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연중 제3주간 토요일(1/29)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순명으로 드러난다.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고향을 떠났고, 하느님께 시험을 받을 때는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고자 했다. 이런 믿음의 후손에게 하느님께서는 대대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현상까지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신다. 우리 삶의 어떤 어려움도 이런 능력을 가지신 그분께 의지하고 도우심을 청할 때, 그분께서는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1-2.8-19 형제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다에서는 표면에 부는 폭풍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쓰나미’라고 불리는 ‘지진성 해일’입니다. 바닥의 근간이 흔들리는 쓰나미는, 폭풍우와는 달리 바다 표면에서는 낮은 파도 현상을 보이지만, 바닷속 깊은 곳에서는 그 파장이 매우 길어 연안에 도착하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기도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갑자기 들이닥친 삶의 표면에 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 삶의 근간, 뿌리가 흔들릴 때입니다. 마치 부부가 살면서 부딪히는 이런저런 시련보다, 부부 생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질 때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때로는 한 인생에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우리 삶에도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가 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 중심을 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센 돌풍 속에서도 배 안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십니다. 세상의 폭풍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어도 믿음을 두지 못하는 제자들의 ‘약한 믿음’이 더 문제라는 것을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폭풍우’를 잠재울 운명의 주재자는 세상의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오로지 주님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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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3주간 토요일(1/29)


      말씀의 초대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철저한 순명으로 드러난다. 그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 고향을 떠났고, 하느님께 시험을 받을 때는 외아들 이사악을 바치고자 했다. 이런 믿음의 후손에게 하느님께서는 대대로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현상까지도 지배하시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드러내신다. 우리 삶의 어떤 어려움도 이런 능력을 가지신 그분께 의지하고 도우심을 청할 때, 그분께서는 필요한 은총을 베풀어 주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11,1-2.8-19 형제 여러분,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사실 옛사람들은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장차 상속 재산으로 받을 곳을 향하여 떠나라는 부르심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떠난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그는 같은 약속의 공동 상속자인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천막을 치고 머무르면서, 약속받은 땅인데도 남의 땅인 것처럼 이방인으로 살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설계자이시며 건축가로서 튼튼한 기초를 갖추어 주신 도성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써, 사라는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여인인 데다, 나이까지 지났는데도, 임신할 능력을 얻었습니다. 약속해 주신 분을 성실하신 분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에게서, 그것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람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수가 많고, 바닷가의 모래처럼 셀 수 없는 후손이 태어났습니다. 이들은 모두 믿음 속에 죽어 갔습니다.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멀리서 그것을 보고 반겼습니다. 그리고 자기들은 이 세상에서 이방인이며 나그네일 따름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함으로써, 자기들이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만일 그들이 떠나온 곳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더 나은 곳, 바로 하늘 본향을 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불리시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도성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이사악을 바쳤습니다.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이 외아들을 바치려고 하였습니다. 그 외아들을 두고 하느님께서는 일찍이, “이사악을 통하여 후손들이 너의 이름을 물려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사악을 하나의 상징으로 돌려받은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35-41 그날 저녁이 되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쪽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배에 타고 계신 예수님을 그대로 모시고 갔는데, 다른 배들도 그분을 뒤따랐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로 말하였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바다에서는 표면에 부는 폭풍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쓰나미’라고 불리는 ‘지진성 해일’입니다. 바닥의 근간이 흔들리는 쓰나미는, 폭풍우와는 달리 바다 표면에서는 낮은 파도 현상을 보이지만, 바닷속 깊은 곳에서는 그 파장이 매우 길어 연안에 도착하면 엄청난 재앙을 몰고 오기도 합니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갑자기 들이닥친 삶의 표면에 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정말 두려운 것은 우리 삶의 근간, 뿌리가 흔들릴 때입니다. 마치 부부가 살면서 부딪히는 이런저런 시련보다, 부부 생활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신뢰가 무너질 때 더 큰 문제가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경우, 때로는 한 인생에 큰 아픔과 상처를 남기기도 합니다. 우리 인생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우리 삶에도 맑은 날만 있는 것이 아니라 폭풍우가 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기반이 흔들리지 않을 때, 우리 삶은 다시 중심을 잡고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센 돌풍 속에서도 배 안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십니다. 세상의 폭풍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 있어도 믿음을 두지 못하는 제자들의 ‘약한 믿음’이 더 문제라는 것을 가르치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 ‘인생의 폭풍우’를 잠재울 운명의 주재자는 세상의 그 무엇도 될 수 없고, 오로지 주님뿐입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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