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연중 제3주간 수요일(1/30)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은 우기와 건기가 뚜렷하였다. 건기 때는 밭을 묵혀 두었기에 밭 가운데 길이 나고 잡초와 돌멩이가 있었다. 비가 오면 씨를 뿌렸는데, 밭을 갈고 뿌리는 것이 아니라 먼저 씨를 뿌리고 밭을 갈았다. 그러기에 성경의 이러한 표현이 가능한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 알렐루야.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1-20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드리는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고, 이 신비 안에서 이루어지는 구원이 성령의 힘으로 저희 안에서 완성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주님,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 위해 간직하신 그 선하심이 얼마나 크시옵니까!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식탁에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비오니, 이 성사로 형제들을 사랑하며,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어떤 위대한 성자가 외투 하나만 걸친 채 곳곳을 동냥하며 다녔습니다. 그런데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금으로 된 동냥 그릇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임금이 선물한 것이랍니다. 어느 날 폐허가 된 절에서 잠을 청하던 성자는 기둥 뒤에서 자신을 염탐하고 있는 도둑을 발견합니다. 그러자 낮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자 여기 동냥 그릇이 있소. 탐나면 가져가시구려. 그래야만 단잠을 방해받지 않을 것 같소.” 그러고는 손을 뻗어 황금 그릇을 내밀었습니다. 그릇을 받아 쥔 도둑은 황급히 사라집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도둑은 되돌아와 성자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지난밤 당신은 이 그릇을 흔쾌히 주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것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인도의 민담입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리고 대답 역시 비슷합니다. 욕심을 버리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쉽게 욕심을 버릴 수 있겠는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의 핵심은 역시 ‘욕심 버리기’입니다. 자연의 씨앗은 여건이 갖추어지면 어디서든 싹을 틔웁니다. 복음의 씨앗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을 줄이면 그만큼 좋은 땅이 됩니다. 그러면 씨앗은 저절로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성자가 될 사람들입니다. 말씀의 씨앗이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그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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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씨 뿌리는 이의 비유

    1. 말씀읽기 : 마르코 4,1-20

    2. 말씀연구

    씨 뿌리는 이의 비유는 언제 들어도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나의 밭에서 씨는 어떻게 열매를 맺고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이 비유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는 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내 마음의 밭이 길바닥이나 돌밭, 가시덤불이 아니라 옥토가 되어 말씀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 싸여 호숫가에 계십니다. 사람들이 너무 많으니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시고 사람들은 호숫가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배에 오르셔서 당신 백성들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농경 사회에서 그들에게 그만큼 쉬운 이야기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 하면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아들을 수가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비유로 설명해 주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비유”와 “비유 이야기”를 엄격하게 구별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말이나 라틴말에서는 엄밀하게 구분하고 있습니다. 알레고리아(Allegoria)는 비유, 파라볼라(parabola)는 “비유 이야기”로 사용됩니다.


     알레고리아는 어떤 것의 성질을 가르치기 위하여 더 잘 알려진 것과 비교하여 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라는 말입니다.

    “비유 이야기”는 자연계의 사물의 성질 또는 현상을 묘사하여, 도덕적이거나 초자연적인 사실을 가르치는 이야기 입니다. 곧 씨 뿌리는 비유 이야기는 밭에 뿌린 씨가 땅의 상태 곧 그 비옥도에 따라 성장을 달리하듯이, 하느님께서 뿌린 생명의 말씀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타남을 가르칩니다.


     비유 이야기가 가르치는 진리를 알아듣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과 말의 비슷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물의 발전과 결과에 있는 전체적인 비슷함입니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그런데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농사법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팔레스티나의 농사법을 좀 살펴봅시다. 갈릴래아에서는 밭을 따라 돌투성이의 좁은 길이 있고, 또 자주 밭을 가로질러 저쪽 밭으로 가는 작은 고랑이 나 있습니다. 땅의 비옥도도 다릅니다. 흙이 깊은 땅 옆에는 바위를 덮을까 말까한 얕은 양의 흙이 있고, 다른 곳에는 베어 내거나 불에 태운 가시덤불의 뿌리가 아직 살아 있어서 봄이 되면 무성해지는 땅이 있습니다. 그들은 먼저 씨를 뿌리고 난 후에야 땅을 가는 식으로 해서 씨앗을 땅에 갈아 묻었습니다. 이러한 농사법은 이 말씀에서 묘사된 씨앗의 운명을 설명해 줍니다.


