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예수 성심 대축일(6/19)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더욱 공경하며 묵상하는 날이다. 성체성사와 연관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낸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부터 일반화되었고,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부터 해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 오고 있다.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의 행복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지금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은총을 베풀고 계십니다. 예수 성심의 깊은 사랑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군사들은 확인하러 왔다. 하지만 이미 숨지신 것을 알았기에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에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그러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것이다(복음).
    복음
    <군사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37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식은 부모의 고통을 알게 될 때 성숙해집니다. 부모의 아픔을 보고 자란 자식은 쉽게 벗나가지 않습니다. ‘가족애’는 미움과 사랑 때문에 울어 볼 때 싹을 틔웁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른인 것은 아니지요. 고통의 옷을 입어야 어른이 됩니다. 남을 위해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야 어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어린애’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려움’을 피해 다녔기 때문입니다. 고뇌가 없으면 성숙도 없고 발전도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어린이의 신앙’으로 남게 됩니다. 작은 고통에도 휘청거리고 기도와 성사 생활에서는 불평을 내세웁니다. 힘들다고 보채고, 주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해야 변화를 만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수 성심 성월’을 제정했습니다. 주님이신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욕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무죄하신 분께서 그토록 황당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억울함의 극치입니다. 그런데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참아 내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불평하고 외면하려 들면 더욱 모르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분을 기억하며 ‘나의 십자가’를 끌어안는 날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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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예수 성심 대축일(6/19)


      예수 성심 대축일은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을 더욱 공경하며 묵상하는 날이다. 성체성사와 연관되어 있기에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금요일에 지낸다. 예수 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 때부터 일반화되었고, 1856년 비오 9세 교황 때 로마 전례력에 도입되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95년부터 해마다 예수 성심 대축일을 ‘사제 성화의 날’로 지내 오고 있다.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의 행복을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어놓으셨습니다. 지금도 성체성사를 통하여 은총을 베풀고 계십니다. 예수 성심의 깊은 사랑을 묵상하며 미사를 봉헌합시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셨다. 군사들은 확인하러 왔다. 하지만 이미 숨지신 것을 알았기에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에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다. 그러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당신 자신을 온전히 바치신 것이다(복음).
      복음
      <군사 하나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르자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31-37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신 날은 준비일이었고 이튿날 안식일은 큰 축일이었으므로, 유다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지 않게 하려고, 십자가에 못 박힌 이들의 다리를 부러뜨리고 시신을 치우게 하라고 빌라도에게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군사들이 가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다른 사람의 다리를 부러뜨렸다. 예수님께 가서는 이미 숨지신 것을 보고 다리를 부러뜨리는 대신, 군사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자 곧 피와 물이 흘러나왔다. 이는 직접 본 사람이 증언하는 것이므로 그의 증언은 참되다. 그리고 그는 여러분이 믿도록 자기가 진실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또 다른 성경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이를 바라볼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자식은 부모의 고통을 알게 될 때 성숙해집니다. 부모의 아픔을 보고 자란 자식은 쉽게 벗나가지 않습니다. ‘가족애’는 미움과 사랑 때문에 울어 볼 때 싹을 틔웁니다. 나이를 먹었다고 모두 어른인 것은 아니지요. 고통의 옷을 입어야 어른이 됩니다. 남을 위해 아픔을 겪어 본 사람이라야 어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몸은 어른인데 생각은 ‘어린애’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어려움’을 피해 다녔기 때문입니다. 고뇌가 없으면 성숙도 없고 발전도 없는 것이 인생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어린이의 신앙’으로 남게 됩니다. 작은 고통에도 휘청거리고 기도와 성사 생활에서는 불평을 내세웁니다. 힘들다고 보채고, 주지 않는다고 투정 부리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마음을 묵상해야 변화를 만납니다. 그러기에 교회는 ‘예수 성심 성월’을 제정했습니다. 주님이신 그분께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모욕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무죄하신 분께서 그토록 황당한 일을 당하셨습니다. 억울함의 극치입니다. 그런데도 받아들이셨습니다. 참아 내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불평하고 외면하려 들면 더욱 모르게 됩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그분을 기억하며 ‘나의 십자가’를 끌어안는 날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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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예수 성심 대축일(6/19)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장을 도와주셨다.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지파마다 청하는 것을 다 들어주셨다. 그분은 결코 모른 체하시는 분이 아니다. 오히려 연민과 동정으로 계속 다가가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은 거룩한 분이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를 선택하신 분은 주님이시다. 복음의 일꾼으로 삼으시고자 택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당신 안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사람들에게 알리게 하셨다. 이제 모든 이는 주님의 이끄심으로 굳건한 신앙인이 될 것이다. 바오로는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제2독서).
      제1독서
      <내 마음이 미어진다.> ☞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1,1.3-4.8ㅁ-9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나는 인정의 끈으로, 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소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3,8-12.14-19 형제 여러분, 모든 성도들 가운데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나에게 은총을 주시어,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풍요를 다른 민족들에게 전하고, 과거의 모든 시대에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 안에 감추어져 있던 그 신비의 계획이 어떠한 것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혀 주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하늘에 있는 권세와 권력들에게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계획에 따른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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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저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에 저를 묻어봅니다.

