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 복음사가는 베드로 사도의 제자로서 통역관이었다.
원래 이름은 ‘요한 마르코’인데,
그는 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와 함께
안티오키아와 키프로스에서 선교하였다.
또한 그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로마에서도 선교 활동을 펼쳤다.
70년경에 주로 베드로 사도의 가르침을 기초로 삼아
마르코 복음서를 기술했는데,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위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탈리아의 항구 도시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며,
그의 유해는 그곳의 마르코 대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말씀의 초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복음 선포는 신앙인의 임무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에게 주어진 의무다.
그 임무에 충실할 때 표징이 따른다.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느끼게 하는 표징이다.
성령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마르코 복음사가는 베드로 사도의 제자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베드로의 비서로서 통역관이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가는 곳이면 자연스레 함께했고,
그의 가르침과 사상을 물려받았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 사도의 추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예수님에 대한 베드로의 기억을 기록하였습니다.
이것이 마르코 복음서입니다.
그러므로 마르코 복음에는 베드로의 체취가 강하게 배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사명을 복음 전파에 두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설교의 요지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간단합니다.
복잡한 이론보다 단순한 행동을 선호합니다.
마르코 복음서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
비교적 짧은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스승의 말씀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복음을 믿는 이에게는 기적이 따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악의 세력에 휩쓸려도 결국은 빛의 세계로 돌아옵니다.
예수님의 힘과 사랑이 그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서서히 영적 사람으로 바뀌어 갑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의 결론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기적을 안고 사는 이들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알렐루야/김정식
| | | | | | | | | |
자식을 너무나 사랑했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그 자식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산소에 가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석달이 지나면서 모든 것을 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식을 아주 사랑했던 그 어머니는 중풍을 앓아서
사랑하는 막내 아들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 없었던 분이었습니다.
늘 해 주지 못함에~
그리고 몸이 그래서 가정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슬픔에 술을 친구삼아 지내셨다고 합니다.
75살까지~~ 막내 아들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중풍을 맞았다고~~
동네에서 알아주는 부잣집에 마나님으로 부리던 권위도 한순간에 사라지고
남편에게도 그때부터 무시를 당하고 살았답니다.
오로지 막내아들만 옆에서 맴돌고 나머지 아들들은 다 아버지 편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그 막내아들의 꿈에 나타나셨답니다.
하나에서 열까지 당부를 하시는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어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산소를 찾지 않을수 없었다고~~
집에서 백일제를 지낼 전날 밤에 어머니와 진정한 작별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백일제를 지낸 뒤엔 산소를 찾지 않고도 늘 함께 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도~~
아담한 그 산소에는 없는 꽃나무가 없답니다.
가장 아름다운 동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참 정겨운 동산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산소 참 이쁘다고 한결같이 말하거든요.
그분이 바로 저희 할머니시랍니다.
가셨음에도 막내자식이 못미더워 꿈에서 이것저것 알려주시고 가신 어머니를
저희 친정아버진 지금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할아버지도 미워하지 않고 이젠 그리움의 사랑을 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당신의 어머니가 부탁하신데로 살아가기 위해서 늘 노력하고 계시답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는 아버지의 애잔한 사랑이 떠오르면서
친정 아버지의 그 아픔의 사랑이 생각났습니다.
진정 저희를 사랑하시기에 끝까지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려주시고 올라가시는 아버지!
가슴이 멍해 졌습니다.
복음을 선포하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많은 생각을 해 봅니다.
신앙인은 누구나 복음을~ 아버지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함인데 그렇게 했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제가 그렇게 할 때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고
또 저를 이끌어 주심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의 그 사랑으로 모든 악을 물리쳐 주시고 저를 붙들어 주심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살아가면서 작은 유혹에 빠져 곧 죽음으로 나아가는 삶속에서도
그것이 어떤 길로 나아가는 지를 모른 채,
지워질 발자욱을 남기며 살아오면서도 그것을 모른채
교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은총과 자비는 동시에 오는 것이다. 단 그만큼 커다란 십자가도 따른다.”고 합니다.
그리고 “천상전례에 참여함으로서 백배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럴때 비로소 생명으로 나아가는 새로운 언어를 말하는 성령의 이끔심대로 살아가는 저가 되겠지요.
아버지!
지금은 너무나 미약하지만 그래도 부족한 만큼 맘으로 저를 맡기렵니다.
저를 아버지께 묻을때 비로소 저가 새로남을 이젠 알거든요.
아버지의 사랑안에서 머물며 기쁨에 넘칠때
제가 나아가 기쁜 소식을 전하며 함께 하게 됨을 압니다.
저가 기쁘지 않다면 다른이에게도 전할수 없겠지요.
사명이라기보다 전 사랑의 약속으로 실천한답니다.
제가 사랑하는 아버지의 바람을 자식이 되어 당연히 이루려 노력하는 것이 맞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움직일 때 아버지께서 더 큰 사랑을 제게 엊어 주심을 전 굳게 믿고 있답니다.
허기 안그러셔도 제가 아버지를 안아드릴꺼네요.
사랑은 받기보다 안을때가 더 기쁘거든요.
그치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고~~
제가 아버지를 믿고 사랑함에 넘치는 기쁨이 있으면서도
저만 안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꾸짖는 것 같아서 뜨금했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는 것 같으면서 내적으로는 잠자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기쁨에 넘치는 삶은 누가 만들거나 꾸민다고 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진정으로 가슴에서 넘칠때 얼굴과 말과 행동에 드러남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며 모두가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에 동참하기 위해서
제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부족하지만 기쁨의 새로운 언어로서 유혹을 받고 이끌리고 있는 다른이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죽음에서 생명으로 함께 나아가며
천상전례에 참여하여 백배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이끄심에 더 큰 힘을 얻어 새로나게 하소서.
아주 가까이에는 자신을 미워하고 싫어하는 이를 위해서도 웃을수 있고
기도할 수 있는 저가 되게 하시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아버지의 귀여운 천사되게 하소서.
아멘.
주님!
당신이 계셔서 오늘도 전 살아갑니다.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
오늘도 당신 때문에 모난 마음 다듬어 가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당신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여줄수 있는 근본적인 모습은
제 본질안에 당신을 반죽해서
거부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묵묵히 다 받아들이는 것 부터에서 일겝니다.
위로자이신 주님!
오늘도 당신안에 머물면서
자신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함께 한다면
그것 또한 분명히 변할 것임을 고백해 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영세한 후 십 여년동안….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다는 자부심으로 살았습니다
외인권면도 많이 하고 냉담자 회두도 레지오는 기본이고 신심단체까지….
물불 가리지 않고 제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면서…
요즈음….
복음묵상을 하는 것 외에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렇다고 복음묵상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게라도 ….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생활전선에서 부대끼면서도 나름대로 성의껏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고….
하지만 압니다
제가 예전보다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사실을 마음이 아프지요
하지만 실망만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언젠가는 저에게도 예전처럼 기회가 오리라는 희망으로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복음묵상도 열심히 부담스러울 때가 많지만 저에게 유일한 희망과 기쁨을 주는 것이
“복음묵상”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저의 이런 생각이 복음을 전하는 방법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부족하고 모난 저의 성격과 부족한 신심을 반성하면서
실망하지 않으며 최선을 다하는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합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
묵상하며
♬ Dona nobis pacem / Hyden 미사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