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연중 제 6주간 토요일(2/2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다. 미구에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보더라도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암시였다. 베드로는 주님의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복음).
    복음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3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천상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환란이 닥치더라도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의도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모세와 ‘예언자 엘리야’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 좋아 초막을 짓고 함께 지내자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엘리야 예언자가 종말에 다시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준비’를 위해 온다고 답변하십니다. 그러면서 세례자 요한을 암시하십니다.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면 누구나 ‘엘리야’가 되고 ‘세례자 요한’이 됩니다. 우리 주위에도 엘리야는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이 엘리야일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 교회 활동이 요한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 활동을 오해합니다. ‘하도 하라니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끌려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오히려 한 걸음 앞선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도처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엘리야와 요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느님 당신은 - 김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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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 6주간 토요일(2/2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다. 그들을 위로하시기 위해서다. 미구에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보더라도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암시였다. 베드로는 주님의 모습에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복음).
      복음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3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사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엘리야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천상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환란이 닥치더라도 지금의 모습을 기억하며 용기를 잃지 말라는 의도였습니다. 그 자리에는 모세와 ‘예언자 엘리야’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너무 좋아 초막을 짓고 함께 지내자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엘리야 예언자가 종말에 다시 온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지 않고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율법 학자들은 어째서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종말의 준비’를 위해 온다고 답변하십니다. 그러면서 세례자 요한을 암시하십니다.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면 누구나 ‘엘리야’가 되고 ‘세례자 요한’이 됩니다. 우리 주위에도 엘리야는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만이 아닙니다. 때로는 ‘하기 싫은 일’이 엘리야일 수 있습니다. 하기 싫은 교회 활동이 요한의 모습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교회 활동을 오해합니다. ‘하도 하라니까’ 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끌려가는 신앙생활입니다. 오히려 한 걸음 앞선 신앙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도처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엘리야와 요한을 만날 수 있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느님 당신은 - 김정식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 6주간 토요일(2/21)


      말씀의 초대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을 보증해 준다. 그러기에 옛사람들은 믿음에 매달렸다. 믿음이 있기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달을 수 있다. 아벨은 믿음이 깊었기에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주님께 바쳤고, 노아 역시 믿음을 지녔기에 하느님의 말씀을 따랐다(제1독서).
      제1독서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깨닫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1,1-7 형제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따라서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믿음 덕분에 아벨은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예물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는 죽었지만 믿음 덕분에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써,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를 하늘로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아무도 그를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들어 올려지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에 들었다.”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느님 마음에 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 나아가는 사람은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그분께서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써,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관하여 지시를 받고 경건한 마음으로 방주를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그는 믿음으로 세상을 단죄하고, 믿음에 따라 받는 의로움을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느님 당신은 - 김정식
    
    
    
    

  3. guest 님의 말: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저도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변 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의 세속적인 모습이 아닌 당신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남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신앙생활을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으로 그리고 기쁘게...
    세속에 얷매여 움켜지고 있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니라
    추기경님의 참뜻을 헤아리는 신앙인의 모습으로
     “너희와 우리 모두를 위하여”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진심으로...
    작심삼일이 아닌 언제나 최소한 지금의 모습보다는 나은 모습으로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주님!
    당신의 가르침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미워하지 않으며 용서하면서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기며
    저도 당신닮아 부끄럽지 않은 신앙인으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아니! 꼭 그리되리라 믿고 싶습니다 주님!
    변화된 모습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 간절합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그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 아버지의 소리가 들려왔도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아멘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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