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며, 그의 증언은 참되다.


부활 제 7주간 토요일(5/10)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는 요한 사도를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하였다. 복음의 끝 부분에서는 요한 복음의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스승님의 예언처럼 요한은 순교하지 않고 오래 살았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기록하였다. 사랑으로 기록하였다. 그것이 요한 복음이다(복음).
    복음
    <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며, 그의 증언은 참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0-25 그때에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 제자는 만찬 때에 예수님 가슴에 기대어 앉아 있다가, “주님, 주님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다. 그 제자를 본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형제들 사이에 이 제자가 죽지 않으리라는 말이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가 죽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또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요한 복음에는 요한 사도를 지칭하는 독특한 표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는 표현입니다. 열두 제자치고 예수님께서 사랑하지 않으신 제자가 있었을까요? 그럼에도 요한은 주님께서 더욱 사랑하셨던 제자로 등장합니다. 아마도 요한 복음의 작가였기 때문일 겁니다. 요한은 형 야고보와 함께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갈릴래아의 호반 도시 벳사이다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에 앞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도 부르셨습니다. 네 사람은 동향 출신으로 예수님께서 처음 선택하신 제자들이었습니다. 이후 이들은 기적의 장소에 언제나 스승님과 함께합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사랑과 신뢰를 받았던 제자들입니다. 마태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카 복음, 이른바 공관 복음에는 이들이 부르심을 받는 장면을 똑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지극히 단순한 결정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단순해야 합니다. 그분께서 부르시면 어떠한 경우에도 “예!” 하고 곧바로 나서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의 사랑을 받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요한 사도는 훌륭한 모범을 남겨 주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갈릴리 호숫가에서/복음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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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자가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며, 그의 증언은 참되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언제나 제 뜻대로 하는
    자신이 신앙인의 자세가 아님을 느낍니다
    당신께서 부르신다면...
    그물을 버리고  당신을 따라나선 제자들처럼
    저도 당신을 따라야 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이유는 왜 그렇게 많은지...
    이것은 이래서 안되고 저것은 저래서 못하고...
    사정도 많고 핑계도 많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당신께서 제가 감당하지 못할 것을 원하지 않으실텐데...
    이 핑계 핑계를 대며 당신을 따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님!

    신앙인이라면...
    당신의 자녀라면...
    당신께서 어떠한 말씀을 하신다해도 따라야지요?
    핑계를 대고 이유를 대면서 당신을 따르지 못하는 것은
    저에게 믿음이 부족해서지요?
    저에게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해서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께서 부르시면 “예”하고 따라나선 제자들처럼
    저도 핑계대지 않으며 당신의 부르심에 따르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이유도 묻지 않으며...
    당신의 부르심에 핑계를 대지 않으며...
    “예”하고 따른 요한사도처럼...
    당신의 사랑을 받는 헬레나가 되고 싶습니다
    당신의 부르심에 “예”하고 따른 요한사도의 믿음이
    한 없이 부럽습니다
    저도 요한사도처럼 당신을 사랑하고 싶은 오늘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성령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시리니,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로다.
    알렐루야 (요한 16,14)
    아멘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

    묵상하며

    .


    ♬ 갈릴리 호숫가에서/복음성가

  2. user#0 님의 말:

     

    한나라의 대통령이 목숨을 던진 7일째!

    오늘 그를 놓아 주면서 많은 사람들이 통곡의 울음으로 함께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안타까운 모습에 가슴이 저미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려 나온 그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순수한 사랑에서 나오는 순정이길 바라기도 했습니다.

    정말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만 하는 몸부림이길 바랐습니다.

    누군가를 증오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길 기도했습니다.

    정부에 대한 비난의 마음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사랑의 작별을 하려는 행렬이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 가슴이 찢어지지만 이성을 잃지 말아야 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면서 그가 바랐던 것을 위해 더 힘차게 나아가는 것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랑은 못할게 없으니까요.

    아버지께서 저희를 사랑하시는 것처럼~~

    그러면 그 사랑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고 머리로 새긴다면

    저 또한 아버지의 뜻을 기리려 더 분주히 움직이면서 삶에 색을 입히겠지요.

    아버지를 사랑하는 그 마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담고 오늘 말씀에 저를 묻습니다.

    말씀의 시작부분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와 베드로” 라고 적혀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와 베드로!

    얼마나 좋았을까요.

    부족한 저도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딸 엘리사벳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면서

    무엇에 비중을 두면서, 또 무슨 생각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저와 상관없는 일에 몰두하느라 진정 아버지의 맘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요.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라고 하셨지요.

    제게 하시는 말씀같았습니다.

    많은 것에 의문을 갖기보다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단순한 저가 되어 아버지를 따르면 될 것을~~~

    한손에 사탕을 들고서도 또 다른 손에 사탕을 쥐려 하는 철없는 아이처럼

    제가 그런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머물진 않았는지요.

    아버지의 사랑받는 저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하렵니다.

    말씀의 정화수에 저를 씻어 매일매일 성체를 모심으로 제 작은 지성소에 사랑을 담으렵니다.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제자들이 아니었으면 어찌 아버지께 매일매일 수다를 떨 수 있을 것이며,

    어찌 아버지의 말씀에 저를 담을 수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스칩니다.

    아버지를 지금보다 더 사랑하며 아버지를 따를 것입니다.

