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스티노 성인은 2세기 초에 활동한 순교자다.
그는 신앙생활에 입문한 뒤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열정적으로 포교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로마에 철학 학원을 세워 지식인들을 위한 선교에 대비하게 했다.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글을 많이 남긴 유스티노 성인은 로마 신전에
제물을 바치라는 집정관의 명령을 거부하다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포도밭 소작인은 욕심이 지나치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을 제거하려 든다(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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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6/1)
유스티노 성인은 2세기 초에 활동한 순교자다. 그는 신앙생활에 입문한 뒤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열정적으로 포교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로마에 철학 학원을 세워 지식인들을 위한 선교에 대비하게 했다.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글을 많이 남긴 유스티노 성인은 로마 신전에 제물을 바치라는 집정관의 명령을 거부하다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포도밭 소작인은 욕심이 지나치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고 있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경종을 울리시는 말씀이다. 하지만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예수님을 제거하려 든다(복음).
복음
<소작인들은 주인의 사랑하는 아들을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소작인들에게 종 하나를 보내어, 소작인들에게서 포도밭 소출의 얼마를 받아 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를 붙잡아 매질하고서는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이 그들에게 다시 다른 종을 보냈지만, 그들은 그 종의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고 모욕하였다. 그리고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 뒤에 또 많은 종을 보냈지만 더러는 매질하고 더러는 죽여 버렸다. 이제 주인에게는 오직 하나, 사랑하는 아들만 남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상속 재산이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죽이고는 포도밭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 그 소작인들을 없애 버리고 포도밭을 다른 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을 두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그분을 붙잡으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 그분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복음의 소작인은 엉뚱한 생각을 합니다. 주인의 간섭이 뜸하다고 포도밭을 삼키려 듭니다. 급기야는 주인이 보낸 사람을 해치고 나중에는 주인의 아들까지 살해하였습니다. 누구나 ‘소작인의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받기만 하고 베풀려 하지 않습니다. 기회가 와도 얼렁뚱땅 넘어가려 합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작은 것에 취해 ‘큰 것’을 모른 척하는 욕심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도 영혼이 알고 운명이 알고 수호천사가 압니다. 그러므로 받기만 하고 ‘내놓지 않으면’ 스스로 앞날을 어둡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신의 ‘내적 에너지’를 약화시키는 것이지요. ‘받은 것’을 당연하게 여길수록 ‘이끄심’은 멀어집니다. 얼마나 많은 축복을 받고 있는지요? 수많은 사건들이 그분의 도우심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은혜로운 ‘인연’들이 그분의 개입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복음에 나오는 ‘포도밭’과 꼭 같습니다. 풍요로운 포도밭을 주셨듯이 풍요로운 인생을 맡기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더 많은 축복을 원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했는데 받은 것이 ‘적다고’ 불평합니다. 복음의 소작인과 같은 모습입니다. 복음의 소작인과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과 비교하면’ 늘 적게 받은 것이 됩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감사의 눈길로 바라보면 ‘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6/1)
유스티노 성인은 2세기 초에 활동한 순교자다. 그는 신앙생활에 입문한 뒤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열정적으로 포교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로마에 철학 학원을 세워 지식인들을 위한 선교에 대비하게 했다. 정통 신앙을 옹호하는 글을 많이 남긴 유스티노 성인은 로마 신전에 제물을 바치라는 집정관의 명령을 거부하다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말씀의 초대
토빗은 자선을 많이 베풀며 살았다. 아시리아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에도 용감하게 동족을 도왔던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살해되어 거리에 버려진 동족의 시신을 수습해 묻어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선행을 비웃는다. 토빗의 신심을 모르고 있다(제1독서).
