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주님 공현 전 목요일(1/3)


    말씀의 초대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표현한다. 속죄의 날에 사람들의 죄를 대신해 제물이 되어 죽는 것이 어린양이다.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인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실 것이라고 요한이 예언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도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도다. ◎ 알렐루야.
    복음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9-34 그때에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이 예물을 받으시고 놀라운 교환을 이루시어, 주님께 받은 것을 바치는 저희가 주님을 합당히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도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거룩하고 신비로운 이 성사의 힘으로 언제나 저희 생명을 보호하여 주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합니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비둘기는 상서로운 새였습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힘과 기운이 그러한 모습으로 예수님께 오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요한이 예수님께 승복했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그건 하나의 표현일 따름입니다. 사실은 주님께서 요한에게 가시어 그를 이끌어 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면 누구나 변화됩니다. 그분께서 이끄시는데 그 자리에서 버틸 사람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미적미적하다가도 결국은 그분의 손길을 따라갑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다만 그분께서 이끌어 주시도록 누군가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 끊임없이 희생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기운은 그러한 사람의 염원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습니다. 예비 신자 교리 시간에 들쑥날쑥 게으름을 피우며 가끔은 엉뚱한 질문까지 하던 사람이 세례를 받은 뒤 신앙생활에 매우 열심인 경우를 봅니다. 나중엔 헌신적인 본당 간부가 되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 사람이 변화되었을까? 누가 저 사람을 저렇게 바꾸었을까?’ 그를 위하여 수십 년 동안 기도해 온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헌신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기도가 없는 신앙은 식기 마련입니다. 뜨거움이 없기에 식는 것이지요. 세례자 요한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그의 내면에 뜨거움을 주셨습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백성의 염원이 요한에게 닿았던 것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Agnus Dei`-Bizet, Georges Alexandre Leop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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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예수님께서 인류를 노예살이에서 끄집어내어
    자유로운 삶으로 인도하러 오시는 메시아!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고 요한이 고백합니다.

     

    저는 어떻게 고백하고 증언했는지!
    제 교만에 빠져 “이정도면 뭐~” 라고 하면서
    수면의 노예가 되어  잠자고 있지는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전에 누군가 선물로  준 책에서 본 것이 생각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가
    “요한은 소리이고, 주님은 말씀” 이라 했습니다.
    ‘영원한 말씀’을 전달하는 ‘광야의 소리’를 잘 들으면,
    구원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보고
    그때 참 많은 다짐을 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한 저인지라 까맣게 잊고 살아왔습니다. 

    제가 만약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에 귀기울였다면
    지금의 제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영원한 진리의 말씀으로 성숙되어 있었을 텐데~
    귀기울이지 않았기에 이처럼 부족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무릎 꿇고 앉아 죄송해 합니다.
    “아버지! 저가 이래유~ 그치만 이쁜 구석도 있잖아요”
    라고 하면서 간신히 버팁니다. 아시죠?

    메시아가 오실 길을 준비하려고 구세주보다 먼저 와서
    본인이 할 일을 겸손되이 행하는 요한의 모습에서
    저를 돌아봅니다.

    제가 봉사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그의 그늘이 되어 주었는지~
    옆사람을 위해서 저를 내어 놓은 적이 있는지~
    다른 사람이 일을 함에 제 지혜를 더하여 주면서
    그를 빛내게 해 주었는지~
    큰 일을 함에 있어 모든 것이 아버지를 따르는 것임을
    망각하지 않고 저를 죽였는지~
    아버지를 사랑함에 따르는 작은 상처들을 안으며
    제 스스로 종기를 치유하며 평정을 찾았는지~
    크고 작은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일임을 모르고

    드러나는 일들만 하려 하진 않았는지~
    그리고 그 일을 저만 해야한다는 교만은 없었는지~
    겸손되이 기도하고 봉사하면서
    아버지의 말씀을 몸으로 행하면서 생활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속죄의 날에 저의 죄를 대신해 제물이 되어 죽으시는
    “어린양, 예수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아버지 마음을 참 많이 아프게 하면서
    아버지의 뜻을 저버린 채, 제 생각대로 살아왔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고 고백한 것이
    참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 힘든 길을 걸어오면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요한의 그 모습이 제 모습이 되게 하소서. 
    청하면서도 반문을 던지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하시어
    아버지를 알림에 장애되는 모든 것을 넘을 수 있게 하소서.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말씀이 빛이되어
    영원한 생명을 주러 오시는 예수님을 증언하고
    ‘어린양’ 이라 고백하는 요한의 믿음처럼
    제 믿음 또한 그리 될 수 있게 하소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요한의 믿음을 본받아
    아버지에 대한 저의 사랑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아버지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이쁜 움직임으로
    제 자리에서 사랑의 책임을 다하게 하소서.
    아멘.

