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주님 봉헌 축일(봉헌 생활의 날)(2/2)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산모는 출산한 지 40일 만에 성전에 나아가 몸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례를 치러야 한다. 주님 봉헌 축일은 성탄 뒤 40일째 되는 날에 성모 마리아께서 정결례를 치르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성전에 봉헌하신 것(루카 2,22-39 참조)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 교회는 전통적으로 1년 동안 전례에 사용할 초를 축복하였기에, 미사 전례 전에 초 축복과 봉헌 행렬이 이루어진다. 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오늘 ‘주님 봉헌 축일’을 ‘봉헌 생활의 날’로 제정하고, 해마다 전 세계 교회가 이를 기념하도록 하였다. 교황은 모든 신자, 특히 젊은이들이 하느님의 크나큰 은총인 봉헌 생활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 성소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 기도하기를 당부하였다.
    말씀의 초대
    마리아께서는 모세의 율법에 따라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신다. 그리고 비둘기 한 쌍을 예물로 바치신다. 예식에는 예언자 시메온과 한나가 함께하였다. 시메온은 예수님의 앞날을 예언한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할 것입니다”(복음).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그리스도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며, 주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로다. ◎ 알렐루야.
    복음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2-3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주님의 율법에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하느님 아버지, 사람을 살리려고 티 없는 어린양으로 자신을 봉헌한 독생 성자의 제사를 받아들이셨듯이, 교회가 봉헌하는 이 제물도 기꺼이 받아들이소서. 성자께서는…….
    영성체송
    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나이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이옵니다.
    영성체 후 기도
    시메온의 기대를 이루어 주신 주님, 저희가 받아 모신 이 성체로 저희에게 주님의 은총을 풍부히 내리시고, 시메온이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품에 안는 기쁨을 누렸던 것처럼 저희도 주님을 맞이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들었듯이, 성모님께서는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봉헌하십니다. 그것은 율법에서 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아기들이 많이 죽었습니다. 의료 시설도 열악했고 전쟁이나 자연재해도 많았습니다. 그러기에 태어나는 아기는 모두 주님께 봉헌하게 했습니다. 설령 죽더라도 주님께서 데려가시는 것으로 여기라는 암시입니다. 봉헌의 참뜻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서 주시는 것으로 여기는 데 있습니다. 좋은 일에는 그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괴롭고 아픈 일에는 어렵습니다. 고통스러운 일을 주님께서 주셨다고 여기는 것은 신앙이 없는 이에게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제물을 바치십니다. 가난한 이들이 바쳤던 비둘기 한 쌍입니다. 그분께서는 감사의 예물로 바치셨습니다. 봉헌의 절반은 감사여야 합니다. 좋은 일을 주셨건 아픈 일을 주셨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힘이 함께합니다. 비둘기를 바쳤건 소나 양을 바쳤건 예물의 핵심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바치시는 자리에는 시메온과 한나라는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식 내내 성모님과 함께합니다. 자신의 귀한 것을 봉헌하면, 주님께서는 예언자를 보내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우리가 진실을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분들입니다. 봉헌하는 이에게는 언제나 주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십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봉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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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이여~!

    오늘 복음에서는 율법에 따라 예수님을 주님께 봉헌하는
    예수님의 부모님을 보게 됩니다.
    마침 주님봉헌 축일을 맞이하여 여러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예언자들의 예언처럼 종국에는 자신의 생명까지
    봉헌하여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는데, 저라는 사람은 그저 자신의 안위에만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가 어렸을 적에는 장차 무엇이 되고 싶으냐? 하고 물으면
    곧잘 신부님이 되겠노라 하더니, 지금은 ‘엄마, 나 신부님만
    제외하고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하고 은근슬쩍 묻습니다.
    그 이유인 즉슨, 자기는 앞으로 이쁜 아내도 얻어야 하고, 자기를 꼭 닮은
    아들도 낳아야 한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저로 하여금 더이상의
    바램을 하지 못하도록 말문을 막아버리기까지 한답니다.

    큰아이를 키워본 결과만 보더라도, 자식은 부모 마음대로 커주질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한 지금에 와서는 작은아이의 의견에
    웃음으로 그저 고개만 끄덕여줄 뿐이지요.
    두 아이들 모두 어렸을 적에 아픈치레를 너무 많이 하고 자랐기에
    순간순간 ‘ 이 아이를 건강하게 살려만 주신다면 당신의 도구로
    바치겠습니다.’ 라고 기도를 많이도 바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땐 웃습게도 제 마음대로 자식을 주님께 봉헌할 수 있다고 착각을 했었지요.

