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대로 처형할 것을 요구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신다.”
그들의 간계마저 용서하신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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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 제5주간 월요일(3/30)
말씀의 초대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율법대로 처형할 것을 요구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신다.” 그들의 간계마저 용서하신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8,1-11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율법은 간음한 여인을 사형에 처하도록 했습니다. 공동체에서 제거시킴으로써 하느님의 벌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전혀 뜻밖의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바리사이뿐 아니라 구경꾼들의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무엇인가 땅에다 계속 쓰고 계셨습니다. 악의에 찬 질문에도 그분께서 보여 주시는 배려입니다. 마침내 질문자들은 한 사람씩 자리를 뜹니다. 모두 가 버리자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모두를 용서하시는 말씀입니다. 여인은 어떤 모습으로 돌아갔겠습니까? 회한과 감동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기쁨을 갖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단순하고 따뜻한 사람이 ‘밝은 인간관계’를 맺고 삽니다. 그러니 하느님께도 밝은 관계를 지녀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대한 생각이 밝으면 신앙생활도 밝아집니다. 간음한 여인보다 그녀를 고발했던 사람들이 더 어두웠습니다. 그들은 ‘벌주시는 하느님’을 더 많이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랑의 하느님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사순 제5주간 월요일(3/30)
말씀의 초대
요야킴의 아내 수산나는 아름답고 주님을 경외하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재판관으로 임명된 두 원로가 수산나를 유혹하고는 곤경에 빠뜨렸다. 꼼짝없이 당해야 하는 곤경이었다. 수산나는 애절한 기도로 도우심을 청했다. 주님께서는 다니엘을 통해 그녀를 구원해 주신다(제1독서).
제1독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3,41ㄷ-62 (짧은 독서) 그 무렵 회중은 수산나에게 사형을 선고하였다. 그때에 수산나가 크게 소리 지르며 말하였다. “아, 영원하신 하느님! 당신께서는 감추어진 것을 아시고, 무슨 일이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다 아십니다. 또한 당신께서는 이자들이 저에 관하여 거짓된 증언을 하였음도 알고 계십니다. 이자들이 저를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것들을 하나도 하지 않았는데, 저는 이제 죽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수산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수산나를 처형하려고 끌고 갈 때,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라고 하는 아주 젊은 사람 안에 있는 거룩한 영을 깨우셨다. 그러자 다니엘이 “나는 이 여인의 죽음에 책임이 없습니다.”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온 백성이 그에게 돌아서서, “그대가 한 말은 무슨 소리요?” 하고 물었다. 다니엘은 그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자손 여러분, 여러분은 어찌 그토록 어리석습니까? 신문을 해 보지도 않고 사실을 알아보지도 않고, 어찌 이스라엘의 딸에게 유죄 판결을 내릴 수가 있습니까? 법정으로 돌아가십시오. 이자들은 수산나에 관하여 거짓 증언을 하였습니다.” 온 백성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원로 지위를 주셨으니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설명해 보게.” 다니엘이 “저들을 서로 멀리 떼어 놓으십시오. 제가 신문을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들이 그들을 따로 떼어 놓자, 다니엘이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악한 세월 속에 나이만 먹은 당신, 이제 지난날에 저지른 당신의 죄들이 드러났소. 주님께서 ‘죄 없는 이와 의로운 이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당신은 죄 없는 이들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고 죄 있는 자들을 놓아주어 불의한 재판을 하였소. 자, 당신이 참으로 이 여인을 보았다면, 그 둘이 어느 나무 아래에서 관계하는 것을 보았는지 말해 보시오.” 그자가 “유향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은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하느님에게서 판결을 받아 왔소. 그리고 이제 당신을 둘로 베어 버릴 것이오.” 다니엘은 그 사람을 물러가게 하고 나서 다른 사람을 데려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리고 그자에게 말하였다. “유다가 아니라 가나안의 후손인 당신, 아름다움이 당신을 호리고 음욕이 당신 마음을 비뚤어지게 하였소. 당신들은 이스라엘의 딸들을 그런 식으로 다루어 왔소. 그 여자들은 겁에 질려 당신들과 관계한 것이오. 그러나 이 유다의 딸은 당신들의 죄악을 허용하지 않았소. 자 그러면, 관계하는 그들을 어느 나무 아래에서 붙잡았는지 나에게 말해 보시오.” 그자가 “떡갈나무 아래요.”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다니엘이 말하였다. “진정 당신도 자기 머리를 내놓고 거짓말을 하였소. 하느님의 천사가 이미 당신을 둘로 잘라 버리려고 칼을 든 채 기다리고 있소. 그렇게 해서 당신들을 파멸시키려는 것이오.” 그러자 온 회중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당신께 희망을 두는 이들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다니엘이 그 두 원로에게, 자기들이 거짓 증언을 하였다는 사실을 저희 입으로 입증하게 하였으므로, 온 회중은 그들에게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이 이웃을 해치려고 악의로 꾸며 낸 그 방식대로 그들을 처리하였다. 모세의 율법에 따라 그들을 사형에 처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날에 무죄한 이가 피를 흘리지 않게 되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1.말씀읽기: 요한 8,1-11