    “모든 골짜기는 메워지고
    높은 산과 작은 언덕은 깍이어 낮아지고
    굽은 길이 곧아지며 험한 길이 고르게 되는 날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3,5-6)


    요한이 메시아 오실 길을 닦듯이
    저도 작은 예언자되어 아버지의 명패를 닦는
    깨어있는 종이 되렵니다.







  2. user#0 님의 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1. 말씀읽기:요한1,29-34

    2. 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고, 사람들이 자신을 오해하지 않도록 말했습니다. 그는 빛이 아니라고. 그는 자신이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삶의 전체(예수님)가 그에게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분을 위해서 세상에 나왔기에 그분을 알리고 있습니다.


    29 이튿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 쪽으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자들이 예고한 하느님의 종, 인간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하는 어린양이십니다. 인류를 죄의 노예살이에서 끄집어내어 자유로운 삶으로 인도하러 오신 어린양이십니다. 또한 어린양은 온유, 체념, 하느님의 종으로서 지닌 복종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간이 되어 세상에 내려오신 어린양이신 것입니다.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고 오신 깨끗함 그 자체이신 어린양이십니다.

    30 저분은, ‘내 뒤에 한 분이 오시는데, 내가 나기 전부터 계셨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이시다.’ 하고 내가 전에 말한 분이시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유다인들의 눈에는 아직 숨겨져 있지만 예수님의 인격은 요한보다 더 뛰어나신 분이십니다. 요한이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한 처음부터 계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메시아요?”라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28)  요한이 그렇게 말한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나기 전부터 계신 분이셨습니다. 한 처음부터 계신 분이시라는 것을 요한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31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준 것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것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증언해야 하지만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세례를 준 것입니다. 그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지 않고, 예수님의 길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도록 회개의 세례를 외쳤던 것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과 유다인들은 다른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스라엘은 계시와 약속을 받은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을 가리키는 명예스러운 호칭입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특히 백성의 지도자들을 가리킬 때는 아집과 독선으로 가득 찬, 그래서 하느님께로부터 멀리 있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적들로 표현됩니다.  그래서 메시아는 유다인들의 왕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표현되는 것입니다.


    32 요한은 또 증언하였다. “나는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저분 위에 머무르시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 위에서 올라오시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예수님 위에 내려 오셨습니다. 요한은 그것을 보았고 그것을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33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물로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그분께서 나에게 일러 주셨다.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위에 머무르는 것을 네가 볼 터인데, 바로 그분이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요한은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기에 계시내용에 대해서 알 뿐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요한에게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은 그 계시 받은 내용의 사람을 만났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 표시는 바로 “성령이 내려와 어떤 분 위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에게서 일어났고, 그것을 통하여 요한은 예수님께서 바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메시아이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은 바로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성령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오순절에서 성령을 받은 다음 그들은 당당하게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구세주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어떠한 위협도 그들의 마음을 굽힐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그냥 물로 씻는 세례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만한 권한을 받는 세례입니다. 성령의 보살핌과 역사하심을 통해서 당당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해 줍니다.

     나의 모습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당당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성령께서 나를 이끄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 반대인 경우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도록 나를 내 맡겨 드리지 못하기에 신앙인답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나를 움직이실 수 있도록 나를 맡겨 드려야 합니다.


    34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분임을 알았고, 그것을 알리고 있습니다. 선포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받은 장면이 빠져 있습니다. 마태3,13-17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본다면 이 말씀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13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15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16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17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3,13-17)


    3. 나눔 및 묵상

    1.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신앙으로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증언하고 있습니까?


    2. 성령께서 나를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시게 하려면 나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그리고 내 안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존심입니까? 이기심입니까? 아니면 오만과 편견입니까?


  3. user#0 님의 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주님!

