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신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그분은 제자들을 부르신다.
호수에서 일하고 있던 어부 네 사람이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간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갑니다. 정말 그렇게 했을까요?
만남은 신비입니다.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던 사람이
어느 날 혼인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평범한 모임에서 ‘눈이 확 돌아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연은 부르심입니다.
모든 인연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긴다면 소홀히 대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으로 여기라 했습니다.
그만큼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찮은 만남도 정성으로 대하면 은혜로운 만남을 반드시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형제와 요한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평소 사람들과의 만남에 적극적이었을 겁니다.
이웃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선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에 즉시 답합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복음사가가 표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부르심에는 “예!” 하고 답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새로운 삶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구라도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신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그분은 제자들을 부르신다.
호수에서 일하고 있던 어부 네 사람이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간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갑니다. 정말 그렇게 했을까요?
만남은 신비입니다.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던 사람이
어느 날 혼인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평범한 모임에서 ‘눈이 확 돌아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연은 부르심입니다.
모든 인연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긴다면 소홀히 대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으로 여기라 했습니다.
그만큼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찮은 만남도 정성으로 대하면 은혜로운 만남을 반드시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형제와 요한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평소 사람들과의 만남에 적극적이었을 겁니다.
이웃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선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에 즉시 답합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복음사가가 표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부르심에는 “예!” 하고 답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새로운 삶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구라도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구약 시대에는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아드님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분을 당신의 상속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죄 사함을 받았다.
이제 그분께서는 하느님 오른편에 계신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시작입니다. 1,1-6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2)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전도를 시작하신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 일을 위해 그분은 제자들을 부르신다. 호수에서 일하고 있던 어부 네 사람이다. 그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간다.
복음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0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십니다. 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갑니다. 정말 그렇게 했을까요? 만남은 신비입니다. 절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던 사람이 어느 날 혼인한다는 소식을 전해 왔습니다. 평범한 모임에서 ‘눈이 확 돌아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행복한 부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연은 부르심입니다. 모든 인연을 하느님의 부르심으로 여긴다면 소홀히 대할 수가 없습니다. 불교에서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으로 여기라 했습니다. 그만큼 만남을 소중히 하라는 가르침입니다. 하찮은 만남도 정성으로 대하면 은혜로운 만남을 반드시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형제와 요한 형제를 부르셨습니다. 그들은 평소 사람들과의 만남에 적극적이었을 겁니다. 이웃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선택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부르심에 즉시 답합니다. 변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라고 망설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복음사가가 표현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부르심에는 “예!” 하고 답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새로운 삶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누구라도 ‘주어진 인연’에 최선을 다하면 그만큼 새로운 삶을 만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1주간 월요일(1/12)
말씀의 초대
구약 시대에는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제는 아드님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분을 당신의 상속자로 삼으셨기 때문이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죄 사함을 받았다. 이제 그분께서는 하느님 오른편에 계신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시작입니다. 1,1-6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드님을 만물의 상속자로 삼으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온 세상을 만들기까지 하셨습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며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 그분께서 죄를 깨끗이 없애신 다음, 하늘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천사들보다 뛰어난 이름을 상속받으시어, 그만큼 그들보다 위대하게 되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천사들 가운데 그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 내가 오늘 너를 낳았노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되리라.” 하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까? 또 맏아드님을 저세상에 데리고 들어가실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은 모두 그에게 경배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참 날씨가 쌀쌀한 밤입니다.
가끔 눈발이 날리는게 하얀 안개꽃을 뿌리는 듯,
내려 앉으며서 사그라지는 그 모습이
문득 저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머리를 흔들어 보았습니다.
아버지께 재재거리는 시간이 줄어들면 들수록
말씀 욕조에 절 담그지 않을수록
저역시 그렇게 사그라지는 눈꽃되어 없어지겠지요.
그 생각이 들면서 언젠가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신 것이 생각납니다.
삶의 자세를 바꾸면 아버지의 힘은 곧바로 저와 함께 한다고~~
정말 딱 맞는 말씀이지요?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아버지 나라를 선포하시지요.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빛의 신비3단을 바치면서 아버지의 이 말씀에 젖어 보기도 했답니다.
