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1. 말씀읽기: 마르코2,13-17

레위를 부르시고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드시다 (마태 9,9-13 ; 루카 5,27-32)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2. 말씀연구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레위를 부르십니다. 마태오 복음에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세리 마태오라고 칭하였습니다. 하지만 마르코는 마태오를 존중했기에 그의 별명인 레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부정하다고 손가락질하는 세리를 부르시는 예수님, 그리고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시는 예수님. 바리사이나 율법학자들이 보기에는 예수님의 행동이 무척 잘못 되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이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죄인들도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는 것은 의인뿐만 아니라 죄인들도 구원의 대상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형제자매들에게 다가간다면 더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13 예수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이 모두 모여 오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 뒤에 길을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아 있는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세리는 세금을 거두어들이는 사람을 말하는데 로마의 식민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거두어서 로마에 바치는 세리를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또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 어울리지 않았는데, 또 어울렸을 경우에는 몸을 씻는 정결례를 거행하였습니다. 그러니 이방인들과 어울리고, 돈을 만지는 세리를 좋아할 리 없고, 또 그들을 죄인으로 취급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십니다.

 그런데 세리들은 아주 욕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였고, 가난한 백성을 괴롭혔기 때문에 뱀처럼 지겨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로마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세리란 죄인과 같은 뜻을 가진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레위는 마태오의 별명으로 다른 복음사가들은 마태오에 대한 존경과 세심한 배려 때문에 마태오의 별명인 ‘레위’라고만 쓴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태오 자신은  ‘세리 마태오’라고 뚜렷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떠한 신분이라 할지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것입니다. 마태오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 마태오(레위)를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그런데 아무런 설명이나 조건이 없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오(레위)도 아무런 조건 없이 벌떡 일어나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마치 자석이 쇠붙이를 끌어 들이듯이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레위)를 부르십니다. 쇠붙이가 자석에게 끌려가듯이 마태오(레위)는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예!”할 수 있습니다.



마태오 사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마태오는 사도이며 동시에 복음사가입니다. 마태오란 히브리말로 ‘하느님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또한 ‘위대한’이란 뜻을 가진 라틴어의 Magnus와 ‘하느님’이란 그리스어의 Theos의 합성어로 본다면 ‘하느님을 위한 위대한 자’가 될 것이며, 또는 ‘손’이란 라틴어의 manus와 그리스어의 Theos의 합성어로 본다면 ‘하느님의 손’이란 뜻이 됩니다. 출생은 갈릴레아 지방으로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그는 세리였습니다. 주의할 일은 마르코와 루카가 단순히 마태오라고 하여 토마스 앞에 기록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마태오 자신은 세리라는 직책을 밝히고 토마스 다음에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는 죄인의 대명사였기에 다른 사도들은 마태오를 세리라고 하지 않고 레위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겸손한 마태오는 자신을 세리라고 있는 그대로 표현했던 것이고, 자신을 토마스 사도 다음에 기록했던 것입니다. 마태오는 유다와 에디오피아에서 전교활동을 했고, 이집트의 에깃부스왕의 왕자를 기적으로 치유하였습니다. 이로써 왕가 전체가 신자가 되고 왕의 딸 에피케네이아도 동정녀로 지내기로 서약하였습니다. 그러나 헤르따고라는 왕이 왕위에 올랐고 에피케네이아와 결혼을 하려고 하였지만 거절당하자 공주도 죽이고 마태오도 죽임(90년)을 당했습니다. 유해는 이탈리아의 살레르노에 모셔져 있습니다.



