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대림 제2주간 토요일(12/15)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를 기다렸다. 종말의 날에 다시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스승님께서는 오셨는데 어찌하여 엘리야는 오지 않느냐고 질문한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역할을 했다고 답변하신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 알렐루야.
    복음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0-1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시는 길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을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이 예물을 정성껏 봉헌하며 비오니, 주님께서 제정하신 거룩한 신비를 거행함으로써 저희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곧 간다. 사람마다 제 행실대로 상을 주리라.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께서는 인자하시니, 이 성사의 힘으로 저희 죄를 깨끗이 씻어 주시어, 다가오는 성탄 축제를 준비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종말이 가까워지면 엘리야 예언자가 온다고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종말의 준비를 위하여 주님께서 보내신다고 믿었던 것이지요. 일종의 민간 신앙입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에 빠졌을 때 일침을 가했던 예언자였습니다. 하도 유명해서 그는 죽지 않고 승천했다고 믿었습니다. 승천했기에 종말 때 다시 세상에 내려와 포효할 것이라 믿었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엘리야는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입니다. 삶의 마지막을 생각하게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엘리야인 것이지요. 클라라 할머니는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는 분입니다. 자녀들은 모두 혼인해서 떠나고 영감님과 단둘이 삽니다. 그런데도 바쁩니다. 본당의 아픈 노인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봉성체 때는 언제나 함께합니다. 그녀의 진가는 장례가 나면 더욱 드러납니다. 연도와 장례 절차를 말없이 챙깁니다. 죽은 이와 유가족을 위하여 정성을 다합니다. 그녀의 진심에 사람들은 숙연해지기까지 합니다. ‘무엇을 위하여 저토록 정성을 들이는가? 친척도 아닌데 참으로 고마운 분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받아들입니다. 삶은 잠깐입니다. 어려웠던 시간도, 힘들었던 사건도 지나고 보면 빠르게 느껴집니다. 삶의 마지막도 그런 식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늘 잊고 삽니다. 클라라 할머니의 모습에서 아름다운 노년을 봅니다. 그분은 엘리야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Christe Redemptor[그리스도 우리구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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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였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엘리야는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그처럼 사람의 아들도 그들에게 고난을
    받을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 안에 와 계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주시며, 진정 마음 깊이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는지
    반성하게 하십니다.

    대림2주가 다 지나가는데도, 혜안을 갖지 못한 저는, 제 안에 그리고
    제 삶 속에 빛으로 와 계신 당신을 알아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깊이 회개하고 성찰하지 못하여 아직까지 판공성사조차
    보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은 늘 회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가도, 하루 하루가 그 삶에 그 삶이
    되고 맙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주님!

    제가 사랑드릴 주님이시여!

    제 삶이 세상일에 너무 치우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여유를 담아 기쁘게 당신을 기다리게 하소서.

    하루하루 조금씩 준비하며
    당신께 진심으로 뉘우치고 성찰하여 성실하게 고백하게 하소서.
    죄 많은 저의 죄를 깨끝하게 씻어 주시고 어루만저 주소서.
    그리하여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님 당신을 온 마음으로
    모실 수 있게 도와 주소서.

    주여!
    언제까지나 저와 함께 하소서. 아멘.

  2. user#0 님의 말:

     

    “율법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라고 산에서 내려오며

    제자들이 예수님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길을 준비하는 자!

    겸손되이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선포하지만

    그를 알아보지 못한 율법학자들!

    온 유다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인정을 하지 않았나 봅니다.

    이미 왔는데~~ 그쵸?

    허긴 받아들이려 하지도 않았겠지요.

    멋진 사람을 보고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말씀을 묵상하면서

    “난 아닐꺼야” 라고 속삭여 봅니다.

    저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겠지요.

    보고도 인정하지 않는 자세,

    바른 가르침을 줌에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모습에서

    저를 찾아봅니다.

