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페냐로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1/7)


    말씀의 초대
    아무도 물 위를 걸을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가신다. 그분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그분의 힘과 능력을 지니면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 믿음의 힘은 그만큼 강한 것이다(복음).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5-52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신 겁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못한다’고 포기한 일입니다. 주님의 힘과 은총이 함께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어선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까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온갖 두려움은 선입관일 뿐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겨운 일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고통’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삶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 오늘 복음’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그래도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다시 또 읽어 보십시오. 때로는 성경을 읽는 자체가 힘을 줍니다. 하느님의 기운을 느끼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할 수 없다고 제쳐 놓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기적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달라진 자신’을 체험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물 위를 걷습니다. 신앙인은 매일매일 물 위를 걸으며 사는 이들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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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페냐로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1/7)


      말씀의 초대
      아무도 물 위를 걸을 수 없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가신다. 그분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예수님을 믿는 이들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 그분의 힘과 능력을 지니면 누구나 걸을 수 있다. 물 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을 할 수 있다. 믿음의 힘은 그만큼 강한 것이다(복음).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5-52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셨습니다. 불가능한 일을 하신 겁니다. 그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도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이들은 ‘못한다’고 포기한 일입니다. 주님의 힘과 은총이 함께하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라 어쩔 줄 몰라 하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용기를 잃어선 안 됩니다. 주님 앞에서까지 ‘무서워해야 할’ 것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온갖 두려움은 선입관일 뿐입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힘겨운 일을 만납니다.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고통’은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삶의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 오늘 복음’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 그래도 느낌이 오지 않는다면 다시 또 읽어 보십시오. 때로는 성경을 읽는 자체가 힘을 줍니다. 하느님의 기운을 느끼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러면 물 위를 걸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할 수 없다고 제쳐 놓았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기적은 다른 무엇이 아닙니다. ‘달라진 자신’을 체험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물 위를 걷습니다. 신앙인은 매일매일 물 위를 걸으며 사는 이들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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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페냐로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1/7)


      말씀의 초대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믿고 맡기기 때문이다. 주님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삶의 두려움은 사라진다. 그러므로 사랑 안에 머물면 하느님 안에 머무는 것이 된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11-18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너 근심 걱정 말아라
    
    
    
    
    
    

  3. guest 님의 말: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맞아요 주님!

    당신을 믿고 겁내지 말고 안심하면 되겠지요?
    당신을 믿지 못하는 것은 저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사랑이 있다면 당신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을텐데....

    사실...
    당신을 사랑한다고 입으로는 늘 말을 합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한다면 의심하지는 않을텐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 때면 가끔씩 아주 가끔씩...
     “사주나 점”이라는 것을 보고 싶기도 하지요
    특히 집안에 우환이  있을 때는...
    신앙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당신께 죄송하고 자신의 부족한 믿음을
    책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음을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형제들이나  외인들에게  불안한 저의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미신을 믿는 형제들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말을 하지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는 세속의 자녀인가 봅니다
    당신께 기도하고 매달려야 하는데 불안한 마음만  들고
    기도가 되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당신을 사랑이신데...
    사랑이신 당신께 저의 답답한 마음을 고백하면 좋을텐데
    죄스러운 마음을 감추면서 복음을 묵상하려니 
    당신께 더 큰 죄를 짓는 것 같아 우울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께서 저에게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헬레나야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

    이미 저의 마음을 당신께서는 잘 아시고 계실텐데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습니다 주님!
    지금의 저의 마음이 이렇게 안절부절합니다
    이유는...
    저의 마음에 사랑이 없기 때문이지요?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떠한 어려움도 견딜텐데
    조금만 힘들면 당신을 원망하는 저의 모습이 부끄럽습니다
    당신을 사랑하면 좋을텐데...
    어떠한 역경이 오더라도 참고 견딜텐데...
    사랑은 불가능 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임을 깨달으면 좋을텐데...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묵상하며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5. guest 님의 말: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르코 6,45-52 물 위를 걸으시다 (마태 14,22-33 ; 요한 6,16-21)


    2. 말씀연구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으십니다. 배고픈 군중을 빵을 많게 하여 배불리 먹이시고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을 먼저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다음에 내려가셨습니다. 밤새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고요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뤄야겠다는 다짐을 해야겠습니다.


