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말씀의 초대
    나병은 지금도 서러운 병이다. 병의 원인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선입관을 갖고 대한다. 예수님 시대엔 더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열 명의 병자에게 기적의 은총을 베푸셨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믿음이 깊은 자가 더 많이 감사한다(복음).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자식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이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천형의 시인이라 불리었던 한하운의 시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의 한 부분입니다. 일생을 나환자라는 멍에 속에 살다 간 그의 한이 유리 조각처럼 아프게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과 설움은 오늘날의 현실만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이 병의 출발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려집니다. 레위기에서는, 그 병의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있으면 ‘7일간 격리 수용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 다시 검진을 받아 병이 진전되지 않았다면 ‘7일간 한 번 더 수용된 뒤’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13,4-5 참조).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기에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아픔을 아셨기에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감사를 드린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토록 애원한 그들이었건만 은혜를 망각한 것입니다. 너무 기뻐 잠시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겁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이라도 받은 은혜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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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말씀의 초대
      나병은 지금도 서러운 병이다. 병의 원인이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선입관을 갖고 대한다. 예수님 시대엔 더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런 상황에서 열 명의 병자에게 기적의 은총을 베푸셨다. 그러나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 믿음이 깊은 자가 더 많이 감사한다(복음).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11-19 그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분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이어서 그에게 이르셨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자식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이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천형의 시인이라 불리었던 한하운의 시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의 한 부분입니다. 일생을 나환자라는 멍에 속에 살다 간 그의 한이 유리 조각처럼 아프게 박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한과 설움은 오늘날의 현실만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이 병의 출발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음보다 더한 삶을 살았는지 모릅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려집니다. 레위기에서는, 그 병의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있으면 ‘7일간 격리 수용하라.’고 했습니다. 그 후 다시 검진을 받아 병이 진전되지 않았다면 ‘7일간 한 번 더 수용된 뒤’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13,4-5 참조). 그러기에 예수님께서도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기에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아픔을 아셨기에 치유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감사를 드린 사람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토록 애원한 그들이었건만 은혜를 망각한 것입니다. 너무 기뻐 잠시 모든 것을 잊어버렸을 겁니다. 그들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금이라도 받은 은혜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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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성 요사팟 주교는 1584년 우크라이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위대한 상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그는 영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25살 되던 해 부모의 유산을 포기하고 수도원에 들어갔고 이후 사제가 되었다. 훗날 러시아의 주교가 된 그는 교회 일치를 위해 많은 정성을 쏟았지만 반대자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요사팟 주교는 1867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동방 교회의 주교였지만 최초로 서방 교회의 성인이 된 분이다.
      말씀의 초대
      어느 누구도 모함하지 말고 온순하고 관대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은총이 인도할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구원해 주셨다. 성령께서도 의로운 생활을 하도록 늘 우리를 지켜 주신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는 그릇된 길에 빠졌으나,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에 따라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토서 말씀입니다. 3,1-7 사랑하는 그대여, 신자들에게 상기시켜, 통치자들과 집권자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모든 선행을 할 준비를 갖추게 하십시오. 남을 중상하지 말고 온순하고 관대한 사람이 되어, 모든 이를 아주 온유하게 대하게 하십시오. 사실 우리도 한때 어리석고 순종할 줄 몰랐고 그릇된 길에 빠졌으며, 갖가지 욕망과 쾌락의 노예가 되었고, 악과 질투 속에 살았으며, 고약하게 굴고 서로 미워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호의와 인간애가 드러난 그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당신 자비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 성령을 하느님께서는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분의 은총으로 의롭게 되어,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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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홉 사람 중에 저 헬레나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셨지만
    감사를 드리기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당신을 원망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 남의 탓만 했습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당신 탓을 하며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당신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참 배은망덕하지요?주님!

    영혼의 아버지이신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도 하고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기쁘고 행복할때는 제가 잘나서 제가 노력해서
    잘 된 것이라는 교만과 오만한 생각으로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으로 
    당신께서 도와주셨다는 생각보다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주님!
    참 못된 심성을 갖고 있지요? 주님!