15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도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과 자리를 함께하였다. 이런 이들이 예수님을 많이 따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태오는 자신의 집으로 예수님을 모십니다. 마태오는 자신의 친구들과 동료들을 불러서 예수님과 함께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경건하다는 유다인들로부터 늘 손가락질만 받던 그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고, 예수님의 능력을 알게 되니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자신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사람답게 대해 주시는 예수님을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메시지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구원자 예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16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

 바리사이파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예수님께 항상 당하기만 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님께 직접 시비 걸 용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제자들에게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율법을 지키는 이들이 죄인들이나 부정한 이들과 함께 한다는 것을 있을 수가 없는 일이고, 비위가 상하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죄인들은 유다인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가 없었고, 재판할 때 증인으로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도박, 고리대금, 도둑질, 깡패, 그 밖에 일반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지키기 않는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세리나 죄인들과 한 자리에서 식사를 하면 안 된다는 금령은 없었으나, 율법학자들은 그런 교제를 위험한 일이라 하여 금하고 있었고, 백성들은 이 금령을 지키고 있었습니다(사도10,28-29;11,2-3;갈라2,12).



그런데 누가 의인이고, 누가 죄인일까요?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나는 의인이라고 자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착각하면서 내가 던지는 돌에 많은 이들이 죄인으로 찍혀서 가슴 아파 하고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판단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상대방을 죄인으로 판단하면 그 판단 기준으로 하느님께서도 나를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겸손하게 자기 자신을 인정할 때, 아무리 부족한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내 모습을 참되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 아닙니까?



17 예수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제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의사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분은 병자이며 죄인인 세리를 위해서도 오셨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건강한 의인(?)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죽음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 손을 내밀지 않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 뵙겠습니까? 그리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이 어떻게 의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죄인이라 하여 세리와 창녀들을 멀리하는 그들을 어떻게 목자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의인에게는 관심이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들은 조금만 방향을 잡아줘도 하느님 나라로 성큼성큼 향하지만 죄인들은 많이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의인들뿐만 아니라 죄인들도 구원의 대상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은 자들과 식사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청하며 새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가르침을 청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다면 나는 결코 고백소를 찾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주님께 용서를 청한다면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어떤 사람이 의인이고, 어떤 사람이 죄인일까요?



② 함께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일 수도 있고, 어려운 일일 수도 있습니다. 좋은 사람과 함께라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하지만 힘든 사람과 함께라면 밥이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과 함께 하고 싶습니까? 나는 또 어떤 사람이 함께 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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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1개의 응답

  1. 샘지기 님의 말:

    의인을 성실함으로 산다고 하지요.
    1코린토서에서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시종으로 하느님의 신비를 맡은 관리인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 관리인에 요구되는 바는 바로 성실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합니다.
    바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의인은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순명하면서 열심히 하는 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죄인을 말하기는 어렵지만 공동체에서 비추어 본다면
    남의 말을 만드는 사람이 먼저 인것 같습니다.
    그리고 뒤에서 이러쿵 저러쿵 하면서 정작 앞에서는 의인인척 하는 이….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쓰면서
    말씀은 사은품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참 어렵지요. 한 길을 걷는 다는 것이 …
    좋고 싫음이 있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안고 살아가지는데 능률은 없습니다.
    그리고 저도 그에 흡수되어 때론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공동체의 흐름을 깨트리지 않고 한 길을 가는 사람들인 만큼 내 목소리를 키우기 보다는 방향성을 함께 모색하고
    길을 찾는 이들이라면 못할 것이 없을 것 같은디..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다 제 맘같지는 않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저와 함께 하려 하는 이들은 뭔가 고민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이들입니다.
    할머니도 있고 영세 받은지 얼마 안된 분들도 있고…
    한가지 분명한 것은 본당 신부님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들…
    그러니까 나이드시어 웬만한 것에는 끄뜩하지 않는 이.. 그리고 영세받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색을 잘 알지 못하는 이들…
    이렇게 말하니까 그렇네요. ㅎㅎㅎ
    그들은 자신이 말을 했을 때 뭔가를 얻을 수 있고, 또 자신이 한 말이 나가지 않음을 좋아하나 봅니다.
    침묵을 안고 묵묵히 흘러가는 강처럼 살아가는게 쉬이 질리지 않는 신앙인의 모습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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