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위에서 오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복음).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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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2주간 목요일(4/23)
말씀의 초대
위에서 오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다. 그러기에 그분께서는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따라 십자가를 지셨고, 죽음의 길을 가셨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도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복음).
복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31-36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땅에서 난 사람은 땅에 속하고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는데,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게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하늘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아름다운 것이든 추한 것이든 모두 받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을 통해 세상을 구원하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애매한 기준으로 나쁜 것, 추한 것으로 구분하고 멀리하려 합니다. 세상 안에 있는 것은 모두 좋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 역시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섣불리 ‘좋다. 나쁘다.’ 하며 구분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것에서 ‘좋은 모습’을 먼저 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이 영적 생활로 가는 길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종교는 옳지만 너희 종교는 잘못되었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깊이 역시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생겨납니다. 믿음에 깊이가 없기에 자신만 옳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만 옳다.’고 생각하면 ‘나만 고통 받는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러면 남을 생각할 여력이 없어집니다. “위에서 오시는 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신다.”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포용하는 분이지 거절하는 분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분은 받아들이시는데 우리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늘 돌아봐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부활 제2주간 목요일(4/23)
말씀의 초대
대사제는 사도들을 신문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한 이유를 묻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예수님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반발한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하다고 외친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며,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5,27-33 그 무렵 경비병들이 사도들을 데려다가 최고 의회에 세워 놓자 대사제가 신문하였다. “우리가 당신들에게 그 이름으로 가르치지 말라고 단단히 지시하지 않았소? 그런데 보시오, 당신들은 온 예루살렘에 당신들의 가르침을 퍼뜨리면서,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하고 있소.” 그러자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였다.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영도자와 구원자로 삼아 당신의 오른쪽에 들어 올리시어,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죄를 용서받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하여 사도들을 죽이려고 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아들 주셨으~니 그를 믿는이는 누구나 다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아들 주셨으~니 그를 믿는이는 누구나 다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잘 못하지만 오늘 아버지의 말씀인지라 저도 모르게~~
음치인데도 불구하고 군인성가책을 찾아가지고 세 번이나 불렀네요. ㅎㅎ^*^
노래를 부르는 내내 애잔한 마음이 저를 덮었답니다.
뭐라 딱히 표현하긴 그렇지만요~~
아무런 조건없이 그저 받기만 한 그런 자식의 마음이랄까~~
늘 말씀하시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저의 무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전에
다른 곳으로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아닌지요.
저희를 사랑하심에 자식을 내어주시는 아버지!
만약 저라면 저의 아들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요?
못할것입니다.
때론 앞만 보고 달리는 저를 보기도 합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지요.
그러고 지치면 그제서야 달려온 길을 돌아봅니다.
왜 그렇게 달렸을까를 생각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저를 가끔은 본답니다.
그러다 후회하지요.
무엇에 쫒기듯 달리는 저의 나약함 때문임을~~
사랑 때문에 자식을 보내어 저희를 구원하시려는 크신 사랑을 이해했다면
그러진 않았겠지요.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다 고백하면서 정녕 그러했는지도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모든 권능을 쥐어주시고 두분의 사랑이 저희곁에 머물며 지켜주심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저였다면
진정한 신앙인이라 고백할 수 있었을텐데요. 그치요?
아버지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진리로 나아가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를 드리면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리라고~~
또한 회개의 꽃을 피우며 가꾸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짐해 봅니다.
저가 넘어야 할 고지는 아버지를 뵙는 그 순간임을 기억하면서
늘 깨어 기도한다면 완전 행복한 삶의 연속이겠지요.
지금도 행복하고 기쁘고~~ 그래서 늘 감사드리지만~~ ㅎㅎ
저가 받을 준비를 해야만 주심도 잊지 않으면서 예쁘게 살아가는 딸이되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라고 하십니다.
신앙을 고백하면서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늘 잊고 살아왔음을 뉘우쳐 봅니다.
저의 어설픈 교만이 저를 더 병들게 하진 않았는지요.
머리로는 다 알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깊이 담지 않았음도 반성해 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다 하면서 정말 가슴으로 받아들였는지요.
그리고 사랑을 느꼈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가 지금보다 더 깊은 대화를 하게 하소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잠자는 저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며 실천하게 하소서.
사랑이 바람에 실려~
바람에 사랑이 실려 언제 어느때 올지 모르는 만큼 늘 깨어있게 하시어
제 가슴에 담게 하소서.
삼위일체 교리를 담은 가슴 쟁반에 사랑을 꽃피우게 하소서.
