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6/15)


    말씀의 초대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 하신다. 이웃 사랑에는 거절이 없다는 말씀이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신다. 이웃 사랑의 완성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은총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또 때려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웬만해서는 속옷과 겉옷을 벗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의도는 ‘어디까지 참고’ ‘어디까지 자선을 베풀어야 할지’를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무고하게 뺨을 맞았더라도 다른 뺨을 대 줄 만큼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속옷을 달라는 어이없는 청일지라도 겉옷까지 줄 수 있는 자세로 임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내의 ‘한계점’을 제시하신 겁니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자선의 ‘최정상’을 꺼내 보이신 것입니다. 등산하는 이들은 ‘높은 산’을 오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고 그들은 자주 훈련합니다. 누구라도 단박에 ‘지리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노력하고 훈련해서 ‘황새’가 되어야 합니다. 일류 선수는 정상을 지키고자 끊임없이 연습합니다. ‘피나는 연습’ 말고는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나를 잘 대해 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내와 자선의 첫출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O Salutaris Hostia - Pierre de La Rue 


 
 

이 글은 카테고리: 오늘의독서·묵상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고유주소를 북마크하세요.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1주간 월요일(6/15)


      말씀의 초대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말라고 하신다. 이웃 사랑에는 거절이 없다는 말씀이다. 오른뺨을 치면 왼뺨마저 돌려 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신다. 이웃 사랑의 완성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은총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복음).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8-4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뺨을 때리는 사람에게 또 때려 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웬만해서는 속옷과 겉옷을 벗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의도는 ‘어디까지 참고’ ‘어디까지 자선을 베풀어야 할지’를 알리려는 데 있습니다. 무고하게 뺨을 맞았더라도 다른 뺨을 대 줄 만큼 참으라는 말씀입니다. 속옷을 달라는 어이없는 청일지라도 겉옷까지 줄 수 있는 자세로 임하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사람에게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내의 ‘한계점’을 제시하신 겁니다. 우리가 목표로 삼아야 할 자선의 ‘최정상’을 꺼내 보이신 것입니다. 등산하는 이들은 ‘높은 산’을 오르고 싶어 합니다. 그러려고 그들은 자주 훈련합니다. 누구라도 단박에 ‘지리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노력하고 훈련해서 ‘황새’가 되어야 합니다. 일류 선수는 정상을 지키고자 끊임없이 연습합니다. ‘피나는 연습’ 말고는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나를 잘 대해 주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이 인내와 자선의 첫출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O Salutaris Hostia - Pierre de La Rue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1주간 월요일(6/15)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해서는 안 된다. 은총을 소중히 하는 이를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해야 한다.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역경을 겪더라도 참아 내야 한다. 주님의 힘은 그런 사람들을 지켜 주신다(제1독서).
      제1독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6,1-10 형제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은혜로운 때에 내가 너의 말을 듣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와주었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이 직분이 흠잡히는 일이 없도록, 우리는 무슨 일에서나 아무에게도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일꾼으로 내세웁니다. 곧 많이 견디어 내고, 환난과 재난과 역경을 겪으면서도,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겪으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또 수고와 밤샘과 단식으로, 순수와 지식과 인내와 호의와 성령과 거짓 없는 사랑으로,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힘으로 그렇게 합니다.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우리는 늘 그렇게 합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합니다.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인정을 받습니다. 죽어 가는 자같이 보이지만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벌을 받는 자같이 보이지만 죽임을 당하지는 않습니다. 슬퍼하는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늘 기뻐합니다. 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합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O Salutaris Hostia - Pierre de La Rue 
    
    
     
     
     
    

  3. guest 님의 말: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면서 저를 돌아 보았습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라 하시지요.

    사실 전엔 그렇게 할 수도 있지 뭐~~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지금 맞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라 원한다면 내어줄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제게 있었던 것이겠지요.

    하지만 요즈음은 저 스스로 옷깃을 여미며 한치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 했던 기억을 되돌려 봅니다.

    저만 바보가 되는 것 같고, 저만 억울한 것 같고, 저만 당하는 것 같아

    스스로 저를 긁으며 상처를 만들고 아물기도 전에 또 긁었습니다.

    눈엔 눈으로 보복하듯이~~

    아마도 전보다 제가 기도를 많이 하지 않았었나 봅니다.

    아버지앞에 머물면 머물수록 깊어지고 넓어지고 행복해 짐에 기쁨이 드러나게 마련이지요.

