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연중 제4주간 토요일(2/09)


    말씀의 초대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바칠 찬양 제물을 마땅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제물 가운데 가장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선행과 나눔 같은 사랑의 열매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파견 임무를 마친 제자들과 함께 쉬려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군중이 찾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당신의 휴식을 희생하시고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신다(복음).
    제1독서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5-17.20-21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4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여겨진 군중에 대해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들다’(스플랑크니조마이, splangkhnizomai)라는 동사는 ‘배 속’, ‘내장’을 의미하는 낱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가엾은 마음’이란 속이 요동칠 정도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동사는 예수님의 마음 상태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또 복음서의 세 가지 비유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비유들도 온갖 사랑으로 가득한 경우입니다. 첫 번째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참조)입니다. 한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서 강도에게 폭행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는 속이 요동칠 정도의 연민을 느낍니다. 두 번째는 만 탈렌트를 빚진 종에 대해 그 주인이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마태 18,27 참조). 비록 비유의 말씀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한 탈렌트가 6천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 한 데나리온을 우리 돈의 5만 원으로 친다 해도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 엄청난 빚을 그냥 탕감해 줍니다. 세 번째는 돌아온 아들을 멀리서 아버지가 알아보고 느낀 마음입니다(루카 15,20 참조). 미리 유산을 받고 도망친 아들, 호화로운 옷을 입고 ‘먼 고장’으로 가버린 아들, 이제는 거지가 되어 누가 보아도 그 아들이라고 알아볼 수 없는 아들을 아버지는 알아봅니다. 그것도 멀리서 알아보고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 이처럼 가엾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예수님께서 느끼시어 꿀맛 같은 휴식도 포기하시고서 사람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예수님을 찾을 때 그분께서는 그러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은 나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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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중 제4주간 토요일(2/09)


      말씀의 초대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바칠 찬양 제물을 마땅히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그 제물 가운데 가장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것은 선행과 나눔 같은 사랑의 열매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파견 임무를 마친 제자들과 함께 쉬려고 하셨다. 그러나 많은 군중이 찾아오자,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당신의 휴식을 희생하시고 그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신다(복음).
      제1독서
      <위대한 목자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 히브리서의 말씀입니다. 13,15-17.20-21 형제 여러분, 예수님을 통하여 언제나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칩시다. 그것은 그분의 이름을 찬미하는 입술의 열매입니다. 선행과 나눔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이러한 것들이 하느님 마음에 드는 제물입니다. 지도자들의 말을 따르고 그들에게 복종하십시오. 그들은 하느님께 셈을 해 드려야 하는 이들로서 여러분의 영혼을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탄식하는 일 없이 기쁘게 이 직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탄식은 여러분에게 손해가 됩니다. 영원한 계약의 피로, 양들의 위대한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끌어올리신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온갖 좋은 것을 마련해 주시어 여러분이 당신의 뜻을 이루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당신 마음에 드는 것을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그들은 목자 없는 양들 같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30-34 그때에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보고, 모든 고을에서 나와 육로로 함께 달려가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다다랐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들처럼 여겨진 군중에 대해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들다’(스플랑크니조마이, splangkhnizomai)라는 동사는 ‘배 속’, ‘내장’을 의미하는 낱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가엾은 마음’이란 속이 요동칠 정도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이 동사는 예수님의 마음 상태를 묘사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또 복음서의 세 가지 비유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 비유들도 온갖 사랑으로 가득한 경우입니다. 첫 번째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참조)입니다. 한 사마리아 사람은 길에서 강도에게 폭행당해 쓰러져 있는 사람을 보고서는 속이 요동칠 정도의 연민을 느낍니다. 두 번째는 만 탈렌트를 빚진 종에 대해 그 주인이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마태 18,27 참조). 비록 비유의 말씀에 나오는 이야기이지만, 한 탈렌트가 6천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이 하루 품삯이니, 한 데나리온을 우리 돈의 5만 원으로 친다 해도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이 엄청난 빚을 그냥 탕감해 줍니다. 세 번째는 돌아온 아들을 멀리서 아버지가 알아보고 느낀 마음입니다(루카 15,20 참조). 미리 유산을 받고 도망친 아들, 호화로운 옷을 입고 ‘먼 고장’으로 가버린 아들, 이제는 거지가 되어 누가 보아도 그 아들이라고 알아볼 수 없는 아들을 아버지는 알아봅니다. 그것도 멀리서 알아보고 가엾은 마음을 갖습니다. 이처럼 가엾은 마음이 든다는 것은 상대방의 고통과 아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어 내 마음이 요동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감정을 예수님께서 느끼시어 꿀맛 같은 휴식도 포기하시고서 사람들을 만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예수님을 찾을 때 그분께서는 그러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십니다.
     
    -출처 매일 미사-
    
    
    
    저녁노을(모니카)
    
    
    ♬ 주님은 나의 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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