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사순 제2주간 목요일(2/21)


    말씀의 초대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많이 들어 왔던 이야기다. 부러울 것 없이 사는 부자는 어디에든 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라자로 역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 세상의 삶일 뿐이다. 저세상에서는 역전될 수 있다. 감사하며 나누는 삶에 먼저 충실해야 한다(복음).
    복음 환호송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9-31 그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이 제사로 사순 시기를 거룩히 지내게 하시고, 회개와 절제와 선행을 통하여 내적으로 변화되게 하소서. 우리 주…….
    영성체송
    행복하여라, 그 길이 온전한 사람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걷는 사람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저희가 이 거룩한 제사의 힘으로, 날마다 선행을 실천하여 하느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소서. 우리 주…….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는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어디에 있는지요? 이 세상 것이 그대로 저세상 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이 세상의 부자가 저세상에서도 부자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저세상의 라자로는 이 세상의 거지 라자로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부자가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는 곳에 간 것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습니다. 라자로 역시 선행을 많이 베풀었기 때문에 천국에 간 것은 아닙니다. 성경 어디에도 그러한 기록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달랐습니다. 그런데 저세상에서는 그것이 정확하게 역전되어 있습니다. 이 철저한 대비를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이 오늘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부자는 자신의 형제들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라자로를 보내 줄 것을 청합니다. 무언가 잘못 살았음을 간접적으로 시인한 것이 됩니다. 그것이 무엇일는지요? 현실의 부유함을 당연히 내 것이라 생각하고 나누지 않은 것, 바로 이것이 아닐는지요? 그리하여 인생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자만한 것이 아닐는지요? 현실에서 좋은 것을 많이 받은 사람은 더 많이 감사하고 나누어야 합니다. 남모르게 나누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의 또 다른 가르침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살아서 나를 믿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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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부자와 라자로

    1. 말씀읽기: 루카16,19-3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

    2. 말씀연구

    부자와 라자로. 들을 때 마다 측은한 생각이 듭니다. 종기투성이 거지 라자로는 부자의 밥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고, 부자는 너무도 풍족하여 라자로의 그런 고통을 이해할 수 없었고, 눈에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의 생활을 보면 그는 당시 계급이 높고 부유했던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죽은 다음에 그들의 운명은 바뀌었으니……, 내가 부자였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19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롭게 살았다.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는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자주색 옷과 고운 아마포는 신분이 높음과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삶에는 문제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20 그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라는 가난한 이가 종기투성이 몸으로 누워 있었다.

    부자의 집 대문 앞에는 라자로가 누워 있었는데 그는 종기투성이의 가난뱅이였습니다. 그는 그 부자의 집 앞에서 구걸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생활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자의 모습과 라자로의 모습은 너무도 대조적입니다.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니 제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는 나. 가끔은 자선을 베푸는 척 하기도 합니다. 자선을 베풀면서도 흐뭇해하면서, 내가 뭔가를 했다고 자만하면서 떠벌리고 다니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에는 관심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부자가 라자로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21 그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개들까지 와서 그의 종기를 핥곤 하였다.

     라자로는 “엘-아자르”의 생략형인데 “하느님께서 도우신다.”란 뜻입니다. 굶주려 배고픈 고통 속에서 살아온 라자로는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라도 배부르게 먹고 싶어 했습니다. 아마도 손에 묻은 기름기나 기타의 것들은 물수건으로 닦지 않고 마른 빵으로 닦아 내었는데 손을 닦은 빵으로라도 배를 채우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라자로의 이름처럼 하느님께서는 살아생전에는 라자로를 도우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을 생각해보며 그의 영생을 바라보면 정확하게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지금의 불행을 하느님께서 방관하시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지만 하느님 눈에 비추어진 세상의 시간들은 보잘것없는 시간들인 듯합니다.


    22 그러다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 곁으로 데려갔다. 부자도 죽어 묻혔다.

