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육신만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7/11)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중부 이탈리아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은수자의 삶을 시작하자 많은 이가 그의 명성을 듣고 모여들었다. 530년경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수도원을 건립하고 수도회 규칙을 만들었다. 올바른 금욕 생활, 기도와 공부, 그리고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생활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후 성인은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547년에 세상을 떠난 그를 바오로 6세 교황은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베네딕토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 분도(芬道)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왜 두려워하느냐고 하신다. 그러므로 진정 두려워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복음).
    복음
    <너희는 육신만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찮은 참새도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땅에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합니다. 정체도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에 열정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몰라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아무리 짜증 내고 불평해도 마음속을 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의 어린이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그분을 증언하는 길입니다. 세상은 경쟁하듯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앞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외쳐 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주님께 맡겨야 아버지를 드러내는 삶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증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인생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살다가 당신께 돌아오라며 맡기신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 삶에서 ‘사는 것이 두렵다.’는 표현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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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육신만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7/11)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중부 이탈리아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은수자의 삶을 시작하자 많은 이가 그의 명성을 듣고 모여들었다. 530년경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수도원을 건립하고 수도회 규칙을 만들었다. 올바른 금욕 생활, 기도와 공부, 그리고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생활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후 성인은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547년에 세상을 떠난 그를 바오로 6세 교황은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베네딕토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 분도(芬道)다.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왜 두려워하느냐고 하신다. 그러므로 진정 두려워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복음).
      복음
      <너희는 육신만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찮은 참새도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땅에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합니다. 정체도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에 열정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몰라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아무리 짜증 내고 불평해도 마음속을 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의 어린이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그분을 증언하는 길입니다. 세상은 경쟁하듯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앞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외쳐 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주님께 맡겨야 아버지를 드러내는 삶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증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인생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살다가 당신께 돌아오라며 맡기신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 삶에서 ‘사는 것이 두렵다.’는 표현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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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7/11)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중부 이탈리아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은수자의 삶을 시작하자 많은 이가 그의 명성을 듣고 모여들었다. 530년경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수도원을 건립하고 수도회 규칙을 만들었다. 올바른 금욕 생활, 기도와 공부, 그리고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생활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후 성인은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547년에 세상을 떠난 그를 바오로 6세 교황은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베네딕토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 분도(芬道)다.
      말씀의 초대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 자기 아들들에게 당부한다. 자신을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이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사 둔 동굴 묘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요셉은 형제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말하였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에 정착했다. 요셉은 장수를 누리다가 선종한다(제1독서).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그리고 요셉은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아무 것도 너를 / 살레시오 수녀회
     
    
    
    
    
     
    

  3. guest 님의 말:

    (no content)

  4. guest 님의 말:

    두려워하지 마라시는 아버지의 그 마음에 저를 묻어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정말 가슴깊이 와 닿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아침에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면서 지금의 저와 같다면서 웃었지요? ㅎㅎ

    그렇다고 제가 의로운 멋진 신앙인이라는 것은 아니구요.

    삶을 살아감에 늘 어리석은 것들에 두려움을 느끼며 두리번거립니다.

    영혼마저 다루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보잘 것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의롭지 못한 이로 살아가는건 아닌지요.

    공동체속에서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협속에 손을 잡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아버지를 가려버리지요.

    “아니오” 라고 하면 분명 외면과 박해가 따를 것이니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가 똘똘 뭉칩니다.

    그러면서 그 무리에 합류하지 않으면 외면과 따가운 시선만이 돌아옵니다.

    전 신앙생활하면서 참으로 많은 상황을 보았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신앙생활 하기 전보다 더 속속들이 삶을 배운것도 사실이지요.

    그랬기에 지금의 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한답니다.

    더 힘들지만 기준이 생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무엇을 담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전 두려움이란 것을 다른 곳에서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다가오는 두려움이 제겐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이렇게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체에서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를 수도없이 듣지만

    전 아닌것에 타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당당하게 미소짓습니다.

    그들이 보기엔 저의 그런 모습이 더 보기싫고

    안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건 그들이 몫이고

    전 이미 그들을 용서했기에 미운마음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제 다큐에서 활주로를 타고 올라가는 비행장의 일부가 나왔었는데

    한 마리의 작은 새가 그렇게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어제 실감나게 봤습니다.

    한 대에 400억하는 비행기를 작은 새 한 마리가 이기더군요.

    제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저 작은 새처럼 당당히 나아간다면 정말 작지만 큰일도 해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진정 의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에 그 어떤 두려움없이

    오로지 아버지만을 생각하면서 그 나머진 아버지께 맡기고

    당당히 뛰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구속과 속박속에선 더 깊은 힘이 생겨남을 깨달았습니다.

    정해진 형식의 틀에 팔과 다리를 묶였다고는 하지만

    제게 배여있는 사고는 묶을수 없음이지요.

    비록 묶인 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더 깊은 생각에

    지혜와 슬기가 샘솟아 시간이 지났을 때

    비로소 그것이 드러남을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겐 오로지 아버지만이 계시니까요.

    살아가는 힘이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사랑의 공기를 주심임을 이젠 안답니다.

    지금의 상황에 주저앉는 저가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뿌리깊은 나무되어 아버지앞에 그늘이 되어 드릴 것을

    작은 가슴에 다부지게 담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늘 그러하지만 오늘은 더 큰 힘이 되어 제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말씀은 묵상하면서 공동체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갑자기 다가와

    눈시울이 젖어들었습니다.

    맞지 않는다고 아니 맞추지 않는다고

    한순간에 일치를 이루지 않는 사람으로 오인되고

    함께하지 않는다고 우상숭배라는 무서운 말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식에 젖은 사람이지 신앙인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직 깊이 들어가지 못한 남편 때문에 드러내지도 못하고 몰래 아버지만를 괴롭혔지요.

