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연중 제15주간 목요일(7/17)


    말씀의 초대
    구약의 신앙인은 율법으로 고생하였다. 계명은 그들에게 늘 무거운 짐이 되었다. 현실은 바뀌지만 율법은 바뀔 수 없었던 것이다. 갈수록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많아졌던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복음).
    복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시련은 늘 은총입니다. 그렇지만 시련이 은총임을 깨달으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왜 이러한 시련이 주어지는지, 어찌하여 이러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입니다. 그러려면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애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여쭈어 보면, 어느 날 내 몫으로 주어진 시련을 깨닫게 됩니다. 처음부터 내 것이었던 고통의 본질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더 이상 시련은 아픔이 아닙니다.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는, 오늘 복음에서 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선물을 주실 때 늘 고통이라는 보자기에 싸서 주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부분 보자기를 풀다가 그만둔다고 합니다. 조금만 참고 견디면 보자기 속의 선물을 만날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미리 실망하고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더라도 주님께서는 선물을 거두어 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다리십니다. 사람들이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그러니 시련은 진정 은총입니다. 주님의 선물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시련의 의미를 축소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은총이라기보다는 꾸중으로 받아들이며 살았던 것은 아닌지요? 하느님께서는 은총을 주시는 분이지 징벌을 내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그리스도 향기 가득한 날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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