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성 요사팟 주교는 1580년경 우크라이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상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성인은 영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성인은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고 수도원장이 되었다. 훗날 러시아의 주교가 되어 교회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지만,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요사팟 주교는 1867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동방 교회의 주교였지만 최초로 서방 교회의 성인이 된 분이다.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올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선입관 없이 기다리는 것이 종말에 대한 최선의 준비다(복음).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득세하는 날이 언제냐는 질문입니다. 대단히 현실적인 물음입니다. 유다인이 이방인을 누르고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날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답변은 명쾌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는 ‘현실의 성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와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있었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은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분 섭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요? 현실과 미래에서 그분의 손길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 안에서의 깨달음입니다. 종말 역시 하느님 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언제 올지 모릅니다. 인간의 판단 기준을 초월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지금 계속되는 ‘삶의 끝’이 나의 종말입니다. 저만치 오는 비를 미리 뛰어가서 맞으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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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이노주사 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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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성 요사팟 주교는 1580년경 우크라이나에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는 상인이 되기를 바랐지만, 성인은 영혼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이후 성인은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고 수도원장이 되었다. 훗날 러시아의 주교가 되어 교회 일치를 위해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지만, 이교도들에게 살해되었다. 요사팟 주교는 1867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동방 교회의 주교였지만 최초로 서방 교회의 성인이 된 분이다.
      말씀의 초대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현실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올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선입관 없이 기다리는 것이 종말에 대한 최선의 준비다(복음).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7,20-25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리사이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묻습니다. 이스라엘이 득세하는 날이 언제냐는 질문입니다. 대단히 현실적인 물음입니다. 유다인이 이방인을 누르고 ‘절대 강자’로 군림하는 날을 물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답변은 명쾌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하느님 나라는 ‘현실의 성공’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는 말도 믿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미 와 계신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세상이 시작될 때부터 있었습니다. 현실의 모든 것은 그분의 다스림 안에 있습니다. 어느 누가 ‘그분 섭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는지요? 현실과 미래에서 그분의 손길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라는 믿음 안에서의 깨달음입니다. 종말 역시 하느님 나라의 ‘한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언제 올지 모릅니다. 인간의 판단 기준을 초월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기다리면 됩니다. 지금 계속되는 ‘삶의 끝’이 나의 종말입니다. 저만치 오는 비를 미리 뛰어가서 맞으려 드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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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11/12)


      말씀의 초대
      지혜는 하느님의 이끄심이다. 그러기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혜 속에 머물려고 애쓰면 주님의 사랑 속에 있게 된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을 믿지만, 지혜로운 이는 주님을 믿는다. 주님을 따르는 것 자체가 지혜다(제1독서).
      제1독서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다.> ☞ 지혜서의 말씀입니다. 7,22ㄴㅡ8,1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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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주님!어제는 요?

    반 모임을 하였는데 얼마 전 본당신부님께서 소 공동체교육을 
    하시면서 구역을 조정하셔서 저희 반이 두 개 반으로 나뉘게 되니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반이 나뉘게 되니
    서로 반장과 총무를 하지 못하겠다고 하여 마음이 산란 하였습니다
    다행인지 저의 집안에 우환도 있고 일을 한다고 배려를 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지만 연로하신 분들만 남은 반이 염려가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죄송한 마음이 들어 협조하겠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지요
    참 미안했습니다 고맙기도 하구요
    구역자매님들이 저를 얼마나 사랑해주시는 깨닫기도 했습니다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말씀을 깊이 성찰하며

    예전처럼 반모임이 잘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사랑이신 당신께서 잘 지켜주시리라는 믿음으로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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