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을 다 팔고, 나를 따라라.


성 필리보 네리 사제 기념일(5/26)


    필립보 네리 성인은 1515년 이탈리아의 중부 도시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한때 사업가가 되려고도 했으나 수도 생활을 하기로 마음을 굳히며 로마로 갔다. 그곳에서 젊은이와 가난한 이들을 위하여 헌신하다 36세의 늦은 나이에 사제가 되었다. 성인은 유명한 고해 신부가 되었고, 1564년에는 ‘오라토리오 수도회’를 세웠다. 뛰어난 영적 지도자로서 많은 사람에게 존경을 받았던 그는 1622년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다. 그만큼 어렵다는 표현이다. 성경이 말하는 부자는, 재물의 힘이 하느님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오늘 복음의 이 부자는 재물의 힘과 예수님의 힘을 모두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복음).
    복음
    <가진 것을 다 팔고, 나를 따라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7-27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 말씀은 재물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하루라도 생각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재물입니다. 어떤 이에게는 삶의 목적이고 생명만큼 소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재물을 많이 가진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그는 망설입니다. 재물이 많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에 오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이 그를 낭패하게 만듭니다. 재물을 나누는 것이 억울해서 그랬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재물에 대한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재물의 위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재물의 힘이 예수님의 힘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재산을 팔아 나누어 준 뒤에 오라고 하신 겁니다. 재물에 대한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바꿀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재물의 위력도 소유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재물의 힘이 하느님의 힘보다 강하다고 믿는 사람에게 구원은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이 더 쉽다고 하신 겁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표현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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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을 다 팔고, 나를 따라라.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맞아요 주님!
    당신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께 위로를 받는다고 하면서도...
    당신을 무조건 믿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입으로만 앵무새처럼 지껄일 뿐....

    만약에 제가 당신을 믿었다면...
    복음묵상을 하면서 묵상만으로 끝나지 않았을텐데...
    언제나 입으로만 말을 합니다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묵상만합니다
    복음묵상을 하면서도 언제나...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며....
    입으로만 실천을 하겠다고 떠들어댑니다
    언제나 부도수표만 날립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이렇게 입으로만 떠들어대며 부도수표를 날리는 저 같은 
    사람도 당신의 자녀가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언제나 입으로만 ...
    행동으로는 당신이 우선이 아닙니다
    입으로만 당신이 우선입니다
    마음 뿐....
    행동으로는 언제나 제가 우선입니다 주님!
    저의 이런 행동이 저도 싫습니다
    언제나 부도수표만 남발하는 제가 싫습니다
    언제쯤이면 저도 보증수표가 될까요?
    당신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저의 이기심과 세속의 욕심이 부저청년처럼 버리지 못하고...

    아니!

    움켜잡고 있습니다 누가 빼앗아 갈까봐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아니!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합니다
    솔직한 저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세속적인 저의 모습이 하루빨리 당신의 자녀답게
    변화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사랑이신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될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묵상하며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2. user#0 님의 말: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1. 말씀읽기: 마르코10,17-27

    하느님의 나라와 부자 (마태 19,16-26 ; 루카 18,18-27)


    2. 말씀연구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채울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뜻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물로는 채울 수 있겠지만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나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점점 줄어들어 있을 자리조차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17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한 부자청년이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예수님 발치에 엎드렸지만 나름대로의 청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그들 병에 대한 치유였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영생의 방법을 얻고 있습니다.

     이 청년은 예수님께 예의를 갖추었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존경의 표시로 무릎도 꿇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그곳에 들어가기 위한 방법을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청년은 예수님께 “선하신 스승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아첨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아픈 이들에게, 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들어왔고 또 본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이들을 축복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았던 것입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호칭을 거부하십니다. 하느님 안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호칭을 거부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선하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청년이 말하는 선하다는 개념을 생각해봅시다.  유치원 꼬마가 일류 대학 수학과 4학년 형에게 “형! 정말 수학 잘한다!”하면 그것이 칭찬일까요? 아무것도 모르는 꼬마의 말에 그 청년이 기쁠까요?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모르는 젊은 청년에게는 예수님께서 아무리 선하다고 하더라도 한낱 사람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선하다”고 불리기를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참된 완전 자체이신 하느님에게만 들어맞는 말씀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 그 영광을 모두 돌리시는 것입니다.