     가을철 우기가 끝나고 이제 11월 중순에서 12월 사이에 씨를 뿌립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은 허리춤에 주머니를 달고 씨를 넣고 다니거나 의복 주머니에 씨를 넣고 다녔습니다. 그 사람은 아직 채 일구지 않은 밭으로 나가 씨를 뿌리고 난 다음, 쟁기질을 하여 씨가 땅에 묻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씨를 뿌리는 사람은 씨를 다 뿌리고 나면 길바닥이라 할지라도 다시 일구게 될 것이므로 씨가 어디에 떨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이제 농부는 씨를 뿌립니다. 그런데 길에 떨어져 버린 씨가 있는데 그 씨를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습니다. 요즘은 까치들이 심어놓기만 하면 그것을 찾아 먹느라고 온 밭을 헤집고 다닙니다. 하물며 길에 떨어졌는데 얼마나 쉽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후반부에 예수님께서 설명을 해 주실 것입니다. 듣기는 했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받아들인 사람은 마치 참새가 씨를 쪼아 먹듯 사탄이 그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기는 것을 말합니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농부가 뿌린 씨 중에 어떤 것이 돌밭에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흙이 좀 있어서 싹은 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밭에서는 깊이 뿌리를 내릴 수가 없고, 뜨거움을 식힐 방법이 없습니다.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결국 해가 솟아오르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싹은 날 수 있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땅속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뿌리를 내릴 수가 없어서 결국 말라 죽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마는 사람을 가리키기 위해서 돌밭에 떨어진 씨를 말씀하십니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어떤 씨앗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 속에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였습니다.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작은 나무들은 햇빛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죽어버리거나, 볼품없어 집니다. 세상걱정에 사로잡힌 사람도 가시덤불 속에 떨어진 씨앗과 같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하십니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그 사람이 뿌린 씨는 “그 사람 자신의 씨”였습니다. 씨에는 그 사람의 삶과 운명의 한 요소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씨의 운명은 그 씨가 떨어진 땅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밭이 묵혀 둔 채 있는 동안 그 밭에는 많은 길이 나곤했습니다. 흙이 별로 없이 석회석만 깔려 있기도 했고, 가시덤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 곳도 많았습니다.


     어떤 씨는 길가에, 어떤 씨는 바위에,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어떤 씨는 기름진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보면 4분의 1만이 열매를 맺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농부의 수고는 실패가 아닙니다. 백배의 열매를 맺은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농사짓는 이야기를 하셨지만 그 의미를 알아 들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는 자신의 잘못을 알지 못하고, 그것이 다른 이의 이야기인줄 알았습니다. 어느 날 술자리에서 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그들 중에 어른이었기 때문에 권위 있게 말을 했습니다.

    “요즘 이런 이야기들이 들리는데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어.”

    그러자 한 사람이 용기 있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 그 이야기는 당신을 두고 한 이야기 입니다. 왜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고, 당신의 귀는 막아 버리십니까?”

     귀를 가진다는 것은 알아듣기 위한 지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귀만 가지고는 모자랍니다. 우상도 귀를 가지고 있지만 듣지를 못하는 것과 같이(시편 115,6), 귀를 사용해서 듣겠다는 소망, 곧 들은 말씀을 잘 파악하려고 하는 노력, 결국 반성하고 생각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제자들은 비유의 뜻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십니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농사법을 전하실 이유는 없고, 또 들을 귀가 이는 사람은 들으라고 말씀하셨으니 그 비유의 내용이 궁금했을 것입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나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의 의도는 과거에는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예수님 안에 현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지막 사건을 끌어들이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나라의 신비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한 지식은 인간 스스로의 통찰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제자들은 이 선물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아직 부여받지 못했기에 이 비유는 신비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보았지만 보지 못하고 들었지만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말씀을 하시는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사람들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지금껏 그분이 선포해 온 가르침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덕적 교훈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하느님 나라라고 하는 새로운 문제를 다루게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메시아의 인격 문제와 같이, 군중의 편견과 고집 때문에 몹시 다루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군중들은 이스라엘에 독립을 가져다주고 적들에게 원수를 갚는 찬란한 영광에 찬 하느님 왕정의 나타남을 기다리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느님 나라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아가 폭력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루어 하느님께로 향하는 길을 뻥 뚫어 놓는 메시아였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싸움과 이 세상으로부터의 이탈, 벗어남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을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군중 편에서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상응한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유의 목적은 청중의 주의를 집중케 하고, 생각하게 하고, 그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받아들일 마음 자세를 잘 한 사람은 그 깊은 뜻을 깨달으려고 노력할 것이며, 마침내는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의 설명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착한 결심을 세우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소경으로 만들게 될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  준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만 됩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쳐다보고, 예수님의 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실지 알게 됩니다. 마음이 열려 있지 못하면 다른 것들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 비유의 뜻을 말씀해 주십니다.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라면 씨 뿌리는 이는 예수님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성장하며 활동하고, 이 말씀이 맺게 되는 마지막 결실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이 말씀이 그 목적을 달성하여 내 안에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생명을 주는 친교 안에서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씨와 같은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 씨가 열매를 맺느냐 맺지 못하느냐는 토질에 따른 것이므로, 예수님의 말씀도 청중이 지닌 마음가짐에 따라 달리 받아들여지는 것입니다. 민족적인 편애도 없고, 사회적 지위의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알맞은 자격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듣기는 했지만 마음의 준비 없이 받아들인 사람은 마치 참새가 씨를 쪼아 먹듯 사탄이 그의 마음에서 말씀을 빼앗아 가고 믿음과 구원을 방해합니다. 경박한 정신, 교만한 마음은 진리가 들어가 뿌리를 내릴 수 없게 만듭니다.

