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노동자 성 요셉(5/31)


    184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조선교구의 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의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비오 9세 교황은 성 요셉을 ‘모든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각각 선언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하여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을 찾아가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를 한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출신의 편견을 넘지 못하고 있다(복음).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 말씀을 전하십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어서 빨리 알리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청중을 압도하시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펼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큰둥합니다. 놀라긴 했지만 ‘엉뚱한 놀람’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말씀의 내용에는 관심 없고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선입관 때문입니다. 별 볼일 없는 출신이라는 선입관입니다. 눈앞의 기적에도 마음을 열지 않는 ‘독한 선입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힘이 빠지셨나 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라고 하시며 자리를 뜨셨기 때문입니다. 선입관을 넘지 못하면 변화는 없습니다. 변화가 없는 곳에는 기적 또한 없습니다. 목수는 요셉 성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목수는 보통 사람들의 직업으로, 가재도구나 농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편견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요셉 성인은 ‘노동자의 수호성인’입니다. 목수였기에 이런 칭호가 주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가지며 사셨기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성가정을 보호하며 사셨기에 기도와 보호를 청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의로운 성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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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노동자 성 요셉(5/31)


      184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성 요셉과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조선 교회의 공동 수호성인으로 선언하였다. 조선교구의 2대 교구장인 앵베르 주교의 청원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후 비오 9세 교황은 성 요셉을 ‘모든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베네딕토 15세 교황은 ‘노동자의 수호성인’으로 각각 선언하였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공산주의자들의 노동절에 대응하여 5월 1일을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을 찾아가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신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의 본모습을 보지 못한 채 엉뚱한 소리를 한다.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형제들과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출신의 편견을 넘지 못하고 있다(복음).
      복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58 그때에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 말씀을 전하십니다. 주님의 기쁜 소식을 어서 빨리 알리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청중을 압도하시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펼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시큰둥합니다. 놀라긴 했지만 ‘엉뚱한 놀람’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말씀의 내용에는 관심 없고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선입관 때문입니다. 별 볼일 없는 출신이라는 선입관입니다. 눈앞의 기적에도 마음을 열지 않는 ‘독한 선입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힘이 빠지셨나 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라고 하시며 자리를 뜨셨기 때문입니다. 선입관을 넘지 못하면 변화는 없습니다. 변화가 없는 곳에는 기적 또한 없습니다. 목수는 요셉 성인을 가리킵니다. 당시 목수는 보통 사람들의 직업으로, 가재도구나 농기계를 만들고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편견을 가졌던 것입니다. 오늘날 요셉 성인은 ‘노동자의 수호성인’입니다. 목수였기에 이런 칭호가 주어진 것만은 아닙니다. 당당하게 ‘자신의 일’을 가지며 사셨기에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성가정을 보호하며 사셨기에 기도와 보호를 청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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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노동자 성 요셉(5/31)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리하여 바다의 물고기와 땅 위의 모든 짐승을 다스리게 하셨다. 그분께서 주신 ‘창조 능력’이다. 주님께서는 창조 사업을 마치시고 마지막 날에는 쉬셨다. 안식일의 기원이 되는 날이다(제1독서).
      제1독서
      <너희는 온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6─2,3<또는 콜로 3,14-15.17.23-24>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그가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집짐승과 온갖 들짐승과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내리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온 땅 위에서 씨를 맺는 모든 풀과 씨 있는 모든 과일나무를 너희에게 준다. 이것이 너희의 양식이 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모든 생물에게는 온갖 푸른 풀을 양식으로 준다.” 하시자, 그대로 되었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손수 만드신 모든 것이 참 좋았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엿샛날이 지났다. 이렇게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하느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이렛날에 다 이루셨다. 그분께서는 하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이렛날에 쉬셨다.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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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어느 듯 오월이네요. 아버지!

    푸르름과 싱그러움이 그리고 바람조차 아름다운 오월입니다.

    생동감을 가슴으로 느끼면서 마음을 더 활짝 여는 달이기도 하지요.

