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연중 제29주간 목요일(10/21)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공동체를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굳세어지고,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세상을 정화시키시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서로 갈라져 분열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14-21 형제 여러분,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은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타오르는 불은 주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걸러 낼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가 곧 불의 세례이지요. 또 주님께서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평화이시고 일치이신 분께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은 얼른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고, 주님께서 당신 날개 안에 모으시는 일치는 세상에서 말하는 일치와 다릅니다. 세상의 평화는 힘의 논리에 따른 것이고, 세상이 말하는 일치는 독재자의 횡포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주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지 결정하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논리를 따라간다면, 우리는 그 즉시 참된 주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와 모녀와 고부가 서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나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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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연중 제29주간 목요일(10/21)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 공동체를 위하여 성령을 통하여 굳세어지고,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고,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은 세상을 정화시키시기 위함이다. 이 과정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이 서로 갈라져 분열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복음).
      제1독서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아,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3,14-21 형제 여러분,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종족이 아버지에게서 이름을 받습니다. 아버지께서 당신의 풍성한 영광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내적 인간이 당신 힘으로 굳세어지게 하시고,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모든 성도와 함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닫는 능력을 지니고,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이렇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빕니다.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힘으로,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풍성히 이루어 주실 수 있는 분, 그분께 교회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세세 대대로 영원무궁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주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불은 어지러운 세상을 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타오르는 불은 주님의 것과 세상의 것을 걸러 낼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이는 세상에 대해서는 죽고, 주님 안에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받은 세례가 곧 불의 세례이지요. 또 주님께서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평화이시고 일치이신 분께서 분열을 일으키러 오셨다는 말씀은 얼른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고, 주님께서 당신 날개 안에 모으시는 일치는 세상에서 말하는 일치와 다릅니다. 세상의 평화는 힘의 논리에 따른 것이고, 세상이 말하는 일치는 독재자의 횡포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따르는 우리는 주님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따를 것인지 결정하고,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세상의 논리를 따라간다면, 우리는 그 즉시 참된 주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자와 모녀와 고부가 서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하나 될 때
    
    
    

  2. guest 님의 말: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과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가슴에 품고 사는 것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이 비 신앙인의 잘못된 행동이나 믿음을 저버리게 하는 행동을 따라 할 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에 갈등은 생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신앙인이 옳은 것을 행하고 있기에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굳은 믿음 속에서 당당하게 이겨내야 합니다. 사랑의 불이 나를 사로잡아 고통이나 어려움을 모르고, 기쁘게 “그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불의 이미지를 생각해 봅시다. 불은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두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메마른 대지에 불이나면 모든 것이 타 버립니다. 그런데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불을 통해서 다시 새로운 생명들이 자라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불은 강한 것을 부드럽게 만들어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줍니다. 쇠 덩어리를 가지고 멋진 항아리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쇠 덩어리를 녹이는 것입니다. 불로 녹여서 새로운 모양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금덩어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광산에서 캐온 금덩어리들에는 다른 물질들이 많이 붙어 있습니다. 그것을 순수한 금으로 만드는 방법은 불로 가열하는 것입니다.


    불은 필요 없는 것을 태워 버립니다. 불은 강한 것은 부드럽게 만듭니다. 불은 그 안에서 견딜 수 없는 것들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 불을 통해서 무딘 마음의 나는 다시 부드러워 지고, 필요 없는 것들(믿지 않는 마음, 행동하지 않는 마음)은 사라져 버리게 되고, 다시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가지게 됩니다.


    신앙에 대한 열정이 타오른다면 내 삶은 변화됩니다. 열정만 있다면 주변에서 주어지는 고통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 열정만 있다면 먼 거리를 여행하게 만들고, 긴 시간을 기도하게 만들며, 땀을 흘리며 사랑의 봉사를 하게 만들고, 내 것을 아낌없이 내어 놓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열정입니다.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하느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을 드리는 것이 바로 사랑과 믿음의 불입니다. 그런데 그 불이 아직 활활 타오르지 않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타오르게 하려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사랑의 불을 지피셨습니다. 하지만 그 불을 활활 타오르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그 불이 활활 타오르게 하실 것입니다.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이유는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인간을 사랑하시어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을 아들 예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또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몸소 인간이 되시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하느님 사랑에 대한 불꽃을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또한 죄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셔야 하는 일(예수님께서 받으셔야만 하는 세례)은 바로 십자가상의 제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라는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의 희생제사가 얼마나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인지 표현해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 목요일 게쎄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고,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의 불꽃으로 다시 일어나시어 박해자들의 손에 자신을 넘겨주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하느님 사랑의 불을 지르셨습니다. 수난과 십자가의 죽음으로 사랑과 구원의 불을 지르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받으실 고통의 세례였습니다.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주러 왔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분은 메시아다”“저분은 그냥 예언자다”“저분은 사기꾼이다.”“저분은 죄인이다”“저분은…,”

