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6/21)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롬바르디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경건한 어머니에게 교육받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생활을 하려는 지향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은 17세 때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590년 흑사병이 온 유럽에 퍼지자, 성인은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를 돌보다가 감염되어, 1591년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선종하였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그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함락되어 결정적으로 멸망한다. 멸망의 근본 원인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면서 살아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하느님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은 다르다. 이웃을 가혹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이며, 더없이 약한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7,5-8.13-15ㄱ.18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은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하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말씀하신 유명한 황금률이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그러나 이 말씀대로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에게 해 주더라도, 남을 판단하여 그대로 해 줍니다. 그래서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남을 존중하고, 남이 무엇을 바라는지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이해해 도와주어야 “고맙다.”라는 인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남을 잘못 판단해 모든 허물이나 탓을 그 에게 돌려야 할 경우에는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자칫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등을 너무 쉽게 판단해 그들을 더 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들 편에 서 계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눈을 돌리고, 남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타인이 잘못했을 경우, 즉각 그를 심판할 것이 아니라, 우선 그를 위해 기도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데에는 더디고, 남을 판단하는 데에는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우리는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고 하는 교만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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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6/21)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롬바르디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경건한 어머니에게 교육받아 어린 시절부터 수도 생활을 하려는 지향을 가지고 있었다. 성인은 17세 때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1590년 흑사병이 온 유럽에 퍼지자, 성인은 몸을 아끼지 않고 병자를 돌보다가 감염되어, 1591년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로 선종하였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그를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북왕국 이스라엘은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게 함락되어 결정적으로 멸망한다. 멸망의 근본 원인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이방인의 풍습을 따르면서 살아서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고 하신다. 하느님의 판단과 인간의 판단은 다르다. 이웃을 가혹하게 판단하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이며, 더없이 약한 존재임을 모르는 사람이다(복음).
      제1독서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17,5-8.13-15ㄱ.18 그 무렵 아시리아 임금은 온 나라를 치러 올라왔다. 그는 사마리아까지 쳐 올라와, 그곳을 세 해 동안 포위하였다. 마침내 호세아 제구년에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하라와 고잔 강 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들을 이집트 임금 파라오의 손에서 빼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주 저희 하느님께 죄를 짓고, 다른 신들을 경외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쫓아내신 민족들의 풍속과 이스라엘 임금들이 만들어 낸 것에 따라 걸어갔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와 선견자들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유다에 경고하셨다. “너희의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하고 나의 종 예언자들을 통하여 너희에게 보낸 모든 율법대로 나의 계명과 규정들을 지켜라.”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듣지 않고, 주 저희 하느님을 믿지 않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목을 뻣뻣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분의 규정과 그분께서 저희 조상들과 맺으신 계약, 그리고 자기들에게 주신 경고를 업신여겼다.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크게 노하시어 그들을 당신 앞에서 물리치시니, 남은 것은 유다 지파뿐이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 말씀하신 유명한 황금률이 있습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그러나 이 말씀대로 실천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남에게 해 주더라도, 남을 판단하여 그대로 해 줍니다. 그래서 도와주고도 욕을 먹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남을 존중하고, 남이 무엇을 바라는지 신중하고도 정확하게 이해해 도와주어야 “고맙다.”라는 인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남을 잘못 판단해 모든 허물이나 탓을 그 에게 돌려야 할 경우에는 얼마나 더 신중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자칫 약한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 등을 너무 쉽게 판단해 그들을 더 슬프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들 편에 서 계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잘못에 눈을 돌리고, 남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우선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타인이 잘못했을 경우, 즉각 그를 심판할 것이 아니라, 우선 그를 위해 기도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을 배려하는 데에는 더디고, 남을 판단하는 데에는 얼마나 빠른지 모릅니다. 우리는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에 들어 있는 티를 빼내 주겠다.’고 하는 교만한 사람일 수도 있음을 언제나 생각해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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