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제자를 파견하시는 예수님
1. 말씀읽기: 마르코 6,7-13
열 두 제자를 파견하시다 (마태 10,1-1 ; 마태 10,5-15 ; 루카 9,1-6)
2. 말씀연구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하느님 나라의 일꾼으로 삼으시어, 그 일을 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파견하신 분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다른 것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길을 떠날 때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하느님의 되었고, 자녀답게 살아가고 있으며, 하느님의 자녀임을 자랑스러워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를 부르신 분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도 생각해 봅시다.
7 그리고 열두 제자를 부르시어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열두 사도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악마와 모든 병고를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십니다. 그리고 복음을 선포할 의무도 아울러 주십니다(마태10,7). 사도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받은 권한으로 자기들의 일을 입증할 것입니다.
더러운 영들은 지금 내 옆에도 있습니다. 나를 부추기기도 하고,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부추기기도 합니다. 하지 말아야 될 말들, 하지 말아야 될 행동들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정작 해야 될 말이나 해야 될 말은 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렇게 물들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더러운 영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유혹하고,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에게 권한을 주셨습니다. 단호하게 “안 됩니다.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잘못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둘 씩 짝지어 보내십니다. 사실 혼자는 어렵습니다. 둘이 힘을 합하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데, 둘이 하나씩 되면 그 힘은 별 볼일 없어집니다. 그런데 동료가 잘할 때, 과연 칭찬하고 존경할 수 있느냐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나와 함께 하는 동료가 일을 너무 잘합니다. 그런데 내가 그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가 잘하면 나에게는 득이 됩니다. 그가 못해야 만이 내게 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옆에 있는 동료가, 친구가, 팀원이 자신의 능력을 200배 발휘한다면 나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제자들이 둘 씩 짝지어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낸 것을 기억하면서 나도 내 옆에 있는 형제자매와 함께 복음을 전하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그가 잘하면 칭찬해주고, 그를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존중할 수 있고, 자신이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알고 있고, 능력 있는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와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마태오와 토마스, 소야고보와 타대오, 시몬과 유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팠던 분은 누구실까? 물론 예수님께서 마음이 가장 아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몬도 아팠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왜냐하면 자신과 함께 다니던 동료가 배반을 했기에 스스로에게 죄책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혹시 내가 잘못해서 유다가 잘못된 마음을 가지지는 않았던가? 내가 유다에게 잘못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유다가 그렇게 흔들릴 때 나는 뭐 했던가?” 하면서 말입니다.
둘씩 짝지어 파견 받은 것은 이제 사도들만이 아니라 가정생활을 하는 부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배우자를 짝지어 주시고,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라고 사명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런데 혹시 나 때문에 배우자가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배우자에게서 힘을 빼앗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8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9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
제자들은 선교여행을 하면서 오로지 주님께만 믿음을 두고, 다른 것들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면서 물질에 대해 집착하거나, 편안한 잠자리나 음식 등에 집착을 하면 하느님 나라를 전하는 것에는 온 열정을 쏟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는 것은 오직 주님만을 믿고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말고, 집착하지 말고 자유로워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유롭게 열정을 가지고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시는데, 가난한 사람들도 지팡이쯤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빈한 생활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지팡이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결코 사치는 아닙니다. 그렇게 청빈한 삶으로 하느님 나라를 전할 때, 사람들은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순수성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또 탈무드에 의하면 유다인은 속옷을 두 벌씩 입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만 입는 사람은 아주 가난한 사람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절대적 청빈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디에서나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 고장을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러라.
예수님께서는 선교여행을 하면서 그 고장의 어떤 집에 머물게 되면 끝까지 그 집에 머물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이집 저집 옮겨 다니지 말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은 3일 정도는 그 집에 머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받아들인 주인에게 실례가 되지 않도록 떠날 때까지 옮기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또 더 좋은 음식, 더 편안한 잠자리를 찾아서 이집 저집 옮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을 잘 못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정말 신앙이 있고, 공동체의 일치를 위해 힘쓰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면 앞에서만 그렇게 보이고, 뒤에서는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집에 머물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공동체를 위해서 다른 집으로 옮겨야 할 것입니다.