    얼마나 깊고 크신 사랑이기에~~~

    철없는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되집어 봅니다.

    제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기 전에는 둠벙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였는데

    자식을 낳고 살다보니 둠벙밖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제가 어리석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저만을 드러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부모의 맘을 알기위해 노력은 하였는지요.

    정말 작아짐을 느낍니다.

    매사에 주어진 여건을 불평하고,

    저만 안된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고삐아닌 고삐를 풀어보려 온 힘을 다 빼면서

    늘 쳐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고삐가 아닌 사랑의 연결이라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저를 묻고 살았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노래하면서 저를 옭아매는 짐으로만 생각을 했지

    사랑으로 안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요.

    제가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사랑으로 감싸안고 나아갈 때

    그나마 아버지의 사랑에 답하는 길임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청하고 바라기전에 그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그늘이되어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

    어젠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막바지 훈련에 다다른 아들을 생각하니 덥다라는 소리를 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행군을 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더 분주히 몸을 놀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구름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희망이 되어 하루를 보냈지요.

    작은 산들바람이 볼이라도 스칠때면 그저 기뻤습니다.

    아들이 쐴 것을 생각하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자식이기에 그저 맘이 움직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마음아리고 애절하고 안스러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철없는 딸이 아버지의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다.

    힘들고 안될 때면 아버지를 원망하며 투정부리진 않았는지요.

    그러면서 자식에겐 제 사랑을 다하며 그래도 적다 마음 아파하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서운하시지요?

    허긴 서운하다 하실 아버지가 아니시죠.

    제가 헤아려 드리고 함께 하면서 저희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신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않고 깊이 새기며

    그런 사랑을 제 삶으로 드러내며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살아야 했는데

    다하지 못함을 반성해 봅니다.

    삶의 한가운데에 아버지를 모시고 말씀속에서 하루하루 철이들어가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제 마음가짐에 비례함을 잊지않고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기꺼이 기쁘게 지고 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얼만큼의 무게가 될지라도 그것은 게게 달렸으니까요.

    아무리 큰 십자가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해 지신 십자가에 견줄순 없으니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예수 성심 대축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슴이 아려옴을 느낍니다.

    신비를 묵상하면서 늘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말씀은 더 아리게 가슴에 자리잡았습니다.

    이미 숨을 거두셨음에도 불구하고 군사가 옆구리를 찔렀던 모습에 멍했습니다.

    저희를 위해 온전히 내어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늘 말씀이 삶에 묻어나야 함을 잊고 산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내어주셨음인데 철없는 딸은 둠벙에서만 놀고 있었습니다.

    그 밖의 삶에 당당히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철없는 딸은 안이한 사랑이 마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인냥 그렇게 작게 살았음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시기전에 제 스르로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았음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성체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호흡하며 새로나게 하시어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불평속에 저를 병들게 하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기쁨으로 기꺼이 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어깨를 힘들어 하는 다른이에게 내어주는 그런 사랑의 지게가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를 사랑하며 사랑의 찬미를 드리게 하소서.

    수동적인 저가 아니라 능동적인 저가 되어 아버지의 십자가를 잊지 않고

    힘차게 사랑을 전하는 십자가의 천사되게 하소서.

    아멘.

  4. user#0 님의 말: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저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마음에 저를 묻어봅니다.

    얼마나 깊고 크신 사랑이기에~~~

    철없는 자식이 부모의 사랑을 되집어 봅니다.

    제가 결혼하여 자식을 낳기 전에는 둠벙에서 노니는 작은 물고기였는데

    자식을 낳고 살다보니 둠벙밖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제가 어리석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기보다는 저만을 드러냈던 것은 아니었는지요.

    부모의 맘을 알기위해 노력은 하였는지요.

    정말 작아짐을 느낍니다.

    매사에 주어진 여건을 불평하고,

    저만 안된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고삐아닌 고삐를 풀어보려 온 힘을 다 빼면서

    늘 쳐져있었던 것은 아닌지 돌이켜 봅니다.

    고삐가 아닌 사랑의 연결이라 생각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에 저를 묻고 살았어야 했는데 그리하지 못했습니다.

    십자가~ 십자가~ 노래하면서 저를 옭아매는 짐으로만 생각을 했지

    사랑으로 안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요.

    제가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사랑으로 감싸안고 나아갈 때

    그나마 아버지의 사랑에 답하는 길임을 잊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무엇을 청하고 바라기전에 그저 아버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늘 그늘이되어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인데~~

    어젠 무척이나 더웠습니다.

    막바지 훈련에 다다른 아들을 생각하니 덥다라는 소리를 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행군을 하고 있을 아들을 생각하며 더 분주히 몸을 놀렸습니다.

    그러면서 하늘을 쳐다보며 잠시 구름이라도 나왔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희망이 되어 하루를 보냈지요.

    작은 산들바람이 볼이라도 스칠때면 그저 기뻤습니다.

