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주님 공현 후 토요일(1/08)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그 안에 살기를 바라신다. 그러기 위해 요한 사도는 세상의 우상을 조심할 것과,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 뜻에 따라 기도하며 그 믿음을 지키도록 권고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려가자, 은근한 질투를 느끼며 요한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요한은 제자들에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하며 자신을 낮춘다. 요한의 이런 겸손한 모범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의 모습이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2-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입니다. 인간적인 이해로 보면 두 분은 경쟁적인 관계일 것입니다. 동시대에 태어나신 같은 또래이신 데다가 사촌지간이셨고, 두 분 다 자신의 방식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적 시선으로 비교해 보면, 광야에서 금욕 생활을 하며 세례를 베풀던 요한이 훨씬 더 멋진 구도자처럼 보입니다. 먹고 마시며 떠도시던 예수님보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더 큰 존경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자신을 포기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영성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직면하는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냐?’, ‘나냐?’ 하는 물음입니다. 매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우리는 내 안에서 ‘주님’을 몰아내고 그 영광의 자리에 온통 ‘나’를 자리 잡게 합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예수님과 경쟁을 벌여서 내가 이기고 맙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다가는 결국은 허무한 ‘영적인 패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위대함은 많은 사람은 물론, 예수님께까지 세례를 베푼 ‘세례자’로서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은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점 티끌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셔 놓은 데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말없이 떠난 자리에도 그렇게 주님만이 계셔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이 마음을 당신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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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에 1개의 응답

  1. guest 님의 말:



    주님 공현 후 토요일(1/08)


      말씀의 초대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참된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고 그 안에 살기를 바라신다. 그러기 위해 요한 사도는 세상의 우상을 조심할 것과,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신 그분 뜻에 따라 기도하며 그 믿음을 지키도록 권고한다(제1독서).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사람들이 몰려가자, 은근한 질투를 느끼며 요한에게 보고한다. 그러나 요한은 제자들에게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하며 자신을 낮춘다. 요한의 이런 겸손한 모범은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이의 모습이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하느님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의 아드님에 대하여 가지는 확신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그분의 뜻에 따라 청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청을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그분께 청한 것을 받는다는 것도 압니다. 누구든지 자기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을 볼 때에 그것이 죽을죄가 아니면, 그를 위하여 청하십시오. 하느님께서 그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이는 죽을죄가 아닌 죄를 짓는 이들에게 해당됩니다. 죽을죄가 있는데, 그러한 죄 때문에 간구하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불의는 죄입니다. 그러나 죽을죄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죄를 짓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느님에게서 태어나신 분께서 그를 지켜 주시어, 악마가 그에게 손을 대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또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오시어, 우리에게 참되신 분을 알도록 이해력을 주신 것도 압니다. 우리는 참되신 분 안에 있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이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영원한 생명이십니다. 자녀 여러분, 우상을 조심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3,22-30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땅으로 가시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세례를 주셨다. 요한도 살림에 가까운 애논에 물이 많아, 거기에서 세례를 주고 있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가서 세례를 받았다. 그때는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이었다. 그런데 요한의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례를 두고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 제자들이 요한에게 가서 말하였다. “스승님, 요르단 강 건너편에서 스승님과 함께 계시던 분, 스승님께서 증언하신 분, 바로 그분이 세례를 주시는데, 사람들이 모두 그분께 가고 있습니다.” 그러자 요한이 대답하였다. “하늘로부터 주어지지 않으면 사람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에 앞서 파견된 사람일 따름이다.’ 하고 내가 말한 사실에 관하여, 너희 자신이 내 증인이다. 신부를 차지하는 이는 신랑이다. 신랑 친구는 신랑의 소리를 들으려고 서 있다가, 그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내 기쁨도 그렇게 충만하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세상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고 선포한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자 요한입니다. 인간적인 이해로 보면 두 분은 경쟁적인 관계일 것입니다. 동시대에 태어나신 같은 또래이신 데다가 사촌지간이셨고, 두 분 다 자신의 방식으로 제자들을 불러 모으시고 가르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적 시선으로 비교해 보면, 광야에서 금욕 생활을 하며 세례를 베풀던 요한이 훨씬 더 멋진 구도자처럼 보입니다. 먹고 마시며 떠도시던 예수님보다 세례자 요한이 사람들에게 더 큰 존경을 받았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요한은 자신을 포기하고,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가리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영성 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직면하는 중요한 질문은 ‘예수님이냐?’, ‘나냐?’ 하는 물음입니다. 매사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자 하는 집착 때문에, 우리는 내 안에서 ‘주님’을 몰아내고 그 영광의 자리에 온통 ‘나’를 자리 잡게 합니다. 마음 밑바닥에서 예수님과 경쟁을 벌여서 내가 이기고 맙니다. 이런 믿음의 삶을 살다가는 결국은 허무한 ‘영적인 패자’가 되고 맙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위대함은 많은 사람은 물론, 예수님께까지 세례를 베푼 ‘세례자’로서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신은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점 티끌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그 자리에 예수님을 모셔 놓은 데 있습니다. 우리가 봉사하고 말없이 떠난 자리에도 그렇게 주님만이 계셔야 합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이 마음을 당신께만
    
    
    

  2. guest 님의 말: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주님!
    복음을 묵상하면서’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말씀을 화두삼아 오늘부터 겸손하고 신앙 깊은 헬레나가 되어야 한다고
    다짐해봅니다
    언제나 다짐으로만 끝나고 행동으로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흠이지만 노력하겟습니다
    세례자요한성인만은 못하지만 따르도록 마음만이라도 개과천선하는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정말 정말 진짜 진짜로 ^*^

    주님!
    교만하고 아집으로 똘똘뭉친 저의 몸과 마음이 변화 되기를 간절한마음으로
    기도합니다
    세례자요한성인처럼 매사에 신발 끈을 풀어드릴 만도 못한 자신이 작은사람이라는
    것을 가슴에 새기며 반수레가 요란한 깡통신자는 되지 말아야한다고
    굳게 굳게 다짐합니다
    세례자요한성인처럼은 감히 비교할수 없지만…
    성심 성의 껏^*^
    최선을 다하는 헬레나가 되었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아멘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묵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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