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10주일(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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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0주일(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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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동안 하느님은 나만의 하느님인 줄 알고 살았구나 싶다.
내말만 귀담아 들어주시고
내 생각과 입장만 기억해 주시기를 바라며 살았던거 같다.
그래서 매사에 내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그 기준에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허물에 대상이 되고 판단에 대상이었지 싶다.
왜 하느님은 그런 인간에게 자비로우신지…
투덜거리며 그분의 존재성에 도전을 해댔다.
그래서 남의 신앙의 깊이를 내 마음대로 측량하고 살았다.
다른이의 믿음과 신앙은 그분만이 아신다.
그런데 건방지게도 그분의 권한에 간섭하고 산 내가 아니었나 싶다.
얼마 전이었다.
별로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통화를 하게 됐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가족들이 힘들었기에
그저 대화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용서할수 없을 정도로 미운 대상도 아니었다.
그냥 마주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그런 사람일 뿐이었다.
내게 있어 형식적인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차갑고 무뚝뚝한 내 말투에 상처를 입었나 보다.
우울한 마음으로 몇날 몇일을 울면서 보냈다고 한다.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가 치밀었다.
내원 참~~ 내가 뭐라 했다고? 말이다.
왜 나를 화나게 해서 죄짓게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그 사람이 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난 그가 성당에 다니는것도 뻔뻔스럽다고 생각했다.
신자로써 모범이 되지 못하는 인간이 아닌던가…
그리고 주님을 욕되게 하고
집안 망신을 주고 다니는 사람이라며 과거 행동에 트집을 잡고 못 마땅해 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면서
오늘 말씀속에 나오는 바리사이들과 뭐가 다른가 묵상해 봤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라며
나는 매사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았나…
상대방을 저울질하고 말이다.
깊이 반성해 보면서…
인간의 죄는 그분이 알아서 하심을 깨달아 본다.
내가 내게 충고하고 싶은 것은 “본인의 모습이나 점검하며 사셔요” 라는 말이다.
상대방의 과거가 어찌됐든
지금 현재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내가 보기에 어떠냐가 아니라
주님이 보시기에
어떠냐가 중요한 것임을 느껴보는 하루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남편의 세례명을 성인 중에 가장 장수하셨다는
안토니오 아빠스 성인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남편이 세례를 받을 때 본당 성전 건립을 할 때였는데
남편은 예비자이면서도 봉사를 많이 한다고 수녀님께서
남편이 세례명을 정할 때 요셉성인처럼 살라고
특별히 지어주셨습니다
마침 남편의 생일도 요셉성월인 3월이라 기뻤습니다
그렇게 요셉으로 20여년을 신앙생활을 했는데..
기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요즈음...
남편의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보니 오래만 살기를 바라는 마음 뿐....
한번도 요셉세례명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꿈에도 없었는데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이 간사하다는 것도 느낍니다
요셉성인께 죄송한 마음도 들지요
요셉성인처럼 살지도 못했으면서 엉감생신 세례명을 바꾸고
싶은 방정맞은 생각이 드니 저의 변덕스런 마음이 부끄럽습니다
신앙인으로 신앙인답게 살지도 못하면서
세례명 탓을 하는 위인이 바로 저라는 사실이 우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의 간절한 마음을 헤아려 주실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당신은 사랑이시니까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의 죄를
사해주실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죄인인 헬레나를 위로해주실 것이라고...
사랑이신 당신을 의지하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게 하셨도다”
아멘
♬ My Jesus, I love Thee
새해를 맞이해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자고 다짐했던 날이 벌써 17일이 지났다.
그런데 변한게 하나도 없음을 본다.
잘못된 습관들… 그리고 반복되는 죄를 짓지 않겠다고 했지만
돌아보면 작년 그대로 살고 있는 자신을 본다.
그러면서 그분이 나를 변화시켜 주시길 바라고 산다.
오늘 복음에서는
레위인이 그 좋은 직장과 물질을 다 버리고 그분을 따라가는 걸 보았다.
참으로 어려운 결단임을 느껴본다.
나는 이런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요즘 경제도 어려운데 진실와 진리를 위해 직장을 떠날수 있을까…
깊이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순간 생각으로만 끝나고 마는 나…
변화될수 있겠나 싶다.
