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연중 제1주간 토요일(1/16)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세리 레위를 부르신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이 만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세리를 죄인과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오히려 당신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견원지간’은 개와 원숭이 사이라는 말입니다. 좋지 않은 관계일 때 이 비유를 사용합니다. 실제로 개와 원숭이는 잘 지내지 못합니다. 동물 학자들이 원인을 밝혔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원숭이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리는데, 개는 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면 원숭이는 꼬리를 올리고, 개는 내린다는 겁니다. 신호 체계가 반대인 셈입니다. 자신의 신호 체계로 상대를 보니까 오해는 당연합니다.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숭이와 개 사이의 불화는 ‘숙명’인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시각을 바꾸면’ 견원지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가능합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던 것’을 상대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이지요. 바리사이들은 항의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시각으로 보십니다. 세리도 주님의 자녀라는 관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눈길’을 지녀야 주님을 닮은 삶이 됩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신호 체계를 승화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며 살면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행복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모두 함께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누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God Is So Good - Sheila Wal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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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토요일(1/16)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세리 레위를 부르신다. 그런데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이 만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세리를 죄인과 동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전혀 개의치 않으신다. 오히려 당신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다(복음).
      복음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17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견원지간’은 개와 원숭이 사이라는 말입니다. 좋지 않은 관계일 때 이 비유를 사용합니다. 실제로 개와 원숭이는 잘 지내지 못합니다. 동물 학자들이 원인을 밝혔는데,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원숭이는 기분이 좋으면 꼬리를 내리는데, 개는 올린다고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상하면 원숭이는 꼬리를 올리고, 개는 내린다는 겁니다. 신호 체계가 반대인 셈입니다. 자신의 신호 체계로 상대를 보니까 오해는 당연합니다. 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원숭이와 개 사이의 불화는 ‘숙명’인 셈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다릅니다. ‘시각을 바꾸면’ 견원지간의 관계에도 변화가 가능합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보던 것’을 상대 입장에서 보려는 노력이지요. 바리사이들은 항의합니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그들은 여전히 율법의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사랑의 시각으로 보십니다. 세리도 주님의 자녀라는 관점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눈길’을 지녀야 주님을 닮은 삶이 됩니다. 그것은 또한 자신의 신호 체계를 승화시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며 살면 행복을 만나게 됩니다.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데 행복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나도 잘되고 남도 잘되기를 바라야 합니다. 모두 함께 주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누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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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guest 님의 말:


    연중 제1주간 토요일(1/16)


      말씀의 초대
      사울은 이스라엘의 첫 임금으로 벤야민 지파 소속이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긴 젊은이였다. 어느 날 사울의 아버지 키스는 아들에게 잃어버린 암나귀들을 찾아오라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사울은 예언자 사무엘을 만난다. 모든 일은 주님의 이끄심이었다(제1독서).
      제1독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람, 사울이 그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9,1-4.17-19; 10,1 벤야민 지파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키스였다. 그는 아비엘의 아들이고 츠로르의 손자이며, 브코랏의 증손이고 아피아의 현손이었다. 그는 벤야민 사람으로서 힘센 용사였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이름은 사울인데 잘생긴 젊은이였다.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그처럼 잘생긴 사람은 없었고, 키도 모든 사람보다 어깨 위만큼은 더 컸다. 하루는 사울의 아버지 키스의 암나귀들이 없어졌다. 그래서 키스는 아들 사울에게 말하였다. “종을 하나 데리고 나가 암나귀들을 찾아보아라.” 사울은 종과 함께 에프라임 산악 지방을 돌아다니고, 살리사 지방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들은 사알림 지방까지 돌아다녔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다시 벤야민 지방을 돌아다녔으나 역시 찾지 못하였다. 사무엘이 사울을 보는 순간,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내가 너에게 말한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사람이 내 백성을 다스릴 것이다.” 사울이 성문 안에서 사무엘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견자의 댁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내가 그 선견자요. 앞장서서 산당으로 올라가시오. 두 분은 오늘 나와 함께 음식을 들고, 내일 아침에 가시오. 그때 당신이 마음에 두고 있는 일도 다 일러 주겠소.” 사무엘은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입을 맞춘 다음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당신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그분의 소유인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세우셨소. 이제 당신은 주님의 백성을 다스리고, 그 원수들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할 것이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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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guest 님의 말: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에 위로를 받습니다
    용기도 생기지요 왜냐구요?
    그 죄인들 중에 저 헬레나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당신의 뜻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기에 마음 한구석에 언제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습니다
    그 짐 때문에 몸과 마음도 무겁고 괴롭고 때로는
    당신을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양심이 찔리고 당신께 죄송스럽고 저 자신에게 화가나고...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들로 저의 신앙생활이 기쁘지만 않았습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저의 못된 습관과
    게으름 교만 이기심 세속에 대한 미련 등 ...
    신앙인으로써 갗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되어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저의 신앙생활이 행복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마음으로 부터 해방감이 와야 하는데 무거운 돌덩어리를 가슴에 엊어 
    놓은 것같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노력해야 한다고 머릿 속으로만 생각하고 또 하면서...

    참으로 좋으신 주님!
    오늘복음을 묵상하면서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말씀을 깊이 새기며
    죄인을 부르러 오신 당신의 깊은 사랑에 감사드리며
    당신의 사랑에 용기를 갖으며 비록 의인까지는 되지 못한다해도
    습관적인 죄 부터 짓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머릿 속으로만 생각하지 않으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인 헬레나로
    변화되어야 한다고 다시금 다짐해봅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참으로 좋으신 당신의 사랑을 생각하며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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