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성령 강림 대축일(5/31)


    성령 강림 대축일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사도 2,1-3). 성령 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신약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가 탄생한 날이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어떤 불안과 두려움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평화와 기쁨이 함께합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성령의 은총이 절실합니다.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그 용기와 열정을 우리에게도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원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소심해졌다.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들 앞에 부활하신 스승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그분의 말씀에 제자들은 영적 체험을 시작한다(복음).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23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령께서 오시던 날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적의 자리에 있었고 기적의 음식을 먹었던 그들임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은 당당하게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어찌하여 당당할 수 없었는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순교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습니다. 내면에서 솟는 힘과 용기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을 성령의 활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아직 공적으로 활동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어느 날 모습을 바꿉니다. 죽음을 초월한 모습으로 군중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넋을 뺏기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신을 잃을 만큼의 체험을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만났던 것입니다. 성령 체험은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전능을 깨닫는 체험입니다. 제자들은 이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용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도 그런 ‘체험의 은총’이 다가오는 날입니다. 마음을 열기만 해도 ‘성령의 모습’은 깨달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부활 시기가 끝났으므로, 내일부터는 보통 삼종 기도를 바친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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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령 강림 대축일(5/31)


      성령 강림 대축일 “오순절이 되었을 때 그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사도 2,1-3). 성령 강림 대축일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사도들에게 강림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로서, 신약의 새로운 백성인 교회가 탄생한 날이다. 오늘의 전례 오늘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어떤 불안과 두려움도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평화와 기쁨이 함께합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성령의 은총이 절실합니다. 사도들에게 내리셨던 그 용기와 열정을 우리에게도 주시길 청해야겠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을 기원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소심해졌다. 사람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런 그들 앞에 부활하신 스승님께서 나타나신 것이다. “성령을 받아라.” 그분의 말씀에 제자들은 영적 체험을 시작한다(복음).
      복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19-23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성령께서 오시던 날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숨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기적의 자리에 있었고 기적의 음식을 먹었던 그들임에도 숨어 있었습니다. 초대 교회 순교자들은 당당하게 죽음의 길을 갔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어찌하여 당당할 수 없었는지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순교자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순교자들에게는 주님의 이끄심이 있었습니다. 내면에서 솟는 힘과 용기였습니다. 하느님의 이러한 개입을 성령의 활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에게는 없었습니다. 성령께서 아직 공적으로 활동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자들이 어느 날 모습을 바꿉니다. 죽음을 초월한 모습으로 군중 앞에 나타납니다. 그러고 나서는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밝힙니다. 며칠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넋을 뺏기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실제로 그들은 정신을 잃을 만큼의 체험을 했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만났던 것입니다. 성령 체험은 이렇듯 자신의 존재를 뛰어넘는 행위입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잊어버리고 하느님의 전능을 깨닫는 체험입니다. 제자들은 이 체험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용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에게도 그런 ‘체험의 은총’이 다가오는 날입니다. 마음을 열기만 해도 ‘성령의 모습’은 깨달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부활 시기가 끝났으므로, 내일부터는 보통 삼종 기도를 바친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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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령 강림 대축일(5/31)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제자들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신비로운 기운이 온 집 안에 가득해졌다. 성령께서 바람 소리처럼 오신 것이다. 곧이어 불꽃 모양의 혀들이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러자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가득히 받고 영적인 사람으로 바뀌었다(제1독서). 성령께서는 예수님에 대한 가르침을 주신다. 그분의 힘을 받지 않으면 누구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하고 고백할 수 없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이나 똑같은 성령께서 주시는 것이다(제2독서).
      제1독서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말하기 시작하였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2,1-11 오순절이 되었을 때 사도들은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 안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예루살렘에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말소리가 나자 무리를 지어 몰려왔다. 그리고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하였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 프리기아와 팜필리아와 이집트 주민, 키레네 부근 리비아의 여러 지방 주민, 여기에 머무르는 로마인, 유다인과 유다교로 개종한 이들, 그리고 크레타 사람과 아라비아 사람인 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12,3ㄷ-7.12-13 형제 여러분,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 주십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의 지체는 많지만 모두 한 몸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습니다. 또 모두 한 성령을 받아 마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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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평화가 너희와 함께!”

