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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둥락 성인은 1785년
베트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제가 되었다.
당시는 박해 시대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며
베트남 교회의 중추 역할을 했지만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하노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1839년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54세였다. ‘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은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로마에서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렙톤은 동전이다. 그리스의 화폐 단위 중 가장 적은 금액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화폐 가운데서도 제일 가치가 낮다.
과부는 그런 동전 두 닢을 헌금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칭찬하신다.
희생과 정성을 담았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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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11/24)
안드레아 둥락 성인은 1785년 베트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제가 되었다. 당시는 박해 시대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며 베트남 교회의 중추 역할을 했지만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하노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1839년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54세였다. ‘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은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로마에서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렙톤은 동전이다. 그리스의 화폐 단위 중 가장 적은 금액이다. 성경에 등장하는 화폐 가운데서도 제일 가치가 낮다. 과부는 그런 동전 두 닢을 헌금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칭찬하신다. 희생과 정성을 담았기 때문이다(복음).
복음
<예수님께서는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4 그때에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렙톤은 그리스의 화폐 단위로 동전입니다. 빵 한 조각을 제대로 살 수 없는 적은 금액입니다. 하지만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었습니다. 적은 액수지만 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예수님께서는 눈여겨보셨습니다. 주님께서 눈여겨보시면 반드시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그 가난한 여인은 살아가면서 분명 주님의 도우심을 만났을 것입니다. 돈이 최고의 가치가 되었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돈의 위력을 실감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위력은 그보다 더 큽니다. 체험해 본 사람은 압니다. 복음의 과부 역시 돈의 힘도 알았지만 하느님의 힘을 체험해 본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자신의 생활비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돈 있는 사람이 구원받는다.”는 소리를 종종 듣습니다. 위험한 발언입니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말해선 안 됩니다. 돈과 구원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돈은 수단일 뿐입니다. 아무리 많은 헌금이라도 정성이 빠지면 소용없는 일이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라도 정성입니다. 그러니 늘 돌아봐야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며 얼마만큼의 열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하찮은 일이라도 정성을 쏟으면 기쁨이 찾아옵니다. 주님께서 눈여겨보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11/24)
안드레아 둥락 성인은 1785년 베트남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사제가 되었다. 당시는 박해 시대였다. 그는 열정적으로 선교 활동을 펼치며 베트남 교회의 중추 역할을 했지만 관헌들에게 체포되어 하노이에서 참수형을 받고 1839년 순교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54세였다. ‘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은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로마에서 시성되었다.
말씀의 초대
어린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의인 십사만 사천 명은 상징적인 숫자다. 수많은 사람들이 시온 산 위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다는 표현이다. 시온 산은 새로운 예루살렘이며 천상의 하늘 나라다(제1독서).
제1독서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 요한 묵시록의 말씀입니다. 14,1-3.4ㄴ-5 나 요한이 보니 어린양이 시온 산 위에 서 계셨습니다.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물소리 같기도 하고 요란한 천둥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가 하늘에서 울려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내가 들은 그 목소리는 또 수금을 타며 노래하는 이들의 목소리 같았습니다.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어린양을 위한 맏물로 사람들 가운데에서 속량되었습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주님!
언제 들어도 양심의 가책이 드는 오늘복음말씀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지만 언제나
복음을 묵상할 때 뿐임을 고백합니다
이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음으로만 반성하면서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만해두요 주님!
타 본당에서 주일미사참례를 했는데 2차헌금으로 성전건립기금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주일에는 헌금을 미리 준비해서 봉헌을 했지만
2차헌금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갑을 갖고 가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여유 돈은
언제나 갖고 있었는데 우리본당도 아닌 타 본당에서 2차헌금까지?
갑자기 갈등이 생겨 고민을 하는동안 헌금바구니는 저의 곁을
지나가고 결국에는 헌금만 내고 2차헌금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집에 오면서 그리고 하루종일 마음이 개운치 않았습니다
세상에 2차헌금을 얼마나 낸다고 갈등까지...
설렁탕 한 그릇값정도의 헌금을 내 놓고 일주일을 버티면서 등등...
그러면서 오늘하루 제가 먹은 음식을 생각해보니
김밥이 먹고 싶다는 아들녀석을 위해 새벽부터 준비하고...
미사갔다 와서는 김밥과 과일과 좋아하는 감까지...