     이렇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과 예수님을 죄인으로 단죄하는 사람들은 서로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각자의 선택은 서로를 갈라놓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구원의 때는 바로 평화의 때이고, 메시아는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메시아에게 이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지저분한 방이 깨끗하게 정리가 되기 위해서는 필요 없는 것들, 방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들을 치워 버려야 하는데 서로의 입장이 달라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상대방은 필요하다고 우기고, 내가 필요한 것을 상대방은 필요 없다고 우기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오게 됩니다. 그래서 평화와 구원의 시대가 밝아 오기 전에는 다툼과 분열과 불화의 시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언자 미카는 구원의 때에 앞서 오게 될 이 재난과 분쟁의 시기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6 아들이 아버지를 경멸하고 딸이 어머니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대든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7 그러나 나는 주님을 바라보고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내 하느님께서 내 청을 들어 주시리라. ”(미카 7,6-7)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가정 안에서 믿지 않는 이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전교하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내가 신앙생활 하는 것을 다 보았기 때문에 “우리 성당가요”하면 “야! 너나 잘해!”“나는 성당 안다녀도 너 만큼은 해!” 이런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는 포기하게 되고 “그래! 언젠가는 때가 오겠지?”하면서 기다리게 됩니다.

     내가 신앙생활을 했기에 이렇게 양보하면서 살아가고 있고, 내가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에 인내하고 있으며,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신앙을 이야기해도 외면하고, 미루고, 심지어 조롱까지도 하는 것입니다.


     배우자나 가족이 성당에 안 나올 때 가슴이 아픈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못하는 이들을 바라보시며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요?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 시어머니와 며느리. 이 관계는 그 무엇보다도 가까운 관계이고, 그 무슨 말을 해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어떤 행동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관계입니다. 하지만 그들 마음 안에 불신이 자라나면 그 누구도 화해를 시키기 어려운 관계이기도 합니다.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고등학교에만 올라가면 신앙생활을 권하지 않고, “대학교 가면 신앙생활 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오로지 학교 공부에만 전념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이때 주님께서 오신다면 아들은 아버지에게 그 책임을 넘기고, 아버지는 또 아들에게 그 책임을 넘기게 될 것입니다. 성당에 가는 것이 많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고, 성당에 다닌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불안한 부모는 그것을 알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함께 기도하자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시험 때가 되면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 “부적”을 만들어 오기도 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서로 위해줄 수 있는 관계이지만,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부려먹어야 할 대상으로 보고,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빨리 없어져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그 가정에 행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의 며느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는 시어머니, 성당에서는 열심히 활동하고, 노인들을 위해서 봉사도 많이 하지만 집에만 들어오면 시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는 며느리. 그들은 사랑의 불로 편협한 마음들을 태워 버려야 합니다.


     또한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시거나 개신교에 다니시면 며느리는 성당 못 가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다음에 어머니 돌아가시면 성당 다니지!” 하고 성당 안나오면 어머니 돌아가셔도 성당에 못 나옵니다. 기도하는 것을 잊어 먹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한 번 더 참고, 인내하며,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 신앙이지 갈라지고, 싸우고,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 신앙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알 수 있도록” 내 안에 있는 열정을 끄지 말아야 하며, 활활 타오르게 만들어야 합니다.


    3. 나눔 및 묵상

    ① 오늘 말씀 중에서 나에게 기쁨으로 다가오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왜 그 말씀이 기쁨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② 신앙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잘 하는 것일까요?


    ③ 신앙생활 하면서 내가 내 안에서 태워 버릴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을 버려야 할까요? 가정 안에서 신앙생활 하지 않는 가족을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만들까요?


    4. 말씀으로 기도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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