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리라.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8)


    말씀의 초대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를 알고 고뇌한다. 오죽했으면 가만히 헤어지려 했을까? 하지만 천사의 말씀을 듣고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알게 된다. 고뇌와 갈등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복음).
    복음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면 얼마나 든든할는지요? 느낌을 살리지 못한다면 이유를 찾아봐야 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셨기에 축복으로 끝난 사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심코 잊은 채 살아가기에 무덤덤해지는 것입니다. 그때의 감격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러면 ‘임마누엘’의 의미는 새로워집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병이 없는데도 건강에 대해 불안을 느낍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해서도 공포심을 지닙니다. 하지만 두려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본래부터 ‘주님의 것’이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 정도의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처지에 있든 두려움을 벗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의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그는 고뇌에 빠집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셨기에 모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보는 눈이 없었기에 지나쳐 버렸을 뿐입니다. 곁에 있는 천사들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Praise to the Lord, the Almighty - St. Philips Boy\'s Cho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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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리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8)


      말씀의 초대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를 알고 고뇌한다. 오죽했으면 가만히 헤어지려 했을까? 하지만 천사의 말씀을 듣고는 깨달음을 얻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알게 된다. 고뇌와 갈등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였던 것이다(복음).
      복음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시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임마누엘은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그분께서 함께 계시면 얼마나 든든할는지요? 느낌을 살리지 못한다면 이유를 찾아봐야 합니다. 주님께서 도와주셨기에 축복으로 끝난 사건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무심코 잊은 채 살아가기에 무덤덤해지는 것입니다. 그때의 감격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러면 ‘임마누엘’의 의미는 새로워집니다. 사람들은 별다른 병이 없는데도 건강에 대해 불안을 느낍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해서도 공포심을 지닙니다. 하지만 두려워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생명은 본래부터 ‘주님의 것’이었음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이 정도의 건강을 주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임마누엘’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위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까지나 우리와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믿음을 알려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처지에 있든 두려움을 벗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의 요셉은 마리아의 잉태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당연히 그는 고뇌에 빠집니다. 주님께서 천사를 보내 주셨기에 모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들을 보는 눈이 없었기에 지나쳐 버렸을 뿐입니다. 곁에 있는 천사들을 먼저 만나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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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대림 제3주간 목요일(12/18)


      말씀의 초대
      메시아의 시대는 분명히 도래한다. 그분은 다윗의 후손으로서 오실 것이다. 그러기에 주님께서는 그의 가문을 축복하셨다. 메시아께서 오시면 모든 유다인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 민족은 안전과 평화를 누릴 것이다. 그날은 반드시 온다(제1독서).
      제1독서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 예레미야서의 말씀입니다. 23,5-8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 그의 시대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게 살리라.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주님은 우리의 정의’라고 부르리라. 그러므로 이제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는 사람들이 더 이상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하지 않고, 그 대신 “이스라엘 집안의 후손들을 북쪽 땅에서, 그리고 당신께서 쫓아 보내셨던 모든 나라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한다.” 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자기 고향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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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칩니다.

    약혼한 요셉이 마리아의 잉태사실을 알고

    남몰래 파혼하기로 맘먹은 그 모습이

    정말 마음아리게 와 닿았습니다.

    저 같으면 밀려오는 배신감에

    당장 달려가 한껏 소란을 피우고

    온동네 알리고 난리를 쳤을텐데…

    요셉 성인은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남몰래 파혼하기로 생각을 굳힌뒤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지요.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라고 ~

    제가 만약 요셉이었다면

    들을 귀가 있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천사의 말을 따를 정도의

    믿음이 있었을까도~

    허긴 아버지께서 요셉을 선택하셨을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겠지요.

    또 그릇이 되니까 선택하셨겠지요.

    정말 멋있는 요셉!

    그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아버지께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입니다.

    의로운 신앙인의 모습으로

     아버지의 음성에 귀기울이며

    말씀을 잘 듣고 실행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반성해 봅니다.

    제 의로움의 수치는 얼마일까요?

    과연 의로움이 있긴 한 것인지요. ㅎㅎ

    자신의 생각을 굳힌 다음이지만

    천사들의 말을 듣고 맘을 돌려 먹는 모습에서

    부끄러워 혼났습니다.

    시장에 따라간 딸이 아버지 손을 놓칠까봐

    고사리손에 땀이 베일정도로 힘을 주며

    한손에는 커다란 사탕을 잡고서

    두리번거리는 한 꼬마의 모습이 떠 오릅니다.

