메시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태3,11ㄹ) 그런데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령께서는 신앙인들의 마음을 견고하게 하십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게 만들어 줍니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 버립니다. 내 안에서 잘못된 것들, 헛된 욕망들, 아집들을 모두 태워 버리고 금이 불을 통하여 순수함을 얻듯 그렇게 오롯이 예수님께로만 향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준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온전히 나를 당신께로 향하게 만든다는 것이고, 사랑의 불이 타 올라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신 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 베푸시는 성령과 불의 세례는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며,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를 통하여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은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합당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오롯이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③ 심판하시는 메시아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메시아는 또한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요한은 메시아의 심판을 이렇게 말합니다.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하시어,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마태3,12)
우리 나라의 농부들도 그렇게 하지만, 팔레스티나에서도 타작이 끝나 타작마당에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섞여 있을 때 농부들은 키 등을 사용하여 무거운 알곡은 땅에 떨어지게 하고, 쭉정이는 바람에 날아가게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타작마당이 깨끗해질 뿐 아니라 알곡과 쭉정이가 가려져서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 버릴 수 있게 됩니다.
타작마당은 이 세상이고 키질하는 사람은 메시아이시고, 알곡은 올바른 사람, 쭉정이는 악인, 곳간은 하늘나라, 꺼지지 않는 불은 지옥을 가리킵니다. 메시아는 사람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분인 동시에 최고 심판자이십니다. 심판자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르치거나 속거나 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알곡이냐 쭉정이냐가 심판으로 가려지면 아버지의 영원한 곳간, 혹은 지옥의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어디로 갈까요? 곳간으로 갈까요? 아니면 불속으로 던져질까요? 나는 어디를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심판 때 불 속이 아니라 곳간으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은총 안에서 기도하고, 늘 감사하며, 감사를 행동으로 옮기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더욱 성실하게 살아가는 내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하며 무엇이 주님의 뜻인지를 알려 노력하며 살아가게 된다면 주님께서 나를 기쁘게 맞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열매 맺는 신앙인은 어떤 삶을 살아갈까요? 세례자 요한의 선포에 귀를 기울이면서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생각해 봅시다.
③ 세례자 요한은 겸손하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힙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에 대해서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더욱 겸손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 설 수 있도록 다짐하는 이야기를 해 봅시다.
4. 알림 및 공지
① 고해성사 준비를 잘 하고, 고해성사를 통해서 더욱 성장하기
②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같아질 수 있도록 노력하기
③ 겸손하지 못한 나의 모습을 이야기 해 보고, 더욱 겸손해지기 위해 노력하기
5. 말씀으로 기도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