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천사가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알리다.


대림 제3주간 수요일(12/19)


    말씀의 초대
    즈카르야는 천사가 나타나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것을 알릴 때 순간적으로 의심한다. 자신과 부인은 생리적으로 아기를 가질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즈카르야는 주님의 권능을 의심했기에 그 보속으로 벙어리가 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이사이의 뿌리, 민족들의 깃발로 세워지신 분, 지체하지 마시고 저희를 구원하러 오소서. ◎ 알렐루야.
    복음
    <가브리엘 천사가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알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2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제단에 올리는 이 예물을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보잘것없는 예물을 주님의 힘으로 거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떠오르는 태양이 높은 곳에서 우리를 찾아오시어,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시리라.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천상 양식을 받고 감사하며 청하오니, 저희가 다가오는 구원을 열망하며, 깨끗한 마음으로 구세주의 성탄을 맞이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들은 대로, 세례자 요한의 뒤에는 아버지 즈카르야의 숨은 시련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천사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요한의 탄생을 알립니다. 당시 즈카르야 부부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니 아기를 낳지 못하는 부부였습니다. 젊은 시절 부부는 수없이 기도했을 겁니다. 자녀를 주십사고 그 어떤 열성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청하고 또 청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그렇게 답이 없으시던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신 겁니다. 그러고는 아들을 예언합니다. 즈카르야는 놀랍니다. 믿을 수 없었던 거지요. 자식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즈카르야였습니다. 그는 순간적으로 아내를 떠올립니다. 생리적으로 임신이 불가능해진 아내를 떠올립니다. 그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그는 벙어리가 됩니다. 말문이 막히자 그는 모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말을 앗아 갔지만 깨달음의 은총을 주셨던 것이지요. 즈카르야는 아들을 위하여 모든 시련을 견디어 냅니다. 그는 세례자 요한을 위한 거름이 되었고,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놀림과 의심도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어려움을 인내하지 않으면 위대한 사람의 부모로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사랑해요 주님 - 까리따스 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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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천사가 요한 세례자의 탄생을 알리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1. 말씀읽기:루카1,5-25: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2.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아버지 즈카르야가 겪게되는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한 여인의 기쁨. 그 축복의 현장에서 즈카르야나 엘리사벳이 되어 그 기쁨을 느껴 봅시다.


    5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로서 즈카르야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서 이름은 엘리사벳이었다.

    헤로데가 유다의 임금이었을 때는 기원전 40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유다 임금 헤로데의 통치 시대와 관련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통치 시대에 이루어집니다.

    세례자 요한의 부모님들은 성덕으로 이름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비야 조의 사제였고, 그의 어머니의 선조는 첫 대사제인 아론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혼인은 사제들이 지켜야 할 율법의 신성한 의무에 합당한 것이었습니다. 사제는 반드시 사제의 딸과 결혼해야만 했고, 유대인들에게 있어 사제직은 친자식에게만 이양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봉헌된 거룩한 사제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그의 아버지가 하느님을 섬기던 일과는 매우 다르게 될 것입니다.


    6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의로운 이들이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시는 분들이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세례자 요한은 그런 가정에서 태어나셨고, 그렇게 하느님에 대한 열정을 물려받았을 것입니다.


    7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

     구원사의 위대한 인물들 중 많은 이들의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은 자연적으로는 이룰 수 없는 일을 하느님께서 개입하심으로써 이루어 주신,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이 인물들의 예를 들자면, 이사악(창세기 17,16), 판관 삼손(판관기 13,2), 사무엘(사무엘상 1-2장)등이 있습니다. 세례자 또한 이 위대한 인물들의 계열에 들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던 어머니, 게다가 두 부부는 나이가 많이 있었습니다. 즉, 아이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8 즈카르야가 자기 조 차례가 되어 하느님 앞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할 때의 일이다.

     모든 사제들이 다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많은 사제들은 팔레스티나의 여러 고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기 차례가 되면 성전에서 사제 직무를 수행하였습니다. 제관들은 24조로 나뉘어 한 주간씩 돌아가며 성전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아비야 조는 여덟째 조(1역대24,1-19)입니다. 예수님시대에 그렇게 성전에서 봉사하던 제관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이만명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9 사제직의 관례에 따라 제비를 뽑았는데, 그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기로 결정되었다.