아멘.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아들 주셨으~니 그를 믿는이는 누구나 다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하느님이 세상을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아들 주셨으~니 그를 믿는이는 누구나 다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영원한 생명을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
잘 못하지만 오늘 아버지의 말씀인지라 저도 모르게~~
음치인데도 불구하고 군인성가책을 찾아가지고 세 번이나 불렀네요. ㅎㅎ^*^
노래를 부르는 내내 애잔한 마음이 저를 덮었답니다.
뭐라 딱히 표현하긴 그렇지만요~~
아무런 조건없이 그저 받기만 한 그런 자식의 마음이랄까~~
늘 말씀하시지만 알아듣지 못하는 저의 무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리는 것은 아닌지요.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전에
다른 곳으로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은 아닌지요.
저희를 사랑하심에 자식을 내어주시는 아버지!
만약 저라면 저의 아들을 내어놓을 수 있을까요?
못할것입니다.
때론 앞만 보고 달리는 저를 보기도 합니다.
무엇을 위해 달리는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지요.
그러고 지치면 그제서야 달려온 길을 돌아봅니다.
왜 그렇게 달렸을까를 생각하면서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저를 가끔은 본답니다.
그러다 후회하지요.
무엇에 쫒기듯 달리는 저의 나약함 때문임을~~
사랑 때문에 자식을 보내어 저희를 구원하시려는 크신 사랑을 이해했다면
그러진 않았겠지요.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다 고백하면서 정녕 그러했는지도 돌이켜 보기도 합니다.
아버지의 모든 권능을 쥐어주시고 두분의 사랑이 저희곁에 머물며 지켜주심을 잊지 않고
하루하루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그런 저였다면
진정한 신앙인이라 고백할 수 있었을텐데요. 그치요?
아버지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진리로 나아가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겠다고 다시금 다짐해 봅니다.
그래서 빛으로 나아가는 삶으로
아버지의 얼굴에 미소를 드리면서 영원한 생명을 향해 전력질주를 하리라고~~
또한 회개의 꽃을 피우며 가꾸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다짐해 봅니다.
저가 넘어야 할 고지는 아버지를 뵙는 그 순간임을 기억하면서
늘 깨어 기도한다면 완전 행복한 삶의 연속이겠지요.
지금도 행복하고 기쁘고~~ 그래서 늘 감사드리지만~~ ㅎㅎ
저가 받을 준비를 해야만 주심도 잊지 않으면서 예쁘게 살아가는 딸이되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라고 하십니다.
신앙을 고백하면서 머리로는 이해를 하지만 늘 잊고 살아왔음을 뉘우쳐 봅니다.
저의 어설픈 교만이 저를 더 병들게 하진 않았는지요.
머리로는 다 알면서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깊이 담지 않았음도 반성해 봅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믿는다 하면서 정말 가슴으로 받아들였는지요.
그리고 사랑을 느꼈는지요.
아버지!
부족한 저가 지금보다 더 깊은 대화를 하게 하소서.
영원한 생명을 바라며 잠자는 저가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며 실천하게 하소서.
사랑이 바람에 실려~
바람에 사랑이 실려 언제 어느때 올지 모르는 만큼 늘 깨어있게 하시어
제 가슴에 담게 하소서.
삼위일체 교리를 담은 가슴 쟁반에 사랑을 꽃피우게 하소서.
아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한 없는 사랑을 깨닫습니다
주어도 주어도 퍼주고 또 퍼주어도 아까워하지 않는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에 용기가 생깁니다
자비하신 당신의 사랑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가 당신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도 하지요
미련하고 우매한 헬레나는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아니!
당신께 가는 그날까지 당신께서 주신 것을 넙죽넙죽 받아 먹기만하고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할 일은 고사하고 더 받지 못해 안달을 하는 욕심쟁이 헬레나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하는 헬레나
하혜와 같은 은혜를 입고서도 더 많은 것을 바라는 헬레나
세속의 욕심의 끈을 보물처럼 끌어 앉고 있으면서 남에게 들킬까
온갖 치장에 변장까지 하고 꼬리를 감추고 있는 헬레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저의 욕심과 이기심의 끝이 보이지 않네요
자신은 회개 할줄 모르고 남의 탓 만하고
남의 떡만 커 보이니 언제쯤이면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할수 있는지...