    하지만 멀리 있으면 있을수록 폭력과 가까워지게 되고

    다른 쪽으로 신경을 쓰게 됨이 사실입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맘아파 하면서 바닥이 훤히 보일정도로 얕아지지요.

    사실 어제도 아닌 것을 아니라고 있는 그대로를 얘기했는데

    상대에게 벌써 그 말이 전해져 그가 제게 고개를 돌렸습니다.

    그 모습에 서운하기도 하고 지금까지의 관계가 이리 허망한가 싶어서 속도 상했지요.

    그러면서 저의 잘못인가를 고민했습니다.

    분명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저였나 봅니다.

    독서에서 나오는 “오른손과 왼손에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라는 말처럼

    사랑의 의로움으로 한치의 떨림없이 바로 서야 하는데

    작은 상황에 작아지는 저가 너무나 속상하기도 했답니다.

    그리하여 영광을 받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중상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늘 그렇게 해야 한다고

    코린토서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일이 없게 하라 하지요.

    하물며 바른 말을 하고도 상대가 외면한다 하여 마음아파 하면서 잘못했나를 생각하는 저가

    아직은 멀었나 봅니다.

    그런 모습이 악인에게 맞서는 것은 아님인데~~ 그치요?

    신앙인의 삶은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모습이라 하지요.

    그리고 주도적인 사람이 되어서 먼저 용서해야 한다 하지요.

    허긴 때론 잘못이 있는 사람이 더 높이 서있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은 아버지께서 판단하실 일이시고

    전 그저 더 이상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사랑을 완성하긴 어렵다 할지라도 그 완성을 위해 한발 한발 나아갈 때

    비로소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임을 되새겨 봅니다.

    그럴때 아버지께서 덤의 은총을 내려주실 테니까요.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리로는 끄덕이면서 제 행동의 실천으로는 담기 어려움을 인정하면서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사랑을 실천함에 거절하기보다 내어주기를 바라시는 그 마음을

    제가 헤아리고 있었는지도 돌이켜 보았습니다.

    말씀속에서 더 성숙한 저로 늘 새로나야 가능함을 알면서도 얼마나 노력하였는지요.

    한계의 벽에 부딪치면 합리화로 저를 위로하면서 사랑보단 적대감을 만들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노력하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고 욕심을 부리진 않았는지요.

    아버지!

    제 스스로 저를 세우려하는 어리석음보단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그저 나누어주려 애써는 저가 되게 하소서.

    의로움의 무기를 들고 늘 기뻐하는 저로 거듭나게 하시어

    부족하고 어눌하지만 아버지를 사랑함에 눈멀고 귀멀어

    그저 웃음과 용기와 의로움의 지혜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게 하소서.

    아멘.

     

     

  4. guest 님의 말: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려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실천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어떻게 저에게 잘못한 사람들을 용서할수 있는지...
    정말 가능한 일일까?
    입으로야 얼마든지 용서한다고 아니!
    용서할수 있다고 마음으로도 할수 있다는 생각이 뜰지요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정말 정말 어려운 일임을 느낍니다
    그러면서도...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말씀이 저의 가슴에 박히는 것은 저의 마음 속에
    당신의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지요
    비록 아직도 당신의 말씀을 실천하지 못하지만
    당신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당신의 말씀을 무시하고
    당신의 말씀을 행동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당신을 진심으로 믿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니 머릿 속이 복잡합니다
    그것도 세속의 욕심과 저의 마음 속에 있는 교만과 이기심
    욕심등으로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우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저의 못된 성미가 한몫을 한다는 것도...
    이런 저런 생각들이 저의 머릿 속을 복잡하게 하지요
    그래도 미워도 다시한번^*^
    당신께서 원하시니 저의 못된 성미를 죽이고
    신앙인답게 당신의 자녀답게 당신의 자녀라면
    외인들이나 타종교인들보다  아니!
    당신의 자녀답게 꼴값을 해야한다고 ...
    더도 덜도 말고 기본만이라도 충실한 신앙인이 되어야한다고

    ‘일곱번 뿐 아니라 일곱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하여라.’
    말씀하신 당신의 말씀을 깊이 새기며
    악인들에게 맞서지 않으며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하신 당신의 말씀을 실천해야한다고
    당신께서 저의 잘못을  용서하신 것처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묵상하며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