     성당에 한번 나왔다가 “어렵네!”하고 돌아서는 사람. 영세하고서는 곧바로 냉담 하는 사람. 고개만 끄떡이고서는 반응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마음이 바로 “길 바닥”인 것입니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돌밭에 뿌려진 사람은 말씀을들으면 곧 기쁘게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막상 행동으로 옮기려고 할 때부터 문제가 생겨납니다. “한번 해보고서는 어렵다고 곧장 그만두는 사람들”, “의지가 약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 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하는 마음은 있지만 작은 시련에도 넘어져 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의지와 신념은 작은 시련에 부딪치면 곧바로 행복해 버리고 맙니다. 이러한 사람 안에서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대한 근심, 재물에 대한집착, 쾌락의 추구 때문에 말씀의 씨의 성장과 결실의 모든 희망이 無로 돌아가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 부류는 세상과 하느님과의 사이에 떠돌아다니는 인간의 상징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인생을 초월하고 이탈하여 하느님께로 달려 갈 용기가 없는 사람입니다.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들이 신앙은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신앙보다는 다른 것들을 더 가치 있게 생각을 합니다. 미사보다도 모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경강좌나 교리보다도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찾으며, 신앙인의 멋진 모습보다도 사회생활의 멋진 모습을 기대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하느님의 말씀은 조건이 채워질 때에 가장 잘 자라게 됩니다. ①먼저 인간의 마음이 착하고 아름다워야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은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게 만들어 줍니다. ②또한 내 안에 있는 선한 마음은 내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이 효력을 발휘하도록 준비하는데 가장 좋은 요소입니다. ③ 그리고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유혹과 위협적인 어려움들에도 불구하고 말씀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게 날마다 끈기 있게 용기를 가지고 꾸준히 열매를 맺으려고 노력한다면 나는 100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또한 유혹을 피해야 합니다. 유혹의 기회와 싸우는 동안 말씀은 자라납니다. 하지만 유혹에 넘어가게 되면 그 말씀은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됩니다.


     씨 뿌리는 이의 비유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어떤 밭인가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저는 길가나 바위가 아니었나 생각해 봅니다. 생각 없이 받아들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빼앗기고, 뿌리 한번 제대로 내려보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나. 이 말씀을 들으면서 비록 길가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내 마음의 밭을 갈아 옥토로 만들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3.나눔 및 묵상

    1. 씨 뿌리는 이의 비유를 들으면서 다가오는 말씀은 어떤 말씀입니까?


    2. 이 씨 뿌리는 이의 비유는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각기 다른 땅에 떨어진 씨앗의 비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조금이나마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어떻게 노력해야 하겠습니까?

  2. user#0 님의 말: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그렇습니다.
    저는 그날 그날의 독서와 말씀을 연필로 줄을 그어가면서 열심히
    읽고 또 읽습니다. 아침에 말씀을 읽을 때는 정말 마음에 쿵하고
    와 닿습니다. 그리곤 생각을 합니다, 오늘 하루도 당신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지내겠노라 다짐을 하곤 하지요.