    먹기도 해야겠고…

    구경도 해야겠고…

    잃어버릴 두려움에 잡고는 있지만

    온통 딴 생각으로 가득차 있겠지요.

    그러다 신기한 것이 보이면

     손을 뿌리치고 달려갈 꼬마! ㅎㅎ

    바로 저의 모습이지요. ㅠㅠ

    아버지께 믿음을 고백하면서

    다른 세상이 보고파서 기린처럼 목을 빼고

    두리번 거리는 것처럼이요.

    너무나 부족하여

    제 손에 있는 것에 대한 행복을 모르니까요.

    요셉성인의 의로움을 생각하는데

    저희 엄마가 떠오릅니다.

    아주 어려운 살림에 동생들을 업어 키운

    아기 엄마였는데

    같은 동네로 시집을 가게 되었답니다.

    아버지 집은 그 당시 아주 부자였는데

    밥을 굶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에 그냥 갔답니다.

    배를 곯지 않아도 되는 희망을 안고 갔는데

    실상은 머슴보다 못한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머슴은 보리밥이지만 상은 차려지는데

    엄마는 온갖 구박에 머슴들이 먹고난 찬밥에

    물을 부어 먹어야 했답니다.

    그래야 풀어지니까~

    아무런 반찬도 없이 마시듯이 먹고

    생활을 했답니다.

    그리 빨리 마시지 않으면 그나마도 뺏기니까요.

    이웃동네까지 알아주는 부자였지만

    엄마에겐 가장 가난한 집이었다고 했습니다.

    배는 곯았지만

    사랑이 담긴 따뜻한 밥 한그릇을 나누는 것이

    행복임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답니다.

    그래서 제가 물어봤지요.

    한동네인데 그냥 가면되지

     뭐하러 그 고생을 했냐고…

    그랬더니 그러더군요.

    “내가 그렇게 가면 외할머니가 가슴에 돌을 얹고 살게 되잖아.

    그리고 아비없는 자식이니까 그렇지.

    라는 소리를 듣는것도 싫었다.

    더 큰 이유는

    너네 아버지가 불쌍해서 못가겠더라.

    그렇게 부자집의 막내가

     머슴보다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나보다

     너네 아버지가 더 불쌍한 것이지.

    그래서 참고 살았다.” 라고 했습니다.

    아무런 믿음이 없던 엄마에게는

     사랑이 있었나 봅니다.

    그 사랑이 의로움되어

    지금까지 멋있게 살아오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갑자기 가슴이 아려오네요.

    아마도 의로움의 바탕은 사랑인가 봅니다.

    그치요?

    제겐 크나큰 아름드리 나무인

    아버지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늘 제 욕심보를 채우지 못해 투덜거리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모르고

    다른 무언가를 찾으며

    의로움보단 사리사욕에 눈멀어

    아버지의 맘을 아프게 하진 않았는지~

    볼 눈이 없고 들을 귀가 없었음에

    제 스스로 어둔 길을 가면서

    아버지를 탓하며 제 빛을 잃은 것은 아닌지요.

    제 삶의 모든 중심이

    아버지께로 향해 있어야 하는데

    그리하진 못한것 같습니다.

    신앙인의 의로운 모습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민은 하는 것인지~

    참 부족하지요?

    하얀 도화지에 사랑을 담을때 비로소 그곳에

    의로움의 나무가 그려지겠죠?

    그 나무에 물도 주고, 가지치기도 하고

    벌레도 잡아주고 나쁜 환경을 정화시킨다면

    멋있는 아름드리 나무가 됨을 새삼 깨닫습니다.

    늘 부족하지만 아버지의 그늘에서

    의로움의 나무를 키워

    저를 통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면서

    저는 요셉성인의 의로움이

    가슴깊이 와 닿았습니다.

    제가 만약 요셉이었다면

    천사의 말을 믿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대로 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그리하지 못했을 겁니다.

    약혼자의 잉태사실을 알고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텐데

    그 상황에서도 성모님을 배려하는 그 마음!

    ‘남몰래 파혼하기로 마음 먹은 요셉’

    정말 멋있습니다.

    그렇게 까지 마음먹었지만

    천사들의 말을 듣고 맘을 고쳐먹는 요셉!

    그 의롭고 배려깊은 사랑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너무나 부족한 저임에

    다시금 고개를 숙여보지만

    그래도 횡한 마음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고민합니다.

    저만 바보같은 생각들~

    인정을 하기보다 인정받기를 원하진 않았는지~

    사랑을 고백하지만 마음의 고백이 아니었음을~

    아버지!