    아마도 그땐 제게 그들이 두려웠었나 봅니다.

    근데요 아버지!

    상황이 두려움에 몸서리쳐지게 만들때도 있음을 그때 배웠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공동체라는 것 때문에 더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나니 미움도 두려움도 없어지고 제게 남은건

    아버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저이기에 아버지께서 절 강하게 만드시려고

    그리하셨나 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을 용서했고 아니 제가 용서할 것은 아니고 그냥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가 이렇게 고개숙이게 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져도 더 강하게 설 수 있게 하소서.

    세상의 두려움이 제게 장애가 되지 않듯이

    공동체안에서 오는 비인간적인 관계가 있을지라도

    되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삐삐되게 하소서.

    모자란 듯 하지만 제 영혼은 사랑을 노래하며 늘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의로운이의 모습으로 당당히 서서 아버지앞에서 찬미노래 불러드리는

    어여쁜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5. user#0 님의 말:

    두려워하지 마라시는 아버지의 그 마음에 저를 묻어봅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정말 가슴깊이 와 닿습니다.

    지당하신 말씀이지요.

    아침에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면서 지금의 저와 같다면서 웃었지요? ㅎㅎ

    그렇다고 제가 의로운 멋진 신앙인이라는 것은 아니구요.

    삶을 살아감에 늘 어리석은 것들에 두려움을 느끼며 두리번거립니다.

    영혼마저 다루시는 아버지를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보잘 것 없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며

    의롭지 못한 이로 살아가는건 아닌지요.

    공동체속에서 아님에도 불구하고 타협속에 손을 잡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고 자신의 명예를 위해 스스로 아버지를 가려버리지요.

    “아니오” 라고 하면 분명 외면과 박해가 따를 것이니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서로가 똘똘 뭉칩니다.

    그러면서 그 무리에 합류하지 않으면 외면과 따가운 시선만이 돌아옵니다.

    전 신앙생활하면서 참으로 많은 상황을 보았습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신앙생활 하기 전보다 더 속속들이 삶을 배운것도 사실이지요.

    그랬기에 지금의 저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한답니다.

    더 힘들지만 기준이 생겼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었고

    무엇을 담고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전 두려움이란 것을 다른 곳에서 느끼지 않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다가오는 두려움이 제겐 없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이렇게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동체에서 일치를 이루지 못한다는 얘기를 수도없이 듣지만

    전 아닌것에 타협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늘 당당하게 미소짓습니다.

    그들이 보기엔 저의 그런 모습이 더 보기싫고

    안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지는 몰라도 그건 그들이 몫이고

    전 이미 그들을 용서했기에 미운마음이 없다는 것이지요.

    어제 다큐에서 활주로를 타고 올라가는 비행장의 일부가 나왔었는데

    한 마리의 작은 새가 그렇게 큰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어제 실감나게 봤습니다.

    한 대에 400억하는 비행기를 작은 새 한 마리가 이기더군요.

    제가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 저 작은 새처럼 당당히 나아간다면 정말 작지만 큰일도 해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러면 진정 의로운 길로 나아가는 것에 그 어떤 두려움없이

    오로지 아버지만을 생각하면서 그 나머진 아버지께 맡기고

    당당히 뛰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구속과 속박속에선 더 깊은 힘이 생겨남을 깨달았습니다.

    정해진 형식의 틀에 팔과 다리를 묶였다고는 하지만

    제게 배여있는 사고는 묶을수 없음이지요.

    비록 묶인 몸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더 깊은 생각에

    지혜와 슬기가 샘솟아 시간이 지났을 때

    비로소 그것이 드러남을 가슴으로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겐 오로지 아버지만이 계시니까요.

    살아가는 힘이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사랑의 공기를 주심임을 이젠 안답니다.

    지금의 상황에 주저앉는 저가 아니라

    이것을 계기로 뿌리깊은 나무되어 아버지앞에 그늘이 되어 드릴 것을

    작은 가슴에 다부지게 담습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오늘 아버지께서는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라고~~

    늘 그러하지만 오늘은 더 큰 힘이 되어 제 가슴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말씀은 묵상하면서 공동체에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들이 갑자기 다가와

    눈시울이 젖어들었습니다.

    맞지 않는다고 아니 맞추지 않는다고

    한순간에 일치를 이루지 않는 사람으로 오인되고

    함께하지 않는다고 우상숭배라는 무서운 말까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형식에 젖은 사람이지 신앙인이 아니라는 소리까지 들으면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아직 깊이 들어가지 못한 남편 때문에 드러내지도 못하고 몰래 아버지만를 괴롭혔지요.

    아마도 그땐 제게 그들이 두려웠었나 봅니다.

    근데요 아버지!

    상황이 두려움에 몸서리쳐지게 만들때도 있음을 그때 배웠습니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공동체라는 것 때문에 더했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나니 미움도 두려움도 없어지고 제게 남은건

    아버지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부족한 저이기에 아버지께서 절 강하게 만드시려고

    그리하셨나 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들을 용서했고 아니 제가 용서할 것은 아니고 그냥 미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때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부족한 저가 이렇게 고개숙이게 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주어져도 더 강하게 설 수 있게 하소서.

    세상의 두려움이 제게 장애가 되지 않듯이

    공동체안에서 오는 비인간적인 관계가 있을지라도

    되려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삐삐되게 하소서.

    모자란 듯 하지만 제 영혼은 사랑을 노래하며 늘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의로운이의 모습으로 당당히 서서 아버지앞에서 찬미노래 불러드리는

    어여쁜 저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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