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연중 제17주간 토요일(8/2)


    말씀의 초대
    당연히 그는 붙잡혔다. 헤로데는 백성이 두려워 그를 죽이지 못하고 있었으나, 그의 아내 헤로디아는 달랐다. 그녀는 기회가 오자 임금으로 하여금 세례자 요한을 살해하게 한다(복음).
    복음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12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느낄 수 있듯이, 세례자 요한의 죽음은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습니다. 인간적으로 뛰어났던 분이 어이없는 종말을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한 여인의 증오로 의로운 사람이 희생된 것이지요. 역사 안에서는 흔한 일입니다. 요한은 구세주의 등장을 준비한 분입니다. 그러기에 광야에서 살며 회개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는 지도자들의 거짓과 위선을 과감하게 꾸짖었습니다. 임금에게까지 직언을 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분이었기에 편안한 죽음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장수를 누리며 편안히 숨을 거두는 것은 세례자 요한에게 허락된 임종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하느님의 뜻이 들어 있습니다. 미구에 당하실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견하는 암시입니다. 세상에는 억울한 죽음이 많습니다. 세례자 요한보다 더 억울한 죽음도 있습니다. 그냥 묻혀 버린다면 정말 애달픈 일입니다. 그러한 죽음일수록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그분과 연결되는 것인지요? 누군가를 위한 희생이었음을 묵상하는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은 그 자체가 봉헌입니다. 그러한 희생이 있었기에 후손들이 무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보이지 않는 억울함’을 희생과 봉헌으로 감수해야 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내 눈에 흐르는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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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Response to 헤로데는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 user#0 님의 말: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주님!
    어제는 친구와 대화 중에 새로 시작한 일을 하는데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더 비협조적이며 특히 교우들이 더 그렇다며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비아냥거리는 교우들도 있어 상처를 많이
    받는다고 했습니다
    친구의 말에 저 역시 공감하는 부분이라 속이 많이 상하고 친구가 안타까웠지만
    도와줄 수가 없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요 주님!
    신앙생활을 하면서 저도 친구처럼 교우들에게 상처를 받으면 외인들보다
    더 속이 상하고 마음이 아파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친구한테는 신자라고 모두가 신앙인은 아니라고 신경 쓰지말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를 했지만 저도 그런 교우들을 볼때마다 당신을 믿는 사람들이
    왜 그럴까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더구나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본당에서 열심하다는 생각되는 사람들이니
    더 마음이 아프고 그런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당신을 믿는 것보다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의 뜻대로 살고있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으니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습니다

    주님!
    하늘나라는 어린이와 같아야 갈 수있다고 하셨지요?
    저 처럼 계산하며 손해를 보지않으려고 하면 갈수가 없는 곳이지요?
    머리와는 상관없는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해도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못가는 곳이 하늘나라지요?
    특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남을 비방하며
    자신의 의지대로 살면서 드러내기 위한 신앙생활을 하면 안되지요?
    잔머리 굴리지도 말면서…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그 시체를 거두어다가 묻고 예수께 가서 알렸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들처럼 모든 것을 당신께 상의하며 당신의 뜻에따라
    살 수 있는 헬레나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것을 당신께 가서 알린 제자들처럼…..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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