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위령의 날(11/2)


    오늘은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이 하느님 나라로 빨리 들어가도록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모든 사제는 3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이 특전은 15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사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사제에게 주어졌다. 3대의 미사 중 한 대는 예물을 받을 수 있고, 두 번째 미사는 모든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한다. 교회는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행복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그분께서 주셔야 참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 마음의 가난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온유와 자비 역시 주님께서 이끌어 주셔야 가능해진다(복음).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행복한지요?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해도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남모르는 고통과 걱정 때문입니까? 아니면 재산이나 물질의 부족함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행복은 그러한 것과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고통과 산더미 같은 걱정 속에 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민이나 걱정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행복은 고통이나 걱정거리가 있느냐 없느냐 그런 것은 분명 아닙니다. 행복은 결과입니다. 정성을 드린 만큼 되돌아오는 꽃이며 열매입니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 위해 일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나무 역시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과 겨울을 견디어 냅니다. 복음 말씀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 줍니다. 마음의 가난입니다. 슬픔과 억울함을 참아 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며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일입니다. 먼 곳이 아니라 함께 부딪치며 살고 있는 가족 안에서 먼저 실천하는 일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dies irae[연송 - 위령미사 sequ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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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위령의 날(11/2)


      오늘은 연옥에서 고통 받는 영혼들이 하느님 나라로 빨리 들어가도록 기도하며 미사를 봉헌하는 날이다. 모든 사제는 3대의 위령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다. 이 특전은 15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에서 시작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전사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모든 사제에게 주어졌다. 3대의 미사 중 한 대는 예물을 받을 수 있고, 두 번째 미사는 모든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셋째 미사는 교황의 지향에 따라 봉헌한다. 교회는 11월 1일부터 8일까지 묘지를 방문하고,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하고 있다.
      말씀의 초대
      행복은 인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다. 그분께서 주셔야 참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 마음의 가난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온유와 자비 역시 주님께서 이끌어 주셔야 가능해진다(복음).
      복음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2ㄴ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행복한지요? 행복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행복한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무슨 말을 해도 “나는 행복하지 않다.”, “나는 행복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남모르는 고통과 걱정 때문입니까? 아니면 재산이나 물질의 부족함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행복은 그러한 것과는 별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고통과 산더미 같은 걱정 속에 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고민이나 걱정이 전혀 없는 것 같은데도 행복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행복은 고통이나 걱정거리가 있느냐 없느냐 그런 것은 분명 아닙니다. 행복은 결과입니다. 정성을 드린 만큼 되돌아오는 꽃이며 열매입니다. 식물은 꽃을 피우기 위해 일 년 동안 온갖 정성을 다합니다. 나무 역시 열매를 맺기 위해 여름과 겨울을 견디어 냅니다. 복음 말씀은 ‘행복에 이르는 길’을 알려 줍니다. 마음의 가난입니다. 슬픔과 억울함을 참아 내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기억하며 평화를 위해 애쓰는 일입니다. 먼 곳이 아니라 함께 부딪치며 살고 있는 가족 안에서 먼저 실천하는 일입니다.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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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위령의 날(11/2)


      말씀의 초대
      욥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고통 가운데서도 구원을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주님께서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믿음과 희망으로 살아가면 주님께서 반드시 도와주실 것이다. 욥은 그것을 말하고 있다(제1독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그분의 죽음으로 인류는 주님과의 관계를 회복했기 때문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감사하며 사는 일이다. 주님의 자녀로서 인내와 희망으로 살아가는 일이다(제2독서).
      제1독서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욥기의 말씀입니다. 19,1.23-27ㄴ 욥이 말을 받았다. 아, 제발 누가 나의 이야기를 적어 두었으면! 제발 누가 비석에다 기록해 주었으면! 철필과 납으로 바위에다 영원히 새겨 주었으면!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그분께서는 마침내 먼지 위에서 일어서시리라.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 내가 기어이 뵙고자 하는 분, 내 눈은 다른 이가 아니라 바로 그분을 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5,5-11 형제 여러분,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나약하던 시절, 그리스도께서는 정해진 때에 불경한 자들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의로운 이를 위해서라도 죽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혹시 착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누가 죽겠다고 나설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증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된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원수였을 때에 그분 아드님의 죽음으로 그분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가 이루어진 지금 그 아드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더욱 분명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는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자랑합니다. 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제 화해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저녁노을(모니카)
    
    
    
    ♬ dies irae[연송 - 위령미사 seque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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