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매년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기로 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이날 신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별 헌금을 한다.
이렇듯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동참하는 행위이며,
아기 예수님을 위한 기다림의 준비이기도 하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사람들에게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시킨다.
많은 이들이 요한을 그리스도로 착각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않음을 선언한다. 아름다운 겸손이다(복음).
복음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8.19-28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서는 요한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요한은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훌륭한 분이 오시는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위대한 분이 오실 거라는 요한의 답변입니다.
대림 첫 주일의 주제는 ‘깨어 기다림’이었습니다.
둘째 주일은 ‘회개’였고, 셋째 주일은 ‘희망’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모습입니다.
기다림의 목표를 ‘소유하는 것’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힘겨운 인생에서 사랑과 감사를
‘희망하는 것’의 첫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신앙인은 세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신덕과 망덕과 애덕입니다.
희망은 당당하게 세 덕목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희망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희망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 셋째 주일의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칭찬하시며 은총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받는 우리가 실망하며 살고 있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은혜로 주심에도,
감사하며 받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의 숙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소원 - 이노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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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일(12/14)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매년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기로 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이날 신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별 헌금을 한다. 이렇듯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동참하는 행위이며, 아기 예수님을 위한 기다림의 준비이기도 하다.
말씀의 초대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사람들에게 그분을 맞이할 준비를 시킨다. 많은 이들이 요한을 그리스도로 착각하지만,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치 않음을 선언한다. 아름다운 겸손이다(복음).
복음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8.19-28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에서는 요한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요한은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훌륭한 분이 오시는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위대한 분이 오실 거라는 요한의 답변입니다. 대림 첫 주일의 주제는 ‘깨어 기다림’이었습니다. 둘째 주일은 ‘회개’였고, 셋째 주일은 ‘희망’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모습입니다. 기다림의 목표를 ‘소유하는 것’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힘겨운 인생에서 사랑과 감사를 ‘희망하는 것’의 첫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신앙인은 세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신덕과 망덕과 애덕입니다. 희망은 당당하게 세 덕목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희망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희망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 셋째 주일의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칭찬하시며 은총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받는 우리가 실망하며 살고 있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은혜로 주심에도, 감사하며 받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의 숙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대림 제3주일(12/14)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는 1984년부터 매년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기로 정하였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고통 받는 이웃들에게 자선을 베풀도록 배려하기 위해서다. 이날 신자들은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별 헌금을 한다. 이렇듯 자선은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동참하는 행위이며, 아기 예수님을 위한 기다림의 준비이기도 하다.
말씀의 초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면 사제는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런 예식을 통해 성별되었던 것이다. 그에겐 하느님의 영이 머물렀고, 백성은 그를 따랐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힌 이들에게 해방을 알리는 것이 지도자의 의무다(제1독서). 언제나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노력하면 은총이 함께한다. 주님께서 도와주신다(제2독서).
제1독서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61,1-2ㄱ.10-11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시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테살로니카 1서 말씀입니다. 5,16-24 형제 여러분,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예언을 업신여기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 멀리하십시오.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을 부르시는 분은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요한의 말씀에 겸손에 대해 묵상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저 였다면...
세례자요한성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 할 수 있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저는 세례자요한성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도 감추고 될수 있는대로 모두 감추는 것이
남에게 업신여기게 되지 않는다고 ...
그리고 자신의 장점은(사실 장점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최대한 PR(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해야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부터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지 20여년이 지난 요즈음까지...
복음묵상을 한지도 6-7년이 되는데 회개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요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오히려 세례를 받기 전이 더 순수했던 것 같기도 하니 ...
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삶이었네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으니
복음묵상을 수바 겉 핣기 식으로 몇 년을 한 것밖에는...
그래도 다행이지요?주님!
자신의 잘못을 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도 하는 계기가 되니
복음묵상을 한 효과는 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지요?
사실 복음묵상을 하면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복음을 묵상함에 있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것도 ...
회개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 모두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교만으로 돌똘뭉친
알량한 저의 자존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반성을 해야하는 복음묵상
몇 년동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때는 저의 글에 제가 상처도 받고 저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 복음묵상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당신의 사랑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도 하며
어설프게나마 복음묵상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이제는 저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복음묵상을
그날 그날 일기를 쓰듯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는 당신께 하소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당신께 어리광도 피우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아직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묵상으로 끝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으니 겸손하지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 못하지요
참 많은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고 있네요ㅠㅠ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세례자요한성인 닮아 겸손이 몸에 밴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기도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은 복음묵상을 하면서 묵상을 하지 않고 당신께
넋두리만 한것 같아 죄만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저의 모습이라는 사실에 용기를 내어
당신께 푸념을 하게 되니 마음이 후련합니다
고해성사를 본 것 같기도 하지요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의 이런 마음까지 당신께 봉헌하오니 예쁘게 봐주십시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제가 지은 모든 죄까지 사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당신의 사랑스런 딸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힘을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우리 하느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아멘
♬ 아버지의 뜻대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세례자요한의 말씀에 겸손에 대해 묵상이 되었습니다
만약에 저 였다면...