참 오징어도 먹고 커피도 수 차례 홍삼액기쓰에 각종 영양제
비타민에 칼슘제까지 그리고 살이 많이 쩠다고 고민을 하면서
수영을 할까? 사우나를 다닐까? 등산도 함께 하면 좋을텐데...
2차헌금은 고사하고 주일미사참례 하면서 타 본당이라는 핑계로
설렁탕 한그릇값의 헌금을 하면서도 떳떳해 했습니다
하루종일 제가 먹은 것은 삼시세끼의 밥과 각종 영양제와
보약까지 그리고 살이 많이 쩠다고 다이어트해야 한다는고민까지
영생을 얻기위해서는 설렁탕 한그릇값으로 떼우면서
육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는 그렇게 많이 투자하는지...
그러면서 복음묵상을 한다고 떠들어댄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몇 년동안 복음묵상 한 사람의 생각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맞기는 한 것인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2차헌금 내지 않은 댓가를 톡톡히 치렀습니다
그래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되니 다행이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복음묵상할때의 진실 된 마음이 변치 않기를 기도해봅니다
입으로만의 주님사랑이 아닌 언제나 어디서나 행동으로
실천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복음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묵상하며
♬ My Jesus, I love Thee
가난한 과부의 헌금
1. 말씀읽기:루카21,1-4 가난한 과부의 헌금 (마르 12,41-44)
2. 말씀연구
가난한 과부의 헌금. 언제 들어도 부끄러운 이야기 입니다. 많이 번 사람들이 많이 낼 것 같지만, 많이 번 사람일수록 많이 낸 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이 번 사람들이 더 많은 것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은 있는 사람이건 없는 사람이건 똑같습니다. 오늘 과부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내 것을 나만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조금 덜 하면 좋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성전 금고 맞은편에 있는 여인의 뜰에는 누구나 다 접근할 수가 있었는데 그 곳에는 나팔 모양으로 된 열세 개의 헌금궤가 있었습니다. 이 궤들은 율법 규정에 따른 봉헌물과 자발적으로 하는 봉헌물을 넣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돈이 얼마나 되며 또 무엇을 위한 헌금인지를 조사하는 당번사제에게 먼저 그 돈을 주었습니다.
사제: 어느 곳에 쓰일 헌금을 얼마나 내시겠습니까?
봉헌자: 사제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100만원!” “100만원”을 냅니다…(거들먹..거들먹….)
그러면 사제는 액수를 검사한 다음 각각 정해진 목적에 따라 놓여져 있는 합당한 궤를 지적해 주었다.
사제: 저 두 번째 헌금궤에 넣어 주시지요.
봉헌자: 에헴. 그러시지요.
이렇게 하면 성당 헌금은 좀 올라가겠지만 사제들 참 힘들겠는데요….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눈에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무일푼의 그녀가 렙톤 두 닢을 봉헌하는 것을 보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큰 돈을 바친 부자의 헌금에 과부의 두 닢을 비교하시면서 과부 쪽이 더 많은 돈을 넣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실제로 그녀는 얼마 안 되는 것을 넣었지만 그의 가난과 사랑에 비추어 보면 보다 큰 가치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이유를 설명해 주십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렙톤 두개를 넣는 과부의 마음 어떠했을까요? 그것을 받아든 사제가 이 여인은 렙톤 두개를 넣는다고 소리쳤을 텐데...(아무 데나 넣고 빨리 가쇼…)
하지만 그 여인은 가진 것을 전부 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있는 데서 얼마를 내 놓기는 쉬워도 없는데서 다 내 놓는 다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주일 봉헌금과 교무금을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이어서, 그래서 남들로부터 비웃음을 당했을지라도
그녀가 하느님 앞에서 떳떳했기에,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기에 그녀는 복된 여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은 과부의 마음을 몰라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알아주시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 앞에서 떳떳한 것보다는 오히려 하느님 앞에서 떳떳한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었을까?