    언제나 그렇듯 성모님의 손을 잡고 아버지께로 향하지만

    오월은 더 깊이~ 더 많이 성모님을 부르게 되는 달이기도 합니다.

    아버지!

    오늘은 ‘노동자 성 요셉 기념일’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는데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가정환경을 기록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주 사소한 생활환경 조사지요.

    부모님의 직업까지~~

    그래도 전 많은 것들을 체크할 수 있어서 어깨가 으쓱했답니다.

    새학년이면 하는 것이라 아버지께서 다 사셨답니다. 저희가 입학하면서~ ㅎㅎ

    혹여 기죽을까 싶어서 그러셨대요.

    그래서 저희집엔 흑백 텔레비전이 나오면서 곧바로 있었답니다.

    저녁이면 동네 사람들과 아이들이 저희집에 보러왔지요.

    그러고 보면 참 정겨운 모습이었던 것 같습니다.

    여름엔 마루에 텔레비전을 꺼내놓고 마당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보았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모깃불을 피우고 엄마는 먹을거리를 잊지 않고 내어 놓았습니다.

    힘들게 일하고 어려울법도 한데 늘 그리 하셨지요.

    반면 겨울엔 방에서 보게 되니까 정말 어려웠습니다. 비좁아서~~

    짜증을 낼 때면 아버지께선 조용히 저를 데리고 나오셔서 타이르셨습니다.

    나중에 우리것이 고장나면 너도 가야하는데 그집에서 그러면 어쩔꺼냐고~~

    생각해 보니 그럴 것도 같았지요.

    수긍하는 절 데리고 들어가시기 전에 따뜻한 고구마를 먼저 먹이셨습니다.

    그런뒤에 절보고 들고 가서 드리라고 시켰지요.

    그러던 친정 아버지께서 얼마전에 그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전에 철없던 시절에 동네에서 속을 썩인 친구였는데 이젠 철도 들고 잘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와서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인사도 드리고

    동네 어르신들께 식사도 대접해주고 갔다고 합니다.

    좋았겠다고 했더니 친정 아버지께서 씁쓸한 웃음을 지으시며 고개를 저었지요.

    그러면서 얘기를 하셨습니다.

    선입관을 버리지 못하는 어른들이 참 야속했다고~~

    그 사람이 철이 들어 변한 지금의 모습을 봐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인정해 주지도 않고 식사를 하면서 수군거리는 내용이

    “뭐해서 돈 벌었대? 어디서 못된 짓 한거 아니야?” 등등……

    참 가슴이 아팠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사를 하다가 오셨다고~~

    그러면서 제게 물으셨답니다. “넌 내가 평생 농사를 짓는게 안챙피하냐?” 라고~~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너무 자랑스러워. 난 아버지처럼 못살지. 딸인게 자랑스러워이~”

    “하하하 고맙다. 말이라도 그리 해주어서~”

    그러시더니 한참을 있다가 그러시더군요.

    그 친구가 왔다 가고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

    당신 때문에 자식들이 체면이 안서는 것은 아닌가 싶었답니다.

    좋은 도시에 멋진 직업을 가진 부모에게 태어났다면 아들,딸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싶기도 하고

    살아가는데도 당당했을텐데 라는 말을 하시더군요.

    저희가 잘해도 부모 때문에~~ 라고 하시는데 참 많이 약해지셨구나 싶어서

    전 저 나름대로 가슴이 아팠답니다.

    그리고 제게 그러셨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을 때까지 선입관을 자기고 사람을 대하지 말라고~

    그러면 넌 그보다 못한사람이라 했습니다.

    인생은 멋지게 살아야 한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만족한 삶이란 없다고 했습니다.

    맘을 채우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살아가면서 아둥바둥하지만 결국은 맘을 다 채우지 못한채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맘속에 등분을 해서 가장 중요한 것과 조금 약한 것을 잘 나누어 비중을 잘 두며 살라고~~

    그리고 선입견을 버리고 현재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 이의 변화된 모습을 봐 주라고 하셨지요.

