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연중 제10주간 금요일(6/12)



    말씀의 초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신다. 잘못된 생각은 마음으로부터 절제하라는 말씀이다. 눈이 방해하면 눈을 제거하고, 손이 방해하면 손을 자르라고 하신다. 눈과 손에 ‘해당될 만큼’ 소중한 것일지라도 불순한 것이라면 피하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목석과 같은 눈길을 원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여인을 보든지 ‘아무 생각도 갖지 말라.’는 것은 살아 있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성을 홍보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성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감각 세계를 꾸짖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눈빛으로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할지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이성을 바라보는 눈길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욕망의 눈길이라면 바꾸고, 정상적인 눈빛이라면 계속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여인을 간음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의 간음은 유혹일 뿐입니다. 유혹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의도’는 마음으로부터 그런 생각을 차단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간음의 눈빛만을 금하신 것은 아닙니다. 폭력과 미움이 담긴 눈길, 권력 앞에서 굽실거리는 눈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욕의 눈빛을 승화시켜 ‘사랑의 눈길’로 바꾸라는 것이 복음의 숨은 가르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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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0주간 금요일(6/12)



      말씀의 초대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신다. 잘못된 생각은 마음으로부터 절제하라는 말씀이다. 눈이 방해하면 눈을 제거하고, 손이 방해하면 손을 자르라고 하신다. 눈과 손에 ‘해당될 만큼’ 소중한 것일지라도 불순한 것이라면 피하라는 말씀이다(복음).
      복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목석과 같은 눈길을 원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여인을 보든지 ‘아무 생각도 갖지 말라.’는 것은 살아 있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성을 홍보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성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감각 세계를 꾸짖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눈빛으로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할지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이성을 바라보는 눈길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욕망의 눈길이라면 바꾸고, 정상적인 눈빛이라면 계속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여인을 간음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의 간음은 유혹일 뿐입니다. 유혹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의도’는 마음으로부터 그런 생각을 차단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간음의 눈빛만을 금하신 것은 아닙니다. 폭력과 미움이 담긴 눈길, 권력 앞에서 굽실거리는 눈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욕의 눈빛을 승화시켜 ‘사랑의 눈길’로 바꾸라는 것이 복음의 숨은 가르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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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0주간 금요일(6/12)



      말씀의 초대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 함께한다. 그러기에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는다.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는다. 박해를 받아도 다시 일어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다(제1독서).
      제1독서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4,7-15 형제 여러분,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 안에 있는 나에게 
    
    
     
     
     
    

  3. guest 님의 말: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신앙생활도 만만치가 않음을 느낍니다
    아니!
    사실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렵지요
    그것도 제대로 한다면 하지만 마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몸과 마음이 일치하지 않는 신앙생활은 보여주기 위한 가식이기에
    당신을 몸과 마음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생활을 해야한다고...

    하지만 언제나 마음 뿐...
    몸과 마음이 일치한다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세속에서 살아가면서 양심에 찔리는 행동을 할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후회를 하면서도 언제나 양심보다는 머리에서 우러나오는대로
    마음이 끌리는대로 살면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당에서 미사참례를  하면서 후회하고 또 후회하면서도
    미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면 또 제 멋대로  제 마음대로
    세속적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후회의 삶을 살면서도 고쳐지지 않는 나쁜 습관등...
    조화를 이루며 신앙생활을 양심적으로 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는 사실이 괴로울 때가 종종 있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말씀이 무섭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지키도록 노력을 해야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최소한 기본만큼은 지키는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고...
    입으로만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면서 ...
    행동으로 실천을 한다는것이 어려운 숙제임을 느끼지만
    노력하겠습니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신앙인으로 변 할수 있도록 ...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 알렐루야

    아멘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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