    이젠 자식을 봉헌하고자 하는 바램도 더이상 바랄 수 없게 되었으니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봉헌의 삶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자신을 봉헌하며 사는 삶은 어떤 삶일지, 그건 아마도 자신의 안위만을
    위한 삶이 아닌 나 보다 못한 사람들의 삶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고통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한 자루의 초가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세상을 밝히듯이
    제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내 가족과 이웃이 행복할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고 도울 수 있도록 저를 이끌어 주소서.아멘.

    ♬ 있는 모습 그대로

  2. user#0 님의 말:

     

    성가정 축일에 접한 말씀과는 또 다른 색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성모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서 환희의 신비를 바쳐 보았습니다.

    표현이 좀 웃기죠?

    그만큼 편하게 오랫동안 머물렀나 봅니다.

    다른 때보다 배의 시간이 지났네요.

    주일 미사에 참여하면서 “아버지,저 왔어요.”

    하면서 미소짖고 들어가는 제 모습이 웬지 어두워 보였지요?

    아직 멀었나 봅니다. ㅎㅎ

    주님 봉헌 축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한참 전에 아버지께 손가락을 걸었던 저를 돌이켜 보았답니다.

    그때 그랬지요.

    “아버지, 아버지 때문에 제가 변하고 있네요.

    잘하진 못하지만 저 아버지께 드려요.”

    그랬는데~~~ 그치요? 제가 그랬네요.

    아버지!

    사랑하는 울아버지!

    겉보기엔 약하지만 저 울지 않아요.

    제가 아버지의 말씀을 품에 안고 살아가면서,

    두 팔로 아버지를 안을 때의 그 기쁨!

    그럴때 성령으로 충만하고 의롭고 독실한 신앙인이 될 수 있다고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답니다.

    시메온과 한나처럼 그런 예언자가 될 수 있다고~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몸과 마음이 함께 해야 한다고~~

    그리고 시간나는 대로 기도하는게 아니라,

    기도를 위해 시간을 비울 수 있어야 한다고~~

    복음에서 시메온이 찬미가를 바칠 때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저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보기도 하였지요.

    이미 들은 말씀이지만 시메온을 통해서 다시 들을 때

    엄마로서의 착찹한 마음을 묵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모님처럼~

    시메온이나 한나처럼 그러한 의로운 모습으로 나아가야 함을 알면서도

    잘 되지 않음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제가 순명이란 말을 참 좋아하거든요.

    근데 그 이쁜 말이 돌이 되기도 한다는 것 혹시 아세요?

    말하는 이에 따라 변형되는 것이~~~~

    참 못났다. 그치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 한나처럼

    저역시 아버지께 절 묻는다 하면서

    내심 고개를 빼어 일어나는 일들에 기웃거렸나 봅니다.

    아마도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나? ㅎㅎ

    언젠가 드라마 속에서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사랑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한다고~~~

    멋있지요?

    제가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해야 하는데~~

    아직은 작은 사랑인가 봅니다.

    그 사랑이 깊어질 때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겠지요.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는 촛불을 막아주는 호야처럼~~

    전에 신부님께서 그러셨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주님 봉헌 축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한나의 모습이 가슴 깊이에 자리잡았습니다.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긴 한나의 모습이

    제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청해 보는 시간입니다.

    의로운 모습으로 나아감에

    적지않은 상처와 낯설음이 따라 옴에 속상해 했던 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축복에 감사드리며

    누가 뭐라든 아버지의 사랑을 머금으며 행복과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하소서.

    늘 아버지 품에 머물면서 더 깊은 사랑으로 의로운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

    주님봉헌축일인 오늘...

    오랫만에 정말 오랫만에 남편이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도 보고 미사를 하여 기뻤습니다
    사실 아프다는 핑계로(성당에 가면 신자들이 남편의 안부를 
    물어보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일년동안 주일을 궐하였습니다)
    그 일년동안이 저에게는 수 십년이 되는 것같았고  가슴이 
    짓눌리는 아품 속에서 지냈습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과 불길한 생각등으로(혼자 남게 될까 두려워)
    그러면서도 저 역시 남편이 병마와 싸우는 동안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였습니다 주일도 겨우 지키는 정도로 쓸데없는 공상과 
    망상으로 세월을 허비하였습니다 
    당신께 기도하지 않으며 한숨만 쉬면서
    다행이랄까 그래도 “복음묵상”은 그나마 대충이라도 하여
    당신께 지은 죄를 조금은 보상 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으니 저의 마음은 지옥 같았고
    가정생활 역시 짜증도 많이 나고 불안한 마음으로 일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요 주님!

    왜 그런지 초조한 마음은 가득한데 기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불길한 생각과 방정맞은 생각으로 마음이 지옥 같았는데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탓인지 요즈음 며칠동안도
    예전과 같지 않은 남편의 마음 씀씀이가 섭섭해 짜증을 내고
    상처 주는 말을 하여 다투었습니다
    하지만 아픈 사람한테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저의 못된 심성에
     신앙인의 자세가 아닌 저의 속 좁은 마음에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러면서도 남편이 원망스럽고 미웠습니다 

     어제....

