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1. 말씀읽기:요한16,20-23a

2. 말씀연구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게 되면 세 가지 반응이 나올 것입니다. 하나는 너무도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산가족이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기뻐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만나도 그만 안 만나도 그만인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그렇게 반갑거나 힘들거나 하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헤어질 수 있었는데 또 만난다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제자들의 입장은 다릅니다. 헤어지면 안 될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고, 반드시 만나야 될 사람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의 기쁨이야 어떻게 말로 표현하겠습니까?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울며 애통해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가 근심하겠지만, 그러나 너희의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제자들에게 분명 슬픔과 절망을 줄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 제자들은 그렇게 절망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세상에 구원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록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제자들은 절망하고, 근심에 빠지겠지만 그 근심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후에는 기쁨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잠시 후에 제자들에게는 시련이 덮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동안은 예수님을 박해하는 유다인인들이 기뻐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니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입니다. 즉 기쁨의 서곡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처지에 있던지 예수님의 말씀에 희망을 두고서 항구하게 신앙 생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힘차게 신앙생활을 합시다. 비록 오늘 나에게 이런 저런 시련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21 해산할 때에 여자는 근심에 싸인다. 진통의 시간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으로 그 고통을 잊어버린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마음의 격동과 그 마음의 변화를 출산의 괴로움에 빠진 여자의 상징으로 나타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모든 괴로움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어머니는 새로운 인간을 이 세상에 낳았다는 기쁨과 긍지를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또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 잼 있는 이야기 하나>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슈퍼에 음료수를 사러 들어갔습니다. 마침 연속극에서 아이를 낳는 모습을 방영하고 있었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는 다른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 가증스러워…”

순간 당황했습니다. 아이 낳는 것이 저렇게 어렵지 않단 말인가?

그 아주머니는 나를 의식했는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 낳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그냥 쑥 나면 되는데…”

아마 그 아주머니는 아이 낳는 전문가 인 듯 합니다^*^.


22 이처럼 너희도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를 낳기 위해 그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은 기쁨으로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을 아무에게도 빼앗기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빼앗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어봐야 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들의 의혹을 말끔히 씻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3 그날에는 너희가 나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이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은 더 이상 예수님께 물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다시오심을 기다리는 나 역시 주님을 만날 때 아무것도 묻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하신 모든 것들을 두 눈으로 확실하게 보겠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제자들에게는 위안이 되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는 무엇 하나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지 않았습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청하셨고, 그렇게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에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약속을 받은 제자들은  지금 받고 있는 것입니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청하지 않았다. 청하여라. 받을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 기쁨이 충만해질 것이다.”

이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면 됩니다. 모든 기도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로 끝납니다. 그렇게 청할 때 나는 받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기쁨은 충만하게 됩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기 위해서 예수님께 기도드려야 하고,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하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1. 신앙생활을 하면서 아이를 낳는 것과 같은 고통을 겪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리고 아이를 품에 안은 어머니처럼 그렇게 기쁨으로 보답을 받은 적이 있으신지요



2. 지금 내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뻐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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