2. 말씀연구
죄 있는 사람과 죄 없는 사람. 두 발을 땅에 디디고 살아가면서 죄를 안 짓고 살아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누구든지 크고 작은 죄들을 짓고 살아갑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그렇다면 내가 죄를 짓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죄를 짓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 자신은 완전한 것처럼 그렇게 옆 사람을 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 없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은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죄를 용서받은 사람. 그렇다면 나에게 잘못한 이들도 용서해 주고, 받아들여주어야 합니다. 또한 나와 관계없는 죄를 짓고 있는 그도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나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유다인들의 편협한 모습을 대하면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1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2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매일 매일 달려는 유다인과의 불쾌하고도 긴 토론을 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고요와 침묵과 고독을 누리시기 위해 올리브 산을 찾으신 것 같습니다. 바쁜 일상에서도 항상 하느님과 함께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날이 밝으면 다시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남들이 자신을 박해한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실 일을 당당하게 하십니다. 남이 뭐라 해도 하느님의 일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3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4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간음한 여자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4복음서에 수록된 것이 아니라 나중에 추가된 것으로서 예수님에 관한 매우 오래 된 이야기로 보인다. 당초에 빠져있었던 이유는 죄를 저지른 후에 엄격한 보속이 규칙으로 되어 있던 초대 교회가 보속이 없이 간음한 여자를 즉시 용서해 준 온당치 않은 너그러움을 어떻게 복음서에 첨가 시킬 수 있었는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 2세기의 신자들은 모든 죄는 세례를 통하여 사해진다고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죄, 즉 우상숭배, 불경죄, 살인, 간음, 거짓 증언, 사기와 같은 큰 죄는 다시 용서 받을 수가 없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몇 가지 죄목에 대해서는 두 번째까지 용서받을 수 있도록 허락한 것 같으나 배교, 간음, 살인은 너무 엄청난 죄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씻지 못한 채 남게 된 것으로 간주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교회 안에서는 조금씩 조금씩 더 큰 죄목들이 사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죄가 크냐 작으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는데 특히 간음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였다.
5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결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남자와 간음을 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신명기 9,15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명의 목격자가 있어야 하는데 남편은 아내를 거슬러 불리한 증언을 할 우려가 있기에 여기서 요구하는 목격자에서 제외됩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그 여인을 데려와서 예수님께 이 죄인을 다룰 가장 적절한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합니다. 장기를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다인들은 예수님께 “장군”을 불렀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율법과 같은 해결을 하였다고 한다면 자비에 대해서 가르쳐온 예수님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부인하게 되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또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백성 앞에서 예수님이 너무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외쳤을 것이고, 사형선고의 권리가 유다인이신 예수님께서 “죽여라!”하면 로마인들에게 살인을 교사했다고 고소했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동정을 느끼고 그녀를 용서해 주었다면 유다인들은 예수님을 율법을 거스른 자로 고발하고, 그러한 범죄를 사형으로 처벌하지 않았던 로마의 지지자라고 부르짖고 나설 것입니다. 그들이 보기에 완벽한 “외통”이었습니다.