    그러다가 그 가난한 이가 죽자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데려갔습니다. 부자도 죽어서 묻혔습니다. 두 사람의 생활은 지상에서도 큰 차이가 있었지만 죽은 후에도 그 차이는 더 커집니다. 지상에서와는 반대로 라자로는 하느님의 나라로 갔고(아브라함 품), 부자는 땅에 묻히게 됩니다. 즉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죽습니다. 죽어서 어떤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설 것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합니다.


    23 부자가 저승에서 고통을 받으며 눈을 드니,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곁에 있는 라자로가 보였다.

     라자로의 시체는 가난뱅이들을 위한 무덤에 던져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영혼은 하느님께서 반겨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품은 모든 신앙인의 아버지인 아브라함과 함께 메시아께서 하늘나라의 문을 열 때까지 의로운 영혼들이 평화로운 가운데 기다리고 있던 처소를 말합니다.

    부자는 죽어서 호화로운 무덤에 묻혔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24 그래서 그가 소리를 질러 말하였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라자로를 보내시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제 혀를 식히게 해 주십시오. 제가 이 불길 속에서 고초를 겪고 있습니다.’

    인생역전.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너무 늦었기 때문입니다. 호화로운 식탁에서 귀한 옷을 입고 사치스런 생활을 하던 부자, 그의 눈에 비친 라자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왜 자신의 대문 앞을 지저분하게 만드냐고 쫓아내기도 여러 번 했을 것입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바라보는 눈빛. 내가 가난한 이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부자의 눈에 들어온 라자로. 그는 지금 고통 속에 있지만 라자로는 기쁨 속에 있었으니. 부자는 무서운 불의 고통을 누그러뜨리려고 한 방울의 물을 청합니다. 인생 종친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에 물을 적셔다 제 혀를 식히게 해 달라는 이 청. 너무도 비참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5 그러자 아브라함이 말하였다. ‘얘야, 너는 살아 있는 동안에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음을 기억하여라.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이 말씀은 세상에서 행복하게 산 사람들이 모두 내세에서 불행에 빠진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세상에 살면서 가난한 이들과 도움이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아무것도 해 주지 않은 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26 게다가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한번 결정된 것은 다시 번복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기회가 있을 때 선택을 잘 해야 합니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그러기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가장 높은 선에다가 빽을 써야 합니다. 손을 쓰는 방법은 돈을 내거나 식사를 사거나 골프를 대접하거나 그런 종류가 아닙니다. 내가 하느님 보시기 좀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바로 빽을 쓰는 것입니다.


    27 부자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 주십시오.

    부자는 아브라함의 대답을 듣고서 자신은 가망이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비참한 말로를 형제들까지 닮게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만이라도 이곳에 오지 않을 수 있도록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라자로가 그들에게 경고하여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심부름꾼으로는 라자로를 생각합니다. 라자로는 자기 집을 알고 있고 언젠가 받았을지도 모르는 적선에 대한 고마움 때문에 이 심부름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 라자로를 보내어 다섯 형제들에게 경고하여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부자는 청하고 있습니다. 아쉬운 것 없었던 부자가 이제 고통 속에서 자신의 형제들을 생각하면서 청하고 있습니다.


    29 아브라함이, ‘그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하고 대답하자,

    하느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 의무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만일  그들이 정의와 사랑을 지키고 재산을 활용하여 좋을 일를 한다면 틀림없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문제는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30 부자가 다시 ‘안 됩니다, 아브라함 할아버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가야 그들이 회개할 것입니다.’ 하였다.

    실천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서 벗어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부자는 후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선도하기 위해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서 하나가 가야만 들을까 말까 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부터 하나씩 더 했으면 좋겠습니다. 매 금요일 금육한 것을 통해 주일 헌금 천 원 씩 더 올려 내고, 평일미사 한번이라도 더 나오고,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31 그에게 아브라함이 이렇게 일렀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그런 것은 헛수고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기적도 그 목격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목격자에게 선량한 마음가짐과 의지력이 필요합니다. 부자의 형제들이 모세나 예언자들의 신적 사명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그들 마음이 완고하였기 때문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 안에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3. 나눔 및 묵상

    1. 부자와 라자로의 삶과 죽음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낀 점을 이야기 해 봅시다.