    45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니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시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군중들의 생각에 동요되지 않기 위해 먼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즉 군중들과 떼어 놓기 위해 출발을 재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고, 바로 앞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이들도 부활을 체험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기도란 무엇인가? 언제 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늘 아버지와 함께 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 군중을 먹이신 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처럼 일을 하기 전에, 일을 마친 다음에 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군중들을 돌려보내고 제자들은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몇 시에 어떻게 출발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역풍을 만나서 고생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역풍을 만나서 고생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이야기 하면서 배에 올랐지만 좀 있다가 역풍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을 잊어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이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닐까요? 분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산 위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곧장 달려가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빵의 기적으로 인해 들떴던 그 마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바다마저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것을…,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새벽 네 시 쯤에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새벽 네 시에 호수를 건널 배가 있을 리가 없고, 또 역풍이 부니 배를 운행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주머니엔 돈도 없었을 것이니 걸어가셔야 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사공! 건너갑시다!”

    “예수님! 심야할증에 역풍까지 부니 따따불입니다요!”

    “나 돈 없는디!”

    “저도 흙 퍼서 장사하는 것은 아닌디유! 무지 어려운 것 아시쥬?”

    “어쩔 수 없군….그냥 걸어 가야쥐…”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 계획을 잡으면 비가 오다가도 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소가 여의치 않으면 다른 장소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또 폭우가 내리던 새벽, 새벽미사에 변함없이 참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오시는 분들…, 예수님께 물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께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랄 만도 합니다. 호수 한 가운데서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도 배를 타고 온 사람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 만났으니. 그렇게 놀란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두운 밤길에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갈 때, 저 앞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무척 당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요한아! 나다!”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제자들은 그렇게 기뻤을 것입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역풍을 만나 고생하고 있을 때,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께서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손을 내밀면 기뻐하겠습니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나타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한다면 그냥 기쁘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제자들 마음속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도 멎었습니다. “놀라 자빠질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넋을 잃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하지만 온전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의 의미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을 체험하고, 이 일들을 증언할 때, 자신들이 믿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늘 죄스러워 했을 것이고, 그들이 믿지 못했던 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틀에 예수님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들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모두 흩어져버렸던 것입니다.

     깨닫는 다는 것.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깨달았다면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② 내가 캄캄한 밤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기쁘시겠습니까? 아니면 두렵겠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 봅시다.


  6. guest 님의 말:

    내가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존재는 귀신보다 사람이다.
    곰이나 사자, 악어 뱀은 나와 마주칠 확률이 적기 때문에 별로 두려운존재가 아니다.
    아마 사람이 두려운 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가 몰라서 그렇지 않나싶다.
    또한 안다해도 대충 아는 사이라면 상대방으로 하여금 큰 상처를 받기도 한다.

    가끔 음침한 곳을 왠 험상궂은 남자와 같이 걸어갈때
    혹시 저 사람이 어떻게 하지 않을까 두렵고 무서울 때가 많았다.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고약한 인상이라도 잘 아는사람이라면 두렵지 않고 오히려 반갑다.
    왜냐하면 그 사람이 좋은사람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암튼 알아간다는 것은 관심이고 사랑이 아닌가 싶다.
    관심은 호기심이 되고 호기심이 사랑이 될때
    비로써 깊은관계가 될수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
    뭐~~ 너무 알면 힘들때도 있긴 있지만 말이다.
    좌우지간 인간이 두려운 존재인 동시에 가장 사랑해야 하는 존재 또한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가까운 사람을 두려워 하는 걸 보면 사람을 믿지 못하나보다.
    결론은 진실로 사랑하지 못해서이다.
    이렇게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그분만을 사랑한다고 말할수 있을까…
    힘든일이지만 살아있는 한 무지 노력해야될 문제다.

    오늘 복음에서는 제자들이 물위를 걸으시는 주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소리를 지른다.
    아직 그분이 어떤분인지 깨닫지 못해서 두려웠기 때문이 아닌가 묵상해봤다.
    어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보고 믿었더라면 과연 겁을 먹었을까 싶다.
    나역시 예수님을 제대로 모른다면 그분이 두려운 존재가 될 것이다.
    사랑이신 아버지가 아니라 심판자이신 아버지로 인식하고 만다.

    그분은 내게 한없이 사랑을 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신다.
    그런데 내가 그분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을 어찌 알겠는가
    그분을 내 사랑으로 만들려면 첫째 그분을 알려고 노력해야하지 않겠나 싶다.

    어떻게?
    미사,단체활동, 성경, 복음나누기,이웃과 나눔, 기타등등…
    암튼 그분을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걸 알고 싶어하듯이 그렇게 말이다.
    아는 만큼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처럼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내가 되지 않도록
    먼저 주님을 알기위해 꾸준히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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