    기축년 새해 첫날인 어제는 남편이 평소 형제처럼 
    지내는 교우들과 해돋이를 가기로 하였다며 저더러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새해 첫날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라
    성당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거절하고 싶었지만 
    새해 첫날부터 남편의 마음을 상하게 싶지 않아
    내키지 않았지만 새벽에 해돋이를 보러 보문산에 갔습니다
    하지만 가는 동안 차 안에서도 성당에 가서 미사를 해야하는데
    하는 생각에 머리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

    마음이 편치 않아서인지 보문산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자마자
    갑자기 숨이 차고 어지럽고 호흡이 곤란하여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순간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숨이 막히는 것이었습니다
    함께 간 일행들도 제가 고통스러워 하니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고...
    일행들한테 미안하고 피해를 주는 것 같아 집에 가서 쉬겠다고...
    이틀동안 머리가 아파 고생을 했습니다
    생전처음 가본 해돋이를 보지도 못하고 함께 간 교우들이 
    아픈사람 남겨놓고 해돋이를 하여  고해성사를 봐야한다고
    미안해 합니다 저도 미안하고 이래저래 마음이 편치가 않네요
    새해 첫날부터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죽는 것이 별 것아니라고..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왜 갑자기 호흡곤란이 왔는지 마음이 상하기도 하지요
    새해 첫날부터 고생을 하니 ...
    천주의 성모 대축일 미사참례 당연히 궐했습니다 
    하루종일 잠을 자느라 비몽사몽...
    눈을 뜨면 머리가 아프고 숨이 가쁘고...
    새해벽두부터 방정을 떠느라 미사참례도 하지 못한 벌을
    톡톡히 치렀습니다 모두들 저  때문에 죄 짓게 해서 죄송하고
    고해성사를 다시 본다고 하니 몸도 마음도 천근 만근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기축년 새해 첫날부터 마음 상했던 모든 일들을 잊고
    새로히 시작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믿으며
    저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을 당신께 봉헌하고 싶습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의 아픔을 헤아려주시리라 믿으며
    고해성사보는 마음으로 복음을 묵상해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고,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도다

    아멘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묵상하며

     
    ♬ Agnus Dei[하느님의 어린양]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4. user#0 님의 말:


     

    아주 예전 정말 바보같이 사시는 엄마를 보고 철없던 딸이 그랬습니다.

    “엄만 바보야? 왜 그러고 살아?” 라고~~

    참 철이 없었지요?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하는 시간입니다.

    그때마다 제게 그랬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면 저분들이 좋은 세상에 가지 않겠냐” 라고~~

    그땐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하시나 싶은 생각만을 했을뿐

    이해하려고도~ 아니 머릿속에 넣지도 않고 그냥 넘겼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사랑!

    누군가를 위한 자비!

    누군가를 위한 배려!

    누군가를 위한 기도!

    오늘 새삼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시어

    저희를 안아주신 것처럼 엄마도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것들을 실천할 수 없음을 깨달으면서

    말씀에 저를 묻어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 말하는 요한!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멋있습니다.

    그의 겸손과 사랑속에 인정하는 그 모습!

    가슴깊이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요한!

    아버지를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 말합니다.

    아버지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는 요한의 겸손한 모습과

    아버지의 길을 준비하러 왔을 뿐이라고 늘 아버지를 증언하는 그 모습에서

    잠시 옛생각이 떠 오릅니다.

    영세를 받고 아무것도 모르는 시기에 봉사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지요.

    어우러져 보니까 정말 과관이었습니다.

    그속에 있는 저역시 색바랜 옷을 입을까 고민했었지요.

    봉사가 무언지를 알지 못한채, 그것을 하니 눈먼이가 안내를 하는 꼴이었지요.

    그러다보니 따뜻함을 알면서 기쁨을 느끼기보다 아픔을 아니 차거움을 느꼈습니다.

    함께 해 놓고 본인이 하느라 어려웠다하는 모습,

    그리고 아무것도 안하다가 누군가 있으면 뺏아서 하는 모습,

    드러나는 일에 본인의 얼굴을 거는 사람들!

    사실 세수를 할 줄도 모르는 철없는 아이가 손을 닦는 모습이 세수를 다 한줄로 착각하게 된 경우였죠.

    그들의 세계에는 인정이 없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정말 잘 하는 이였지만 그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험담을 하였습니다.

    잘보이려고 저런다고~~~ 그게 바로 본인들의 말인데~~~

    저역시 그런 모습으로 서 있었을뻔 했는데

    다행히 아버지께서 저의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제가 그 말을 듣는 입장이 되었지요. ㅎㅎ

    그리고 말씀으로 제 곁에서 늘 저를 꾸짖어 주고 계신 덕분에

    부족한 저가 이렇게나마 남아있지요.

    다 천사들의 소굴인 줄 알고 있었는데 너무나 큰 저의 착각이었답니다.

