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의 초대
세상은 기상 변화에 민감해지고 있다. 갈수록 일기 예보는 발전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예보할 줄 모른다.
정치와 경제는 예측하면서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시대의 징표는 화해다. 늦기 전에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복음).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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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금요일(10/23)
말씀의 초대
세상은 기상 변화에 민감해지고 있다. 갈수록 일기 예보는 발전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나라’에 대해서는 예보할 줄 모른다. 정치와 경제는 예측하면서 인류의 행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시대의 징표는 화해다. 늦기 전에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복음).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내일의 날씨는 예측하면서 ‘내일의 삶’은 왜 덮어 두느냐는 말씀입니다. 재물이 앞날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곁에는 돈과 물질이 넘쳐 나고 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현실을 풀이할 열쇠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애정 결핍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능의 탐닉에 쉽게 빠져듭니다. 물질로 영혼을 달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답이 아닙니다. 갈증만 심해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화해에서 시작됩니다. 싸운 적도 없는데 무슨 화해를 하란 말인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행위’가 화해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뜻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소송 중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재판관이신 주님께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보이는 것만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삶 속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사랑도 깨달음입니다. 아픔 없이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불꽃의 점화를 시작하라는 것이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연중 제29주간 금요일(10/23)
말씀의 초대
선을 바라면서도 선을 행하지 못하고, 악을 피하고 싶어 하면서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한계다. 인간 안에 죄의 그림자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 안에 있는 이런 모습과 투쟁해야 한다. 내 안에는 또 다른 ‘내가’ 있는 것이다(제1독서).
제1독서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7,18-25ㄱ 형제 여러분,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하면, 그 일을 하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입니다. 여기에서 나는 법칙을 발견합니다. 내가 좋은 것을 하기를 바라는데도 악이 바로 내 곁에 있다는 것입니다. 나의 내적 인간은 하느님의 법을 두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내 지체 안에는 다른 법이 있어, 내 이성의 법과 대결하고 있음을 나는 봅니다. 그 다른 법이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법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주님!
오늘 하루도 분주하게 보냈습니다
저 자신을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복음을 묵상하면서
제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정신없이 살아가는 요즈음 저의 존재가 없는 것 같아
우울합니다
하루 하루 쫒기듯 어느 때는 무엇에 홀린 것 같기도 하지요
그러다...
아직 저만을 바라보고 있는 남편과 아이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수리기도 합니다
그런 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술아슬하기도 하고...
외줄을 타고 높이 올라가 있는 것 같아 불안하지요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저의 모습이...
그래도 다행이지요? 주님!
이렇게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저만의 시간을 갖으며
반성도 하고 아쉬워하며 당신께 푸념도 하고 원망도 하는
좋은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기쁩니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기쁘고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야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올바른 정신과 여유로운마음과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