제1독서
<토빗은 진리의 길을 걸어왔다.> ☞ 토빗기의 시작입니다. 1,3; 2,1ㄴ-8 나 토빗은 평생토록 진리와 선행의 길을 걸어왔다. 나는 나와 함께 아시리아인들의 땅 니네베로 유배 온 친척들과 내 민족에게 많은 자선을 베풀었다. 우리의 축제인 오순절 곧 주간절에 나를 위하여 잔치가 벌어져, 나는 음식을 먹으려고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상이 놓이고 요리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그때에 내가 아들 토비야에게 말하였다. “얘야, 가서 니네베로 끌려온 우리 동포들 가운데에서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잊지 않는 가난한 이들을 보는 대로 데려오너라. 내가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려고 그런다. 얘야,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마.” 그래서 토비야가 우리 동포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들을 찾으러 나갔다. 그가 돌아와서 “아버지!” 하고 불렀다. 내가 “얘야, 나 여기 있다.” 하고 대답하자 그가 계속 말하였다. “아버지, 누가 우리 백성 가운데 한 사람을 살해하여 장터에 던져 버렸습니다. 목 졸려 죽은 채 지금도 그대로 있습니다.” 나는 잔치 음식을 맛보지도 않고 그대로 둔 채 벌떡 일어나 그 주검을 광장에서 날라다가, 해가 진 다음에 묻으려고 어떤 방에 놓아두었다. 그런 다음 집에 돌아와서 몸을 씻고 슬픔에 싸인 채 음식을 먹었다. 그때에 아모스 예언자가 베텔을 두고 한 말씀이 생각났다. “너희의 축제들은 슬픔으로, 너희의 모든 노래는 애가로 바뀌리라.” 나는 울었다. 그리고 해가 진 다음에 나가서 땅을 파고 그를 묻어 주었다. 이웃들은 나를 비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이제는 두렵지가 않은 모양이지? 전에도 저런 일 때문에 사형감으로 수배되어 달아난 적이 있는데, 또 저렇게 죽은 이들을 묻는구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고즈녁한 밤의 정막속에 살며시 불어주는 바람이 마당을 거닐던 제게 편안한 휴식을 주는 듯 합니다.
주일이지만 하루의 모든 노고가 한번에 날아가는 듯 했습니다.
정말 제게 간절히 필요한 시간일지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 내어놓을 때는
힘들긴 하지만 더 큰 기쁨이 있음도 새삼 깨닫는 하루였습니다.
그러고 보면 정말 감사하고 기뻐해야 하는 일들이 많음을 생각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반쪽의 모습을 갖춘 채,
어둠을 밝히는 달빛도 그 주위에서 빛을 발하는 별들도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하루에 대한 감사와
오늘 말씀을 되새김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젖어 보았답니다.
전 어떤 소작인인지를 생각해 보았고, 얼만큼의 소작료를 내고 있는지,
그리고 그저 제게 주신 포도밭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면서 독서에 나오는 토빗을 떠올려 보기도 하였습니다.
용감하게 자선을 베풀고 의로운 토빗!
제가 만약 그런 소작인이었다면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무지 흐뭇하셨을텐데 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넘치게 보태주실 아버지신데~~
욕심에 눈멀고 귀멀어 아버지의 사랑에 못을 박진 않았는지요.
유배생활을 할 때에도 동족을 도왔던 토빗의 모습에 저를 비추어 보면서
앞으로 그런 모습의 소작인으로 땀을 흘리는 저가 되어야 겠다는 다짐을 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작은 공동체안에서도 서로가 눈치를 보면서 외면으로 아픔을 더해 줍니다.
하나되어 손잡는 것이 아니라 내뜻을 따라주어야 하는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를 비웃습니다.
혹여 제가 그런 모습의 소작인으로 작은 포도밭의 주인인냥 행세를 하면서
소작료를 가로채는 그런 사람은 아니었는지요.
아버지께서 주신 포도밭을 열심히 일구어 몇배 몇천배로 드려야 함이 당연함인데
진정 그리하였는지를 돌이켜 보았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또다른 하나를 쟁취하려 합니다.
아버지께도 그런 마음과 자세로 서 있진 않았는지요.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드리며 기뻐하고 그 기쁨의 힘으로 더 많은 땀을 드려야 했는데
그리하긴 하였는지요.
아무리 작아도~ 아니 안받아도 행복해 하며 아버지께 더 많은 수다를 떨며
재재거려야 하는데~~
전 주어진 삶의 포도밭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건지.
그리고 얼만큼이나 감사와 찬미를 드리며 삶의 포도밭을 살찌우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는 은총에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 힘으로 더 바삐 움직이는 저가 되어야 함을~~
그리고 제가 아버지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망각하지 않으렵니다.
그리하여 더 큰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너무 작음에 고민하고 죄송스러워 하는 저가 되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를 들어 깨우침을 주십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전 어떤 소작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이켜 봅니다.
나름 멋진 소작인이라 자칭하면서 온갖 욕심이 넘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께서 주시는 모든 것에 대하여 제가 잘해서 오는 댓가로 생각하는
그런 소작인의 모습은 아니었는지를 반성해 봅니다.
받고도 모자라 더 많은 욕심을 채우려 아버지의 사랑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요.
아버지!
제 삶의 포도밭을 내려주신 아버지의 사랑을 가슴에 새기어
늘 깨어있는 소작인으로 남게 하소서.
토빗처럼 의롭고 자선을 베푸는 그런 소작인의 모습으로 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너무나 부족하기에 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려도 언제까지고
돌아올 것을 기다려 주시는 아버지의 그 사랑에 저를 비추게 하시어
당연히 해야 할 일임에 더 고개숙이는 소작인이 되어
찬미와 감사와 흠숭의 노래로 아버지를 깨우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