    성소는 사제들만이 들어갈 수 있었고, 백성들은 바깥에서 기도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제라 할지라도 제비를 뽑아 당첨된 사람만이 그 안에 들어가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서 거룩한 예식을 거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성전에서 당신 백성 가까이에 계시지만 하느님 가까이 나아가는 일은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시어 제비뽑기를 통하여 부르시는 사람들에게만 맡겨져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매일 아침과 오후에 두 차례 정기적 제사를 봉헌하였습니다. 각 조마다 제관이 수백 명에 달했기 때문에 제관 대부분은 그냥 참관만 하고, 제비를 뽑아 당첨된 제관들만이 제례를 주관했습니다. 어린양을 잡아 번제를 바칠 제관, 기름으로 반죽한 밀가루와 포도주를 바칠 제관, 분향할 제관, 촛대를 보살필 제관을 추첨으로 선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 제례 가운데 분향을 가장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만일 어느 제관이 당첨되어 한번 분향했으면 자기 조의 제관이 모두 분향할 때까지는 분향 제비를 뽑을 수조차 없었습니다. 제관들은 일생 단 한 번만이라도 분향하는 일을 더없는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10 그가 분향하는 동안에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다.

    분향은 기도의 상징이고(시편 141,2 참조)., 하느님을 향해 자신을 태워 버리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즈카르야는 분향을 하며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있었고, 성소 밖에서는 온 백성의 무리가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1 그때에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섰다.

    거룩한 장소에서 거룩하게 기도할 때 거룩한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났다는 것은 그 기쁜 소식이 하늘에 기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분향 제단 오른쪽에 서 있었다고 전해주는데, 오른쪽은 구원을 의미합니다(마태오 25,33-34)


    12 즈카르야는 그 모습을 보고 놀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느님은 전적으로 “다른 분”, ‘가까이 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이사야 6,5참조). 하느님의 사자는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하느님의 거룩함과 영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요한의 출생 예고는 성전 성소라는 금지된 장소에서 이루어집니다. 그곳은 거룩한 전례에 관한 모든 규정들로 둘러싸여 있고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는 거룩한 힘으로 뒤덮은 곳으로서, 구약성경에서는 영의 세계에 속합니다. 즈카르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마주하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13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얼마나 놀랐을까요? 두려울 만 합니다. 하지만 하늘로부터 내려 온 어떤 사람이나 신적 존재가 인간에게 말을 건넬 때면 언제나 용기를 북돋우는,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을 먼저 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짓누르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일으켜 세워 주려 하십니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즈카르야는 늘 아이를 얻기를 소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사는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전해줍니다. 즈카르야의 기도가 받아들여 진 것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은 은혜로우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께서 친히 그 아기의 이름을 지어 주시고 아울러 그 아기에게 사명을 내려 주시며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기뻐할 사람은 부모만이 아닙니다. 다른 많은 이들 곧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들 역시 그들과의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례자 요한의 삶을 바라본다면 결국 기뻐하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을 받아들이는 사람.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기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거역하고자 하는 사람은 결코 세례자 요한을 반기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15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구원역사 안에서 엘리야로서의 큰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다른 위대한 인물들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구원이 오기를 고대하였을 뿐이지만 세례자 요한은 그 문턱에서서 하느님 나라와 구원이 다가왔음을 선포하였고(루카 7,28참조), 예수님께서“하느님의 어린양”이심을 고백하였고, 제자들을 예수님께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생활양식에 있어서도 지난날의 위대한 인물들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들은 결코 독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삼손(판관기 13,2-5.7)과 예언자 사무엘(사무엘 상 1,15-16)의 경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하느님의 거룩한 뜻을 드러내는 예언자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예언의 은사들을 받았지만 세례자는 생명의 첫 순간, 즉 어머니의 모태에서부터 예언자였습니다. 성모님과 어머니 엘리사벳이 만났을 때 “태중에서 예수님을 알아 보았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때는 구원과 함께 오는 성령의 풍부한 은사를 통하여 그 현존을 느끼게 합니다.


    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벌꿀을 먹으면서 살았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회개할 것을 요구하였고, 그 표징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세례자 요한에게로 몰려와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느님께로 돌렸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였습니다.


    17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요한은 새로운 계약을 도입하기 위한 길을 준비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말라키에서 마지막 때에 관해 한 다음과 같은 예언이 그에게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1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 24 그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리라. 그래야 내가 와서 이 땅을 파멸로 내리치지 않으리라.” (말라키 3,1.24)

      즉 요한은 죄에 떨어진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하느님 백성의 참된 일원이 되게 하고 불경한 이들을 덕스럽게 하여 주님을 맞아들이기에 합당한 백성으로 준비시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8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유대 역사상 위대한 인물들이 그러했듯이 즈카르야는 표징을 요구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유산으로 가나안 땅을 물려받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창세기 15,7-8). 기드온 역시 하느님께서 하신 약속에 대한 표징을 바랐으며(판관기 6,36), 히즈키야왕도 하느님께서 그의 생명을 연장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증거를 원했습니다(2 열왕기 20,8).