    오로지 아버지의 손을 잡고 이끄시는데로 걸어가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잠을 자면 안되겠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예수님을 따라오는 요한을 보고 저사람은 어떻게 되겠냐고 베드로가 묻자

    “내가 올 때까지 그라 살아있기를 내가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늘 본질에서 벗어나는 궁금증을 가지고 신앙을 고백하는 절두고 하시는 말씀같아 가슴이 찡했습니다.

    사랑을 주심에도 저만 못받는다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손을 잡고도 뒤를 돌아본 적은 없었는지요.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들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았던 저를 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본질이 퇴색되지 않게 늘 감사하는 맘으로

    아버지만을 생각하면서 그 마음으로 세상을 보게 하소서.

    사랑하는 제자들이 있었기에 아버지의 말씀이 지금 제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시어

    아버지만을 바라보게 하시고 사랑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시기 전에는 제가 먼저 의문을 던지지 않고

    그저 손을 잡고 따르면서 넘치는 수다만을 떨게 하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주님!

    오늘.
    슬프고 우울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으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긴하루였습니다
    장례식을 보면서 많은 반성을 했습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 조심해야겠다고...
    저의 섣부른 말 한마디가 상대방에게는 깊은 상처를 주게된다고
    저 역시 많은 상처를 받았지요
    그래도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믿었다면 목숨까지 버렸을까?하는 생각에...
    아무튼...
    노무현 저 대통령의 장례식을 보면서 신앙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면서 다짐하는 하루였습니다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해야겠다고...
    당신께서 주신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당신의 자녀답게 당신의 자녀라면 적어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저의 머릿 속을 복잡하게 했지만
    당신의 말씀을 당신의 사랑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참 다행이지요?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말씀을 깊이 새기며
    섣주른 판단으로 상처를 주는 경솔한 신앙인이 되지
    말아야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한번 더 생각하고 한번 더 배려하고...
    한번 더 사랑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묵상하며


    ♬ 주님 내 속에

  4. user#0 님의 말:

    살다보면 남의 일에 대해 괜히 궁금해 한다.
    사소한 것부터 쇼킹한 사건들까지…

    오늘 베드로가 주님께 요한의 미래에 대해 여쭙는 모습을 묵상하면서
    나 역시 하루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남의 일에 호기심을 갖으면서 살아간다.
    나 자신이나 잘 할것이지…
    왜 그리 다른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은지…
    쓸데없는 오지랖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니 우습기도 하고 부질없어 보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다 알고 싶어하는게 당연하지만…

    허나 나와 별상관 없는 사람들까지 쓸데없는 호기심을 갖고 살지 않았나 싶다.
    문제는 타인의 삶에 개입하다 못해 영혼까지 걱정하며 사는거다.
    어떻게 될까 미리 예측하고 판단하며 반죽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에 대해 되돌아 보는 시간보다
    다른 이의 영혼에 대해 왈가 왈부하는 시간이 더 많다는 것이다.

    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자살에 대해서들 말이 많다.
    이 양반이 자살한 덕분에
    개신교 친구들과 만나면 시끄럽다.
    너네성당은 자살했는데 어떻게 미사를 드릴수 있느냐고 말이다.
    각자 생각들이 다르고 교리를 배우다 보면 논란의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보지만…
    무엇보다 그분이 알아서 하실일을
    왜 너희들이 그분의 권한까지 개입하려 하냐고…
    사실 내가 할말이 이 말밖에 더 있나 싶다.

    암튼
    그래서? 어쩌라구… 인간이 어쩌라구…
    자살했으니 지옥에 가면 좋겠나?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살아있는 우리가 하느님께 빌고 빌어서 천당으로 보내주면 어디가 덧나냐…
    꼭 지옥으로 보내야 속이 시원한가…
    이런 절 친구들은 못 마땅해 한다.

    그들의 신앙은 유대교보다 더한 율법주의 빠져 있는 듯하다.
    그래서 아무리 이해를 시키려해도 내 입만 아프고…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그들에게 뭘 얻겠다고..
    그럼에도 그러든 말든 떠들어 대는 나도 참 얼빠진거 같고…
    언제쯤 그들을 이해시킬까?
    많은 시간이 필요함을 느껴본다.

    그래서 쉽게 신자들을 감복시키는 목사님들의 능력에 감탄할때가 있다.
    어찌 저렇게도 “주님을 믿는 자기네 교회사람만 구원이 있다.” 라고 세뇌를 잘 시키는지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 증인들의 말에도 넘어가지 않는다.
    주님을 왜곡하는 종교는 사이비이기에 어떠한 유혹의 말에도 넘어가질 않는다.

    이점은 내가 그들에게 본 받아야 할 모습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여호와 증인에게도 배울점은 있다.
    천대받고 욕얻어 먹을지라도 끈질기게 전교하는 모습이다.
    이렇게 보면 모두가 하느님을 향해 가는건데…
    슬프게도 하나 되기를 거부한다.

    그럼 나는 어떤가…
    초대교회로 부터 내려온 내 종교가 참 종교라며 자부하고 사는 나…
    그럼에도 서자인 신교보다 족보(셩경)도 제대로 읽지 못하는 나는 아니었는지…
    그러면서 오늘도 호기심은 어디에 두고 사는가…

    살아가면서 뭔가를 알려고 할 때
    정말로 상대방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호기심을 채우려는 것인가를 나를 돌아보면서
    진정한 사랑은 나를 잊고 상대방을 생각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 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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