    힘들어 하는 누나가 안쓰러웠는지 남동생이 머리도 식힐 겸
    친정부모님 산소에 가자고 하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며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말씀드리고 나니 답답했던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녁에는 남편과 정말 오랜만에 서로의 마음 속에 있는 것들을
    털어 놓으니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여 미안하다며 
    용서해달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사과를 받고나니 그동안의 섭섭했던 마음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겠다는 남편의 다짐을 듣고 저도
    남편한테  사랑을 주지 않았던 지난 날의 잘못을  반성했습니다

    사실 남편보다 저의 잘못이 더 많았던 저희 부부의 결혼생활
    남편한테 쌀쌀맞게 굴며 사랑을 주지 않았던 저의 못된 심성을
    반성하며 병마와 싸우는 남편한테 지혜로운 아내 사랑이 많은 아내
    남편의 아품을 함께 나누며 용기를 주는 아내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알량한 자존심만 내세우며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던
    저의 못된 심성을 반성하며 신앙인으로 부끄럽지 않는
    아내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께서도 원하시리라는 믿음으로

    사랑이신 주님!

    병마와 싸우는 남편이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시고 당신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해주십시오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시며,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시로다.

    아멘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묵상하며

     

  4. user#0 님의 말: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주님!
    주님 봉헌축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봉헌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웟습니다
    아니!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았습니다
    외인들보다 교우들보다 어느 누구보다 더...
    갖고 싶었습니다
    베푸는 삶을 살기보다 받고 싶고 ...
    받는 것에 익숙해있어 죄책감도 들지 않았지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어쩌다 선행(자칭)을 했다고
    생각하면 자랑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으로 똘똘뭉친
    삶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베풀지 못하면서 남들을 평가하고 단죄하고
    시쳇말로 제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스캔들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생각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받기보다는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나눔을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해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묵상하며

    ♬ Eres Tu / Mocedades


  5. user#0 님의 말: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주님!
    주님 봉헌축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봉헌의 삶을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웟습니다
    아니!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하며 살았습니다
    외인들보다 교우들보다 어느 누구보다 더...
    갖고 싶었습니다
    베푸는 삶을 살기보다 받고 싶고 ...
    받는 것에 익숙해있어 죄책감도 들지 않았지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며 어쩌다 선행(자칭)을 했다고
    생각하면 자랑하고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으로 똘똘뭉친
    삶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베풀지 못하면서 남들을 평가하고 단죄하고
    시쳇말로 제가 하면 로맨스고 남들이 하면 스캔들이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베푸는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니!
    생각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받기보다는 주고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나눔을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짐해봅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

    묵상하며

    ♬ 봉헌

  6. user#0 님의 말: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시메온의 예언을 들은 성모님의 마음을 헤아려봅니다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
    당신의 목숨보다 소중하고 귀한 아드님께서 고통을 당하실 
    것이라는 시메온의 예언에...
    만약에 저 였다면...
    저희 아이들이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된다면...
    길길이 날뛰며 고통스러워 하며 세상을 모두 잃은 것처럼
    슬퍼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당신을 원망하며 당신을 믿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것 같습니다
    당신을 얼마나 믿고 사랑했는데 저희 자식들에게 그런 고통을 
    주실 수가 있냐며 다시는 당신을 믿지 않겠다고 그럴 것같습니다

    주님!
    제가 이런 사람입니다 
    이렇게 조금만 저에게 시련이 오면 당신을 원망하면서
    당신을 미워하지요 후회하면서도...
    경망스럽고 이기적이며 겸손하지 못한 저의 모난 성격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릴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당신을 믿는 것까지 수지 계산을 따져보면서 저에게 손해가
    될까 노심초사하며 그렇게 형편없이 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떻구요
    서당 개 삼년이 풍월을 읋은다는 속담도  저하고는 거리가 멀지요
    복음묵상을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해도 이기적이며 속물근성이
    없어지지 않으니  큰일이지요?
    신앙 따로 생활 따로 
    참 부끄러운 신앙가 헬레나 입니다
    신앙인이 되기에는 아직도 멀었으니 복음묵상이라도 열심히 한다면
    변화가 되지 않을 까 하는 마음과 성숙하지 못한 저의 신앙의 
    성적표가 오르기를 기대하며 복음묵상이라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하기 싫어 몇 번이나 포기하려했던 복음묵상을
    했다는 생각에 위안을 삼으며 산란한 저의 마음을 추수리며  
    당신의 축복으로 성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도다.”

    아멘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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