세례자요한성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겸손 할 수 있었는지..
아니었습니다 주님!
저는 세례자요한성인처럼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것이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고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점도 감추고 될수 있는대로 모두 감추는 것이
남에게 업신여기게 되지 않는다고 ...
그리고 자신의 장점은(사실 장점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최대한 PR(피할 것은 피하고 알릴 것은 알린다)해야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부터 세례를 받고
신앙생활을 한지 20여년이 지난 요즈음까지...
복음묵상을 한지도 6-7년이 되는데 회개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지요
복음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성찰해보니
오히려 세례를 받기 전이 더 순수했던 것 같기도 하니 ...
참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끄러운 삶이었네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으니
복음묵상을 수바 겉 핣기 식으로 몇 년을 한 것밖에는...
그래도 다행이지요?주님!
자신의 잘못을 복음을 묵상하면서 반성도 하는 계기가 되니
복음묵상을 한 효과는 좀 있는 것 같아 다행이지요?
사실 복음묵상을 하면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복음을 묵상함에 있어 자신의 잘못을 성찰하는 것도 ...
회개하는 것도...
있는 그대로 모두 말씀을 드린다는 것이 교만으로 돌똘뭉친
알량한 저의 자존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며
반성을 해야하는 복음묵상
몇 년동안 참 많이 힘들었습니다
어느 때는 저의 글에 제가 상처도 받고 저 자신의 자존심이
무너지는 것 같아 복음묵상을 망설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당신의 사랑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당신을 사랑한다고 고백도 하며
어설프게나마 복음묵상하는 것을 쉬지 않았습니다
요즈음....
이제는 저의 삶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복음묵상을
그날 그날 일기를 쓰듯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는 당신께 하소연도 하고...
기분이 좋을 때는 당신께 어리광도 피우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니!
아직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묵상으로 끝나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지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으니 겸손하지 못하고 사랑을 베풀지 못하지요
참 많은 것을 실천하지 못하고 살고 있네요ㅠㅠ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세례자요한성인 닮아 겸손이 몸에 밴 신앙인 헬레나가
되도록 기도해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굳은 믿음으로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은 복음묵상을 하면서 묵상을 하지 않고 당신께
넋두리만 한것 같아 죄만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도 저의 모습이라는 사실에 용기를 내어
당신께 푸념을 하게 되니 마음이 후련합니다
고해성사를 본 것 같기도 하지요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의 이런 마음까지 당신께 봉헌하오니 예쁘게 봐주십시오
사랑이신 당신께서 제가 지은 모든 죄까지 사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당신의 사랑스런 딸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마음이 불안한 이들에게 말하여라.
힘을 내어라,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우리 하느님께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리라”
아멘
♬ 아버지의 뜻대로
벌써 대림 3주입니다.
이리 말하니 서운하시죠? ㅎㅎ
정말 사랑하는 분을 기다림에 ‘벌써’ 라는 말이
좀 그렇지만 그런 뜻이 아닌거 아시잖아요.
더 멋있는 모습으로 깨어 기다리려 했는데
아무것도 한 것 없이 보낸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지요.
오늘 세례자 요한이 증언하는 모습을 그려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답니다.
빛을 증언하러 온 요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고백하면서
겸손된 자세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증언하는 모습에 저를 묻어보니
정말 한 것이 없음에 부끄러울 뿐입니다.
복사 회합을 하면서 한 친구의 묵상 느낌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깔아드리는 레드카펫을 밟고 오시길 기다린다고..’
정말 이쁘지요?
준비하는 자세!
기다리는 자세!
제가 정말 세례자 요한이었다면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다 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뒤에 오실 분을 위해 내어드리기 위해 준비하며
길을 닦아 드릴수 있을까도 생각해 봅니다.
아주 겸손된 자세로~
제가 아버지를 사랑한다 고백하지만
감히 세례자 요한을 따라 잡을순 없겠지요.
언젠가 제가 아버지께 하소연 한 적이 있지요?
