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거저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나아가, 앓는 이를 고쳐 주고,
죽은 이를 일으키며, 마귀 들린 이들을 낫게 하였다.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은
인제대학교 81학번으로 의사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턴 과정과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끝내자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 오던 ‘성소의 길’에 응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그는 외국을 오가며 10년을 더 공부한 뒤
마흔한 살의 늦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200명 이상의 환자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무도 가지 않는 오지 마을을 찾아
이동 진료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모여든다고 합니다.
치료도 받고 소식도 듣고 이웃 간에 만남을 이루는 날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 황량한 땅으로 가게 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정말 그는 아무것도 없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 하나로 떠나간 사람입니다.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제가 그들에게 해 주는 것보다 그들이 제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거저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나아가, 앓는 이를 고쳐 주고,
죽은 이를 일으키며, 마귀 들린 이들을 낫게 하였다.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은
인제대학교 81학번으로 의사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턴 과정과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끝내자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 오던 ‘성소의 길’에 응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그는 외국을 오가며 10년을 더 공부한 뒤
마흔한 살의 늦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200명 이상의 환자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무도 가지 않는 오지 마을을 찾아
이동 진료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모여든다고 합니다.
치료도 받고 소식도 듣고 이웃 간에 만남을 이루는 날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 황량한 땅으로 가게 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정말 그는 아무것도 없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 하나로 떠나간 사람입니다.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제가 그들에게 해 주는 것보다 그들이 제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요셉은 동생 벤야민을 인질로 요구한다.
형제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떠보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다는 자신을 인질로 삼아 줄 것을 청한다.
이제 형제들의 마음을 다 알게 되었다.
요셉은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모든 일은 주님께서 섭리하신 것이라고 요셉은 설명한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4,18-21.23ㄴ-29; 45,1-5
그 무렵 18 유다가 요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 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나리께서는 파라오와 같으신 분이시니, 이 종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나리께서 이 종들에게 ‘아버지나 아우가 있느냐?’ 물으시기에,
저희가 나리께 대답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
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아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
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그러자 나리께서는 ‘그 아이를 나에게 데리고 내려오너라.
내 눈으로 그를 보아야겠다.’ 하고 이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막내아우가 함께 내려오지 않으면,
너희는 다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올라갔을 때,
나리의 말씀을 아버지에게 전하였습니다.
그 뒤에 저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 오너라.’ 하였지만,
저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막내아우가 함께 가야 저희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막내아우가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
저희는 그 어른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그런데 한 아이는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애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말씀에 제가 당신께 받은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명.신앙.믿음.봉사.희생 사랑.등등....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많은 것을 받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께 거저 받았다는 생각보다 제가 노력해서 얻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같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교리를 받고 영세를 했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타의에 의해서라기보다 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 만큼이라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아무튼.... 제가 가진 모든 것과 제가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이 당신께서 거저 주셨다는 생각 보다는 저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의 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교만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신앙심의 깊이가 이 정도이니 아직은 초보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처럼 뭍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아도 당신께서 저의 생명과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거저 주셨음에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는 저의 보 것 없는 신앙심이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뭍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묻고 따지고... 제가 조금만 손해가 가는 것같으면 뭍고 따지고 그럽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거저받은 신앙인답게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해야 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뭍지도 않고 따지지 않으며 무조건 토를 달지 않으며 당신의 자랑스런 자녀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의 축복속에 기쁘고 행복한 신앙인으로 변화 될 그날을 기대하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선포하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병자를 고쳐 주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제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선포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신앙인들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 선포는 말이 아니라 내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 갈 때, 비신자들은 나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선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웃으면서, 친절하게, 기쁘게, 진실한 마음으로, 내 것을 나누면서, 한번 참고, 정화된 말을 전하고, 손잡아 주며, 인사하며” 복음을 전한다면 모두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엄청난 권한도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①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②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며, ③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④ 마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도들은 하늘에서 받은 선물을 이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들어납니다. 그럴 능력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즉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고, 병자를 방문하고, 냉담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저 주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해 주고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해 준 것을 기억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줄 때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있어야 줍니다. 해 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그 평화를 줄 수 있고, 가슴 한 가운데에 신앙이 넘쳐야 신앙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없으면 줄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주고 싶어도 못 줍니다. “주는 체”할 수 있지만, 그걸 받아 본 사람은 “아! 이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줄 수 있도록 영적인 것을 쌓기 위해 노력합시다.