    길을 잃고 헤매던 깊은 산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소리가 귀를 울릴 때의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면 모든 일에 소심해지고

    자신도 없고 팔과 다리에 힘이 빠지는 그런 기분일 것입니다.

    그리고 밀려오는 두려움!

    하물며 제자들의 두려움은 더했겠지요.

    그런 마음을 다 아시기라도 하듯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어 제자들에게 나타나 힘을 주십니다.

    밖으로 나아가 증언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십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봅니다.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저라면 알아뵐 수 있었을까~

    헛것을 보았다하여 도망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그 사랑에 함께 묻는다는 것이 진정 순교일텐데

    그 순교는 아닐지언정 숨지는 말아야 함을 알면서 진정 의로운 사람으로 생활했었는지요.

    정의가 승리하게 해 달라고 청하면서 진정 저는 어둠으로 숨어 버리진 않았는지요.

    사랑한다~ 믿는다 고백하면서 성령께서 함께 하심을 느끼지도 못한 것은 아닌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따르고 저를 맡기면서 그 자취를 따라 걸어가야 함을 모른 채,

    은둔아닌 은둔생활에 저를 묻고 먼 옛날 추억으로 돌리는

    형식에 젖은 신앙생활은 아니었는지 생각해 봅니다.

    어제 오후에 한 기사님이 낚시를 하러 와서

    자신은 시간의 배를 타고 흘러가는 낙엽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살아갈 힘도 자신도 없기에 주어지는 데로 주어진 시간대로 자신을 맡긴다고~~

    그러고 보면 그 사람은 되려 저보다 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께서 늘 성령을 보내시어 깨달음을 주시고 지켜주심에도

    혼탁한 색만을 내는 것에 비하면

    그 사람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무엇에 연연하거나 얽매이지 않고 그냥 주어진 삶에 자신을 맡기는

    그 모습이 더 여유로와 보였습니다.

    흐르는 물을 역류하여 올라가려 하지않고

    흐르는 데로 배에 몸을 싫고 대신 손에선 노를 놓치지 않는 그 모습이

    바로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죽음에서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는 저가 되기 위해 움직인다면

    깊은 사랑의 성령이 은총으로 제 가슴에 살아움직임을 느낄 수 있겠지요.

    늘 깨어 기도하는 모습으로 은총의 앞치마를 두르고 성령을 받아 담겠습니다.

    슬기,통달,의견,굳셈,지식,효경,두려워함…..주시는데로…

    성령 강림 대축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칠은의 의미와 사랑의 성령을 가슴에 담아봅니다.

    제가 깨어 있을 때 함께 하심을 알고 있습니다.

    만약 코를 골며 잠을 잔다면 느끼지 못함을 알기에 늘 살아 숨쉬며

    아버지를 바라보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하시며

    두려움에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아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을 보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숨어지냈던 제자들을 생각하면서

    저라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부활하시어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힘과 용기를 주시는 그 모습에 가슴이 찡해 왔습니다.

    다 알고 계시듯 오시어 성령의 이끄심으로 그들을 일어나게 하셨습니다.

    증언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셨습니다.

    신앙고백을 하는 저는 어떤 모습인지요.

    성령을 보내주심에도 무뎌진 저이기에 깨닫지를 못하고 느끼지를 못한것은 아닌지를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제 마음을 열어 사랑의 열매를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니 깨달을 수 있는 깊이를 주시어

    제 작은 움직임속에 성령의 움직임이 함께 함을 늘 잊지 않게 하소서.

    성령의 은사를 청하는 작은 새되어 은총의 먹이를 향해 힘찬 날개 짓을 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no cont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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