아주 더운 여름에 성당 청소하다가
제대에 주저앉아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정도로
범벅이 된채 그냥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일이기에 기쁘게 하는데
뒤에서 돌아다니는 말은 과관이 아니었죠.
하지만 지금은 맘 아파하지 않습니다.
그땐 제가 아버지를 덜 사랑해서 그랬지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는데요.
제가 살아가는 이 시간도 덤이라 했지요.
아버지께서 주신 덤인데 누구를 위해 쓰겠습니까!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 오실 길을 준비한 것처럼
저역시 깨어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서
말없이 준비하고
겸손된 자세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나아가려 늘 노력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아버지의 길을 준비하는 요한의 모습에서
전 진짜 기쁘답니다.
더 많이 웃잖아요.
요한의 모습에서 더 힘을 얻고
더 씩식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아버지께선 제 시야엔 안보이시지만
말씀으로 함께 계시기에
이런 힘도 얻고,
가르침도 받고,
저의 뒷태도 볼 수있게 해 주심에 얼마나 감사하다구요.
늘 함께 계심에도 감사하지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를 증언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라고~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면서
예수님 오실 길을 준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에
저를 비추이니
너무나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한의 겸손에 고개를 숙입니다.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인 자세!
유다인들에게 자신을 있는 그대로
당당하게 고백하는 모습 또한
저를 더 작게 만듭니다.
봉사를 하면서 누가 알아줄 때만 하진 않았는지~
준비하는 것보다
준비된 자리에 앉기를 즐겨하진 않았는지~
누군가를 인정하며 그를 반겼는지~
많은 생각들이 저를 휘감습니다.
아버지!
부족한 제가 사랑의 겸손을 알게 하소서.
그리고 늘 깨어 기도하게 하시어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는 저가 되게 하소서.
세례자 요한이 아버지 오실 길을 닦았듯이
전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아버지의 딸로써 아버지의 이름을 빛내는데
제 모든 열정을 쏟게 하소서.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당당히 맞서는
힘과 용기를 주소서.
아멘.
(no content)
누군가 대단한 일을 했다면 나의 관심사는 그 사람이 과연 누굴까? 에 촛점을 둔다.
사실 누구인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중요한건데 말이다.
탈랜트 문근영씨가 1년동안 8억을 가난한 이와 북한어린이를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말없이 베푼 것을 말하자면 말할 것도 없겠다.
너무 존경스럽다.
그런데 몇몇 보수파들은 할아버지의 과거의 이념을 갖고 시비를 건다.
그돈으로 북한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혹시 할아버지의 사상을 이루려는 불순한 목적이 있는거 아니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고발상이 문제라는 생각을 해봤다.
자기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방해를 하다니…
참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가…
내가 낸 작은 돈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수 있다는 것이다.
현시대에 무슨 이념과 사상을 갖고 논쟁하는가
굶어죽느냐 사느냐 귀로에 서있는 마당에 말이다.
퇴색된 논리는 현실에 맞지 않다.
두려운 자들은 말이 많은 법이다.
가난한 자를 도울때 이런 저런 이유를 댄다면 도와줄 수가 없다.
그곳에 집권자들의 행위는 하느님이 알어서 하실 것이고
내가 할일은 내가 해야 된다는 것을 문근영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는 논쟁에 핵심 서 있으면서도 침묵한다.
자기를 방어하는 말 한마디 없다.
누가 뭐라하든 해야할 일은 하고야 만다.
그 모습은 세자요한의 겸손된 모습을 닮았다.
그럼 그동안 나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다른 이의 선행이나 봉사에 대해 격려와 칭찬을 해봤는가.
아니면 최소한 내가 벌은 몫의 10분의 1을 하느님을 위해 드렸는가…
뒤 돌아보니 너무 작은 모습이다.
그러면서 말이 많지 않았나 싶다.
나는 못하면서 남도 못하게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혹여 방해자는 아니었나 반성해 보면서…
요즘 마귀는 질투의 무기를 잘 이용한다.
그래서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남 또한 잘하는 꼴 못보게 한다.
어떻게 하면 이타적인 사랑을 깍아내려서 상대방까지 눈치보게 만든다.
지옥에 가려면 혼자갈 것이지 같이 가려고 한다.
그런데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착한 분이 그런다.
봉사를 하려해도 생각해야 한다고…
돈을 내려해도 생각해야 하고…
암튼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에게 상처줄까봐서…
그는 자주 주님의 일로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힘들어 할때가 많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는데 남을 배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유혹은 진리를 흔들어서 뭐가 뭔지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역시 옛날에는 이랬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분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뭘 했는가…
회개, 봉사, 착한 일, 십일조…
돌아보니 창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지 않았으리라…
대림3주를 맞이하는 내게 말씀하신다.
