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마르5,21-43)

요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믿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었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분이 계획하신 오묘한 섭리는 당신이 이루고자 하신다면
환경,상황 그런 것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본다.
어떠한 처지가 됐든 꼭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든 원치않든 말이다.

세상과 인간 그리고 복음을 통해서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래서 믿음이란
그분의 뜻에 맡기는 자세라는 생각을 해봤다.
고로 철저한 순명을 바탕으로 나의 믿음이 형성되야 한다는 것임을 깨달아 본다.
반항하고 도망 가봤자 결국은 아버지 앞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얼 요구하기보다 그저 그분 앞에 믿음으로써 기다려야 한다.
그분의 숨소리가 느껴지지 않는가…
참으로 부족하고 하찮은 나 지만
그분에게 있어 나역시 소중한 존재가 아니던가…
내가 존재하는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살아야 겠음을 다짐해 본다.

때론 나의 염원이 이루어지지 않을수 있다.
그것이 옳은 염원이든 그른 염원이든
그것은 내가 바라는 바인 것이고…
그분이 보기엔 아닐수도 있지 않은가.

암튼 믿음은
죽을때까지 그분을 절실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비록 내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것 마저 그분의 섭리임을 확신하고 사는게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도리라는 생각도 해봤다.
왜냐하면 태어남도 그분의 뜻이고 죽음도 그분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분은 인간에게 있어 절대적이으로 믿어야만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럼에도
믿어야 되는가… 고민을 하고 산다.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버지가 아버지이신데 왜 고민하는가.
아버지가 아닐까봐서…
아버지가 그럴수 있을까… 해서?

내가 그분께 항상 드리는 좋은 말이 있다.
\’당연함\”이라는 말이다.

사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잘 알것이다.
줄 것과 주지 않을 것을 말이다.
그리고 내 피의 자식이라는 사실을…
아무리 부모의 의를 끊고 산다해도
이씨의 피가 최씨가 될수 없고
염색체를 인간이 어떻게 할수가 없다.

그분은 그것 마저도 할수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을 향한 믿음은 \’당연함\”이다.
그러기에 나역시 나를 만드신 하느님이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한다.

하혈하는 여인처럼…
회당장이 처럼…
아브라함 처럼..
내 숨이 다해 헐떡거리는 순간이 오더라도
믿음은 영원해야 함을 깨달아 보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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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소녀야,내가 너에게 말한다.일어나라(마르5,21-43)에 1개의 응답

  1. 엘리사벳 님의 말:

    영원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당연함” 그렇네요.
    자식이기에 당연히 할 일을 한것이라는 자세로 나아간다면 그나마 믿음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무더위에 지지 마시고 늘 기쁘고 행복한 하루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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