“이 여인이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습니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들에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면 내일 먹을 것도 생각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들일 굶던 말든 그런 것을 생각하지 않고 모두 바쳐야 한다는 것이냐? 집 팔고 땅 팔아서 다 바쳐야 하느냐? 그것이 사이비 종교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
바치기 싫은 사람이 꼭 그런 핑계를 댑니다. 주제 파악을 못하는 사람들이 꼭 딴 소리를 합니다. 오늘 복음의 주제는 가진 것을 다 바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때문에 비록 렙톤 두개라 할지라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그녀의 사랑을 칭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녀는 영적으로 뿐만 아니라 물질적으로도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과부의 헌금을 바라보면서 내가 가진 것 중에 봉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함께 생각해 봅시다. 그리고 봉헌할 때 아까워한 적은 없는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봉헌을 하지는 않았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② 내가 가진 것들 중에 남에게 빌려 주기 싫은 것의 목록을 작성해 봅시다. 빌려 줘도 되는데 안 빌려 주고 있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보고, 그것이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도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행복과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정말 이기적이었던 한 사람이 떠 올랐습니다.
ㅎㅎㅎ 아시죠?
이기덩이에서 아주 쬠은 나아지고 있는 사람!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비하면 아직도 얼굴을 들기 어렵지만
예전에 비하면 온기가 살짝 느껴지지요?
제 손에 달랑 렙톤 두닢이 전부라면
과연 다 넣을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살짝 쥔 빈주먹을 넣었다 빼거나 반만 넣었을것 같습니다.
사랑한다 고백하면서
아쉬움의 목이 저를 힘들게 함도 사실이니까요.
현실에 먼저 부딪히는 저의 옹졸함이
결국 저를 제자리에 머물게 함도 새삼 느낍니다.
그리고 미사때 우연히 손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답니다.
늘 불평이고 큰 소리를 내는 이들이 그때면
가장 작아지는 듯 하기도 합니다.
보일세라 손을 거머쥔 두손이
한바구니로만 가는 경우도 있고
손만 넣었다 빼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봉헌하면서 아까움이 보이는 듯 한 그런 표정들이
저를 더 고개숙이게 할때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언젠가는 제 모습이 될 수도 있음을 아니까요.
늘 아버지 곁에서 깨어있지 않으면
늘 아버지의 말씀을 양식삼지 않으면
저도 언제 어느때 그리 변할지 모름을 아니까요.
아버지께로 나아간다면서
먼저 이익을 생각하고
먼저 가정을 생각하면서
마음의 고리를 풀지 못하나 봅니다.
나머지 부족분은 채워주심에 대한 믿음보다
내일은 어쩌나 싶은 생각에 늘 저가 지고 마니까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보시고
다른이보다 더 많이 넣었다 하시면서 말씀하십니다.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일이면 봉헌금을 쥐고 고민한 적이 있었던
저를 두고 하시는 말씀같아서
얼굴이 화끈거림을 막을수 없었습니다.
성당을 리모델링하면서 2차봉헌을 할때
전 새벽미사와 교중미사에 참여하면서
3만원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3차봉헌이 있을땐 5만원을 넣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봉사자가
부족한 말이나 행동으로 맘아프게 하면
아버지께 드린 그것에 대해 아까워도 했고
왜 바보같이 할것 다하고
이러고 신앙생활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때론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누가 뭐래든 제가 사랑하는 분에게 부족한 손을 드림에
겸손한 자태로 더 고개숙여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금액이 많음이 아니라
제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드림인데
조금 적게 가진이에게 맞추면서
목에 힘을 주진 않았는지도 깊이 반성해 봅니다.
공동체에서 큰 소리를 내면서
드러나기를 좋아하고
알아주기를 좋아하는 이들을 보면 힘이 빠졌었고,
또 그들이 필요하기에
그들의 자리를 인지시켜주는 모습에서
저의 손을 거두려 했던적도 반성합니다.
아버지!
참으로 부족한 딸이 드리는 두손에
아버지의 사랑을 주시려니
얼마나 맘이 아프셨을까 싶은 생각이
온 머리를 뒤덮는 시간입니다.
정말 가난한 사람되어 계산하지 않고
오로한 사랑으로
두손 내밀게 하소서.
계산하는 저가 아니라
가장 소중한 분에게 제 사랑을 드리는 모습으로
깊이 기도하게 하소서.
제 삶의 자리에서 재는 잣대를 거두시어
지혜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서게 하소서.
아멘.
과부의 렙톤은
그분을 향한 온전한 마음의 값이고 겸손이다.
드러내려는 입을 다물게 하고
전부를 드려도 더 드릴게 없어 부끄러워한다.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드려도 더 드릴게 없어 안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