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르코 6,45-52 물 위를 걸으시다 (마태 14,22-33 ; 요한 6,16-21)



2. 말씀연구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으십니다. 배고픈 군중을 빵을 많게 하여 배불리 먹이시고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돌려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가셨습니다. 제자들을 먼저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신 다음에 내려가셨습니다. 밤새워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그렇게 고요 속에서 하느님과 일치를 이뤄야겠다는 다짐을 해야겠습니다.



45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으로 보내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군중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시니 무척 놀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시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메시아라고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군중들의 생각에 동요되지 않기 위해 먼저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건너편으로 보내셨을 것입니다. 즉 군중들과 떼어 놓기 위해 출발을 재촉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잘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군중들은 그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찾고, 바로 앞의 것만을 생각합니다. 이들도 부활을 체험하게 되면 예수님께서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기도란 무엇인가? 언제 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 안에서 기도가 무엇인지, 언제 해야 하는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쁜 일상생활 속에서도 일을 마치신 다음에는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늘 아버지와 함께 하셨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셨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과 군중을 먹이신 일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기도는 내 뜻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처럼 일을 하기 전에, 일을 마친 다음에 기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예수님을 통해서 배워야 합니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군중들을 돌려보내고 제자들은 어떻게 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몇 시에 어떻게 출발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역풍을 만나서 고생하고 있음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역풍을 만나서 고생을 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예수님께서 빵을 많게 하신 기적을 이야기 하면서 배에 올랐지만 좀 있다가 역풍을 만났을 때는 모든 것을 잊어 먹고 살아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혹시 예수님께서 이것을 염두에 두신 것이 아닐까요? 분명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산 위에서 기도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상황을 잘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곧장 달려가지 않으십니다. 아마도 빵의 기적으로 인해 들떴던 그 마음들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그러시지 않았을까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물위를 걸으시고, 바다마저 복종할 수밖에 없는 분이라는 것을…,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그런데 새벽 네 시 쯤에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새벽 네 시에 호수를 건널 배가 있을 리가 없고, 또 역풍이 부니 배를 운행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리고 주머니엔 돈도 없었을 것이니 걸어가셔야 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십니다.



“사공! 건너갑시다!”

“예수님! 심야할증에 역풍까지 부니 따따불입니다요!”

“나 돈 없는디!”

“저도 흙 퍼서 장사하는 것은 아닌디유! 무지 어려운 것 아시쥬?”

“어쩔 수 없군….그냥 걸어 가야쥐…”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장애가 될 수 없습니다. 성당에서 계획을 잡으면 비가 오다가도 그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장소가 여의치 않으면 다른 장소가 생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저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밀고 나가면 됩니다. 나머지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해 주십니다. 또 폭우가 내리던 새벽, 새벽미사에 변함없이 참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우비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산을 받쳐 들고 걸어오시는 분들…, 예수님께 물이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처럼, 신앙인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어떤 것도 예수님께로 향하는 내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마귀의 유혹입니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놀랄 만도 합니다. 호수 한 가운데서 사람을 만났으니. 그것도 배를 타고 온 사람이 아니라 물 위를 걸어오는 사람을 만났으니. 그렇게 놀란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어두운 밤길에 두려움에 떨면서 걸어갈 때, 저 앞에서 사람이 나타나면 무척 당황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나타난 사람이 귀신이 아니라, 그리고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요한아! 나다!”라고 부르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제자들은 그렇게 기뻤을 것입니다.

바다 한 가운데서 역풍을 만나 고생하고 있을 때, 물 위를 걸어오신 주님께서 “나다. 안심하여라. 겁낼 것 없다”라고 말씀하실 때의 그 기쁨은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손을 내밀면 기뻐하겠습니까?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있을 수 없는 상황에 나타나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행동한다면 그냥 기쁘게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제자들 마음속에는 두려움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람도 멎었습니다. “놀라 자빠질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래서 “넋을 잃었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놀라운 분이십니다. 하지만 온전히 예수님의 가르침과 기적의 의미를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과 성령강림을 체험하고, 이 일들을 증언할 때, 자신들이 믿지 못했던 것에 대해서 늘 죄스러워 했을 것이고, 그들이 믿지 못했던 것이 그들 나름대로의 틀에 예수님을 맞추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과, 그들 마음의 완고함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했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 모두 흩어져버렸던 것입니다.