또 주고도 생색내지 않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해도 말로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서 다듬지 않으면 결국 말로 다 까먹는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자기자랑을 통해서“받을 상 다 받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① 전대에 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하며, ②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도, ③ 신발도, ④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믿음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것이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생활에 방해가 되고, 혹은 섭리에 대한 불신의 표시가 되는 것들, 혹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험을 내포하는 쓸 데 없는 세속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십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유다인은 속옷을 두 벌씩 입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입는 사람은 아주 가난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절대적 청빈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열 두 사도들은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대를 이은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탁발 수도회의 수도자라도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빵을 넣기 위한 자루를 가지고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제들이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신자들이 무척 힘들어 할 것입니다. 이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저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바뀔 때 마다 준비해 줘야 하지…, 하지만 그렇게 예수님 말씀처럼 살아갈 때,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지팡이는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지팡이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지팡이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 청빈. 지팡이 하나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결코 사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기억하고 있는가?”를 늘 고민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 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코린9,11-14).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천막 짜는 부업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늘날의 사제들도 신자들에게 피해를 안주기 위해서 뭐 다른 부업을 가져야 할까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까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그냥 웃어 보자고 써봤습니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마땅한 사람의 집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3일 정도는 그 집에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잠자리, 맛있는 음식을 찾아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다른 곳에만 관심이 있어!”하면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또 “내일부터는 저 집에서 머물겠습니다.”하면 집 주인이 많이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큰 마음 먹고 받아들여 줬는데, 그 성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신앙이 있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앞에서만 그렇게 보이고, 뒤에서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축복한다는 것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란 성경에서 보면,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 대단히 넓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나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면 어떻게 축복해 주고, 어떻게 인사하고 있습니까?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기도로 청해 준 사람에게 머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면 그 평화가 기도드린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좋은 행동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평화를 빌어주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평화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거나 야유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면서도 신앙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제자들이 파견되는 곳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파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거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발의 먼지를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고하고 또 권고해야 하겠지만 그에게 가서 오히려 신앙을 빼앗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됩니다. 오히려 멀리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죄로 얼룩져서 결국 망해 버린 도시의 사람들. 그들이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신앙인은 신앙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내가 됩시다. 옳은 것을 이야기 하고, 좋은 것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말고 관심을 갖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전파합시다.
3.나눔 및 묵상
①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만일 예수님이라면 제자들에게 어떤 당부를 할까요?
② 나는 형제 자매들에게 어떻게 인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잘 되도록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형제 자매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는 않습니까?
연중 제14주간 목요일(7/09)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신다. 제자들은 주님의 능력을 거저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나아가, 앓는 이를 고쳐 주고, 죽은 이를 일으키며, 마귀 들린 이들을 낫게 하였다. 하느님의 능력이 그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다(복음).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의 이태석 요한 신부님은 인제대학교 81학번으로 의사가 되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인턴 과정과 군의관으로 군 복무를 끝내자 수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생각해 오던 ‘성소의 길’에 응답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후 그는 외국을 오가며 10년을 더 공부한 뒤 마흔한 살의 늦은 나이에 사제품을 받습니다. 그는 전쟁과 굶주림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사목하고 있습니다. 매일 새벽에 일어나 200명 이상의 환자들을 돌보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아무도 가지 않는 오지 마을을 찾아 이동 진료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모여든다고 합니다. 치료도 받고 소식도 듣고 이웃 간에 만남을 이루는 날이라고 합니다. 신부님은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심어 주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이 황량한 땅으로 가게 했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정말 그는 아무것도 없이 예수님에 대한 확신 하나로 떠나간 사람입니다. “저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제가 그들에게 해 주는 것보다 그들이 제게 돌려주는 행복과 가르침이 더 큽니다.” 신부님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사제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14주간 목요일(7/09)
말씀의 초대
요셉은 동생 벤야민을 인질로 요구한다. 형제들의 마음을 한 번 더 떠보려는 것이었다. 그러자 유다는 자신을 인질로 삼아 줄 것을 청한다. 이제 형제들의 마음을 다 알게 되었다. 요셉은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낸다. 모든 일은 주님께서 섭리하신 것이라고 요셉은 설명한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4,18-21.23ㄴ-29; 45,1-5 그 무렵 18 유다가 요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 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 나리께서는 파라오와 같으신 분이시니, 이 종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나리께서 이 종들에게 ‘아버지나 아우가 있느냐?’ 물으시기에, 저희가 나리께 대답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 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 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아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 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그러자 나리께서는 ‘그 아이를 나에게 데리고 내려오너라. 내 눈으로 그를 보아야겠다.’ 하고 이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막내아우가 함께 내려오지 않으면, 너희는 다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올라갔을 때, 나리의 말씀을 아버지에게 전하였습니다. 그 뒤에 저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 오너라.’ 하였지만, 저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 막내아우가 함께 가야 저희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 막내아우가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 저희는 그 어른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그랬더니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그런데 한 아이는 나를 떠났다. 나는 그 애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고,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 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 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 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 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셉이 목 놓아 울자, 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 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 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말씀에 제가 당신께 받은 것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생명.신앙.믿음.봉사.희생 사랑.등등....