    부족한 저가 요셉의 의로움에 고개를 숙입니다.

    입으로만 고백하는 의로움이 아니라

    제게 주신 덤의 은총자리에 아버지를 모시고

    가슴에서 우러나는 사랑을 고백하며

    가슴깊은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아버지께서 의로운 요셉을 선택하셨듯이

    저역시 아버지의 도구로 제 역할 다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고목나무에 싹이 돋듯이

    제 마음에도 의로움의 꽃이 피게 하소서.

    아버지의 향기가 넘치는

    의로움의 꽃이 만발하여

    다른이에게 내어 줄 수 있는

     제가 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신 주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느님!
    사랑하는 나의 주님!

    참으로 좋으신 주님!

    고맙습니다 언제나  저와 함께 계셔서...
    행복합니다 언제나  저와 함께 계셔서...
    당신이 저와 함께 계신다는 생각을 하니
    당신이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임마누엘!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는 당신을 생각하며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참고 견디며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당신이 언제나 함께 계신다는 생각만으로도 기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말씀에 위로를 받으며 힘들고 어려운 이 세상에서의 
    삶을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당신께서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임마누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드리는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당신께서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신다는
    믿음으로 참고 견디며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십시오
    외롭고 힘든 지금의 고통을 견딜 수 있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임마누엘!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이스라엘 집안의 임금이신 주님,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법을 주셨으니,
    주님 팔을 펼치시어 저희를 구원하러 오소서”

    아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묵상하며

  5. guest 님의 말:

    임마누엘!

    오늘 미사 중에 신부님께서
    아기 예수님께서 오실 시간이 가까웠다하셨다.

    나는 아기가 오시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찾아 가면 되겠다 생각하였다.
    기다린다는 것은 많은 그리움과 인내를 요구하기에
    내가 저만치 마중나가 기다리면 덜 서성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하느님의 생각과 안나의 생각은 현저히 달랐다.
    마치도 주님께서”안나야 기다림 또한 구원의 시간이란다. 조급해하지 말아라.
    모든 것은 때가 있단다.”하시는 것 같아 기쁘게 말씀을 받아 들이고
    겸손되이 기다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기다림이란 마음이 설레어진다.
    기다리면 오실 아기가 있어 행복하고
    오실 아기가 있어 기다리는 내 마음도 마냥 두근거린다.

    기다림은 사랑을 준비하는 시간이리라.
    기다림은 어설픈 나를 추스리는 정화의 시간이리라.
    기다림은 그리움을 더욱 그리워 하라 재촉하시는 아버지의 배려이리라.
    아! 임마누엘

  6. guest 님의 말:

    요셉 성인의 의로움과 예수님의 탄생

    1. 말씀읽기:마태1,18-25

     

    2. 말씀연구

    성가정의 가장으로서 말없이 가정을 이끌어 오셨던 성 요셉, 하느님의 심오한 계획 앞에서 인간적인 모든 감정을 포기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인 성 요셉. 구원역사 안에서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 같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말없이 행동하셨던 성 요셉. 그분의 삶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한 일은 꼭 자랑하고 싶어 하고,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꼭 이의를 제기하고, 내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으면 불편해 하고, 하기 싫어하는 나의 모습을 생각해 본다면 요셉 성인의 의로움은 내가 반드시 배워야 하는 덕목입니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다법은 명백히 약혼과 결혼을 구별하고 있습니다. 정식 결혼은 신부를 자기 집에 맞아들이고, 함께 산 때부터 성립되었습니다(신명기 20,7).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 했을 때는 저마다 제 집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 약혼자는 혼인에 있어서 엄밀한 뜻의 결혼한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➀부정을 저지른 약혼자는 부정을 저지른 아내처럼 돌로 쳐 죽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➁약혼자를 잃은 여자는 과부와 똑같이 여겼다.

    ➂약혼자를 쫓아내기 위해서는 이혼장을 써 주어야 했다.

