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21)


    오늘은 마리아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마리아의 양친은 어린 나이의 성모님을 성전에 바쳤다고 전해 온다. 6세기 중엽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예루살렘에 ‘마리아 봉헌 기념 성당’을 짓고 11월 21일에 봉헌식을 가졌는데, 이후 이날이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 되었다.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온 교회에 보급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신다. 기도의 집을 영리와 이익 추구의 장소로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못마땅해한다. 예수님을 제거할 구실을 찾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불의한 지도자는 어디에나 있다(복음).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5-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상인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들은 잡화상이 아닙니다. 제사 때 쓰일 물건과 제물로 바칠 동물들을 팔고 있던 이들입니다. 이런 물건과 동물들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것을 가져왔더라도 검사관이 ‘흠 있다고 하면’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사제들에게 미리 검사를 받아 합격한 물건과 동물들을 팔고 있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거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상인들은 내놓고 장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조직을 흔드신 겁니다. 흠 없는 제물을 위한 ‘유통 시스템’을 부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에 관계된 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악한 조직이 하느님의 ‘카리스마’를 없애려 시도한 것이지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누구나 성전에서는 경건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드리고 주님의 힘과 은총을 청하는 곳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이 목적이 선명하지 않으면 잘못 가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내셨듯이, 성전 안에서만큼은 세상 걱정과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Nada te turbe (두려워 마라) - Tai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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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21)


      오늘은 마리아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마리아의 양친은 어린 나이의 성모님을 성전에 바쳤다고 전해 온다. 6세기 중엽 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는 예루살렘에 ‘마리아 봉헌 기념 성당’을 짓고 11월 21일에 봉헌식을 가졌는데, 이후 이날이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 되었다.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온 교회에 보급되었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장사꾼들을 몰아내신다. 기도의 집을 영리와 이익 추구의 장소로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종교 지도자들은 못마땅해한다. 예수님을 제거할 구실을 찾고 있다. 자신들의 이익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불의한 지도자는 어디에나 있다(복음).
      복음
      <너희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5-48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시어 상인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들은 잡화상이 아닙니다. 제사 때 쓰일 물건과 제물로 바칠 동물들을 팔고 있던 이들입니다. 이런 물건과 동물들은 흠이 없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완벽한 것을 가져왔더라도 검사관이 ‘흠 있다고 하면’ 사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인들은 사제들에게 미리 검사를 받아 합격한 물건과 동물들을 팔고 있었던 겁니다. 이 과정에서 거래가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상인들은 내놓고 장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조직을 흔드신 겁니다. 흠 없는 제물을 위한 ‘유통 시스템’을 부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에 관계된 이들은 예수님을 제거하려 했습니다. 악한 조직이 하느님의 ‘카리스마’를 없애려 시도한 것이지요.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합니다. 누구나 성전에서는 경건해야 합니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그분께 감사드리고 주님의 힘과 은총을 청하는 곳이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이 목적이 선명하지 않으면 잘못 가기 쉽습니다. 주님께서 장사하는 이들을 몰아내셨듯이, 성전 안에서만큼은 세상 걱정과 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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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11/21)


      말씀의 초대
      묵시록의 두루마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다. 그러기에 천사를 통해 주어진다. 두루마리의 말씀은 인간의 글로 표현되지만 하늘의 힘을 지녔다. 예언의 말씀이 담겨 있다. 누구라도 경건하게 대해야 한다(제1독서).
      제1독서
      <나는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0,8-11 하늘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나 요한에게 말하였습니다. “가서 바다와 땅을 디디고 서 있는 그 천사의 손에 펼쳐진 두루마리를 받아라.” 그래서 내가 그 천사에게 가서 작은 두루마리를 달라고 하자, 그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것을 받아 삼켜라. 이것이 네 배를 쓰리게 하겠지만 입에는 꿀같이 달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받아 삼켰습니다. 과연 그것이 입에는 꿀같이 달았지만 먹고 나니 배가 쓰렸습니다. 그때에, “너는 많은 백성과 민족과 언어와 임금들에 관하여 다시 예언해야 한다.” 하는 소리가 나에게 들려왔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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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주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인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말씀에 반성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하신말씀 같아 뜨끔하기도 했지요