6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성경에 정식으로 사형시키는 방법이 언급되지는 않았어도 에제키엘서 16,38-40에서 보듯이 간음에 대한 벌은 돌로 쳐 죽이는 것이 뚜렷이 나와 있고 예수님 시대에도 여전히 실행되고 있었던 것입니이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해 주라고 말한다면 모세의 율법을 거스르게 되니 고발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율법대로 처리하라고 말한다면 자비와 용서를 선포한 예수님 자신의 복음과 모순됩니다. 더구나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면 로마 정부에 반기를 드는 자로 고발당할 수 도 있습니다. 당시 로마 정부는 유다인들로부터 죄인을 재판하고 사형할 권한을 박탈했기 때문입니다. 즉 산헤드린(예루살렘에 있던 71명으로 구성된 유대인 최고회의)은 벌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더 이상 없었습니다.
유대인 지도자들은 예수님과의 정직한 대화를 고의적으로 피하고 예수님의 신용을 떨어뜨려서 그들로부터 제외시키려는 심산이었습니다. 사실 궁지에 몰린 간음한 여인의 처지가 그들의 안중에는 없었고, 오히려 그녀를 이용해서 무기로 삼아 예수님을 골탕먹일 심산이었습니다.
무엇인가를 땅에 쓰신 예수님의 이 동작은 아무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고 자기 생각에 골똘히 잠겨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러한 뜻 없는 것을 쓰신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문제를 법률상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암암리에 대답하려고 하신 것 같다. 그런 문제의 전문가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니 자신들이 해결하면 될 것이고, 안되면 재판소로 가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다인의 율법학자들도 자기네에게 향하 오는 복잡한 문제에 대해 언급을 회피하고 싶을 때에는 땅에 무엇인가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말 없이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고 계십니다. 무엇을 쓰고 계셨을까? 우리는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죄인은 땅에 기록되리라(예레미야 17,13)
예수님은 모든 인간이 하느님 앞에 죄인임을 일깨우고, 하느님만이 심판하실 수 있으니 하느님의 심판에 맡기도록 지시한 것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 행동은 그들로 하여금 깨닫도록 보여준 예언자적 표시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본에는 “예수께서는…그들 각 개인의 죄(목)들을 쓰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7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한 사람이 돌을 던지려고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의 죄를 땅바닥에 쓰십니다. 누구랑 간음. 누구 등치고. ……문득 그것을 본 돌 집은 사람은 슬그머니 그 돌을 내려놓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돌을 집었지만 예수님은 또 그의 죄를 적습니다….
죄가 없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지난 죄를 알려 주고 있다고 생각해보면….누가 돌을 던지겠습니까?
8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절대적인 원리 원칙을 내세우려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사람이든지 판단을 할 수 없고, 또한 어떤 범죄자에게도 그에 마땅한 벌을 줄 권한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심중을 뚫어 보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간음한 여인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의 관심사는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데 있었기에 이런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이제 율법학자들이 난관에 빠지게 됩니다. 돌로 치자니 자신이 죄가 없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안치자니 율법을 우습게 만들게 되는 것이고. 오히려 “외통”을 당한 것입니다.
9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하긴 자신의 죄를 인식한 사람이 다른 죄인에 대한 심판관으로는 자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인을 단죄하려던 사람들은 모두 가 버렸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부터 하나 하나 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나이 많은 사람들부터라는 말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합니다. 가끔 우리는 “나는 죄 없는 사람이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단지 자신이 그것이 죄라고 못 느낄 뿐이지…나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생각을 했고, 많은 경험을 했다는 것입니다. 벼가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것처럼 우리의 모습 또한 더욱 겸손해 지면서 남을 위험에 빠뜨리려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10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모두 가버리고 이제 예수님과 그 여인만이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여인아, 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라고.