 깨닫는 다는 것.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깨달았다면 그것을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고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② 내가 캄캄한 밤에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아무도 만날 수 없는 곳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기쁘시겠습니까? 아니면 두렵겠습니까? 제자들의 마음이 되어 생각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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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아마 저라면 기절했을 겁니다. ㅎㅎ
    함께 하고 체험하면서도 아버지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하는 자식! 바로 저지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인정이 아니라 그가 함을 보면 받아들이지 못하는 저는 아니었는지도 생각해 봅니다.
    제 마음을 아버지께 담고 있지만 새지 않을까를 고민하는 철없는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주 캄캄한 밤에 아버지를 만난다면? ㅎㅎㅎ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아버지의 모습이지만 막상 제 앞에 나타나신다면 “설마?” 하는 의문이 저를 덮으면서
    있을수 없는 일임에 넘어지겠지요. 제자들처럼이요.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함께 하고 기도하면서도 아버지를 완전히 마음에 받아들이지 않았음에
    그 많은 기적을 보고 그 장소에 있었어도 아버지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요.
    모든 것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랐지만 현실에서 탈피하진 못한것 같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믿음보다 두려움이 더 컷던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온 가슴을 다 비웠다면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너무나 반가워 “아버지!” 하고 목메어 부르며 다가가 안겼을텐데~~~~

  2. guest 님의 말:

    찬미예수님!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

    저는 아직도 밤길을 두려워 하고 새벽미사를 혼자서는 가질 못합니다.
    성당의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때면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자매님이
    반드시 우리집 앞까지 들러서 가야하고, 새벽엔 깊이 잠든 남편을 깨워서
    성당에 데려다 주어야만 독서를 할 수 있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레지오 자매들은 저에게 ‘생긴 것은 무수리과인데, 속성은
    공주과라며 놀려댄답니다. 급기야는 ‘신공주’라는 별칭까지 붙여주었지요 ㅋ
    그래도 고마운 것은 절대로 데려다 주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그렇게 무서우면 새벽독서를 하지 말것이지.’ 라고 핀잔을
    줄만도 하건만 아무리 술에 취에 늦게 들어온다 할지라도 꼭 바래다 주곤
    하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죠 ㅋ
    그런데 문제는 새벽독서가 아니라도 미사참례를 하고 싶은데 그때마다
    독서를 한다고 거짓말 시킬 수도 없고 아쉬움이 많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어서 미사참례를 꿈도 꾸지 못한다지만,
    저는 어이없게도 그 두려움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벽독서를 맡아 하기를 원하는 전례부 쪽에서는 그만한 믿음도 없냐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면 무서울게 없을텐데….이해가 안된다면서
    신앙생활 헛되이 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도무지 그 두려움은
    가시질 않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정말 오늘 말씀의 제자들처럼 의심이 많으며 믿음이
    부족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 였더라도 그때 제자들처럼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냥 놀라는 정도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기절을 했을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에게 가장 큰 바램이 있다면…성당 옆으로 아예 이사를
    하는 것이라고…조금만 기다리면…. 그땐 새벽독서를 도맡아
    하겠노라고…큰 소리 뻥뻥 치고 있답니다. ㅎㅎ

    새해 제 기도의 절반은 두려움을 없애주시라는 것이 될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 묵상하며….

    주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항상 제 곁에 주님 함께 계심을 깊이 믿어 두려움을 없애 주소서. 아멘.

  3. user#0 님의 말:

    찬미예수님!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

    저는 아직도 밤길을 두려워 하고 새벽미사를 혼자서는 가질 못합니다.
    성당의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갈때면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자매님이
    반드시 우리집 앞까지 들러서 가야하고, 새벽엔 깊이 잠든 남편을 깨워서
    성당에 데려다 주어야만 독서를 할 수 있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함께하는 레지오 자매들은 저에게 ‘생긴 것은 무수리과인데, 속성은
    공주과라며 놀려댄답니다. 급기야는 ‘신공주’라는 별칭까지 붙여주었지요 ㅋ
    그래도 고마운 것은 절대로 데려다 주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남편도 ‘그렇게 무서우면 새벽독서를 하지 말것이지.’ 라고 핀잔을
    줄만도 하건만 아무리 술에 취에 늦게 들어온다 할지라도 꼭 바래다 주곤
    하니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죠 ㅋ
    그런데 문제는 새벽독서가 아니라도 미사참례를 하고 싶은데 그때마다
    독서를 한다고 거짓말 시킬 수도 없고 아쉬움이 많답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 시간에 일어날 수가 없어서 미사참례를 꿈도 꾸지 못한다지만,
    저는 어이없게도 그 두려움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벽독서를 맡아 하기를 원하는 전례부 쪽에서는 그만한 믿음도 없냐고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면 무서울게 없을텐데….이해가 안된다면서
    신앙생활 헛되이 하고 있다고 핀잔을 주기도 하지만, 도무지 그 두려움은
    가시질 않습니다.

    저라는 사람은 정말 오늘 말씀의 제자들처럼 의심이 많으며 믿음이
    부족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저 였더라도 그때 제자들처럼 놀라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냥 놀라는 정도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기절을 했을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저에게 가장 큰 바램이 있다면…성당 옆으로 아예 이사를
    하는 것이라고…조금만 기다리면…. 그땐 새벽독서를 도맡아
    하겠노라고…큰 소리 뻥뻥 치고 있답니다. ㅎㅎ

    새해 제 기도의 절반은 두려움을 없애주시라는 것이 될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마라.’ 묵상하며….

    주님!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항상 제 곁에 주님 함께 계심을 깊이 믿어 두려움을 없애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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