복음을 묵상하면서 성찰해보니
참 많은 것을 받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신께 거저 받았다는 생각보다 제가 노력해서 얻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것같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스스로 성당 문을 두드려 교리를 받고 영세를 했고...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타의에 의해서라기보다 저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이 만큼이라도 신앙생활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아무튼....
제가 가진 모든 것과 제가 갖고 싶은 모든 것들이
당신께서 거저 주셨다는 생각 보다는 저의 노력과 희생으로
지금의 제가 있지 않았나 하는 교만한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복음을 묵상하면서
저의 신앙심의 깊이가 이 정도이니 아직은 초보수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요즈음 유행하는 말처럼 뭍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아도
당신께서 저의 생명과 제가 가진 모든 것들을 거저 주셨음에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는 저의 보 것 없는 신앙심이 부끄럽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뭍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묻고 따지고...
제가 조금만 손해가 가는 것같으면 뭍고 따지고 그럽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말씀의 의미를 깨달아 거저받은 신앙인답게
당신의 자녀로써 부끄럽지 않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해야 한다는 반성을 해봅니다
뭍지도 않고 따지지 않으며 무조건 토를 달지 않으며
당신의 자랑스런 자녀 헬레나로 변화되기를 기도해봅니다
당신의 축복속에 기쁘고 행복한 신앙인으로
변화 될 그날을 기대하며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묵상하며
♬ Abide with Me(저와 함께 하소서)
가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여라.
1. 말씀읽기: 마태10,7-15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하늘나라가 다가 왔다고 선포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제자들은 하늘나라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선포하는 제자들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을 해 주십니다. 병자를 고쳐 주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제자들이 예수님께로부터 받은 선포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신앙인들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합니다. 그 선포는 말이 아니라 내 삶으로 보여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가 하느님 나라를 살아 갈 때, 비신자들은 나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선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웃으면서, 친절하게, 기쁘게, 진실한 마음으로, 내 것을 나누면서, 한번 참고, 정화된 말을 전하고, 손잡아 주며, 인사하며” 복음을 전한다면 모두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면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리고 엄청난 권한도 주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면서 제자들은 ①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②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며, ③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④ 마귀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사도들은 하늘에서 받은 선물을 이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사용해야 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생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죽음으로 나아가는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들어납니다. 그럴 능력을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야 합니다. 즉 나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계산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고, 병자를 방문하고, 냉담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저 주라는 말씀이 가슴 깊이 와 닿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해 주고도 아깝지 않습니다. 자녀에게 해 준 것을 기억하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줄 때 계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있어야 줍니다. 해 주고 싶어도 아무것도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마음에 평화가 있어야 그 평화를 줄 수 있고, 가슴 한 가운데에 신앙이 넘쳐야 신앙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없으면 줄 수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합시다. 주고 싶어도 못 줍니다. “주는 체”할 수 있지만, 그걸 받아 본 사람은 “아! 이건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줄 수 있도록 영적인 것을 쌓기 위해 노력합시다.