    맞아요 주님!
    당신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지요
    당신께서 계시는 집은 기도하며 무엇보다 마음부터
    아니!
    행동부터 경건하고 겸손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이지요

    하지만 마음 뿐...
    당신이 계시는 집에서 경건하고 겸손 된마음으로 기도해야 하건만
    제 멋대로 기분이 내키는대로  그렇게 행동을 했습니다
    경거망동하며 당신의 집을 더럽 힐때도 있었습니다
    경건하게 기도해야 하는 당신의 집에서
    버릇없이 세속적인 생각도 많이 하며 외인처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당신의 자녀로써 당신의 뜻을 거스리는 불효를
    해서는 안된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의 집에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겸손한마음으로 신앙인답게 부끄럽지 않은 당신의 자녀로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는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아멘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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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guest 님의 말:

    성전을 정화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루카19,45-48

    성전을 정화하시다 (마태 21,12-17 ; 마르 11,15-19 ; 요한 2,13-22)

    2. 말씀연구

    성당에 가면 먼저 어디를 가십니까? 사무실에 가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곧장 성전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전에 어느 신부님께서 아주 멋진 말씀을 해주신 적이 있으십니다.

    “앞으로 나를 만나러 올 때는 꼭 성당에 들어가 인사하고 오세요. 그리고 가실 때도 인사하고 가세요. 제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더 중요하시지 않습니까? 성당에 와서 사무실에만 일 보고 가시는 분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제관에만 일을 보시고 예수님께 인사 안 드리고 가시는 일이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45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어 물건을 파는 이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성전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목적지였습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말라기의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너희가 애타게 기다리는 너희의 상전이 곧 자기 궁궐에 나타나리라. 너희는 그가 와서 계약을 맺어 주기를 기다리지 않느냐?”(말라기3,1)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단단히 화가 나셨습니다. 이방인의 광장이라고 불러 온 성전 안은 제물로 바칠 짐승의 시장터가 되어 있었고, 그 곳에는 환전상들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이 성전을 더럽히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상인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사실 상거래는 하느님의 집에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어야 합니다. 거래상들과, 이 거래를 허용하고 그럼으로써 이익을 챙기는 유대 당국자들은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으로써 뿐만 아니라 특히 행위로써 예언자들의 일을 계속하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께서는 메시아 시대를 위한 다음과 같은 예언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날에는 만군의 주님의 집 안에 더 이상 장사꾼들이 없을 것이다.”(즈카르야 14,21)

    즉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 그 올바른 자리로 되돌려지고 재물을 섬기는 일이 배제되는 것입니다.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어 버렸다.”

    도둑의 소굴을 하느님의 집으로 만드신 예수님. 사실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외국에 사는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무엇인가를 사서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서는 환전이 필요했고, 멀리서 희생제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이 먼 거리를 소나 양이나 비둘기 등을 손수 몰고 오기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악용하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제물을 준비하지 않고 가까운데서 사서 봉헌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만일 우리가 주일마다 봉헌하는 봉헌금을 형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주고, 주머니에서 형식적으로 꺼내서 봉헌한다면 우리 또한 성전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던 사람들의 마음과 별로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전정화도 그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봉헌의 의미를 참되게 하고, 그리고 성전을 기도하는 집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몫인 듯 합니다.

    47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셨다.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

    간이 크신(^*^) 예수님이십니다. 지금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작당을 하고 있는데 태연하게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시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장사꾼들을 추방하신 것은 성전의 존엄성을 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사제와 율법학자들에게 정면으로 시비를 건 것과 똑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없기에, 하느님의 일을 하시기에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열두 살 때에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부모님께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이제 예수님께서는 친히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아들이 아버지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자녀가 아버지의 집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성전을 찾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사제가 성전에서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성전에서 사제의 가르침을 듣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녀가 그 가르침을 듣고 실천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입니다.