레위인은 나처럼 다짐으로만 끝난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다.
죄를 끊어버리고 변화했던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벗어 던지는 노력이 있어야
그분은 내가 변화 할수 있도록 개입하시지 않나 생각해 봤다.
노력도 없이 말로만 회개한다면 그분은 내안에 들어올수 없는거다.
믿음의 문이 열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암튼 그분은 내게 어떻게 하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으시다.
그저 바라보시고 방관하듯 하시지만
그건 내 교만이 그분을 온전히 의지하지 못하게 방해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분께서는 이런 내 모습을 안타까워 하시고 언제나 기다려 주신다.
그분을 목마르게 찾는다는 것은 내 마음에 그분의 자리를 마련한다는 것일게다.
이렇게 내가 그분을 절실히 찾고 내 삶의 방향이 잘못되감을 느껴서 변하려고 발버둥칠때
오늘 레위를 부르신 것처럼 나의 삶도 변화시켜주시지 않겠나 생각해 봤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행동이 없는 이 죄인 용서하소서.
오늘 레위처럼 행동으로 보여주는 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도와 주십시요. 아멘.
새벽공기가 참 신선하게 와 닿습니다.
으스름 달빛의 잔잔한 미소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저를 위로해 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밤입니다.
의인과 죄인!
그둘의 기준은 행동에서 드러난다. 에페4,1-7 참고~ 라고 적혀 있네요.
신부님께서 강론중에 말씀하신 것이거든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몇번이고 눈과 머리에 넣고 또 넣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말합니다.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라고~~
그러자 예수님께서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의인을 자처하는 죄인이 아니라, 죄인을 자처하는 의인을 부르러 오셨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저는
아버지의 깊은 뜻을 잊고 의인을 자처하는 죄인처럼 살아오진 않았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결국 바리사이의 삶이 제 삶임을 모른채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온 건 아닌지요.
제 행동이 과연 어느 쪽인지를 성찰하기 전에
제 이기가 저를 앞도해서 스스로 의인 인냥 자처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저인지~~
그래서 그래서 행동으로 드러나는 삶인지~~
오늘 결국은 저희가 어머니한테 졌습니다.
입원을 하셨지요. 당신이 원하는데로~~
이해도 못했지만 서운하고 밉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것을 사정해서 결국 입원시켰습니다.
저의 사랑이 부족한 것인지, 어머니의 사랑이 부족한 것인지요.
누가 의인의 입장에서 스스로 죄인되어 고개숙이고 살아가는 것인지요.
“나 살뎅이가 아파 죽겼슈. 입원해야 겄슈” 병원에서 웃었습니다.
특별한 치료가 없다는 것을 저에게 다짐을 받고 입원을 허락했답니다.
얼마나 슬프던지요. 그 슬픔이 저 밑바닥에서 올라오는데~~~ ㅎㅎ
아버지!
오늘 참으로 많은 생각과 번민으로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지요?
저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데~~ ㅎㅎ
못났지요?
그래도 힘을 내어 봅니다.
아버지께서 함께 하시니 제가 더 힘을 내어 웃어야 겠지요.
저희 어머니도 더 이상의 아픔을 자식들에게 주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살이 아파 입원하시는 어머니~
아마도 몸고 마음이 이젠 지쳤나 봅니다.
당신이 한 것에 대한 기억들이 몰려 들기에 두려움과 무서움에 더 약해지셨는지도~~~
지난주엔 성당도 안갔지요.
텔레비전을 보며 웃다가 가자고 했더니”아유~ 나 아파서 못가”
참 애도 아니고~~
아버지!
의인은 성실함으로 산다고 하셨잖아요.
제 성실함으로 어머니를 대신해 드릴 수 있을까요?
아버지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하시는 것처럼
저도 그렇게 하려 다짐해 봅니다.
어머니를 비롯해 많은 이들을 제 품에 안아 변화시켜 보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아버지 앞에 설 수 있게 해 보렵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심에 합당하셨음을 보여드리는 삶을 살아보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는 것을 보고
바리사이들이 어째서 저들과 음식을 먹느냐고 제자들에게 묻자
아버지께서 말씀하십니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라고~~
참 마음 깊이 와 닿습니다.