     부족한 나이기에 표징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표징을 보여 주실 수도 있지만, 당신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표징을 보여 주실 때까지 내가 기다리기를 원하시며, 나아가 비록 표징이 없다 하더라도 기꺼이 믿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시는 의심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씨앗이 되고, 믿는 이들에게는 구원의 근원이 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 또한 주님께 무슨 표징을 요구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당신께서 이것만 해 주시면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라고 너무도 많이 고백한 것 같습니다.


    19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면전에 서 있는 일곱 천사들(토비트 12,15; 요한 묵시록 8,2)중의 하나였습니다. 이 천사는 다니엘이 저녁 제사 때에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를 올리자(다니엘 9,4-19), 칠십 주간이 지난 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시를 준 천사였습니다(다니엘 9,24).

    표징을 요구하는 즈카르야의 말에 가브리엘은 먼저 자신이 누군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밝힙니다. 그리고 믿지 못했으니 벌이 주어질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는 믿어야 합니다. 믿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0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

    즈카르야는 믿음의 부족으로 표징을 요구하여 하느님을 시험함으로써 “아들을 얻게 되는 기쁜 소식”을 듣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벙어리라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즈카르야가 갑자기 귀머거리가 되고 말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하느님께서 개입하셨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즈카르야가 받은 벌은 또한 표징이었는데 이것은 약속이 이루어졌을 때에 끝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당신 일을 하십니다. 내가 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21 한편 즈카르야를 기다리던 백성은 그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하므로 이상하게 여겼다.

    유대 제관들은 거룩한 제사를 결코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염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하느님 가까이에 있는 것을 위험스러운 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 제사가 끝나면 제관은 번제 제단 밖으로 나아가서 거기 모인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해 주었습니다(민수6,24-26).

    사람들은 즈카르야가 성소 안에서 너무 지체를 하니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제 즈카르야를 보게 되면 늦은 이유를 짐작하게 될 것입니다.


    22 그런데 그가 밖으로 나와서 말도 하지 못하자, 사람들은 그가 성소 안에서 어떤 환시를 보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다.

     사람들은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을 보고, 하느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걸을 알았습니다. 즈카르야는 사람들에게 몸짓만 할 뿐 줄곧 벙어리로 지냈습니다. 사람들은 즈카르야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에 궁금해 했을 것이고, 답답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즈카르야는 기뻤을 것입니다. 이제 그는 기다리면 됩니다. 하느님의 일이 이루어지기를……,


    23 그러다가 봉직 기간이 차자 집으로 돌아갔다.

     즈가리야는 한 주간의 사제 직무를 끝내고 그 거룩한 도시를 떠났습니다. 그는 엄청난 비밀, 자신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것과 하느님께서 당신의 말씀을 지키시리라는 것에 대한 확실한 표징을 간직한 채 그곳을 떠났습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그를 벌하셨지만, 그는 하느님의 은혜로우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차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얼마나 기쁜 발걸음이었겠습니까?


    24 그 뒤에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잉태하였다. 엘리사벳은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내며 이렇게 말하였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역사상의 여인들 가운데 하나였지만 그녀는 하느님의 섭리하심에 의해 정상적으로 아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여인들 중에는 이사악의 어머니가 된 사라(창세기 17,17), 삼손의 어머니인 마노아의 아내(판관기 13,2), 그리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1사무엘  1,2.5)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탄생과 다른 점은 마리아는 인간적인 아무런 도움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일을 해 주셨기에 엘리사벳은 잉태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기요한은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 하느님께 봉헌될 아기입니다. 엘리사벳은 모든 것을 조심하며 은둔생활을 합니다. 큰 기쁨은 다른 것들을 잊게 만들고, 다른 것들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게 만듭니다.

    25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 주셨구나.”

     그녀는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갖지 못하는 그녀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셨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자기 백성의 역사를 자신의 삶에서 체험하였습니다.