자비하신 당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합니다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는 하혜와 같은 당신의 사랑을 받고서도
성에 차지 않아 늘 불만을 달고 사는 헬레나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자비하신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당신 닮아 자비로운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눈이 멀어있는 저의 모습을 회개하며
당신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자비하신 당신을 증언하며 당신의 자녀답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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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에서 당신께서는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당신의 한 없는 사랑을 깨닫습니다
주어도 주어도 퍼주고 또 퍼주어도 아까워하지 않는
무한하신 당신의 사랑에 용기가 생깁니다
자비하신 당신의 사랑이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제가 당신께 드릴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도 하지요
미련하고 우매한 헬레나는 어제도 오늘도 아마 내일도 아니!
당신께 가는 그날까지 당신께서 주신 것을 넙죽넙죽 받아 먹기만하고
어쩌면 더 많은 것을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할 일은 고사하고 더 받지 못해 안달을 하는 욕심쟁이 헬레나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하는 헬레나
하혜와 같은 은혜를 입고서도 더 많은 것을 바라는 헬레나
세속의 욕심의 끈을 보물처럼 끌어 앉고 있으면서 남에게 들킬까
온갖 치장에 변장까지 하고 꼬리를 감추고 있는 헬레나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을 해보니 저의 욕심과 이기심의 끝이 보이지 않네요
자신은 회개 할줄 모르고 남의 탓 만하고
남의 떡만 커 보이니 언제쯤이면 신앙인의 모습으로 변할수 있는지...
자비하신 당신의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더 갖지 못해 안달을 합니다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는 하혜와 같은 당신의 사랑을 받고서도
성에 차지 않아 늘 불만을 달고 사는 헬레나입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자비하신 당신의 사랑을 깨달아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며
당신 닮아 자비로운 신앙인 헬레나가 되어야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세속의 욕심과 이기심으로 눈이 멀어있는 저의 모습을 회개하며
당신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굳게 믿습니다
자비하신 당신을 증언하며 당신의 자녀답게...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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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르게 된다.”
순종…. 그것도 인간에 대한 순종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라야 한다는 말씀에
과연 나는 무엇을 어떻게 어느 방법으로 순종했었을까….
하느님의 아드님께 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순종하기는 커녕, 오히려 저에게만 시련을 주신다고 투정만을 일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례성사 때 이미 하느님께 순종하겠다는 맹서를 했었을텐데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땐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으로써 너무 어렸기에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모르고,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서 예식의 절차에 따라
이루어 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어쩌면 부활성야 세례갱신식때 사제가 외치는 “우리는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하신 말씀이 더욱 심오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길임을 깊이 인식하고 세례때 다짐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늘 말씀을 가까이 하여 실천하도록 다시금 다짐해 보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진노가 아닌 영원한 생명의 손길이 제 위에 머무르도록
오늘도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렵니다.
그 가장 작지만 소중한 방법인 밝은 모습으로 내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을
바라보겠습니다.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아드님을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
그러나 아드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생명을 보지 못할 뿐만아니라,
하느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무르게 된다.”
순종…. 그것도 인간에 대한 순종이 아닌 하느님께 대한 순종이라야 한다는 말씀에
과연 나는 무엇을 어떻게 어느 방법으로 순종했었을까….
하느님의 아드님께 순종하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순종하기는 커녕, 오히려 저에게만 시련을 주신다고 투정만을 일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례성사 때 이미 하느님께 순종하겠다는 맹서를 했었을텐데도 지금은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그땐 초등학교 입학하기도 전으로써 너무 어렸기에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조차 모르고, 부모님의 의지에 의해서 예식의 절차에 따라
이루어 졌을 것이라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어쩌면 부활성야 세례갱신식때 사제가 외치는 “우리는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살아났습니다.”
하신 말씀이 더욱 심오하고 의미있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 그것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얻어 하느님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길임을 깊이 인식하고 세례때 다짐했던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늘 말씀을 가까이 하여 실천하도록 다시금 다짐해 보는 시간입니다.
하느님의 진노가 아닌 영원한 생명의 손길이 제 위에 머무르도록
오늘도 당신의 사랑을 실천하렵니다.
그 가장 작지만 소중한 방법인 밝은 모습으로 내 가족과 동료와 친구들을
바라보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맞아요 주님!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말씀을 믿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니!
당연히 믿어야하지요? 당신의 자녀라면…
그런데요 주님!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니 큰일이지요?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의 믿음이 부족해서지요
언제나 하루에도 열두 번씩 변하는 변덕스런 저의 심성도
머리로 생각하는 것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으니
당신의 말씀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마음 뿐…
하지만 믿습니다
언젠가는 변하리라고…
저의 부족한 믿음도 저의 변덕스런 마음도 모두 다…
당신의 사랑으로 변하리라고 믿습니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말씀을 굳게 믿는 날이 오리라고 …
아멘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