11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동정심 없는 행위의 묘사와 곧 돌로 맞아 죽을 너무나도 미약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인의 모습 때문에 성 윤리의 기준에 대하여 감정에 치우쳐 여인의 죄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러한 처사는 바로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가 하느님의 자비로 인해 죄의 용서를 받았지만, 그 자비와 용서는 바로 이제부터 더는 죄를 짓지 않는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즉 죄의 용서라는 선물은 새롭게 살아야 한다는 의무가 반드시 포함되는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내가 남을 판단하고 있을 때 내가 판단하는 그 사람이 하느님의 자녀라는 생각을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내에서 돌로 치고 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이 있습니까?
② 고백성사를 볼 때 성찰을 어떻게 하십니까? 어떻게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용서를 청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인정하기만 하면 나의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니다. 나는 그 용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 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형제자매님들께 마음아픈 소식을 알려드려야겠어요
프란치스코 형제님께서 치매증세가 있으시다는 말이 들리네요
요양원에 계시다는 소리도 들리고 아직은 어느 병원에 계시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자매님이 말씀을 하지 않으셔서요
소식을 알게 되면 함께 병문안도 가고 기도해 드려야겠어요
어머나!
지난 달에도 모임에 나오셨는데 치매라구요?
며느리가 직장을 다녀서 손녀딸 봐주셔야 한다고 서울로 이사
가셨는데도 한달에 한번씩 모임에 꼭 참석하셨는데 어째
그런 일이 다 있대요?
성당에서 봉사도 하시고 활동을 많이 하셨는데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시니 아는 사람도 없어 우울증 걸릴 것 같다고 하시더니ㅠㅠㅠ
마음이 많이 아프네요
운동들 열심히 하시구요 우울증 걸리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신앙생활 합시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라 살면 우울증도 없어진대요
주님!
오늘 형제회모임에서 등산을 하였는데 지난달까지 모임에 나오시던
형제님께서 우울증세로 고생하시더니 치매로 요양원에 계시다고 합니다
얼마나 놀랐는지 복음을 묵상하는 지금도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성당에서 활동도 많이 하시고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신 분인데
안타까웠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도 모른다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지요
당신께 가는 그날까지 정신 줄은 놓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마음 뿐....
제가 할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느낍니다
당신만이 당신이 아니면 저는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사실에
그동안의 신앙생활을 반성을 했지요
요즘에는 세속에 얷매여 지지고 볶고 사느라 자식들 공부 가르치느라
특히 타국에서 공부를 하는 딸아이 때문에 저의 머릿 속에는
당신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부모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심지어는 저의 건강까지도 생각할 겨를이 없이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정신 줄을 놓고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더 소중하고 무엇이 중요한지 머리로는 모두 알고 있지만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처럼 모임에 가서 치매로 고생을 하고 계시다는 형제님의
소식을 들을때야 뜨끔하지요
제가 얼마나 실속없이 살고 있는지 반성이 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어서 돌아가라. 그리고 이제 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섣부른 판단으로 상처를 주는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아야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적어도 당신께 받은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베풀며
당신께 용서받은 저의 잘못을 생각하며 남의 허물을
감싸주는 사랑이 많은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복음을 묵상 할 때 만의 일시적인 기분이 아니라
복음묵상하는 신앙인답게 당신께 사랑받는 신앙인답게
꼴값을 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
진심으로 뉘우쳐 나에게 돌아오너라.
나는 인자하고 자비롭도다.
아멘
♬ Sissel – Spread your wide wings
편안하고 여유로운 주일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어둠이 오기까지 정말 행복했고
아버지의 사랑에 감사하면서 보낸 하루가
제게 더 큰 기쁨을 주고 있음에 새삼 어깨에 힘을 줍니다.
아버지!
얼마나 따뜻하고 인자하시고 사랑이 넘치는 아버지신데
율법학자들은 아버지께선 벌을 주시는 아주 무서운 분으로 알고 있나봐요.
그치요? ㅎㅎ
말씀에서 보면 율법학자들이 참 안됐어요.
아버지더러 어쩌라고~~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사랑하는 자식이기에
회개하기를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신데
나쁜 사람들은 어떻게든 옭아매려 하지요.