    단 그가 진정을 변했는지도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아니면 되려 아픔이 올수도 있다고~~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버지께서 나자렛으로 가실 때 얼마나 기쁜 맘으로 가셨을까요.

    고향에 가시어 기쁜 소식을 전하려니 얼마나~~

    하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

    그들의 모습에서 저를 봅니다.

    아마도 아버지께선 이미 알고 계셨을지도~~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그것이 사실로 다가올 땐 서운하고 맘이 아프것도 사실인데~~

    그러면서도 그들을 먼저 걱정하셨겠지요?

    그들의 선입견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음을 압니다.

    공동체에서도 바르지 않은 선입견이 일치를 깨는 경우도 많이 있지요.

    혹 제가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 기적이 일어날 수 없음을 압니다.

    은총을 담을 그릇을 준비해야 아버지께서 채워주시듯~~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나자렛으로 가십니다.

    기쁨을 전하려 하셨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놀라워 하지만 말씀의 내용보단 어린시절만을 생각하나 봅니다.

    어디서 저런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를 놀라워 하면서도 그들은

    “저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라고 합니다.

    제 모습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전의 모습에 연연하면서 현재의 변화된 그를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지 않는 저는 아니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성모성월을 맞이하여 더 열심히 인사드리게 하소서.

    언제 어느 때고 성모님과 함께 손을 잡고 아버지를 깨우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가 먼저 변화되어 넓은 가슴으로 인정과 사랑의 꽃을 선사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주님!

    오늘복음에서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말씀하십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회당의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저의 모습임을 느낍니다
    언제나 선입견으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판단하지 않으며
    무시와 질시로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요? 바로 저 헬레나가 그랬습니다
    본당에서 봉사를 할 때에도 제가 만들 틀에 들어오기를
    기다리며 의견이 맞지 않는 형제 자매들을 경솔하게 판단했습니다
    봉사정신이 없다느니 믿음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저에게는 판단 할 자격이 없는데도...
    잘난 척을 많이 했습니다
    심지어는 남의 가정사까지 들먹이며 상처를 주었습니다
    저의 마음이 그러하니 저 역시 상처를 받을 때도 많았지요
    그리고 혼자서 울고 불고 길길히 날뛰기도 하고 가슴앓이를
    많이 하면서 봉사를 하지 않겠다고 협박(?)아닌 협박을 하며

    요즈음...
    몇 년동안 봉사를 하지 못하니 마음 한 구석에 죄스러운 마음이 듭니다
    예전에 선입견으로 섣부른 판단을 했던 자신을 원망하고 후회를 하지요
    그런데도 당신께서 저에게  축복을 많이 주신 것같은 생각이 듭니다
    저의 옹졸한 밴댕이 같은 속을 들키지 않았으니 ..
    요즈음도 저를 보면 그럽니다 봉사를 많이 했다고 ...
    참 우습지요?주님!
    저의 본색이 들어나지 않았으니 제가 그래도 변장술이 뛰어났나 봅니다
    아직도 많은  형제자매들이 저를 보면 그럽니다
    바쁜데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믿음이 깊다고...

    아마 복음묵상을 몇 년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까지 미움 받지 않고 봉사정신이 많다는 칭찬을 들으니...
    저의 본색이 들어날까 두렵기도 하지만 아무튼...
    저를 열심한 신앙인으로 보는 형제자매들이 많은 것을 보면서
    당신의 자녀가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기쁘고 행복하기도 하지요
    당신께 죄스러운 마음이 가득하지만...
    사랑이신 당신께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저에게 축복을 주신 것같아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다짐을 해봅니다
    당신의 자녀답게 당신께 축복받은 사람답게
    열심히 그리고 예쁘게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당신께서 도와주시리라는 믿음으로
    언제부터 바로 오늘부터^*^

    주님께서는 나날이 찬미받으소서.
    우리 위하여 짐을 지시는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이시로다.
    ◎ 알렐루야.
    아멘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묵상하며

     


    ♬ 의로운 성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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