    48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도를 찾지 못하였다. 온 백성이 그분의 말씀을 듣느라고 곁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중들의 역할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우리나라 역사 안에서 보더라도 민중의 힘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성전을 정화하심으로써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유대인 영적 지도자들의 원수로 만드셨습니다.

    대사제들과 사제 가문의 귀족들은 성전 경내에서 이루어지는 매매에서 영리를 얻었습니다. 공직에 있는 대사제는 유대인 최고 당국인 최고의회(산헤드린)의 의장이었습니다. 이 최고의회는 사제 가문의 가족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일반 귀족들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파멸시키려고 작정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중은 예수님께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군중의 힘은 큽니다. 하지만 그 힘이 분산되었을 경우에는 별것 아닙니다.

    이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은 예수님을 남몰래 없애 버릴 기회를 노립니다.

    문득 고속도로를 점령하고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군중의 힘이 크다고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촛불시위와 고속도로 점령 시위는 차원이 다른 것 같습니다. 내 뜻을 주장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하면 안 되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 단체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일은 꼭 지켜야 하니 주일에 미사가자고 단체 행동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외출하는 부모를 성당 가자고 자녀들이 단체로 행동하면 어떨까요? 공동체 내에서도 그렇게 여러 명이 달려들어서 신앙에로 초대한다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3. 나눔 및 묵상

    1.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내가 꼽을 수 있는 성당에서의 꼴불견 3가지를 대라면 무엇을 대시겠습니까?

    2. 내 마음의 성전도 정화하기 위해서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5. guest 님의 말:

    나는 과연 성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보다 인간관계를 위해서 인가…
    아님 물질적 도움을 받고자 함인가…

    묵상해보니 내 영혼 때문에 다니기 보다
    남들 때문에 다니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안가면 신부님이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아님 회합을 핑계로 끼리끼리 이바구하려 가지 않았나…

    요즘 여기저기 친목계니 뭐니 “계”를 넣고 깨진일들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봤다.
    교회안에서도 요셉계니 대건회계니 자기네끼리 몰래 계를 만들어서
    깨지는 사건이 분분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이 문제로 신부님들이 골치가 아프시다고들 한다.

    때론 간부라는 이름을 팔아 거금을 챙긴 다음 도망가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생길때마다 하느님과 신부님은 희생자가 되신다.
    그일로 냉담자가 생기니 말이다.

    그들은 말한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 그럴수가 있나고…
    성당은 폭격맞은 것 처럼 뒤숭숭하다.
    나중에는 신부님한테 따지고 난리가 아니다.
    신부님이 경찰도 아니고 판사도 아닌데
    어쩌라고?

    암튼 꿔줄때 하느님한테 여쭤보고 꿔 줬는가…
    신부님한테 상의하고 꿔주지도 않고 원망에 대상은 하느님이고 신부님이다.
    높은 이자 준다니깐 혹해서 자기가 꿔줘놓고 말이다.
    성전을 짓는다면 있는 돈도 없다고 죽는시늉하면서…
    하여튼 이렇게 자기탓을 남에게 돌리는 마음.
    성전을 더렵히는 행위라는 생각을 해봤다.

    꿔줄때 둘이 주고 받았으니 둘이 해결해야 하는거 아닌가.
    남의 귀한 돈 떼먹고 양심을 팔아먹은 사람은 하느님이 알어서 하실 것이고
    하느님을 믿어야 할 성전에서 그분을 믿지 못하고
    간부라는 인간만 믿고 거래한 사람은 거기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하는게 아닌가 싶다.

    좌우지간 성전에서 물질과 이익을 위해 교우관계를 맺는다면
    그것이 바로 성전을 모독하는 행위와 같지 않나 묵상해 보면서
    나역시 그들처럼 성전을 더럽히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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