모세율법대로 하면 자비와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아니면 어긴다고 할 것이면서~~~
그런 간교한 율법학자의 모습으로 제가 설 수 있음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근데 궁금한게 있답니다.
뭐라고 쓰셨을까요? ㅎㅎ 그냥요.
아마도 죄명을 쓰시면서 회개할 시간을 주신걸까요?
그냥 궁금했어요.
용서하지 못할 사람도 없고
용서받지 못할 사람도 없음을 압니다.
그러기에 남을 탓하기전에 저를 먼저 보아야겠지요.
하지만 잘하고 있는지 돌이켜 봅니다.
대체적으로 돌은 던진 것 보다는 맞은 기억만이 남는 법이잖아요.
그러면서 저사람이 던졌다고 말하지요.
그러다보면 그것이 억울해 아니라고 몸으로 버둥거려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더 큰 아픔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알고서~~
그래서 이젠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기보다
그냥 넘어갑니다.
사랑하는 아버지께서 혼내주실 것인데
제가 힘을 뺄 필요가 없음을 알거든요.
그렇다고 때려달라고 하진 않잖아요.
그냥 푸념만 할 뿐이지요. ㅎㅎ
아버지를 아니까요.
상대가 누구든 먼저 매를 들기보다
그가 뉘우치길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임을 알기에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고 그냥 기다립니다.
언제가 되었든 그 또한 그 사람의 몫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게도 그런 시간을 주실 아버지시잖아요.
몇 번이고 무한정의 시간을 주시면서 저를 보듬어 주실테니까요.
보고있어도 보고싶다 하지요.
아마도 아버지를 두고 한 노래인가? ㅎㅎ
사랑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단죄하라는 율법학자와 백성들앞에서
“너희 가운데에서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죄 없는 자가 먼저 ~~
늘 삶을 살면서 저를 보기 전에
남을 먼저 탓하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하시는 것 같아 가슴깊이 와 닿습니다.
저의 잘못을 보기보단 상대의 잘못을 먼저 보면서
사람들을 동요했던 적은 없었는지요.
그리고 감히 아버지께 그에게 벌을 주십사고 청한적은 없었는지요.
벌을 주시는 아버지가 아니라 어떤 자식이라도
회개할 시간을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심을 모르고
저의 교만으로 저만의 아버지로 착각하면서 살아오진 않았는지를 반성하기도 합니다.
사랑의 매도 대기 아까운 자식이기에 회개의 시간을 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며
말씀에 저의 삶을 비추어 다듬게 하소서.
비록 같은 실수를 할 지라도 덮어버리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다시 고백하며 아버지를 바라보게 하소서.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라고 하시는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속에서
진실로 회개하는 저가 되어 기쁨의 삶이 되게 하소서.
아멘.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자는 간음한 여자에게
먼저 돌을 던지라고 하시지만, 아무도 그 여자를 단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살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지요.
저 또한 살아오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지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저 역시 아무나 판단하고 편협된 생각으로 내 이웃을
대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내 이웃을 판단하고 내 가족의 잘못된 점을
향해 돌을 던지느라 하루가 짧게만 느끼며 살지 않았었나 반성해봅니다.
정말 그 어떤 이에게도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이 저에게
없다는 것을 망각한채 말이지요.
오늘 독서 말씀에서도 수산나의 억울함을 지혜로운 방법으로
풀어주는 명판사 다니엘을 보고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원로 두 사람이 달려들어 한 사람을 죄인으로 몰기는 식은 죽 먹기
일터인데도, 하느님은 억울하고 약한자의 진실을 그냥 두고 보시지만
않습니다.
복음에서의 간음한 여자를 죄 없는 사람부터 돌로 치라 하시면서
구경꾼들까지도 스스로 자신의 죄를 반성하게 하셨던 예수님의
명판결과 다니엘의 명 판결이 거의 같은 맥락임을 느끼게 합니다.
모두가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으리라….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는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신 말씀을 깊이 새기며…
사랑이신 주님!
하루에도 몇번씩 남을 판단하는 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주시어
오직 하느님의 몫인 판단을 자격없는 제가 함부로 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