    아들이 쐴 것을 생각하니~~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사랑하는 자식이기에 그저 맘이 움직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이기에 마음아리고 애절하고 안스러운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철없는 딸이 아버지의 사랑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다.

    힘들고 안될 때면 아버지를 원망하며 투정부리진 않았는지요.

    그러면서 자식에겐 제 사랑을 다하며 그래도 적다 마음 아파하며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서운하시지요?

    허긴 서운하다 하실 아버지가 아니시죠.

    제가 헤아려 드리고 함께 하면서 저희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신 아버지의 사랑을 잊지않고 깊이 새기며

    그런 사랑을 제 삶으로 드러내며 아버지의 뜻을 기리며 살아야 했는데

    다하지 못함을 반성해 봅니다.

    삶의 한가운데에 아버지를 모시고 말씀속에서 하루하루 철이들어가는 저가 되어야 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제게 주어진 십자가의 무게는 제 마음가짐에 비례함을 잊지않고

    아버지의 사랑을 기억하며 기꺼이 기쁘게 지고 갈 것을 다짐해 봅니다.

    얼만큼의 무게가 될지라도 그것은 게게 달렸으니까요.

    아무리 큰 십자가라 할지라도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해 지신 십자가에 견줄순 없으니까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예수 성심 대축일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가슴이 아려옴을 느낍니다.

    신비를 묵상하면서 늘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말씀은 더 아리게 가슴에 자리잡았습니다.

    이미 숨을 거두셨음에도 불구하고 군사가 옆구리를 찔렀던 모습에 멍했습니다.

    저희를 위해 온전히 내어주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늘 말씀이 삶에 묻어나야 함을 잊고 산것은 아닌지를 생각하니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사랑을 내어주셨음인데 철없는 딸은 둠벙에서만 놀고 있었습니다.

    그 밖의 삶에 당당히 나아가 아버지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야 했는데

    철없는 딸은 안이한 사랑이 마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인냥 그렇게 작게 살았음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께서 먼저 말씀하시기전에 제 스르로 헤아리려 노력하지 않았음도 반성해 봅니다.

    아버지!

    성체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호흡하며 새로나게 하시어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사랑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불평속에 저를 병들게 하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사랑의 기쁨으로 기꺼이 지게 하소서.

    그리하여 제 어깨를 힘들어 하는 다른이에게 내어주는 그런 사랑의 지게가 되게 하소서.

    언제 어디서나 아버지를 사랑하며 사랑의 찬미를 드리게 하소서.

    수동적인 저가 아니라 능동적인 저가 되어 아버지의 십자가를 잊지 않고

    힘차게 사랑을 전하는 십자가의 천사되게 하소서.

    아멘.

  5. guest 님의 말:

    오늘1독서를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가슴이 저려왔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뭔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저를 끊임없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
    마지막까지 물과 피까지 쏟아주신 성심의 사랑.
    그 물이 구원의 세례성사를 이루고
    그 피가 성체성사를 이루었음을 묵상해 보았다.

    이렇게 당신의 사랑을 닮아
    나역시 빛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기적인 마음과 이해 타산이 빛을 가로 막고 있구나…

    인간에게 가장 실망할 자 누구이던가?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이렇게 그분에게 실망을 주고 사는 내가
    어찌 인간을 더 믿지 못하고 실망하며 살고 있는가…
    내 탓임을 알고 내 영혼을 그분께 드러내 보자.

    오늘도 주님의 빛은 변함없이 나를 비춰주신다.
    그러나 내 영혼은 세상의 유혹으로 말마암아
    그 빛을 가리고 보여주질 못하는구나.
    죄많은 내 영혼…
    용서하소서…

    주님!
    당신의 빛을 온전히 받아
    당신이 보여주신 성심의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6. user#0 님의 말:

    오늘1독서를 묵상하면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가슴이 저려왔다.
    울지 않으려 했는데…
    저절로 눈물이 나오는 이유는 뭔가…

    유혹에 쉽게 넘어가는 저를 끊임없이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
    마지막까지 물과 피까지 쏟아주신 성심의 사랑.
    그 물이 구원의 세례성사를 이루고
    그 피가 성체성사를 이루었음을 묵상해 보았다.

    이렇게 당신의 사랑을 닮아
    나역시 빛을 보여줘야 하는데…
    이기적인 마음과 이해 타산이 빛을 가로 막고 있구나…

    인간에게 가장 실망할 자 누구이던가?
    하느님이 아니시던가.

    이렇게 그분에게 실망을 주고 사는 내가
    어찌 인간을 더 믿지 못하고 실망하며 살고 있는가…
    내 탓임을 알고 내 영혼을 그분께 드러내 보자.

    오늘도 주님의 빛은 변함없이 나를 비춰주신다.
    그러나 내 영혼은 세상의 유혹으로 말마암아
    그 빛을 가리고 보여주질 못하는구나.
    죄많은 내 영혼…
    용서하소서…

    주님!
    당신의 빛을 온전히 받아
    당신이 보여주신 성심의 사랑을 이웃에게
    보여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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