    19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이 젊은 청년은 예수님께로부터 율법에 포함되어 있는 규정의 뜻을 권위 있는 설명으로 듣고 싶어 했습니다. 자기 생활과 비교하여 율법이 무엇을 명하는가를 알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물어보는 것을 보면 율법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에게 하느님께 대한 의무보다는 이웃에 대한 계명을 상기시키십니다. 그런데 이런 계명들 중에서 부자 청년이 지키기 어려웠던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가 부자라고 설명되어 있기에 살인이나 도둑질은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에게 가장 큰 유혹은 그가 부리고 있는 일꾼들에게 과중한 노동이나 임금의 체불, 노동에 알맞지 않은 임금의 지불 등의 부정이 아니었을까요?



    20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런데 이 청년은 뜻밖에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청년의 대답은 자신에 대한 자랑은 아닌 듯 합니다. 그의 성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인 듯 합니다. 열심한 유다인들 중에는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성실한 랍비들은 항상 율법의 전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랍비들 가운데에는 인간의 윤리적 능력을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경건한 사람까지도 자기의 죄 때문에 그의 의로움 보다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생각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서 지적하신 모든 계명을 지켰다고 생각하면서도 부족한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인이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21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런 청년을 예수님께서는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완전한 구원의 길을 가르쳐 주십니다. 히브리인이 사고방식에 따르면, 남에게 적선을 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보화를 얻는 것과 같은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경건한 사람은 한 평생 적선을 베풀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재산을 적선하라고 요구하십니다. 그리고 그 대신 하늘의 보화를 약속하십니다.


     재산을 버린다는 것은 새로운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곧 예수님을 따르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일, 가난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베푸는 일, 모든 자연적인 청빈보다도 가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자청년은 이 말씀을 듣고 당황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가 모든 것을 버리면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를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어떻게 결정을 할까요?


    22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솔직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닌 척 하지도 않고, 거짓으로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 그가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라기 보다는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가는 사람 같습니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친구들끼리 복권을 사서 당첨되면 나눠 갖자고 다짐을 해도 막상 당첨이 되면 대부분 마음이 변할 것입니다. 우정도 중요하지만 마음 안에서 솟아나는 이기심을 우정이 100%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 어렵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 힘을 주어 붙잡고 있기에 못 나가는 것입니다. 부자라는 것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믿음보다는 재물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가 마음을 재물로 두고 있기에 하느님 나라에는 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재물이 사람 마음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도 슬퍼집니다. 의인이 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물에 대한 소유욕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던 부자 청년. 그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성당에도 잘 나가고,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막상 문제가 발생하면 그 신앙이 무너져 버립니다. 그렇게 부자청년처럼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고 인정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를 달지 말고, 솔찍하게, “저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가 없는데요….저는 그것만큼은 어려운데요….”


    26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고 서로 말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놀랐습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다 할지라도 세상 것들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세상사에 관심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세상 재물에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것을 버린다는 것이 어려운 것임을 알기에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하고 서로 말했던 것입니다.


    27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신에 대한 사랑이 큰 사람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사도들이 반문하는 것처럼 구원받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선한 일을 해서 당연하게 구원을 요구하겠습니까? 그분께서 주시면 좋고 안주시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안주실 리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 될 도리를 다하고 마지막에 “저는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의 비결 아니겠습니까? 그저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은총에 의지합니다. “모든 것을 놓고도 혹시 붙잡고 있는 것은 없는가?”를 고민하면서 주님의 은총에 의지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버린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리고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내가 부자청년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② 부자청년의 늘어진 어깨를 바라보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3. user#0 님의 말: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복음을 묵상하면 할수록 저의 존재가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죄책감도 많고 당신께 죄스러운 마음이 드니 어느 때는….
    복음을 묵상하기가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마음으로 지은 죄도 많고 몇자의 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여지는 것같으니 마음이 답답합니다
    행동으로 실천을 해야 하는데 참 어렵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햇수가 많아질수록 실천을 해야하는데…
    입으로만 몇자의 글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니
    빈 수레가 요란한 신앙가입니다
    오늘복음에 나오는 부자청년처럼….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안달을 하는 저의 모습을 들킬까 두렵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말씀을 성찰하며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마음만이 아닌 행동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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