    그런데 점심 때가 채 되기도 전에 유혹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참으로 다양한 욕망을 가지고 방문하는 사람들의 비위를 다 맞추기란
    그리 쉽지가 않거든요.
    똑같은 내용의 말을 똑 같은 톤으로 얘기하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의 결과가 나오더라구요.
    어떤 이는 참 자세히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는 사람과
    도무지 무슨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그저 가슴을 쓸어내리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지요.

    이렇듯 다녀가는 민원인들의 모습에서 저의 모습을 발견하곤 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에게 말씀 하시고자 하시는 깊은 뜻을 미쳐 파악하지
    못할 때가 많았음을 기억하며 고백합니다.
    저 또한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을 제 멋대로 판단하고 해석할
    때가 많았음을 인정합니다.
    그러니 자주 걸려 넘어질 때가 많을 수 밖에…

    예수님!
    저는 당신의 말씀을 어설프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가 봅니다.
    언제쯤이면 당신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을런지요. 답답할 뿐입니다.

    사랑이신 주님!
    오늘 당신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들어 입이 아프도록 말씀 하시고 계십니다.
    세상 걱정과 욕심과 재물의 유혹을 뿌리치고 당신의 말씀을 잘 알아 듣고
    실천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네, 주님 저에게 세상의 크고 작은 걱정을 뒤로하고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여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참된 기쁨을 누리게 도와 주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저의 모습을 봅니다
    예전에 몇 년전에도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시덤불에 떨어진 저의 모습을 반성하면서
    당신의 뜻대로 살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아직도...
    가시덤불에 허우적 거리고 있음을 봅니다

    아니!

    오히려 예전보다 더 나아 진 것이 없음을 고백합니다
    언제나 복음묵상은 묵상으로 끝날 뿐...
    입으로만  묵상을 할 때만 회개도 하고 반성을 해보지만
    실생활에서 저의 모습은 언제나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화 된 것이 없습니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당신의 딸이 됐다는 증표로 “헬레나”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 주셨는데 아직도 세속의 욕심과 근심걱정으로
    당신의 뜻에 따라 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말씀을 깊이 새기며

     기축년 새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짐해봅니다
    미워도 다시한번 당신께서 봐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염치없지만....
    당신께서  실천을 하지 못하고 공수표만 날리는
    철 없는 헬레나를 예쁘게  봐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다짐해봅니다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겠습니다 라고
    사랑이신 당신께 ...
    입으로만 당신을 사랑한다고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의 근심 걱정은  모두 다 갖고 있는듯 불안해하는
    저의 부족한 믿음을 반성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요
    그리하여 당신께서 저의 근심과 걱정을 들어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해주십시요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씨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씨 뿌리는 이는 그리스도이시니,
    그분을 찾아 얻는 이들은 모두 영원히 살리라.

    아멘

  4. user#0 님의 말: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하시며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언제나 당신의 말씀을 알아 듣는다고 하지만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니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머리로는 모두 알아 듣지만 세속에서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아직은 조금만 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고 싶은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과 후회가 되면서도 당신의 사랑으로 아니!
    당신께서 가시덤불에 떨어져 헤매고 있는 저를 구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아직은 저의 의지와 신앙심이 당신의 도움없이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함을 고백합니다
    아직은 저 스스로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지 못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아직도...
    아직은...
    하지만 언젠가는 ...
     당신의 은총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날이 오리라고
    굳게 믿고 싶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축복을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비록 아직은 부족하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지 못하지만
    당신께서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묵상하며


     

  5. user#0 님의 말: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말씀에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사실 그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당신의 뜻을 따라
    살기보다는 제 뜻대로 제 의지대로 살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서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당신을 원망하면서….
    그렇다고 일이 잘되었을 때 당신께 감사하는 마음이
    원망하는 마음보다 더 컸다는 사실이 죄스럽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묵상하면서 곰곰 성찰해보니…
    반성을 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마음 뿐…
    입으로만…
    회개하고 후회하면서 당신께 사죄하는 마음이라고 하지만….
    아직은 저의 믿음이 신앙이 성숙한 단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하면서도…
    행동으로 실천을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음을 느낍니다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저의 마음이 변화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복음을 묵상하면서 우울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가를 들으면서…
    생활하면서 늘 당신을 생각한다고 하지만…
    참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마음으로만 한다면 실천 할수 있을 것 같은데…
    실천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말씀을 깊이 새기며
    귀 있는 사람답게 당신의 사람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묵상하며


    ♬ 사랑한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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