    하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 저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인지
    깨닫습니다
    당신없이 제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줄 모르고 
    아홉사람들 중에 끼어 잘난 줄 알고 까불었습니다 
    배은망덕한 헬레나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겸손한 신앙인 
    기도하는 신앙인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
    베은망덕하지 않는 신앙인
    겸손과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너희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이로다.
    아멘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묵상하며

    ♬ 주께 감사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4. user#0 님의 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홉 사람 중에 저 헬레나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셨지만
    감사를 드리기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당신을 원망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 남의 탓만 했습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당신 탓을 하며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당신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참 배은망덕하지요?주님!

    영혼의 아버지이신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도 하고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기쁘고 행복할때는 제가 잘나서 제가 노력해서
    잘 된 것이라는 교만과 오만한 생각으로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으로 
    당신께서 도와주셨다는 생각보다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주님!
    참 못된 심성을 갖고 있지요? 주님!

    하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 저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인지
    깨닫습니다
    당신없이 제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줄 모르고 
    아홉사람들 중에 끼어 잘난 줄 알고 까불었습니다 
    배은망덕한 헬레나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겸손한 신앙인 
    기도하는 신앙인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
    베은망덕하지 않는 신앙인
    겸손과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너희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이로다.
    아멘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묵상하며

    ♬ 주께 감사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5. user#0 님의 말: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이방인만도 못한 저의 믿음이 반성이 되었습니다
    언제나 당신께 청원의 기도만 드렸을 뿐…
    저의 뜻이 이루어졌을 때…
    감사의 기도보다 더 큰 것을 원하고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 적이 별로 없는 것 같았습니다
    언제나 청원의 기도만 그것도 언제나 당신께 협박처럼
    조건을 걸면서 사실 겉으로 당신께 표현을 하지는 않앗지만
    저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당신께서 제가 원하는대로 해주지
    않으신다면 당신을 미워하겠다고 무언의 협박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며 댓가만을 바라는 염치도 없는
    그러면서도 언제나 회개하기 보다는 남들과 비교하며 저에게만
    인색하시다고 쩨쩨하시다고 당신을 소인배 취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저의 밴댕이 소갈딱지 같은 마음이
    당신께 감사의 기도보다는 청원의 기도가 익숙해있고
    저의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당신을 원망한다는 사실을…
    겉으로는 안그런 척하지만 저의 검은 속마음은 언제나
    당신을 쩨쩨하고 도깨비방망이처럼 여겼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기본도 되지 않는 저의 마음 보…
    당신의 자녀라기에는 너무도 부끄러운 저의 모습이지요
    기본만이라도 하면 참 좋겠는데…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이방인이면서도 당신을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마리아인처럼
    최소한의 기본만이라도 지치는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쉬울 때만 당신께 기도하며 당신께 협박하며 기본도 되지 않는
    신앙가 헬레나가 아닌 언제나 어디서나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당신께 감사하며 당신을 진심으로 믿으며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아멘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묵상하며


    ♬ 그대로이루어 질것이다

  6. user#0 님의 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아홉 사람 중에 저 헬레나가 있음을 고백합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주셨지만
    감사를 드리기보다 조금만 힘들고 어려우면 당신을 원망하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보다 남의 탓만 했습니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당신 탓을 하며 원망하고 또 원망하면서
    당신을 미워하기도 했습니다
    참 배은망덕하지요?주님!

    영혼의 아버지이신 당신을 미워하고 원망도 하고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기쁘고 행복할때는 제가 잘나서 제가 노력해서
    잘 된 것이라는 교만과 오만한 생각으로 당신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라는 교만한 생각으로 
    당신께서 도와주셨다는 생각보다  제가 잘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주님!
    참 못된 심성을 갖고 있지요? 주님!

    하지만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 저의 생각이 얼마나 교만하고 오만하고 잘못된 생각인지
    깨닫습니다
    당신없이 제가 어떻게 존재하는지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감사의 기도를 드릴 줄 모르고 
    아홉사람들 중에 끼어 잘난 줄 알고 까불었습니다 
    배은망덕한 헬레나지요? 주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겸손한 신앙인 
    기도하는 신앙인
    감사할 줄 아는 신앙인
    베은망덕하지 않는 신앙인
    겸손과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여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너희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이로다.
    아멘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

    묵상하며


    ♬ 주께 감사



    *거룩한 독서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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