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파도바의 한 수도원에 살면서 고해성사와 설교로 많은 이들을 영적 세계로 이끌었다. 열병으로 1231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고, 이듬해에 시성되었다. 1946년 비오 12세 교황은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맹세는 약속을 다짐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맹세는 아예 하지 말라고 하신다.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다. 언제나 정직이 최선이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하라고 하신다(복음).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과녁의 한복판을 ‘정곡’이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2프로’가 아쉽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어린이였을 때는 쉽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예스’와 ‘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어른을 상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무엇보다 단순하게 살라는 말씀으로 묵상해 봅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단순함을 지니지 못하면 ‘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스’와 ‘노’를 어정쩡하게 하기에 본인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는지요? 사람의 마음은 바뀝니다. 아무리 다짐해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은총이 함께해야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기도와 선행에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별히 ‘남모르는 선행’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정쩡한 기운들’을 없애 줍니다. 그리하여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게 합니다. 단순한 생활은 하늘의 기운을 모셔 오는 삶의 지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누구나 때로는 힘들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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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파도바의 한 수도원에 살면서 고해성사와 설교로 많은 이들을 영적 세계로 이끌었다. 열병으로 1231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고, 이듬해에 시성되었다. 1946년 비오 12세 교황은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맹세는 약속을 다짐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맹세는 아예 하지 말라고 하신다. 자신의 약속에 충실하라는 말씀이다. 언제나 정직이 최선이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 분명히 말하라고 하신다(복음).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3-3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거짓 맹세를 해서는 안 된다. 네가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옛사람들에게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또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네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라. 네가 머리카락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말할 때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정곡을 찌르는 말씀입니다. 과녁의 한복판을 ‘정곡’이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2프로’가 아쉽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는 반문입니다. 어린이였을 때는 쉽습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예스’와 ‘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어른을 상대로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는지요? 무엇보다 단순하게 살라는 말씀으로 묵상해 봅니다. 복잡한 현실에서 단순함을 지니지 못하면 ‘예스’와 ‘노’를 분명하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스’와 ‘노’를 어정쩡하게 하기에 본인은 물론이고, 함께 사는 이들에게 불안감을 주고 있는지요? 사람의 마음은 바뀝니다. 아무리 다짐해도 시간이 지나면 퇴색합니다. 한결같은 마음은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은총이 함께해야 가능해집니다. 우리가 기도와 선행에 힘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별히 ‘남모르는 선행’은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정쩡한 기운들’을 없애 줍니다. 그리하여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게 합니다. 단순한 생활은 하늘의 기운을 모셔 오는 삶의 지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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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6/13)


      안토니오 성인은 포르투갈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의 영향으로 젊은 나이에 사제가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의 파도바의 한 수도원에 살면서 고해성사와 설교로 많은 이들을 영적 세계로 이끌었다. 열병으로 1231년 36세의 젊은 나이에 선종하였고, 이듬해에 시성되었다. 1946년 비오 12세 교황은 그를 ‘교회 학자’로 선포하였다.
      말씀의 초대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이를 위해 돌아가셨다. 그러므로 그분 안에 머물면 누구나 새로움의 은총을 받는다. 이제 우리의 낡은 모습은 지나갔다. 더 이상 지난날의 잘못에 매여 있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은총을 받아 새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것이 그분과 화해하는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5,14-21 형제 여러분,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한 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고 그리하여 결국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우리가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이 이제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자기들을 위하여 돌아가셨다가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이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해의 직분을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곧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화해의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빕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누구나 때로는 힘들어 하지만 
    
    
     
     
     
    

  3. guest 님의 말: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언제나 정직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활에 따라 대충 대충 더구나 정의로워야 할 때도
    눈치보고 소신껏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저와 같이 비겁한 행동을 할 때는
    비판하면서 신앙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떠들었지요
    자신은 잘못도 비겁허지도 신앙생활 또한 열심히 한 것처럼...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체 다른사람들을 비판하고 단죄하였습니다
    아니!
    자신의 잘못을 알면서도 비겁하게 인정하지 않으며 합리화하였지요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
    말씀에 가슴이 뜨끔하였습니다
    양심이 찔려서지요
    아무리 감추려해도 양심까지는 속일 수 없음을 느낍니다
    당신께서 저의 허물 잘못 부족함 무능등등 모든 것을 
    감싸주시고 사랑으로 배려해주시는데 언제나 당신을 원망하고
    저에게만 시련을 주신다고 푸념하며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남의 허물을 들추어 비판하고 단죄하는 
    신앙인답지 못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하느님, 제 마음을 당신
    계명에로 기울게 하소서.
    은혜로운 당신 법을 제게 주소서.
    ◎ 알렐루야.

    아멘


    ♬ 누구나 때로는 힘들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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