또 주고도 생색내지 않은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열심히 해도 말로 다 까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서 다듬지 않으면 결국 말로 다 까먹는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자기자랑을 통해서“받을 상 다 받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① 전대에 돈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하며, ②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도, ③ 신발도, ④ 지팡이도 지니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믿음만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아무 준비도 없이 간다는 것이 대책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이 아무것도 지니지 말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 생활에 방해가 되고, 혹은 섭리에 대한 불신의 표시가 되는 것들, 혹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면서 무슨 이익을 얻으려고 하는, 그러한 위험을 내포하는 쓸 데 없는 세속적인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을 가르치십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유다인은 속옷을 두 벌씩 입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입는 사람은 아주 가난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절대적 청빈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열 두 사도들은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들의 대를 이은 후계자들에게는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탁발 수도회의 수도자라도 사람들이 베풀어 주는 빵을 넣기 위한 자루를 가지고 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사제들이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면 신자들이 무척 힘들어 할 것입니다. 이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저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바뀔 때 마다 준비해 줘야 하지…, 하지만 그렇게 예수님 말씀처럼 살아갈 때, 엄청난 힘을 얻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마르코 복음에서는 지팡이는 가지고 가라고 했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지팡이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지팡이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의미는 마찬가지입니다. 절대적 청빈. 지팡이 하나 가지고 있다 해서 그것이 결코 사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주님의 섭리에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께서 나에게 부여하신 사명은 기억하고 있는가?”를 늘 고민하는 내가 되어 봅시다.
그리고 일하는 사람은 자기 먹을 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물론 하느님의 선물을 돈을 받고 팔아서도 안 됩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생활을 당연히 돌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씨를 심어 주었는데 이제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을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 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1코린9,11-14).
사도 바오로는 신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천막 짜는 부업을 갖고 계셨습니다. 오늘날의 사제들도 신자들에게 피해를 안주기 위해서 뭐 다른 부업을 가져야 할까요? 그렇다면 저는 무엇을 할까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그냥 웃어 보자고 써봤습니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마땅한 사람의 집이라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3일 정도는 그 집에 머물 수 있다고 합니다. 좋은 잠자리, 맛있는 음식을 찾아 이집 저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저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데는 관심이 없고 다른 곳에만 관심이 있어!”하면서 그를 받아들이지 않게 됩니다. 또 “내일부터는 저 집에서 머물겠습니다.”하면 집 주인이 많이 실망을 하게 될 것입니다. 큰 마음 먹고 받아들여 줬는데, 그 성의를 무시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신앙이 있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앞에서만 그렇게 보이고, 뒤에서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과감하게 떠나야 합니다. 그래야 공동체를 일치시킬 수 있습니다.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축복한다는 것은 인사한다는 것입니다. 이 인사는 이스라엘 사람에게 있어서는 보통 “평화를 빕니다.”라는 인사였습니다. “평화”란 성경에서 보면, 정신적, 물질적 축복을 의미하는 대단히 넓은 뜻을 지닌 말입니다. 나는 형제 자매들을 만나면 어떻게 축복해 주고, 어떻게 인사하고 있습니까?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하느님께로부터 내려오는 평화는 기도로 청해 준 사람에게 머뭅니다. 만일 그 사람이 그것을 받기에 합당치 못하면 그 평화가 기도드린 사람에게로 돌아옵니다.
더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면, 좋은 행동은 언제나 좋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는 평화를 빌어주고 있는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는 얼마만큼 평화 속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가를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거나 야유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면서도 신앙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제자들이 파견되는 곳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파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거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발의 먼지를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아닌 사람이 있습니다.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신자처럼 살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권고하고 또 권고해야 하겠지만 그에게 가서 오히려 신앙을 빼앗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안 가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됩니다. 오히려 멀리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이 될 때가 있습니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하느님을 믿지 않고 죄로 얼룩져서 결국 망해 버린 도시의 사람들. 그들이 오히려 가벼운 벌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즉 신앙인은 신앙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인이 신앙인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내가 됩시다. 옳은 것을 이야기 하고, 좋은 것을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고개를 돌리지 말고 관심을 갖고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와 함께 하느님 나라를 전파합시다.
3.나눔 및 묵상
①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내가 만일 예수님이라면 제자들에게 어떤 당부를 할까요?
② 나는 형제 자매들에게 어떻게 인사하고 있으며, 그들이 잘 되도록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혹시 형제 자매들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지는 않습니까?
③ 형제자매들이 나에게 어떤 축복을 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