    2 너희는 이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인도하신 모든 길을 기억하여라. 그것은 너희를 낮추시고,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너희 마음속을 알아보시려고 너희를 시험하신 것이다.······ 7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좋은 땅으로 데리고 가신다. 그곳은 물이 흐르는 시내와 샘이 있고, 골짜기와 산에서는 지하수가 솟아나오는 땅이다. ”(신명 8,2-7).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당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어떤 때는 시련처럼 느껴질 수 있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저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감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시면 좋고, 안 주셔도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감사하는 자세.” 그것이 바로 나의 자세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나눔 및 묵상

    1.즈카르야는 분향할 수 있는 사제로 뽑혔고, 성소에서 하느님의 천사를 만났고, 아들을 얻게 되었고, 또 믿지 못해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내가 즈카르야라면 내 마음의 변화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봅시다.


    2. 즈카르야는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믿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하느님께 기도할 때 조건을 달 때가 있었습니까? 믿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도하고 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2. user#0 님의 말:

    오늘은 17대 대통령 선거날이었다.
    그동안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 않나 싶다.
    하루하루가 지겨운 날 들이었는데 오늘로써 끝이 나서 너무 기분이 좋다.
    그러나 앞으로 험한 산을 넘어야 하는 특검이 남았다.

    좌우간 여론 조사가 나오고…
    매일 미사에 나오는 어떤 자매가 물었다.
    자기가 찍었던 후보가 떨어졌다며 하느님이 계시면,,,너무 속상하다고..
    오늘은 특별히 미사중에 그 후보를 위해 기억했는데…
    아무 연고도 없는사람을 위해 굳은믿음?을 갖고 오랫동안 기도도 했다한다.
    모든 후보자들…그리고 지지자들 각자 입장에서 보면 다 이런 마음들이지 않았나 싶다.

    인간이 오늘처럼 하느님을 절실이 찾은 날도 드물지 않았을까 싶다.
    나만 그랬나?
    암튼 묵상을 하면서 하느님도 괴롭고 기쁜 날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찾지 않다가 찾았으니 얼마나 반갑고 기쁘셨을까?
    당신을 찾은 모든 이에게 맨발로 나와서 품어주셨으리라 생각해 본다.

    그리고 하느님의 맘을 인간적으로 헤아려 보았다.
    자식 열 둘가진 아버지는 과연 누굴 더 사랑할까…
    그 자식들이 대통령 후보에 나왔다면 과연 누구편에 섰을까…
    하느님이 인간을 바라볼때는 모두가 똑같지 않을까 …
    왜?
    당신께서 만든 사랑하는 자녀들이기 때문에…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해 봤다.

    주님!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온전히 당신을 믿는다면 인간의 상식으로썬 이해 될수 없는일도 이루어짐을 봅니다.
    그런데 그런 권능을 보여 줄때가 과연 어느 때 인지요…
    정말 희미하게 알다가도 모르겠는 당신의 섭리…
    이렇게 자식이면서 아버지의 뜻을 잘 모르고 살아가는 저입니다.

    주님!
    당신께서…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고도 세상의 모든것들에 대해 사사건건 개입하셨다면
    무죄한 어린이의 학살도 없었을 테고
    3백년 동안 카타꼼바의 박해도 없었을 테고
    전쟁도 아귀다툼,자살, 순교,살인…기타등등 악의 세력들 또한 다 없어졌겠지요?

    인간에게 세상을 주시고 자유의지를 줬다는건
    최선을 다해 너네끼리 서로 사랑하고 잘 살라는 뜻이었을 겝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지도 않으면서
    “믿었는데…왜 안 들어주시는 거지?” 투덜거리며 살아가고 있네요.
    실천이 없는 믿음이었던 같습니다.

    주님!
    제가 할수 없는 것…
    세상에서는 절대로 할수 없는,그 한계앞에 있다해도
    당신을 의심하기보다 더욱 의지하고 저는 아무것도 아님을…
    이런 확고한 믿음을 갖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또한
    세상에서 인간의 능력으로 할수 있는 것은
    인간끼리 다 해결할수 있음을 깨달아 봅니다.
    아프리카의 굶어죽는 아이들…
    그리고 죄없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제가 사랑으로 나누고 진리를 외치고 산다면 살리 수 있다는 거지요.
    물론 정치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선택한 만큼 올바른 정치를 할수 있도록 관심과 사랑을 갖어야 하고…기도 또한 해야겠지요.
    그렇다고 내가 뽑지 않았는데 뭐~하면서 방관해서는 더욱 안되겠지요?
    세상은 함께 가야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말이지요.

    이렇게 답은 이미 나왔는데
    정작 저 자신은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믿음을 앞서워 당신께서 들어주지 않는다며 원망하고 살았습니다.
    깊이 반성해 보면서…

    주님!
    시끄러운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기억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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