    2. 세상에는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보아야 할 것이 있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봐야 할 것을 보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않을 수 있을까요? 내가해야 할 것을 할 수 있을까요?


  2. user#0 님의 말: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비유를 말씀하신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하지만 마음 뿐...
    그동안의 저의 삶을 생각해보니
    저의 마음은 저의 바램은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욕심임을 깨닫습니다

    이유는요? 주님!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별로 베풀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세속의 욕심으로 남보다 더 잘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이웃의 고통과 형제들의 아품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고통만 크고 저의 아품만 크다고 생각했지요
    저의 마음이 그러니 베푼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 생각은 하고 있었지요
    제가  잘살게 된다면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베풀면서 살겠다고...
    제가 부자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만 인색하시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저에게만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어리석은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아직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깊이 새기며
    후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봅니다

  3. user#0 님의 말:

     

    부자와 라자로 그리고 아버지!

    조연과 주연 그리고 감독!

    가난한이와 부자의 비유를 들어 회개에 대해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그리면서

    문득 조연과 주연 그리고 감독의 관계를 그려 봅니다.

    부자라 다 아버지 나라로 감이 아님을~

    가난한 자라 하여 무조건 아버지 나라로 가는 것도 아님을 다시금 되뇌여 봅니다.

    부자라 할지라도 진정 회개의 삶을 산다면 당연히 아버지 품으로 가겠지요.

    그리고 가난한 자라 하여도 회개하지 않는 삶을 산 이였다면

    결코 아버지 나라로 갈 수 없음을 압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제가 정녕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제 삶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어떤 위치에서든지

    최선을 다하는 의로운 삶이었는지를 반성해 보기도 합니다.

    삶의 주연으로 살기위해 감독을 넘어서는 교만과 이기로 저를 감싸진 않았는지요.

    진정한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이가

    감독임을 알면서도

    멋진 포장으로 저를 감싸 어떻게든 통과하고 보려는 헛된 욕심이

    저를 회개의 반대길로 걸어가게 한적은 없었는지요.

    살아가면서 주연이 아닌 조연으로

    주연의 활동이 더 돋보이게 받쳐주면서

    작은 일이지만 작은 일이 탄탄해야 큰 일이 드러남을 깨닫고

    최선을 다하는 저였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무리 멋진 주연이라 할지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영원한 주연으로 남게 되지 않음을 잊은 채 살아온건 아닌지요.

    보잘 것 없는 조연이지만 주어진 역에 최선을 다하면서

    상대가 빛날 수 있게 하면서 언제나 깨어있는 조연으로

    늘 자신을 돌아보면서 고개숙이는 자세로

    어떤 역이든 소화하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왔는지요.

    감독이 바로 아버지시지요.

    단체장을 맡은 주연들!

    그 주연이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조연들!

    언제 어느때 주연이 될 지~

    언제 어느때 조연이 될 지는 모르지요.

    그리고 언제 어느때 제가 회개하지 않는 부자의 모습이 될 지~

    언제 어느때 가난하지만 진정으로 회개하는 이의 모습으로 설지는 모르지요.

    주어진 삶의 양면성에서 제대로 회개하는 삶을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고 더 힘을 다해 잡는 저가 되길 청해 봅니다.

    어떤 삶을 제게 주셔도 진정 중요한 것은 회개임을 다시금 가슴에 묻어봅니다.

    누군가 아무리 알려주어도 제가 받아들이고 변화된 삶을 살지 않는다면

    저라는 사람은 늘 선택되진 않는 조연으로 빛이 없는 조연으로 살다가

    아버지 앞에 가서 애걸하겠지요.

    가짜의 눈물로~~~~

    그치요?

    현재의 삶과 저승의 삶은 다르겠지요.

    회개하는 삶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풍겨나는 그런 저가 되길 다짐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그중에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바로 옹고집으로 가득찬 저의 모습을 꾸짖는 듯

    그렇게 가슴에 무겁게 와서 앉았습니다.