아버지의 자녀임에 가장먼저 회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못하고 있는 저는 아니었는지를 반성도 해 보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시자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르는 어부들을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만약 저였더라면 “네” 하고 함께 갈 수 있었을까를 생각해 보지만
못할 것 같기도 하고, 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 왔다 갔다~~ㅎㅎ
말로만 아버지를 사랑한다 했나봐요. 그치요?
아버지께서는 어떤 기준으로 그들을 뽑았을까요?
허긴~~ 예전에 제가 어렸을 때 제 옷은 엄마가 다 손뜨개로 짠 옷이었습니다.
작으면 그 실을 다시 튿어서 새로운 옷으로 변신하지요.
실이 더 들어가니까 당연 다른 색 실로 섞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튿어낸 실을 풀어야 하는데 그게 일이더라구요.
난로에 주전자를 올리고 물이 끓으면 실을 통과시켜 꼬불꼬불했던 몸을 완전 풀어 새로나게 하셨답니다.
어린 마음에 “왜 그렇게 복잡하게 해? 그냥 뜨면 될껄.” 하고 말하자
“이렇게 풀지 않으면 옷이 웃긴다. 그래도 괜찮아?”
“아니 안돼” 라고 했더니 그러시더군요.
“새실로 처음 짠 옷이 가장 이쁘지만 헌실이 아깝잖아.”
“그래도”
“이건 입는 것이라 괜찮은데 넌 커가면서 엄마처럼 살면 안된다.
커가면서 바르고 좋은 습관을 몸에 배게 해야 나중에 힘들지 않다.
아주 깨끗한 하얀 삼베에 풀을 먹이면 그것 만큼 이쁜게 없다.
이해가 되니?” 라고~~ 지금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요.
아마도 아버지께서 그들을 뽑으신 것도 그런 것 같아요.
맘이 순박하고 깨끗한 이들!
성실하고 순명하며 믿음이 있는 이들!
그들이 아버지를 받아들임에 흡수가 빠르겠지요.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잖아요. 그쵸?
냉담자보다 차라리 새로운 사람을 아버지께로 인도하는 것이 훨 좋은 것 처럼이요.
그런 순박한 어부들에게 말씀하시지요.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라고~~
그러자 그들은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를 따릅니다.
순명하는 그 모습!
아버지께서 구원의 손길을 뻗치시자 그들은 그 손을 놓치지 않지요.
그만큼 깨끗하고 순박함에 아버지의 뒤를 따르겠지요.
사람낚는 어부!
정말 멋있어요.
강론중에 신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답니다. 뭔지 아세요?
사람낚는 어부는 신앙이라는 배를 타고 믿음이라는 그물을 내려
‘신앙인의 멋진 삶’이란 미끼로 끌어 올려야 한다 하셨지요.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얽힌 그물은 무엇인가’ 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정말 뭉클하면서도 가슴이 뜨금했었답니다.
그물을 버리고 따르는 그들의 모습이 제 모습이어야 하는데 과연 그런지요.
제 맘속 깊이에서 엉켜있는 그물!
아집,시기,질투,교만,이기심..등등..
여러 가지 물풀로 뒤얽힌 그물에 저가 감켜
움직이지 못하고 있진 않은지 반성해 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갈릴래아 호수가를 지나가시다가 어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라고~~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저를 돌이켜 봅니다.
저역시 아버지를 따르고 있지만 전 과연 무엇을 했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그들이 한번에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의 뒤를 따르듯이
저도 그렇게 순명하면서 저의 그물을 던져 버렸는지요.
아버지와 함도 당연한 것이고,
말씀에 저를 비추어 성찰함도 당연한 것이고,
가르침에 몸과 마음이 함께 함도 당연한 것이고,
사랑을 전하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봉사를 하는 것도 당연한 것인데
무슨 큰 일을 하는 것처럼 으스대며 저 스스로 그물을 만들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당연함에 고개드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의 말씀에 충실하여
얽힌 그물을 푸는 지혜를 주시어
가슴으로 회개하며 말씀으로 더욱 굳건한 믿음 생활할 수 있게 하소서.
그리하여 그물을 버리고 아버지께서 뻗치신 구원의 손을 잡는 어부처럼
저역시 아버지께 순명하며 새하얀 도자기를 구워낼 수 있는
성실함을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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