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연중 제16주간 목요일(7/24)


    말씀의 초대
    말씀을 잘 듣는 것도 은총이다. 바리사이들은 따지면서 들었다. 은총을 거절하는 행동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순응하며 듣는다. 그러기에 어려운 비유라도 그들은 알아듣는다. 은총이 도와주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복음).
    복음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10-17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왜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저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이사야의 예언이 저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 저 백성이 마음은 무디고, 귀로는 제대로 듣지 못하며, 눈은 감았기 때문이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서는 돌아와, 내가 그들을 고쳐 주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어떤 경우든 포기는 답이 아닙니다. 엉망으로 사는 것 같아도 좋은 모습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늘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숨어 있던 ‘좋은 모습’이 은총을 모셔 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을 두고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은총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언제나 좋은 길만 걷는 사람은 없습니다. 때로는 포장이 안 된 길도 걸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평생 그런 길만 걷는 것도 아닙니다. 걷다 보면 포장된 길은 반드시 나타납니다. 새로운 출발은 언제나 은총입니다. 신앙생활은 한 그루의 나무를 키우는 일과 같습니다. 건강한 나무는 건강한 뿌리를 지녔습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뿌리가 튼튼하면 그 나무는 시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뿌리가 시원찮으면 나무는 생기를 잃고 맙니다. 기도 생활을 중단하지 않는 것이 뿌리에 활력을 주는 일입니다. 매일 한 가지씩 선행을 베푸는 일이 나무에 물을 주는 행동입니다. 미사에 자주 참여하고 성체를 모신다면 믿음의 나무는 반드시 자라납니다. 삶이 꽉 닫힌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 안에 숨어 있는 ‘좋은 모습’을 찾아내야 합니다. 사막을 지나는 자만이 오아시스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누구나 때로는 힘들어 하지만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너희에게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에 1개의 응답

  1. user#0 님의 말: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은총의 물줄길을 생각해 봤다.

    그럼 나의 물줄기인 수도관은 어떠한가.
    또한 어떻게 관리하고 있었는가.
    혹여 내 수도관은
    그분의 말씀, 실천, 내가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란 기름이 칠해져 있지 않고
    포기,욕심,이기심 질투,온갖 더러운 찌거기들이 막고 있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았다.

    두 갈래 수도관이 있다면
    깨끗하게 관리된 수도관만이 물줄기가 넉넉하게 들어갈 것이다.
    관리되지 못한 수도관은 아무리 물줄기가 통과 하려해도 힘들다.
    당연히 깨끗한 곳으로 더 많이 들어갈 수 밖에 없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라는 말씀을 가슴 깊이 깨달아 보면서
    나의 수도관은 무엇 때문에 막혀 있는지 항상 점검하며 살아야 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묵상글이 달아나서…
    다시 붙잡느라 힘들었다.

  2. user#0 님의 말:

     

    오늘 예수님께서는

     “왜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까?” 라고

    묻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아마도 제자들이 보기에는

    ‘굳이 비유를 들어 설명하실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나 봅니다.

    ‘다 아는 것인데…’ 하면서~~ ㅎㅎ

     

    말하지 않아도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예수님께 모든 걸 맡기고 순응하는 제자들에겐

    그 어떤 비유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음과 생각과 행동이 모두

     예수님께로 향해 있었을 테니까요.

    저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순응하는 자세로

    임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바리사이들처럼 매사에 따지면서

    이론과 형식에 얽매이고

    적정한 선에서 미끼를 던지며

    협상하는 자세는 없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바로 가슴이 아닌 머리로 신앙생활을 하는

    현재파 바리사이가 아니었는지~~

    그래서 보지도 듣지도 새기지도 못한채

    하루하루를 보내며 주어진 삶에 순응하면서

    아버지를 사랑하기보다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허수의 믿음 고백이진 않았는지~

    허수아비 신앙인!

    아시죠?

    언젠가 말씀드렸는디~~~

    ㅎㅎ

    “무엇이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주인이 걸쳐준 헌옷대기를 걸친채

    들판에 웬종일 서 있는 허수아비와 같다.” 라고~~~

    친정 아버지가 얘기해 주신 것인데

    지금 갑자기 생각이 나요.

    제가 아버지께 충실하지 않으면 결국은

    허수아비 신앙인이지요?

    제 스스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작은 것 하나 온 마음이 다하지 않으면서

    늘 짜증과 불평만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그늘지게 하진 않았는지를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설명하시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라고~~

     

    전 두 마음이 교차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다 헤아리는 제자들처럼

    저도 그렇게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또 아무리 말씀하셔도

     알아듣지 못하는 저가 보이기도 해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비유를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이가

    바로 저인것 같아서~

     

    이 두 생각이 뇌리에 무겁게 자리를 잡았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모든 걸 맡기고 순종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처럼

     저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아버지를 사랑하게 해 주소서.

    이론과 형식에 젖어

    틈만나면 따지려 드는 어리석음에 짖눌려

    보지도 듣지고 못하는 저를 꾸짖어 주시어

    순명하면서 제 온 마음 드릴수 있게 이끌어 주소서.

    굳이 비유를 들어 설명하지 않아도

    아버지 앞에 앉으면

    가슴으로 통하는 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