    누군가를 인정함이 본인이 내려간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요한이 아버지를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 증언하는 것처럼 저역시

    그런 모습을 배우고자 노력해야 함을 새삼 다짐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요한이 말합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라고~~

    아버지를 메시아라, 어린양이시라 고백하는 요한의 모습을 그리면서

    저는 지금 무엇을 고백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늘 아버지를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제가 과연 아버지의 참 사랑을 옳게 전하고 있는지~~

    늘 아버지를 찾으면서 무엇을 고민하고, 무엇을 재재거리며 살아왔는지를 깊이 생각해 봅니다.

    부족한 저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형체없는 아버지의 그늘이 있었음에 가능함을 깨달으면서도 부인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요한의 모습처럼 저역시 누군가를 인정함에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할 수 있게 하소서.

    누군가를 칭찬함에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힘찬 목소리로 하게 하소서.

    그 기운으로 저를 보는 이들이 기쁘고, 행복한 힘을 얻을 수 있게 하시어

    아버지의 그늘로 찾아들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를 고백함에 저의 삶으로 하게 하소서.

    제 힘없는 목소리와 움직임이 아버지를 말함에 있어서는

    세상에서 가장 큰 울림의 소리가 되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과연 나는 보았다. 그래서 저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내가 증언하였다.”
    나는 과연 보았는가. 나는 무엇을 증언할 수 있을까? 나는 매일 벽에 걸린 십자고상을 봅니다. 또 많은 미술품을 보았습니다. 명동성당에서도 뵈었고, 저의 성당에도 벽에 계십니다. 두 손 벌리고 고통스럽게 어떨때는 부활하시는 모습으로 계십니다. 바티칸 성당에도 계셨고 아씨씨에도 계셨습니다. 영화에서도 보았지만 꿈에는 오시지 않고 저에게 나타나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제 마음에 계실뿐입니다. 그래도 저는 당신을 뵈온듯합니다. 많이 아는 분인거 같고 친한 분인거 같습니다. 친구같고 아버지같고 남편같고 든든합니다. 겁이나면 당신이 떠오르고 걱정이 되어도 당신이 떠오릅니다. 기뻐도 보이고 좋은 일이 생길때도 슬퍼도 당신이 보입니다. 잘못해도 보이고 속상해도 보입니다. 누군가 미운마음이 들때 설겆이 하면서 중얼거리면 당신이 보입니다. 거룩한 모습으로 당신을 모시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매양 제 곁에서 저를 보고 계시는 듯 합니다. 그래서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참 좋습니다. 나는 세례자 요한처럼 증언하지는 못하여도 당신이 계셔서 참 좋다는 것은 증언하고 싶습니다.

  6. user#0 님의 말: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주님!
    요즈음…..
    복음묵상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점점 날이 갈수록 어려워집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은 탓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복음묵상을 하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집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분심만 들고 도대체 무엇을 묵상해야 하는지 핵심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하고 우울합니다
    예전보다 저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세속의 이런 저런 잡념들로
    당신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도 합니다
    마음만이라도 타성에 젖어있는 저의 마음만이라도 다 잡을수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말씀을 깊이 새기며
    복음묵상을 하는 순간만이라도 잡념에서 벗어나 예전처럼 기쁜마음으로
    복음묵상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이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하며 노력하겠습니다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 굳게 믿으며
    아멘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

    묵상하며

  7. user#0 님의 말: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말씀이 저에게 하신 말씀같아 마음이 무거웟습니다

    맞아요 주님!

    저는 당신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떠들었지만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저는 당신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막연히 당신은 세상의 죄를 없애시려 오신 분이라고 …..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입으로 얼마나 떠들었는지….

    미사 때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 드리면 당신을 천주의 어린양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미사 때 마다 성가를 부르며 기도를 할때 의례적으로 하는 전례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것도….
    제가 변덕이 날 때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크게 떠들었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사랑을 새삼 깨닫습니다

    제가 변덕을 부려도 미워하지 않으시고……
    당신을 원망해도 …
    당신을 미워해도….
    당신을 믿지 않아도….
    저의 부족한 믿음에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보듬어 주시는 당신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지 못하는지 ….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니 저의 마음 역시 편치 않은데도….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아니!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사랑하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굳게 믿겠습니다
    이제부터라도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당신을 사랑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심을 증언하겟습니다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당신을 굳게 믿습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의 눈이 열려 당신을 알아보게 해주십시요
    세례자요한의 겸손과 성덕을 닮아 당신을 사랑하게 해주십시요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아멘

    “나도 저분을 알지 못하였다”

    묵상하며

    ♬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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