얼마 안남았으니빨리 회개하고 그분을 기다리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뭐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많다면 만날날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이렇게 오실 주님께도 뭔가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난 내가 됐으면 좋겠고
그리움에 입이 바싹 마르고 지쳐 버렸으면 좋겠다.
온마음이 그분으로 가득차서 맨발로 마중 나가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분께 칭찬받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 국민배우 문근영처럼 행동으로 보여줘라!
지나가는 나그네야…
누군가 대단한 일을 했다면 나의 관심사는 그 사람이 과연 누굴까? 에 촛점을 둔다.
사실 누구인가가 중요한게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과 행동이 중요한건데 말이다.
탈랜트 문근영씨가 1년동안 8억을 가난한 이와 북한어린이를 위해 기부했다고 한다.
아마 지금까지 말없이 베푼 것을 말하자면 말할 것도 없겠다.
너무 존경스럽다.
그런데 몇몇 보수파들은 할아버지의 과거의 이념을 갖고 시비를 건다.
그돈으로 북한을 도와준다는 것 자체가 혹시 할아버지의 사상을 이루려는 불순한 목적이 있는거 아니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사고발상이 문제라는 생각을 해봤다.
자기는 도와주지 않으면서 오히려 방해를 하다니…
참 마음이 아려온다.
지금 현재 가장 중요한게 무엇인가…
내가 낸 작은 돈이 죽어가는 생명을 살릴수 있다는 것이다.
현시대에 무슨 이념과 사상을 갖고 논쟁하는가
굶어죽느냐 사느냐 귀로에 서있는 마당에 말이다.
퇴색된 논리는 현실에 맞지 않다.
두려운 자들은 말이 많은 법이다.
가난한 자를 도울때 이런 저런 이유를 댄다면 도와줄 수가 없다.
그곳에 집권자들의 행위는 하느님이 알어서 하실 것이고
내가 할일은 내가 해야 된다는 것을 문근영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깨달았다.
그는 논쟁에 핵심 서 있으면서도 침묵한다.
자기를 방어하는 말 한마디 없다.
누가 뭐라하든 해야할 일은 하고야 만다.
그 모습은 세자요한의 겸손된 모습을 닮았다.
그럼 그동안 나는 어떤 모습이었던가.
다른 이의 선행이나 봉사에 대해 격려와 칭찬을 해봤는가.
아니면 최소한 내가 벌은 몫의 10분의 1을 하느님을 위해 드렸는가…
뒤 돌아보니 너무 작은 모습이다.
그러면서 말이 많지 않았나 싶다.
나는 못하면서 남도 못하게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혹여 방해자는 아니었나 반성해 보면서…
요즘 마귀는 질투의 무기를 잘 이용한다.
그래서 자기는 하지 않으면서 남 또한 잘하는 꼴 못보게 한다.
어떻게 하면 이타적인 사랑을 깍아내려서 상대방까지 눈치보게 만든다.
지옥에 가려면 혼자갈 것이지 같이 가려고 한다.
그런데 쉽게 넘어간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착한 분이 그런다.
봉사를 하려해도 생각해야 한다고…
돈을 내려해도 생각해야 하고…
암튼 나로 하여금 다른 이들에게 상처줄까봐서…
그는 자주 주님의 일로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는다.
그래서 힘들어 할때가 많다.
그러나 주님의 일을 하는데 남을 배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진리이기 때문이다.
마귀의 유혹은 진리를 흔들어서 뭐가 뭔지 갈등하게 만드는 것이다
나역시 옛날에는 이랬다.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그분의 길을 곧게 내기 위해 뭘 했는가…
회개, 봉사, 착한 일, 십일조…
돌아보니 창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지 않았으리라…
대림3주를 맞이하는 내게 말씀하신다.
얼마 안남았으니빨리 회개하고 그분을 기다리라고…
사랑하는 이에게 뭐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많다면 만날날이 기다려진다고 한다.
이렇게 오실 주님께도 뭔가 보여주고 싶어서 안달난 내가 됐으면 좋겠고
그리움에 입이 바싹 마르고 지쳐 버렸으면 좋겠다.
온마음이 그분으로 가득차서 맨발로 마중 나가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분께 칭찬받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
그럼 국민배우 문근영처럼 행동으로 보여줘라!
지나가는 나그네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