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이름은 요한

 



아기 이름은 요한

1. 말씀읽기: 루카1,57-66.80

세례자 요한의 출생

요한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



2.말씀연구

세례자 요한의 탄생과 즈카르야의 풀린 입. 사람들은 놀랐고, 그 사건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내 주변에도 놀라운 일들이 많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나 또한 많은 사랑을 받고, 은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하지 못하고, 마음에 새기지 못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기억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하느님께서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나이든 부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게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 아이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해야 하는 엘리야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였습니다. 

태중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본 아기. 그 아기는 바로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인 세례자 요한입니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이 아이를 낳았을 때, 그 기쁨은 얼마나 클까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기쁨이 아닐까요? 엘리사벳은 이웃과 친척들과 함께 기뻐합니다.

 그런데 아이 못 낳은 여인의 고통을 생각해 봅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이곳저곳을 다녀 보았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점쟁이가 이렇게 하면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하여 그렇게 하였지만 결국 아이를 낳지 못하였고, 급기야는 미쳐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녀의 고통은 본인 스스로부터도 있었겠지만 주변의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함께 기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고통을 주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향한 자기 욕심의 분출, 그것은 바로 상대방에게는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고통으로 다가갑니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아이가 태어나면 여드레만에 아이에게 할례를 베풀었습니다(창세17,12,21;4;레위12,3). 이 날의 예절은 사제의 권리가 아니었고, 어떤 이스라엘 사람도, 또 여자라도 집행할 수가 있었습니다(마카베오 상1,60; 마카베오 하6,10). 할례는 즈카르야의 집에서 이루어졌고, 엘리사벳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율법을 따르면(레위12,4) 여인은 산후 40일 동안 집 밖으로 나다닐 수 없었습니다.

할례는 하느님과 맺는 계약의 표시였기 때문에 어린이가 뽑힌 백성의 한 사람이 되는 이 날 새로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유다 관습을 어기는 일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주려고 했는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 즈카르야가 말을 못하니 주변 사람들이 “북 치고 장구 치고” 제 맘대로 하려는 것 같습니다. 좌우지간 사람들은 아기의 이름을 즈카르야라고 지으려고 합니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아들의 이름을 지어 주는 것은 아버지의 권리였습니다. 말을 못하는 즈가리야였지만 아내 엘리사벳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할멈! 아이 이름은 요한으로 하라구 했어…”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문득 간섭하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일이 아니면 아무렇게나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막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말 못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의 권위를 생각해 주어야 합니다. 그를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 또한 존중 받고 싶습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도…,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아이 이름은 요한으로 할꺼유…”엘리사벳의 행동. 이것은 그들이 보기에 아버지의 권리를 침해했고(자기들이 먼저 침해했는데), 또 아들 이름은 친척의 이름을 따서 짓는다는 관습에도 어긋났습니다. 좌우지간 그들은 요한이라는 이름을 못마땅해 합니다. 자신들이 지어준 이름이 선택되지 않아서일까요?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그들은 말 못하는 즈카르야를 붙들고 이야기 합니다. 이 행동은 엘리사벳을 무시하는 행위이고, 즈카르야를 제멋대로 움직이고자 하는 행위입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즈카르야는 답답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씁니다. 천사가 일러준 이름입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이며,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낳은 엘리사벳과 즈카르야. 그들은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입니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하느님의 뜻을 의심했던 즈카르야. 온전히 하느님의 뜻을 실현했을 때야 비로소 벌로 받게 된 것이 풀리게 됩니다.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 까요? 얼마나 아들 요한이 원망스러웠을까요? 하지만 즈카르야는 기뻤습니다. 오히려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찬양입니다. 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하느님을 찬미하다가 조금이라도 서운하면 등을 돌리는 저 자신이기에 즈카르야의 모습은 존경스럽게만 보입니다.



내 입은 열려서 하느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남을 험담하고, 욕하고, 이간질하고, 상처 주던 입으로 이제는 하느님을 찬미하여야 합니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그 자리에 참례하지는 않았지만 참석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게 됩니다. 즈카르야가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글을 쓰면서 입이 풀렸다는 것. 즈카르야는 자신이 성소에서 받은 천사의 계시를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처음에 믿지 않았기에 자신이 벙어리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도.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언제나 놀랄 수밖에 없습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그 일을 마음에 새겼습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하며 궁금해 합니다. 나도“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위해 큰일을 해 주셨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나와 늘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나 내 주변의 신앙인들의 모습을 생각하고 힘을 내야 합니다.

내가 기억하면서 살아갈 때 주님의 손길이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보살펴 주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요한은 엘리야의 정신을 가지고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입니다. 이제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할 것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되어 주님의 길을 준비할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아기 이름을 지을 때 먼저 생각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아기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함께 나눠 봅시다. 내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으며, 누가 지어 주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도…,



②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 집니다. “그의 이름은 요한!” 오늘 이 장면을 묵상하면서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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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이름은 요한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ㅎㅎ 전요 욕심많은 할아버지때문에 대접을 받지 못했대요.
    첫 손주를 얻고 본 손녀임에도 불구하고 서운하다고 이름을 지어주지 않자 아버지께서 몇날 몇일을 고민했다고 합니다.
    이름을 어떻게 지어야 건강하게 살아줄까를 고민하면서~~
    그리고 너무 약해서 죽으면 어쩌나 하는 가슴 아림으로~
    그러면서도 만약 살아난다면 밝고 맑게 커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저의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밝고 맑음을 갖추고 이쁘게 살아갔으면 하는 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이름랍니다.
    그리고 아명은 손주를 보고픈 마음에 할아버지께서 둘레라고 지으셨답니다.
    시원찮은 손녀가 가게되면 호적에 오르지 않는 부담없는 이름으로 그리하셨나 보라고~~ ㅎㅎ
    그렇게 시원찮았던 저가 이렇게 성장해 한 아이의 엄마로 잘 살아가고 있지요.

    가능하지 않은 아버지의 말씀에 저라도 “설마, 어떻게 이나이에~” 라는 의문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깨우침의 시간을 보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의 사랑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저라도 말못하는 자신의 답답함보다 자식을 가졌다는 기쁨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큰 사랑에 감사를 드리며 그 깨우침의 시간을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기쁘게 보냈을 것 같습니다.
    그랬기에 말못하던 벙어리로 살아왔지만 온 힘을 다하여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데로 “그의 이름은 요한” 이라고 쓰지요.
    처음엔 아버지의 말씀을 믿지 않았지만 깨우침의 시간을 보내면서
    결국 아버지의 크신 사랑임을 받아들이는 그 모습!
    눈물이 핑도는 그런 기분입니다.
    기쁘지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기에 믿지 못했던 그 마음이 그려집니다.
    사랑은 또 다른 사랑을 낳게 함을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새삼 느꼈습니다.
    사랑은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그 사랑이 뿌리를 내리게 되면 저또한 불가능이 없는 아버지의 사랑에
    더 깊이 고개숙여 저를 봉헌하게 될테니까요.
    가장 낮은자의 겸손이 뿌리를 내리게 될 것이라 생각을 해 봅니다.
    아직 제가 그런 자세가 되지않음은 아마도 아버지의 사랑이 완전한 뿌리를 내리지 못함은 아닌가를 반성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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