    함께 봉사를 하면서

    의로운 이의 편에 서서 그를 도와주었는지~

    준비하는 자세로 뭔가를 열심히 하는 이에게

    칭잔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바른 말을 하고

    몸과 마음이 하나되어 열심히 움직이는 이에게

    돌을 던지진 않았는지~~

    의로운 이가 제 눈앞에 있어도

    저의 자존심이 눈 멀게 하진 않았는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산을 내려오며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찌하여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라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러

    길을 닦으러 온 세례자 요한을 인정하지 않는

    율법학자들의 모습이

    지금의 저의 모습은 아닌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미 와 있음에도 인정하지 않으며

    다른 것을 기다리는 척 외면하는 사람들!

    막상 오셨다 해도

    또 다른 핑계를 대며 굽히지 않겠지요.

    이미 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를 못한,

    아니 인정하지를 않는 모습이

    저의 부족한 모습은 아닌지요.

    인정함이 저가 낮추어 지는게 아닌데

    봉사를 하면서 혹여 그런 적은 없었는지요.

    인정하고 받아들일때

    더 깊은 곳으로 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소서.

    그리고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저를 더 작게 만듬을 알게 하시어

    아버지의 길을 준비하는 자식으로서

    볼 눈을 가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든 아버지의 소리를 듣게 하시고

    아버지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시어

    뒤늦은 후회를 하며 울게 하지 마소서.

    아멘.

     

    제가 놓친 것이 참으로 소중한 알림임을

    늘 깨닫게 하소서.

    만약 알았더라면

    예수님의 길을 바꿀수 있었을까요?

    아니 아픔을 조금이나마 덜어 드릴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세례자 요한을 알아보았더라면

    준비하는데 있어서

     좀더 잘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3. user#0 님의 말: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
    생각속에 무엇이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는가…
    그안에 그분이 계시다면
    엘리야가 이미 오셨든 아니 앞으로 또 오시든 왈가왈부 할 필요없이
    나는 엘리야를 볼것이다.
    그런데 엘리야가 또 오실까? 그럼 누구란 말인가… 궁금해 하고 논쟁을 벌일때가 종종있다.

    그분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기 때문일게다.
    그래서 남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들이 나와 연관된 문제라면
    절실하게 그분을 믿는다고 하면서 내안에 그분이 없다.
    나약한 인간인지라 고난을 거부하고 살고 싶기 때문이다.
    고난을 거부하는 삶은
    그분을 만나뵐수 없음이 아닌가…

    오늘은 나 자신을 가지치기 해야겠다.
    나무에 더 많은 영양분을 주고 내가 살기 위해서 말이다.

    내게 있어 그분은 어떤 존재이던가.
    그분은 거대한 나무고 나는 잔가지일뿐임을…
    그래서 중심이신 그분을 드러내기 위해선
    어떠한 유혹이 있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잘려나갈수 있어야 한다.
    겸손되이….
    세자 요한처럼 말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분은 나를 영원히 살릴수 있는 구원자이시기 때문이다.

    주님!
    십자가를 거부하고 싶은 마음을 없애주시고
    절 유혹에서 구하소서.

  4. user#0 님의 말: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말씀에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좋은 사람도 만나고
    만나기 싫은 사람들도 가끔 씩은 만나게 되지요
    모든 것이 제 뜻대로 되면 좋겠지만 ...
    올바른 판단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으니 믿었던
    사람한테 실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에게 선경지명이나 해박한 지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광고문구가 있듯이
    저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했는데도 가끔 씩은 실수를 할 때가 있으니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저 역시 남에게 실망을 안기고 좋은 사람으로 생각되기 보다는
    만나면 불편하고 기쁨을 주지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이 되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기쁨까지는 바라지 않는다해도 실망을 주거나 상처를 주는
    사람은 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성찰하며

    남에게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제멋대로 다루었다.”

    묵상하며 

    ♬ Preghiera ‘ 기도’ -Placido Domi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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