11 또한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밑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조롱하거나 야유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신앙인이면서도 신앙인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지금 제자들이 파견되는 곳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파견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전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오히려 박해하거나,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잘 살지 못한다면, 아무리 이야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결국 발의 먼지를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린다는 것은 “내가 당신들에게 할 만큼 한 것 아시죠? 그런데도 당신들이 믿지 않는 이유는 저희들 탓이 아니라 당신들 탓입니다. 우리들 때문에 못 믿게 되었다는 얘기는 하지 마세요. 이제 당신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입니다.”라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합니다. 마음을 돌려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만이, 그래서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어야 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열 두 사도들은 환영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말씀에는 힘이 있었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온 마음으로 믿음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사제들이 지팡이 하나 들고 복음 선포를 한다면 신자들의 반응은 어떨까요? 청빈한 삶에 매료되어 더욱 열정적인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사제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삶으로 보여주고 있기에 더더욱 뜨거운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또 많은 부담을 느낄 것입니다. 이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저것도 준비해 줘야 하지. 바뀔 때 마다 준비해 줘야 하지…,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데 온 열정을 쏟아 붓는 것입니다. 그런 삶을 살아갈 때, 신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메시지를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열심한 삶이 받침이 되지 않는 한, 선교는 어렵고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맙니다. 대머리가 발모제를 팔면 얼마나 비웃음을 당하겠습니까?
13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였습니다.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고,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마귀를 쫓아내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었습니다. 사도들이 일으키는 표징으로 사람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말을 믿게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올리브 기름은 매우 다양하게 사용되었는데, 성경에서는 약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또, 올리브 기름은 \’생명의 풍요와 충만\’의 상징이었습니다. 나아가 올리브 기름에 향료를 넣어서 향유를 만들었습니다. 향수처럼 쓰여, 신약성경에는 손님에 대한 최고의 환영의 표시로 그 머리에 향유를 바르는 장면이 보입니다(마르 14 3-9). 올리브 기름과 향유는 종교 의식에도 쓰입니다. 사제, 왕, 예언자 등의 임명식에는 향유(축성성유)를 온몸에 발랐습니다. 또 세례와 견진 때에 우리들은 크리스마 성유로 도유됩니다. 또, 병들었을 때는 병자도유의 성사를 받습니다. 이처럼 오늘날도 우리는 기름이라는 하느님의 훌륭한 선물을 받아 그 그윽한 향기를 통하여 하느님의 힘과 성령을 받습니다.
제자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 또한 주님만을 의지하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①굳은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과 ②주변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과 ③ 내가 전하는 복음의 기쁨을 온 몸으로 보이며 살아갈 때, 주님께서는 나를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실 것입니다.
그런 자세로 구역모임에 나가면 나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나눔을 통해서 형제 자매들이 잘못된 생각들을 접을 수 있고, 그런 형제자매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 또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런 자세로 불의한 일을 행하는 사람들이나, 유혹하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하고, 말씀의 기쁨을 전할 때, 내가 그들처럼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처럼 변화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병자들을 방문하고, 가슴 아픈 일을 당한 이들을 찾아가 위로해 줄 때, 그들은 나를 통해서 주님의 크신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일을 하라고 주님께로부터 파견되었음을 명심합시다.
3. 나눔 및 묵상
①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리고 주님께로부터 파견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않았기에 어려움도 많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되어 이야기해 봅시다.
② 예수님께서 나에게 복음을 전하라 하시며, 나를 보내신다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보내실 것 같습니까? 그리고 그곳에 보내면 나는 예수님의 일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을까요? 내가 가기 싫은 곳은 어디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