늘 저만~~ 늘 제게만~ 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의 손을 놓지 않으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선한 사람에겐 아버지의 향취만 있어도
늘 아버지께로 향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아버지 전요~~ 라고 하면서 아버지를 독차지 하려 하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아버지께 부름 받음에 합당하게 더 열심히 기도하여
아픈이들의 한 손이 되어 그들을 아버지께로 이끌 수 있게 하소서.
부족하지만 저의 성실함과 온유와 사랑으로 그들을 안아
그들에게 제 기쁨을 보태어 기쁜 발걸음이 되게 하소서.
아멘.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용기도 생기지요 왜냐구요?
그 죄인들 중에 저 헬레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당신의 뜻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기에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 짐 때문에 몸과 마음도 무겁고 괴롭고 때로는
당신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양심이 찔리고 당신께 죄송스럽고 저 자신에게 화가나고...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들로 저의 신앙생활이 기쁘지만 않았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저의 못된 습관과
게으름 교만 이기심 세속에 대한 미련 등 ...
신앙인으로써 갗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저의 신앙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부터 해방감이 와야 하는데 무거운 돌덩어리를 가슴에 엊어
놓은 것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머릿 속으로만 생각하고 또 하면서...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죄인을 부르러 오신 당신의 깊은 사랑에 감사드리며
당신의 사랑에 용기를 갖으며 비록 의인까지는 되지 못한다해도
습관적인 죄 부터 짓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머릿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참으로 좋으신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아멘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오늘은 동수원에 진로적성검사 워크샵이 있어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차안에서 루시아 수녀님의 테이프를 듣고 가는데
참 행복했다.
기도하고 또 기도하라고
거지처럼 기도하지 말고
면형무아- 아무것도 아닌 나, 주님이 오시게 기도하라고 하신다.
의사처럼 내가 병들었을때 고쳐주셨고
내가 죄인일 때 마태오를 부르듯 불러 주셨습니다.
모든 것 아시는 그 분이 나에게 그리하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6시에 마치고 밀리는 고속도로를 뚫고 집에 오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습니다
내일은 큰아들 내외가 손녀딸데리고 오전에 방문한다고하고
오후에는 절친들과 영종도에 조개구이 먹으러 갈 생각을 하니 즐겁습니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
새해가 시작 된지도 20일이 됩니다
하지만….
새해에 다짐했던 모든 것들은 벌써 물거품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 입으로만 다짐을 하고 헛맹세를
하면서 사는 것이 저의 생활에 일부분이 된다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하지요
그럼에도 ….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비록 지키지 못할 약속일지라도 마음만이라도 ^*^
세속에 찌든 삶을 살지라도~~~
당신께서 도와주실 것이라는 희망으로 새롭게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죄인 중에 저도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갖으며
기대와 용기와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묵상하며
♬ 주여 이 죄인이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
요즈음~~
본당에 카페가 생겨 그곳에서 눈팅~~
하느라 복음묵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신께 죄송하고 무엇보다 사이버성당미사에 매일 들어오면서도
복음묵상을 하지 못햇습니다
새해에는 게으름 피우지 않고 복음묵상을 열심히 하겟다고 당신께 말씀드렸는데….
언제나 부도수표를 남발하여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죄인 헬레나 당신을 믿고 당신말씀을 따르도록 다짐해봅니다
의인이 아닌 죄인을 부르러 오신 당신을 사랑하며 ….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묵상하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죄인 중에 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제가 죄인이기 때문이지요
구원의 길이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어떻게?
당신께서 친히 죄인인 저 헬레나를 부르러 오셨다는 사실이지요
참 기쁩니다
저에게 구원의 길이 있다는 사실이...
당신이 계신다는 사실이 행복합니다
당신께서 저를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제가 무엇이기에...
당신께서 저를 구원해주시려고 오신다는 사실이....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께 부르신다면 “예”하고 따라 나설 수 있는 믿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무런 이유도 핑계도 하지 않으며 “예”하고 나설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께서 부르신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아멘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묵상하며
♬ Eres Tu / Mocedad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