    주어진 제 삶에 충실하면서 누가 뭐라고 할 때 저를 돌아보면서

    변화된 삶을 추구하였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정작 회개의 삶으로 살아왔는지요.

    누가 뭐라고 하면

    “너나 잘해” 하는 식으로 되려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믿음 가득한 이의 모습으로 진정 가난한 마음으로

    하루하루 저의 모습을 돌아보면서 잔잔한 미소의 회개를 하게 하소서.

    통회의 눈물이 아니라,

    늘 회개의 기쁨이 저의 삶에서 드러나게 하소서.

    조연이든, 주연이든 주어진 삶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저가되게 하소서.

    회개의 삶을 사는 이의 진정한 향취가 베어나는

    그런 신앙인의 행복한 얼굴로 매일매일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소서.

    삶의 양면성을 잊지 않게 하시고

    때론 한발 물러서 훈수를 두는 이의 모습이 되어

    틀안에 있는 저의 모습을 보는 눈을 주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이 가로놓여 있어,
    여기에서 너희 쪽으로 건너가려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 쪽으로 건너오려 해도 올 수 없다.”

    오늘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를 묵상하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 바로
    위의 말씀이 아닌가 싶습니다.

    죽어서는 무엇을 어찌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
    살아있는 저에게 까지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을 때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고,
    그들의 어려운 마음을 위로하여야 하겠다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멀리 있는 친척도 이웃사촌만은 못해요.
    그러니까 이웃을 사촌이라 하지요~~’라고 불려지는 유행가도 있나 봅니다.

    실제로 자주 만나고 어울려 지내는 가까운 이웃들이 겉보기에 반듯하게
    잘 차려입고 언제나 웃는 얼굴로 지내는 것 같지만, 그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의외로 어려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사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당장 제가 어떻게 도움을 줘야 할 것 같고
    어떤 방법으로 해야 그 분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도울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지만, 선뜻 좋은 방법을 선택하여
    실천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곤 합니다.
    그리고 생각만으로 그치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음을 기억하며
    오늘 복음의 말씀을 묵상하니 더럭 겁이 납니다.
    정말 살아 생전에 자신만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나 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들의 아픈 곳을 위로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이 모든 것이 생각과 다짐으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부자가 라자로를 자기 형제들이 있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간절히 청하자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저 또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이 순간에는 잘 살아야 겠다고 다짐 하지만
    돌아서면 내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뻔뻔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물론 저 혼자의 힘으로는 예수님 말씀대로 살아가기는 힘들겠지요.
    하지만 예수님 당신께서 함께 하여 주시면 작은사랑이라도
    실천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당신께 간절히 청해봅니다.

    오늘 부자와 라자로의 삶을 보면서 저의 지금의 평온함과 만족한 삶이
    언제 뒤바뀌게 될 지 모름을 깊이 새기며, 당장 눈 앞의 안일함과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고 나 보다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에게도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먼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오늘을 살아가게 도우소서. 아멘

    ♬ 시편 묵상

  5. user#0 님의 말: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려니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말씀에 겁이 납니다
    얼마나 무섭고 힘들면...
    정말 무섭습니다 주님!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에게도 고통을 주실까봐 두렵습니다
    하긴 저는 부자는 아니니 그럴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되지요?
    “부자와 나자로”
    삶과 죽음에서 서로 처지가 바뀌었는데...
    부자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길래 그런 고통을 주시는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주님!
    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말씀처럼 두렵고 겁이 난 적도 드물지요
    처음 묵상한 것도 아닌데 오늘따라 더 무섭게 느껴집니다
    그동안의 저의 잘못이 생각이 나서 일까요?
    그래도 사랑이신 당신께서 봐 주시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리고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산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제가 지은 모든 죄까지 사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나누고 베풀며 가난한 이들에게 무관심과 인색하게 굴었던
    자신을 반성하며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다짐합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믿음으로...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묵상하며

  6. user#0 님의 말:


    오늘의 복음 말씀을 읽고 많은 것을 느끼고 후회하고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가난한 ‘라자’의 모습이 아닌 ‘부자’의 모습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인생을 살아 온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 오면서, 부족할 것 없이 하루에 밥 세끼 먹고,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하고, 사고 싶은것, 먹고 싶은 것, 솔직히 아무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살아 왔습니다. 물론, 이 것은 제 노력의 결과가 아닌, 저희 부모님의 노력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는 말 한마디 보다 더욱더 큰 것을 원하고, 저희 욕심과 욕망은 더욱더 커져만 갑니다. 지금도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불편한 것 없이 잘 살아가고 있는데, 제가 처한 상황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에게 베풀지도 않고 있는 제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누구보다 더 잘해야 하고, 누구보다 더 많이 가져야 하고, 자꾸만 자만과 오만으로 덮어진 겉모습에만 신경쓰고 있는 제 모습에 고개를 들 수 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이 부자이고,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는데, 아직 전 하느님에게는 많이 모자란 딸 인 것 같습니다.

    사랑이시고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
    아직 어리고 어리석은 나쁜 딸, 바울리나 이지만, 하느님께서 저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자비와 은총으로 저를 사랑해 줄 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소녀 앞으로 더 커진 신앙으로 하느님의자녀로 당당하게 다가가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아멘 –



  7. user#0 님의 말: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주님!

    부자와 가난한 이의 비유를 말씀하신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으며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쁘게 행복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아는 모든 사람들과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과
    오순도순 아기자기하게 지지고 볶으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저의 소박한 꿈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해봅니다

    하지만 마음 뿐...
    그동안의 저의 삶을 생각해보니
    저의 마음은 저의 바램은 소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욕심임을 깨닫습니다

    이유는요? 주님!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별로 베풀지 못하고 살았다는 생각이
    세속의 욕심으로 남보다 더 잘살려고 안간힘을 쓰면서
    이웃의 고통과 형제들의 아품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저의 고통만 크고 저의 아품만 크다고 생각했지요
    저의 마음이 그러니 베푼다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 생각은 하고 있었지요
    제가  잘살게 된다면 불우이웃돕기도 하고 베풀면서 살겠다고...
    제가 부자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언제나 가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당신께서 저에게만 인색하시다고 투정을 부렸습니다
    저에게만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도 하였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어리석은 사람임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잘살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고... 
    아직도...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만은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게 해 주십시오.”

    말씀을 깊이 새기며
    후회하지 않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봅니다


    ♬ 다리 / Gen성가, 노래 : 낙산중창단

  8. user#0 님의 말: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

     신앙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닫게 해주시는
    오늘복음말씀을 묵상하면서
    적어도 못된부자처럼 살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마음 뿐....
    살면서  좋은 일만 하면서 산다는것이 쉽지가 않음을 느낍니다
    물론 당신의 말씀을 지키며  신앙인의 도리는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합니다
    당신께서 부자라는 이유로 단죄를 하지 않으신다는 것도....
    거지라고 모두 구원을 받지는 않는다는 것도....
    기본적으로 신앙인의 도리가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지요
    다만 알면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요 주님!
    솔직히 말씀드리면....
    나자로처럼 삶이 힘든 것보다는 부자로 살고 싶은 마음입니다
    적당히 선행도 베풀고 부자처럼 폼나게 살고 싶습니다
    솥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처럼....
    사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인심을 쓰고 싶어도 재물이 없는데
    나누며 산다는 것이 힘이 듭니다

    주님! 제가 이렇습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시는 의도는 이런 것이 아닌데....
    속물인 저는 이렇게 세속의 기준으로만 당신의 말씀을 알아듣고있습니다

    주님!
    저 같은 사람이 신앙인이 되려면 아직 멀었지요?
    그래도 당신의 자녀로 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합니다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아직은 나누고 살기에는 저에게 재물이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못된부자처럼 영원한 벌을 받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자로처럼 살고 싶은 마음또한 없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살아있는 이 순간 순간을 성실하게 당신의 자녀답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아멘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누가 다시 살아나도 믿지 않을 것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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