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연중 제14주일(7/6)


    말씀의 초대
    “철부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그들에게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지혜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지혜를 감추셨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 당신의 능력을 모두 맡기셨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이 지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율법에 얽매여 힘겹게 사는 이들이다(복음).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5-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멍에는 소나 말의 목덜미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기입니다. 그곳에 줄을 달아 수레나 쟁기를 끌게 합니다. 소의 입장에서는 귀찮은 것이지요. 그러나 멍에가 있어야 소를 제대로 부릴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도 그 멍에가 있습니다. 살면서 만나는 ‘귀찮은 그 무엇’입니다. 그것을 완전히 버릴 수 없는 게 인생살이입니다. 일생 지고 가야 하는 짐들이지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주님께서 이끌어 주심을 깨닫게 됩니다. 가벼운 멍에가 있을는지요? 멍에는 본질적으로 귀찮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은총임을 아는 데에는 숱한 좌절과 일어섬이 요구됩니다. 끝없는 시행착오 끝에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신앙 안에 머물면 결국은 고통을 은총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뒤에야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주님의 말씀이 가슴에 깊이 와 닿습니다. 그때가 언제쯤 될는지요? 기다려야 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주님의 이 말씀은 어리광 부리고 투정 부리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삶의 아픔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라.’는 말씀으로 해석해 봅니다. 우리는 가끔 잘못 생각합니다. 이 사고 때문에, 이 일 때문에 힘들고 불행한 미래를 살게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미래는 주님께서 이끌어 주십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그는 나를 만졌네 /윤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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