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1/31)


    요한 보스코 사제는 1815년 이탈리아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게서 신앙과 노동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다. 사제가 된 뒤 그는 고아들과 뒷골목의 아이들, 교도소와 공장에서 만난 소년들을 보살피는 등 평생을 청소년 사목에 헌신하였다. 성인은 규율보다는 사랑으로 청소년들을 대하며 각자의 개성과 신앙을 격려하였다. 요한 보스코는 1859년 그의 제자들과 함께 청소년을 위하여 일생을 바칠 것을 서약하였는데, 이것이 살레시오회의 출발이다. 1888년에 선종한 그는 1934년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말씀의 초대
    전기가 없던 시절에 등불은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도구였다. 희미한 불빛이었지만 위력은 대단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선행과 적선은 드러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착한 일을 한 사람의 행위는 결국 알려지게 될 것이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주님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이오이다. ◎ 알렐루야.
    복음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을 것이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4,21-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거룩한 신비로 복된 요한을 영광스럽게 하셨으니, 그를 기억하여 주님의 제단에 바치는 이 예물을 굽어보시고, 저희에게 용서와 평화를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주님께서 돌아와 보실 때에 깨어 있는 종! 주님께서는 온갖 좋은 것을 그에게 맡기시리라.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복된 요한의 축일을 지내며 받아 모신 천상 음식으로 저희가 힘을 얻어, 믿음을 온전히 간직하며 구원의 길을 충실히 걷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등불의 비유’를 드시며 “누가 등불을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고 하십니다. 방을 환하게 하려면 높은 곳에 두기 마련입니다. 선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본인은 남몰래 베풀지라도 언젠가는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그의 미래를 환하게 밝혀 줍니다. 삶의 등불을 켜는 것이지요. 어느 날 공자는 제자들에게 질문합니다. “덕이 높을 것 같은가? 복이 높을 것 같은가?” 제자들은 단숨에 답합니다. “그야 당연히 덕이 높지요.” 그러나 스승의 말씀은 의외입니다. “아니다. 복이 높다.” 제자들이 따지듯 묻습니다. “그렇다면 복 받으려 하지, 누가 애써 덕을 닦으려 하겠습니까?” 제자들의 공격에 공자는 말합니다. “나는 오랫동안 덕을 닦으려 애써 왔다. 그런데 주변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겸손의 덕, 절제의 덕, 용기의 덕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 하늘이 복을 내린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자들이 다시 묻습니다. “그렇다면 스승님, 어떻게 하면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을는지요?” 공자가 대답합니다. “적선 외에 달리 무슨 방법으로 하늘의 복을 얻겠느냐?” 우리 속담에도 적선을 하면 귀신도 어쩌지 못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좋은 기운이 감싸고 있기에 악한 기운이 다가서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선행에는 하늘의 힘이 함께합니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은총이 감싸고 있는 것이지요. 이렇듯 선행과 자선은 사람의 운명을 바꾸어 주건만 많은 사람이 그것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복은 받고 싶어 하면서 정작 그 길은 외면하고 있는 셈입니다. 선행의 등불을 켜야 합니다. 그러면 운명은 밝아집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그리스도 향기 가득한 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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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등불은 등경 위에 놓는다.

  1. user#0 님의 말:

     

    1. 말씀읽기 : 마르코 4,21-25 등불의 비유 (루카 8,16-18)

    2. 말씀연구

    등불이 필요한 곳은 어디입니까? 어두운 곳입니까? 아니면 밝은 곳입니까? 책상에 앉아 있으니 오후의 태양이 방안에 가득해서 너무 눈이 부셨습니다. 그래서 커튼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커튼을 내리니 책의 글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스탠드를 키려고 하다가 갑자기 웃음이 나왔습니다. 밝은 빛을 가리고 어두운 빛으로 책을 보려 하고 있구나. 커튼을 올리면 다시 환한 햇살이 방에 가득할 텐데…, 단편적인 예지만 그렇게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버려두고 별것 아닌 것에 마음을 쓰는 것.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1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가 등불을 가져다가 함지 속이나 침상 밑에 놓겠느냐? 등경 위에 놓지 않느냐?

     갈릴래아의 작은 집안에서 사용되던 등잔는 질그릇으로 된 편편한 접시인데, 방을 어느 정도 밝히기 위해서는 촛대위에 올려 놓아야 했습니다. 됫박 혹은 침대 밑에 두는 것은 쓰지 않는 낮 시간에만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등불과 같이 높은 곳에 놓여 있는 사도들과 제자들은 때가 온다면 자기들만이 본 기적과 자기들에게만 주신 가르침을 모두에게 전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하나의 보배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온 인류를 위하여 그들에게 맡겨 놓은 보배입니다. 그리고 만일 한때 그것을 바로 평가할 수 없는 대중에게 감추어져 있었다고 하더라도 언젠가 모든 것은 대낮처럼 밝게 나타내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22 숨겨진 것도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게 되어 있다.

    등불과 같이 감추고 싶어도 감출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산 위에 있는 도시를 어떻게 감출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하나의 보배입니다. 온 인류를 위하여 우리 모두에게 맡겨 놓은 보배입니다. 그 보배를 잘 못 이해하고,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대낮처럼 밝게 알려질 때가 올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야 합니다. 나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알려져야 할 것입니다.


    23 누구든지 들을 귀가 있거든 들어라.”

    알려야 할 것은 하느님 나라의 신비이고,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은 각 개인의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비밀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알리지 말아야 할 것은 먼저 알리고, 알려야 할 것은 알리지 않는 우리들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말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 들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24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새겨들어라. 너희가 되어서 주는 만큼 되어서 받고 거기에 더 보태어 받을 것이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혼자만 간직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는 나를 통해 열매 맺어 다른 이들에게도 전달되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 담아주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신비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전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하고 또 전하고 또 전해도 부족합니다. 그렇게 세상 곳곳에 복음을 전할 때,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전할 때, 예수님께서는 흡족해 하실 것입니다.

     영세는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예비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이 알고, 큰 믿음을 가지고,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력하지 않는 신앙인에게 구원은 문은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내가 받은 작은 씨가 싹이 터서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25 정녕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고 있는 것은 은혜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 봉사자가 되고, 사제, 수도자가 되었다는 것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이 은혜를 열매 맺게 한다면 하느님께로부터 더 큰 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은혜에 관심도 없고, 열매 맺는 일에는 더 관심 없는 사람은 결국 그것마저 빼앗길 것이라는 것입니다. 커다란 바다는 아무리 가뭄이 심하게 들어도 마르지 않습니다. 작은 연못은 며칠만 더워도 말라 버린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1.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드러나는 곳은 어디입니까?


    2.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혜를 열매 맺기 위해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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