    ➃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은 적자로 보았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잉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가진 것은 간음한 것이고, 간음한 여인들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 유다법의 혜택을 받게 됩니다. 약혼시절에 잉태한 아들도 적자로 인정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리아가 아이를 가졌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요셉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만일 나였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일단 법대로 회당에 고발하여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도록 했을까요? 만일 내 아내가 될 사람이 그랬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먼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요셉성인이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는지 이제 드러날 것입니다. 요셉 성인처럼 사랑합시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구약성경에서 나타나는 의로운 사람이란 항상 하느님께 마음을 두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생활하며 기쁘고 진실한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또한 의로운 사람은 지혜롭고 친절하며, 그의 성숙한 인간성이 하느님의 계획과 잘 융화되어 빛을 발합니다. 의인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이상적인 인간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겪고 있는 일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을 조사하거나 해명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가 그 상황이라면 나는 과연 마리아를 그렇게 용서할 수가 있을까? 사랑하는 여인이 다른 이의 아이를 가진 상황인데, 내가 그를 받아들일 수가 있을까?

    요셉성인은 성모님을 나자렛의 회당에 고발하든가, 아니면 두 증인을 세우고 이혼장을 써 주고 인연을 끊든가, 두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회당에 고발하면 그녀에게 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 될 것이고, 또 마리아의 명예가 더럽혀 지는 것은 물론 돌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그만큼 마리아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그렇게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성인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요셉이 파혼하겠다는 결심을 하자, 하느님께서 급해지셨나 봅니다. 즉시 개입하십니다. 천사는 그에게 엄숙히 “다윗의 자손 요셉아”하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예로운 호칭을 받은 또 하나의 유일한 사람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천사를 통하여 마리아가 잉태한 것이 인간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임을 요셉에게 설명을 하십니다. 요셉은 얼마나 기뻤을까요? 다른 남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자식에게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특권이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창조적인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이란 그의 본질과 소명을 나타내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의 경우 이런 권리는 제한되었습니다. 아이를 낳는 데 있어서 아버지의 역할을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름을 지어 줄 권리도 없었습니다. 이름은 이미 주어졌으며,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이름을 부르도록 명령받고 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히브리어 뜻은 “야훼께서 도와주신다.”, “야훼께서 구원하신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하느님은 구원이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이름이었으며, 성전의 의식과 제사 재건에 참여한 대사제 예수아의 이름이었습니다. 지혜교사인 엘르아잘의 아들이요 시라의 아들이며 집회서의 저자인 예수도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하느님 구원의 중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은 어느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포괄적인 구원을 가져오실 것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할 것입니다.

    구원은 인간과 인류가 구원받아야 할 죄의 종살이에서의 해방을 의미합니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이사야 예언(이사7,14)의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실현됨을 보여 줍니다. 동정녀라는 말은 처녀성의 관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소녀라는 말이 반드시 처녀라는 것을 전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과 동정녀에게서 태어나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두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24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그 아내의 그 남편입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 내리시는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셨습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남편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요셉은 단순하게 그리고 주저함 없이 그가 들은 대로 행동합니다. 그는 경외심과 존경심에 가득 차서 마리아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마리아는 이제 모든 사람이 볼 때 결혼한 요셉의 아내가 됩니다.

     

    25 그러나 아내가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예수 – 하느님은 구원이시다. 그리스도-기름 부음을 받은 사람. 우리는 이 거룩한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입에 담고 있으나 그 이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라는 것, 곧 구약에서 예언되었듯이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내려오신 메시아라는 믿음의 선언이다.

     

    아들을 낳을 때까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는 것은 요셉성인이 예수님을 낳고서 잠자리를 같이했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바로 요셉의 인간적인 자녀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탄생에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보면서 그렇게 사랑했으면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마리아는 요셉에게 미안해하면서 살았을 것이고, 요셉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둘 사이에 분명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두 분은 훌륭하게 성가정을 꾸미십니다. 이분들보다 더 어려운 가정이 있었을까요? 하지만 이분들은 훌륭한 성가정을 꾸미셨으니 나 또한 그렇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3.나눔 및 묵상

    ① 내가 요셉 성인이었다면 나는 성모님을 향하여 어떻게 결심했을까요?

     

    ② 성가정의 특징 중의 하나는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따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 가족이 성가정이 되기 위해서 먼저 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우리 가정에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7. guest 님의 말:

    오늘은 요셉을 통해서 주님이 내게 어떠한 삶을 요구하시는가 묵상해 봤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늘도 나를 초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나는 응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옳고 그름에 흔들리고 갈등하며 사네요.
    확실성에 의구심을 갖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 뭔가 확실하게 보여준다면…

    이렇게 부르심에 토를 단다는 것은
    그분의 뜻을 따를 자세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요셉처럼 예!하고 묵묵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지녀야 겠음을 다짐해 보면서…
    어떠한 고난이 있다해도 흔들리지 않고 말없이 나아가려 노력해 보렵니다.
    그러면 내 소명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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